모테쿠소마 일위카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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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테쿠소마 일위카미나는 1440년부터 1469년까지 아즈텍 제국을 통치한 틀라토아니이다. 그는 우이칠리우이틀 황제와 미아우아시우이틀 여왕의 아들이었으며, "그는 군주처럼 화를 낸다"는 의미의 이름을 가졌다. 모테쿠소마는 즉위 후 틀라코판, 테스코코와 동맹을 굳건히 하고, 멕시코 만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아즈텍 제국의 번영을 이끌었다. 그는 통치 기간 동안 자연 재해와 기근을 겪었으며, 사회, 정치, 경제 개혁을 시행했다. 모테쿠소마 1세는 멕시코 독립과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대중문화에서도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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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테쿠소마 일위카미나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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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모테우초마 1세 |
나우아틀어 이름 | Motēuczōmah Ilhuicamīna |
로마자 표기 | Motēuczōmah Ilhuicamīna [moteːkʷˈsoːma ilwikaˈmiːna] |
다른 나우아틀어 이름 | Huēhuemotēuczōmah |
다른 로마자 표기 | Huēhuemotēuczōmah [weːwemotɛːkʷˈsoːmaḁ] |
칭호 | 테노치티틀란의 제5대 틀라토아니 |
통치 기간 | |
재위 기간 | 1440년–1469년 |
이전 통치자 | 이츠코아틀 |
다음 통치자 | 아토토스틀리 2세 |
가족 관계 | |
배우자 | 치치메카시와친 1세 왕비 |
자녀 | 아토토스틀리 2세 공주 치치메카시와친 2세 공주 이케우아카친 왕자 마침말레 왕자 |
아버지 | 위치릴위틀 황제 |
어머니 | 미아우아시위틀 왕비 |
생애 | |
출생 | 1398년경 |
사망 | 1469년 |
2. 혈통 및 가계
모테쿠소마 1세는 아즈텍 제국의 주요 황족 가문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제2대 트라토아니(황제) 우이칠리우이틀이며,[5][23] 어머니 미아우아시우이틀은 콰우나와크의 귀족 출신이다.[23] 그의 가계는 형제인 치말포포카(제3대 트라토아니)와 틀라카엘렐 1세(시와코아틀), 그리고 트라토아니에 오른 세 명의 손자(아샤야카틀, 티소크, 아위초틀)를 통해 아즈텍 제국의 역사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5][23]
2. 1. 가계
모테쿠소마는 황제 우이칠리우이틀(‘벌새 깃털’이라는 뜻)과 여왕 미아우아시우이틀 사이에서 태어났다.[5] 어머니 미아우아시우이틀은 콰우나와크 족장의 딸이었다.[23] 그는 테노치티틀란의 첫 번째 통치자의 손자였다.[5]그의 이름은 '그는 군주처럼 화를 낸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tēuc-|테우크nah(군주)라는 어근과 재귀 동사 mo/zōma|모소마nah(화가 난다)가 결합된 것이다.[5]
형제로는 제3대 트라토아니 치말포포카, 시와코아틀(재상)인 틀라카엘렐 1세, 우에우에 사카 등이 있었다. 이 중 치말포포카와 틀라카엘렐은 배다른 형제였다.[5][23]
모테쿠소마 1세의 딸 아토토스트리는 숙부인 이츠코아틀의 아들 테소소모크와 결혼했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들, 아샤야카틀, 티소크, 아위초틀은 모두 후에 트라토아니에 즉위했다.[23]
2. 2. 이름의 의미
"모테쿠소마(모테크소마)"라는 이름의 나와틀어 의미에 대해서는 "화내며 얼굴을 찌푸리는(mozoma) 주(tēuctli)" 등의 해석이 있지만,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일위카미나"는 "하늘에(ilhuicatl) 화살을 쏘는(mina) 자"라는 의미이다.[23]3. 즉위와 대관식
1440년, 숙부인 잇스코아틀이 사망하자 모테쿠소마는 귀족 그룹에 의해 후계자로 선출되어 틀라토아니(황제)로 즉위하였다.[5] 그의 대관식[6]은 많은 인신 제사를 포함하는 성대한 의식으로 치러졌다.
