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바위절마을 호상놀이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는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에서 행해지던 전통 장례 의식으로, 1996년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시대 문씨 문중에서 유래되어 1960년대에 중단되었다가 1990년에 복원되었으며, 출상, 상여놀이, 노제, 징검다리 건너기, 외나무다리 건너기, 산비탈 타기, 산역행 등의 절차로 구성된다. 상여꾼들은 시내를 건너는 과정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V자 형태로 서고, 방아타령을 부르는 등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1990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서울 강동구의 문화유산 - 서울 암사동 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은 약 6,000년 전 신석기 시대의 주거지로, 1925년 대홍수로 발견되어 1979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빗살무늬 토기 등 신석기 시대 유물을 전시하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 서울 강동구의 문화유산 - 마하연 제석천룡도
    마하연 제석천룡도는 1855년에 제작된 불화로, 제석천과 천룡팔부신중 등을 묘사하며 19세기 전반 불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 서울특별시의 무형문화재 - 한량무
    한량무는 조선 후기 남사당패에서 유래하여 진주 교방에서 전승되는 7인의 춤으로, 한량, 별감, 승려, 색시 등의 등장인물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풍자하며, 북, 장구 등 악기 반주에 맞춰 춤사위를 펼친다.
  • 서울특별시의 무형문화재 - 옹기장
    옹기장은 옹기를 제작하는 장인을 의미하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충청북도 등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전통 옹기 제작 기술을 전승하며 옹기의 가치를 알리는 활동을 한다.
바위절마을 호상놀이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개요
명칭바위절마을 호상놀이
종류무형문화재
지정 번호10
지정일1996년 9월 30일
위치서울특별시 강동구
참고서울특별시의 무형문화재 제10호
설명바위절마을 호상놀이는 장례 풍습의 하나이다.
상세 정보
성격호상 놀이
지역서울특별시 강동구 바위절마을
시기장례 시
주최마을 주민
내용망자의 극락왕생 기원, 마을 공동체 의식 강화
중요 무형 문화재 지정 여부미지정
관련 웹사이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바위절마을 호상놀이

2. 기원

이 놀이는 조선시대 이 마을에 세거(世居)하던 문씨 문중에서 행해진 것으로 전해 내려온다. 현 강동구 암사동이 1963년 서울특별시에 편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전래되었으나, 그 뒤 마을의 개발과 도시화 물결로 단절되었다가 30여 년만인 1990년에 몇몇 뜻있는 이들에 의해 원형 복원되었다.[2]

정확한 시작 날짜나 시점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을 원로들에 따르면, 이 놀이는 바위절마을의 유명한 문씨 가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960년대 이후 중단되었다가, 1990년대에 부부의 상여꾼들이 마을에 나타나면서 다시 공연되었다.[2]

3. 구성

이 놀이는 출상, 상여놀이, 노제, 징검다리 건너기, 외나무다리 건너기, 산비탈 타기, 산역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여(大輿)는 4인씩 9행하여 36명, 소여(小輿)는 4인씩 7행하여 28명의 상두꾼으로 꾸며진다.[1]

3. 1. 배역

바위절마을 호상놀이의 배역 인원은 다음과 같다.[1]

구분역할인원
대표기1
농악6
방상시2
요여2
만장기20
명정2
운삽2
불삽2
공포2
큰 상여36
작은 상여28
상주남·여10
복재기10
조객10
지게꾼2



큰 상여에는 선소리꾼이 올라서거나 앞서 걸어가며 요령을 흔들고 소리를 메기며, 작은 상여에도 요령잽이를 한 사람 배치한다. 상여를 들어 올리거나 내릴 땐 요령을 잦게 흔듦으로써 신호로 삼는다.[1]

3. 2. 도구

바위절마을 호상놀이에 사용되는 도구는 다음과 같다.[4]

도구
상여 2, 요여 1, 만장기 20, 공포 2, 명정 2, 불삽 2, 운삽 2, 상복, 방상시(탈 2, 방패 2, 칼 2), 호적 1, 장고 1, 상쇠 2, 징 1, 북 1, 제기류, 관 2, 외나무다리 1조, 징검다리 1조, 논두렁 1
명정
등롱
스님
연여
공포
만장
선소리꾼
상여꾼
복잽이
조객
조문후객


3. 3. 절차

바위절마을 호상놀이의 절차는 발인제, 노제, 논두렁 건너기, 징검다리 건너기, 외나무다리 건너기, 산신제, 달구질, 평토제 순으로 진행되며, 상복을 입는다.[3]

36명의 상여꾼이 4열로 나뉘어 거대한 상여를 드는 이 놀이는 망자의 명복을 빌고 좋은 가문과 복을 기원하며, 밤새 민요를 부르는 의식이다. 상여꾼들은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생전의 업적을 기리며 앞뒤로 움직이며 노래를 부른다.[3]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주로 행해지는 이 풍습은, 장례 전날 상가집에 마을 주민들과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여 상여를 집으로 들여갈 때 특별한 노래(요령잡기소리)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과 다른 상인들은 노래의 리듬에 맞춰 발을 맞춘다. 상여를 들고 집을 나설 때는 또 다른 노래(향도가)를 부른다.[4]

