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범 (19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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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상범은 1943년 서울에서 태어나 해병대 복무 후 대통령 경호실에서 근무하며 문세광 사건, 10·26 사건, 랑군 폭탄 테러 사건 등을 겪었다. 대통령 경호실 수행계 계장, 과장, 처장을 거쳐 1993년 대통령 경호실장에 임명되었으나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과의 갈등으로 1994년 퇴임했다. 이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총장과 국가보훈처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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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범 (1943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박상범 | |
이름 | 박상범 |
현지어 표기 | 朴相範 |
출생일 | 1943년 4월 10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옥천 |
본관 | 밀양(密陽) |
배우자 | 정명희 |
자녀 | 슬하 2남 1녀 |
부모 | 이화자(모) |
군 경력 | |
복무 | 대한민국 해병대 |
정당 | 무소속 |
복무 기간 | 1966년 ~ 1973년 |
최종 계급 | 대한민국 해병 대위 |
지휘 | 중대장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베트남 전쟁 |
서훈 내역 | 근정포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장 |
기타 이력 | |
이력 | 군인 출신 정치인 서울 성남중학교 졸업 서울 성남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법학과 학사 출신 1968년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3기 대통령 경호실 실장 국가보훈처 처장 배재대학교 겸임교수 민주평통자문회의 사무총장 자민련 국방안보행정특임위원 |
2. 생애 및 경력
박상범은 1969년 해병대 대위로 전역한 후 박종규 경호실장의 권유로 대통령 경호실 공개 채용 1기에 응시하여 경호원으로 채용되었고, 1970년부터 청와대에서 근무했다.[1][2]
1974년 문세광 사건과 1979년 박정희 암살 사건을 겪었다. 박정희 암살 사건 당시 궁정동 안가 주방에서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지만, 함께 있었던 경호원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1][2] 1981년에는 전두환 대통령 방미 사전 조사 중 차량 전복 사고를 당했다.[1] 1983년 랑군 폭탄 테러 사건에서는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으나, 부하 2명이 사망했다.[1][2]
1983년부터 1990년까지 경호처장,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차장, 1993년부터 1994년까지 경호실장을 역임했다.[2] 1994년부터 1997년까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총장을 역임했다.[2]
2. 1. 초기 생애 및 군 복무

1943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한국 전쟁 중 충청북도 옥천군의 친척 집으로 피난을 가 옥천 출신으로도 알려져 있다.[1]。성남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유도, 합기도, 복싱, 펜싱 등을 익혔다.[1]。1964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한민국 해병대에 입대했다.[1][2]。1967년 제2해병여단(청룡부대) 제5대대 M40 106mm 무반동포 소대장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1]。1969년 해병대 대위로 전역한 후, 박종규 경호실장의 권유로 대통령 경호실 공개 채용 1기에 응시하여 경호원으로 채용되었다. 훈련 후 1970년부터 청와대에서 근무했다.[1][2]。
2. 2. 대통령 경호실 근무
1977년 대통령 경호실 수행계 계장을 시작으로, 1980년 수행과 과장, 1983년 경호처 처장을 역임하였다.[1][2] 1974년 8월 15일 문세광 사건 당시 권총을 뽑아들고 대응하는 모습이 사진에 찍히기도 했다.[1][2] 1979년 박정희 암살 사건 당시 궁정동 안가 주방에서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지만, 함께 있었던 경호원 중 유일하게 생존하였다.[1][2] 1983년 랑군 폭탄 테러 사건에서는 직접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으나, 부하 직원 2명이 사망했다.[1][2]2. 3. 경호실장 퇴임 이후
1994년 대통령 경호실 실장에서 퇴임하였다.[2] 경호실장 재임 중에는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과 대립했는데, 김현철이 김영삼의 사설 경호원 출신을 경호실에 특별 채용하도록 요구했지만, 박상범이 이에 반대하면서 대립이 시작되었다.[1] 1997년 국가보훈처장을 역임하였고, 1998년 국가보훈처 처장에서 퇴임하였다.[2] 이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했다.[1]3. 대중 매체
참조
[1]
뉴스
"[金成東의 인간탐험]「死線의 불사조」朴相範 前 청와대 경호실장이 지켜본 권력의 그늘『대통령의 아들들은 서서히 權力 중독자가 돼 갔다』"
http://monthly.chosu[...]
월간조선
2005-06-01
[2]
뉴스
"[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박정희 대통령 마지막 경호원’ 박상범 前경호실장"
https://www.donga.co[...]
동아일보
201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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