3. 1. 즉위 배경
모테쿠소마 1세는 제2대 틀라토아니인 위칠리위틀의 아들이며, 어머니 미아와시위틀은 콰우나와크 족장의 딸이었다.[23] 제3대 틀라토아니 치말포포카와 시와코아틀(재상)인 트라카엘렐은 그의 배다른 형제이다.[23]우이칠리포치틀리 황제가 사망한 후, 모테쿠소마의 형제인 치말포포카가 10년간 통치했으나 암살되었다. 치말포포카의 통치 기간 동안 모테쿠소마와 그의 형제 틀라카엘렐 1세는 젊은 귀족들 사이에서 반대 세력을 이끌었다. 이들은 호전적인 성향을 보였으며, 그의 이복 삼촌인 잇스코아틀을 다음 통치자로 지지했다. 잇스코아틀의 치세 하에서 모테쿠소마는 틀라카엘렐과 함께 군대의 장군(틀라코치칼카틀)으로 복무하며 군사적 공적을 쌓았다.[5][23]
1440년, 숙부인 잇스코아틀이 사망하자, 모테쿠소마는 42세의 나이로 귀족 그룹에 의해 후계자로 선출되었다. 이는 그가 장군으로서 세운 군공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23] 그는 아즈텍인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배하에 있는 다른 민족들까지 대변한다는 의미에서 일반적인 '연설가'와 구별되는 "위대한 연설가"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의 대관식[6]은 테스코코의 통치자가 주관했으며, 많은 인신 제사를 포함하는 대규모 행사로 치러졌다. 모테쿠소마는 바구니로 만든 옥좌에 앉아 청록색 장식으로 만들어진 '불의 왕관'을 받았다.[5]

3. 2. 대관식
잇스코아틀이 사망한 후, 모테쿠소마는 1440년 42세의 나이에 귀족 그룹에 의해 틀라토아니(황제)로 추대되었다.[5] 그는 아즈텍인과 그들이 통치하는 다른 민족 모두를 대변한다는 의미에서 '위대한 연설가'라는 칭호를 받았다.그의 대관식[6]은 많은 인신 제사를 포함하는 대규모 행사였다. 모테쿠소마는 바구니로 만든 옥좌에 앉았으며, 테스코코의 통치자가 그의 머리에 '불의 왕관'으로 알려진 청록색 장식품을 씌워주었다.[5]
4. 통치와 업적
모테쿠소마 1세는 숙부인 이츠코아틀이 틀라토아니로 있던 시절부터 이미 트라코치칼카틀(장군) 지위에 올라 군공을 세웠다. 1440년 이츠코아틀이 사망하자,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후계자로 선출되었다.[23]
틀라토아니로서 모테쿠소마는 재위 기간 동안 아즈텍 제국의 정치, 군사, 사회 전반에 걸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이웃한 도시 국가인 틀라코판과 테스코코와의 삼국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여 제국의 기반을 안정시켰다.[8][9] 또한, 활발한 정복 활동을 통해 제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1445년 오아하카 주를 시작으로,[11] 멕시코 계곡 너머 멕시코 만 연안("하늘의 바다")까지 진출하여 와스테크 족과 토토나크 족 등을 정복했으며,[11] 멕시코 분지 내에서는 오랜 전쟁 끝에 찰코를 복속시켰다.[24] 이러한 영토 확장을 통해 코코아, 고무, 면화, 깃털 등 다양한 상품과 중요한 무역 중심지를 확보하여 제국의 경제력을 강화했다.[11][24]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발전을 위한 기반 시설 건설에도 힘썼다. 테스코코의 네사우알코요틀과 협력하여 도시에 신선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수로 시스템과 수도를 건설하거나 개량했다.[10][23][24] 특히 1450년 테노치티틀란을 덮친 대홍수 이후에는 네사왈코요틀의 도움을 받아 호수를 가로지르는 약 15km 길이의 거대한 제방을 건설하여 도시를 보호했다.[23] 모테쿠소마 1세는 차풀테펙에 자신의 업적을 기리는 석상을 세우기도 했다.[24]
사회 및 군사 시스템 정비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지속적인 제국 확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각지에 텔포치칼리라는 학교를 설립하여 젊은이들을 군인으로 양성했으며, 군인 계급에 따른 복식 규정을 마련했다.[23] 또한, 악천후로 인한 기근이 발생했을 때는 왕실 창고의 곡물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민생 안정에도 힘썼다.[23]
모테쿠소마 1세는 1469년에 사망했다. 그의 딸 아토토스트리는 이츠코아틀의 아들 테소소모크와 결혼하여 세 아들, 아샤야카틀, 티소크, 아위초틀을 낳았으며, 이들은 모두 후에 틀라토아니의 자리에 올랐다.