바위절마을 놀이에서는 장례 행렬 전체가 마을의 시내를 건너야 한다. 통나무 두세 개를 묶어 만든 발판이 구리 다리가 있는 외나무다리와 연결되어 있다. 상여꾼들은 다리 위에서 강을 건너는 동안 균형을 잡기 위해 'V'자 형태로 선다. 징검다리가 있어 돌을 밟고 시내를 건너야 하므로 균형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시내를 건너면 상여꾼들은 고인이 또 만 년을 살 수 있는 집을 짓기 위해 모여 방아타령을 부르며 집을 짓는다.[5]

4. 놀이 내용

망인(亡人)이 상여에 옮겨지면 발인제를 지낸다. 선소리꾼이 요령을 흔들면서 "곤방네"를 세 번 부를 때 상두꾼들이 "네"하고 대답하며 상여를 들어 어깨에 멘다. "어러기넘차" 소리를 몇 회 부르며 발을 맞춘 뒤 선소리꾼이 마모소리를 내면 상주·복재기들은 절을 세 번한다. 상여도 앞쪽을 숙이며 하직 인사를 한다.[3] 요령잽이가 상여 앞에 올라선다. 동구 밖을 나가기 전에 쌍상여가 마주 보며 서로 밀고 당기며 맴돌기도 하면서 상여어루기를 하는데, 이때 방아타령이 불린다.[3]

상여는 망인이 잘 다니던 곳, 자기 소유 전답을 지날 때 잠시 쉬는데, 이때 노제(路祭)를 지내고 조문을 하지 못한 조객(弔客)들은 문상을 한다. 징검다리와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는 4열의 상두꾼 중 바깥편 2열은 대열에서 나가고 안쪽 2열만 건넌다. 상여와 발은 중심에 두고 몸을 바깥으로 곧게 기울이기 때문에 2열의 상두꾼이 V자형을 이루게 된다. 산비탈을 탈 때는 4열로 가되 높은 경사면의 상두꾼들 2열은 몸을 숙이고 낮은 논둑의 다른 2열은 상여를 높이 치켜 들어줌으로써 균형을 맞춘다. 이렇듯 여러 가지 형태의 행상모습과 그 운구 요령을 보여 주고 있다.

암사동의 일반적 상여 행렬은 연 혹은 지초연이 앞서고 만장기와 농악(징·장·북·쇄납)이 뒤따르며 상여·상주·복재기·조객순으로 길을 떠난다. 고증자들은 방상시를 보지 못하였으며 민속경연 준비 때에 첨가했다고 한다. 달구질은 6인이 2회 다지고 평토 후 벌다구질은 10∼15인이 3회 다짐이 기본이며, 상주가 더 달궈주길 바랄 때는 2회 더 해서 모두 9회를 다지기도 한다. 선소리꾼은 따로 서서 북을 치면서 메기고 달구꾼들은 각자 한발 두 뼘 길이의 긴 달굿대를 쥐고 나비 놀 듯 허리를 굽놀리면서 소리를 받는다.[3]

호상놀이는 망자의 명복을 빌며, 좋은 가문과 복을 기원하고, 밤새 민요를 부르는 의식이다. 36명의 상여꾼이 4열로 나뉘어 거대한 상여를 든다. 그들은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생전의 업적을 기리며 앞뒤로 움직이며 노래를 부른다.[3]

이 전통적인 풍습은 주로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행해진다. 마을 주민들과 인근 마을 사람들은 장례 전날 상가집에 모인다. 상여를 집으로 들여갈 때 특별한 노래(요령잡기소리)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과 다른 상인들은 노래의 리듬에 맞춰 발을 맞춘다. 상여를 들고 집을 나설 때는 또 다른 노래(향도가)를 부른다. [4]

바위절마을 놀이에서는 장례 행렬 전체가 마을의 시내를 건너야 한다. 통나무 두세 개를 묶어 만든 발판이 구리 다리가 있는 외나무다리와 연결되어 있다. 상여꾼들은 다리 위에서 강을 건너는 동안 균형을 잡기 위해 'V'자 형태로 선다. 이 외에도 징검다리가 있어 돌을 밟고 시내를 건너야 하므로 균형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시내를 건너면 상여꾼들은 고인이 또 만 년을 살 수 있는 집을 짓기 위해 모인다. 그들은 집을 지으면서 방아타령을 부른다.[5]

5. 의의와 평가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는 1990년 제31회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고, 1996년에는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1]

6. 보유

참조

[1] 웹사이트 Bawijeol Maeul Hosang Nori https://folkency.nfm[...] 2024-06-27
[2] 웹사이트 "[국토매일] 강동구, 서울무형문화재 바위절마을 호상놀이 재연" http://m.pmnews.co.k[...] 2021-03-16
[3] 웹사이트 민속 - 바위절 마을 호상놀이 http://www.gdcc.or.k[...] 2021-03-16
[4] 웹사이트 바위절마을호상놀이 (─好喪─) http://encykorea.aks[...] 2021-03-16
[5] 웹사이트 바위절마을 호상놀이 {{!}} 무형문화재 {{!}} 역사/문화재 https://www.gangdong[...] 2021-03-1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