4. 1. 아스텍 삼각 동맹 강화
틀라토아니인 모테쿠소마는 이웃한 두 도시 국가인 틀라코판과 테스코코와의 동맹을 공고히 했다. 테스코코 호수 서쪽 기슭에 위치한 작은 도시 국가 틀라코판은 북서쪽의 일곱 개 도시 국가를 통제했고, 동쪽 기슭에 자리한 테스코코는 북동쪽의 아홉 개 도시 국가를 다스렸다.[8] 이 두 지역이 모테쿠소마의 제국에 통합되면서, 아즈텍은 이미 구축된 도시 국가 체계를 활용하여 군사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 효율적으로 구성된 아즈텍 삼국 동맹에서는 전쟁으로 얻은 약탈품을 테노치티틀란과 테스코코가 각각 5분의 2씩, 틀라코판이 나머지 5분의 1을 가져갔다.[9]아즈텍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모테쿠소마와 테스코코의 네사우알코요틀이 협력하여 두 개의 수로 시스템 건설을 조직하고 완성했다는 점이다.[10] 이 수로는 테노치티틀란 도시에 신선한 물을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테스코코 호수가에서 테츠코친코 언덕까지 약 12km에 걸쳐 있는 테스코코의 다양한 지역 사회에도 충분한 양의 깨끗한 물을 제공했다.
모테쿠소마는 통치 초인 1445년에 오아하카 주를 정복했다.[11] 이후 그는 멕시코 계곡을 넘어 '하늘의 바다'로 알려진 멕시코 만 해안까지 아즈텍 제국의 영토를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와스테크 족과 토토나크 족을 정복하여 코코아, 고무, 면화, 과일, 깃털, 조개껍데기와 같은 귀한 상품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11] 멕시코 만까지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게 되면서 아즈텍인들은 '하늘의 바다의 이웃'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4. 2. 테노치티틀란의 발전
틀라토아니로서 모테쿠소마는 이웃한 두 도시 국가, 틀라코판과 테스코코와의 동맹을 공고히 하였다. 테스코코 호수 서쪽의 틀라코판은 북서쪽의 일곱 도시 국가를, 동쪽의 테스코코는 북동쪽의 아홉 도시 국가를 각각 통제하고 있었다.[8] 이들 지역이 모테쿠소마의 제국에 통합되면서, 아즈텍은 이미 구축된 도시 국가 체제를 활용하여 군사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 삼국 동맹 체제 하에서 확보된 약탈품은 테노치티틀란과 테스코코가 각각 5분의 2씩, 틀라코판이 나머지 5분의 1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분배되었다.[9]모테쿠소마 1세는 1440년 숙부 이츠코아틀의 뒤를 이어 즉위한 후,[23] 재위 기간 동안 적극적인 외정을 통해 아즈텍 제국의 영토를 크게 넓혔다. 1445년에 오아하카 주를 정복했으며,[11] 멕시코 분지 내에서는 오랜 전쟁 끝에 찰코를 복속시켰다. 또한 제국의 경계를 멕시코 계곡 너머 멕시코 만 해안("하늘의 바다")까지 확장하여 와스테크 족과 토토나크 족을 정복하였다.[11][24] 이를 통해 코코아, 고무, 면화, 과일, 깃털, 조개껍데기와 같은 이국적인 상품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고 모피, 카카오 등 주요 상품 시장을 통제하는 등 경제적 기반을 다졌다.[11][24] 아즈텍인들은 멕시코 만까지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게 되면서 "하늘의 바다의 이웃"으로 불리게 되었다.
테노치티틀란의 도시 기반 시설 확충에도 힘썼다. 모테쿠소마는 테스코코의 네사우알코요틀과 협력하여 테노치티틀란에 신선한 물을 공급하는 두 개의 수로 시스템 건설을 조직하고 완성했으며,[10] 차풀테펙에서 테노치티틀란까지 식수를 운반하는 수도를 새로 건설하거나 개조했다.[23][24] 1450년 테노치티틀란이 큰 홍수 피해를 입었을 때에는 네사왈코요틀의 도움을 받아 호수를 가로지르는 길이 15km에 달하는 제방을 건설하여 도시를 보호했다.[23] 모테쿠소마 1세는 차풀테펙에 자신의 석상을 새기기도 했다.[24]
지속적인 제국 운영을 위해 군사 및 사회 시스템도 정비되었다. 각지에 텔포치칼리(Telpochcalli)라는 학교를 세워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군인으로 양성했으며, 군인들은 계급에 따라 복장 규정을 두었다.[23] 또한 악천후로 기근이 발생했을 때는 왕실 창고에 저장된 곡물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민생 안정에도 힘썼다.[23]
4. 3. 영토 확장
틀라토아니로서 모테쿠소마는 이웃한 틀라코판과 테스코코와의 동맹을 강화했다. 틀라코판은 테스코코 호수 서쪽 기슭에서 북서쪽 일곱 도시 국가를, 테스코코는 동쪽 기슭에서 북동쪽 아홉 도시 국가를 통치하고 있었다.[8] 이들 지역이 모테쿠소마의 제국에 편입되자, 아즈텍은 기존 도시 국가 체제를 활용하여 군사력을 증강시킬 수 있었다. 이 삼국 동맹 체제 하에서 전쟁 약탈품은 테노치티틀란과 테스코코가 각각 5분의 2를, 틀라코판이 나머지 5분의 1을 분배받았다.[9]모테쿠소마 1세는 재위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외부 원정을 단행하여 아즈텍의 영토를 크게 넓혔다. 그는 통치 초기인 1445년에 오아하카 주를 정복했다.[11] 이후 멕시코 계곡 너머 "하늘의 바다"로 불리던 멕시코 만 해안까지 제국의 경계를 넓혀 와스테크 족과 토토나크 족을 정복했다. 이를 통해 코코아, 고무, 면화, 과일, 깃털, 조개껍데기 등 희귀 상품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했다.[11] 멕시코 만까지 영토를 통제하게 된 아즈텍은 "하늘의 바다의 이웃"으로 불렸다.
1450년대에는 아즈텍의 패권을 확장하고자 오아하카 계곡을 침공했다.[16] 약 1458년에는 믹스텍 영토로 원정을 이끌어 코이스트라와카 시를 공격했다. 믹스텍은 아즈텍의 전통적 경쟁 상대인 틀락스칼라와 우에호친고 전사들의 지원을 받았으나 결국 패배했다. 패배한 군주 대부분은 지위를 유지했지만, 믹스텍 통치자 아토날은 의례적으로 목 졸려 살해당했고 그의 가족은 노예로 전락했다. 멘도사 코덱스 기록에 따르면, 코이스트라와카는 담요 2,000개(5종류), 투구와 방패가 포함된 군복 2벌, 녹색 보석 구슬, 녹색 깃털 묶음 800개, 코치닐 염료 자루 40개, 금가루 그릇 20개를 공물로 바쳐야 했다.[17] 모테쿠소마는 코이스트라와카에서 많은 여성을 데려와 하렘을 두었다고 전해진다.[17] 비슷한 원정이 코사말로아판, 아우일리자판(오리자바), 쿠에틀라클란(코탁스틀라)에 대해서도 수행되었다.
멕시코 분지에서는 오랜 전쟁 끝에 찰코를 정복했고, 나아가 푸에블라, 게레로, 오아하카 지역까지 영토를 넓혔다. 모테쿠소마 1세는 중요한 무역 중심지들을 장악하여 모피, 면, 카카오, 새 깃털 등의 시장을 통제했다.[24]
지속적인 외부 원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각지에 텔포치칼리라는 학교를 세워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군인으로 양성했다. 군인들은 계급에 따라 정해진 복식을 착용해야 했다.[23]

4. 4. 꽃 전쟁

아즈텍 제국의 농업 기반을 뒤흔든 심각한 기근 이후, 꽃 전쟁이라 불리는 일련의 독특한 전쟁이 벌어졌다. 이 전쟁은 멕시코 중부 틀락스칼라-푸에블란 계곡의 삼각 동맹(아즈텍 제국)과 그에 맞선 우에호칭고, 틀락스칼라, 촐룰라와 같은 도시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당시 모테쿠소마는 기근이 신들의 분노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신들을 달래기 위해 인간 희생 제의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강력히 지지했다.[15] 결국 꽃 전쟁은 이러한 종교적 믿음에 따라 시작되었으며, 주된 목적은 전쟁 포로를 확보하여 인신공양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다.
전쟁을 준비하며 모테쿠소마는 적대 세력에게 세 번에 걸쳐 전쟁을 선포하고, 심지어 그들에게 무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는 전쟁을 의례적인 형태로 치르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만약 마지막 선포까지 거부당하면, 아즈텍은 20일 이내에 공격을 감행했다.
이러한 형태의 꽃 전쟁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도착하여 아즈텍에 반감을 가진 여러 원주민 세력을 규합하고, 결과적으로 아즈텍 제국을 포함한 멕시코 전역을 정복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5. 자연재해와 기근
모테쿠소마 1세는 통치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심각한 자연재해를 겪었다. 1446년에는 메뚜기 떼가 지역 농작물을 파괴했으며,[12] 1449년에는 테스코코 호수가 범람하여 수도 테노치티틀란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5] 또한 1450년에는 큰 홍수가 발생하여 테노치티틀란이 다시 큰 피해를 입자, 모테쿠소마 1세는 테스코코의 통치자 네사왈코요틀의 도움을 받아 호수를 가로지르는 길이 15km에 달하는 제방을 건설하여 도시를 보호하고자 했다.[23]
같은 해인 1450년부터는 극심한 서리와 가뭄이 시작되어 4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12] 이로 인해 농작물이 크게 파괴되면서 심각한 기근이 발생했다. 기근으로 고통받던 백성들 중 일부는 자녀를 팔거나[5] 스스로 노예가 되기도 했으며,[12] 도시는 인구의 상당수를 잃었다. 이러한 재난은 모테쿠소마 1세 시대의 비교적 평화로웠던 시기를 마감하게 만들었다.[13] 모테쿠소마 1세는 기근이 발생했을 때 왕실 창고에 보관된 곡물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위기를 극복하려 노력했다.[23]
6. 사회, 정치, 경제 개혁
모테쿠소마는 다른 세력을 정복한 후, 1440년부터 1453년까지 제국 내 평화를 유지했다.[13] 이 시기 동안 그의 정부는 사회, 정치, 경제 분야에서 개혁을 추진했다.
그는 특정 계층의 복장과 주택 형태를 규제하는 법령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귀족이나 위대한 전사만이 2층 건물을 소유할 수 있었으며, 탑 건설은 신의 영역이라 주장하며 금지했다.
또한 계층에 따라 차등적인 법률 및 교육 정책을 시행했다. 궁궐에서는 신분에 따라 접견 장소를 달리했으며, 이를 어길 경우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다. 사형 선고는 오직 모테쿠소마만이 내릴 수 있었고, 모든 판사는 사형 판결 시 그에게 보고해야 했다.[13] 종교 교육도 중요시되어 모든 지역에 종교 학교 설립을 의무화했다.[13]
7. 후계자 및 유산
모테쿠소마 1세는 훗날 에르난 코르테스와 조우하게 되는 모테쿠소마 2세의 조상이다.[19]
그의 첫 번째 후계자는 틀라카엘이었으나, 이후 모테쿠소마 1세의 사촌 또는 아들로 알려진 19세의 아샤야카틀이 왕위를 계승했다.[5][11] 한편, 모테쿠소마 1세의 딸 아토토스트리는 이츠코아틀의 아들 테소소모크와 결혼하여 아샤야카틀, 티소크, 아위초틀 세 아들을 낳았는데, 이들은 모두 후에 틀라토아니(황제)에 즉위했다.
모테쿠소마 1세는 오늘날 멕시코에서 독립과 저항의 상징적인 인물로 여겨지기도 한다.[20]
대중문화에서는 모테쿠소마 2세에 비해 덜 등장하지만, 비디오 게임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에서는 아즈텍 문명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최신작인 문명 6에서는 그의 고유 능력으로 "틀라토아니를 위한 선물"이 있는데, 이는 새로운 사치 자원을 통해 도시의 편의도를 높이고 아즈텍 유닛의 전투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진다. 게임 내에서 아즈텍 문명은 공격적이고 확장적인 성향으로 묘사된다.[21] 또한 모바일 및 PC 게임 Rise of Kingdoms에서도 플레이 가능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 외에도 모테쿠소마 1세는 미국 남서부의 여러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특히 토호노 오담족과 푸에블로족 사이에서 '영웅 신'으로 간주되는 전설적인 인물이다.[22] 이 전설 속 인물은 실제 역사적 인물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의 요소를 공유하며 실제 인물에 대한 이야기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전설 속에서 그는 다소 모호한 노아와 같은 인물로, 위대한 영혼에게 복종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8. 전설
모테쿠소마 1세는 여러 남서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특히 토호노 오담과 푸에블로 부족에게 "영웅 신"으로 여겨진다.[22] 그의 전설 속 모습은 실제 역사적 인물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몇 가지 요소를 공유하며 실제 인물에 대한 이야기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다소 모호하게 노아와 비슷한 인물로 그려지며, 위대한 영혼에게 복종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전설에 따르면, 모테쿠소마의 아버지 위칠리위틀은 꿈에서 계시를 받고 콰우나왁 족장의 딸 미아와시위틀과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멕시카는 아직 세력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콰우나왁 족장은 이 요청을 거절했다. 위칠리위틀이 다시 꿈의 계시에 따라 특별한 화살을 쏘자, 그 화살은 미아와시위틀의 궁전 안뜰에 떨어졌다. 미아와시위틀이 그 화살을 입에 물자 임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위칠리위틀은 콰우나왁을 정복하고, 미아와시위틀이 낳은 아이, 즉 모테쿠소마를 자신의 후계자로 선언했다.[25]
또한 모테쿠소마 1세는 60명의 마법사를 멕시카의 기원지로 알려진 아스틀란 (또는 치코모스톡)에 사는 여신 코아틀리쿠에에게 사자로 보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코아틀리쿠에는 멕시카의 수호신인 위칠로포치틀리의 어머니이다. 전설에 따르면, 코아틀리쿠에는 모테쿠소마가 정복한 모든 도시를 잃고 다시 가난해져 결국 아스틀란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2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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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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