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고승 진영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범어사 고승 진영은 조선 후기(19세기)에 제작된, 덕이 높은 승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7점을 일괄하여 이르는 말이다. 이 진영들은 비단에 채색되었으며, 123~128cm의 세로, 91~93cm의 가로 크기를 가진 족자 형태이다. 해송당 초영대사 진영과 해운당 민오대사 진영은 과도기적인 표현 방식을 보여주고, 청암당 연백대사 진영, 우운당 진희대사 진영, 퇴은당대사 진영, 울암당 경의대사 진영, 월파당 진묵대사 진영은 19세기 고승 진영의 전형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이들은 19세기 고승 진영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미술사적, 불교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범어사 - 범어사 영탱
범어사 영탱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에 범어사에 봉안된 취규대사, 해성당대사, 신암당 계홍대사 등 여러 고승들의 초상화로, 당시 불교 미술 양식과 시대적 특징을 보여준다. - 19세기 작품 - 백자청화 칠보화훼문 사각병
백자청화 칠보화훼문 사각병은 19세기 전반 분원 관요에서 제작된 조선 백자로, 사각형 몸체에 매화, 칠보문, 화훼, 수류문 등의 청화 문양이 장식되었으며, 조선과 일본의 문화 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로, 1848년경 경수궁에서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의례용기로 추정된다. - 19세기 작품 - 양산 통도사 신석우 초상
양산 통도사 신석우 초상은 조선 후기 문신 신석우의 강직함과 인자함이 조화롭게 표현된 시복 차림의 전신교 초상화로, 섬세한 필선과 자연스러운 바림 기법, 학정대 착용, 불교적 의미가 담긴 배경과 장식이 특징이며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조선 19세기 인물화이다. - 초상화 - 청양 모덕사 최익현 초상
청양 모덕사 최익현 초상은 채용신이 1909년에 이모한 작품으로, 73세 최익현의 오사모와 단령 차림의 전신좌상이며, 구한말 유학자의 풍모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모덕사에 소장되어 최익현의 삶과 정신을 기리고 채용신의 초상화 기법을 보여준다. - 초상화 - 시녀들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1656년에 그린 "시녀들"은 알카사르 궁전 내 화가의 작업실을 배경으로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와 시녀들, 그리고 벨라스케스 자신과 왕 부부의 모습을 담아 구도와 원근법, 빛의 활용 등 다각적인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범어사 고승 진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부산 범어사 고승 진영 |
로마자 표기 | Busan Beomeosa Goseung Jinyeong |
유형 | 유형문화재 |
지정 번호 | 186 |
지정일 | 2018년 1월 31일 |
위치 | 부산광역시 금정구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범어사 |
수량 | 7점 |
문화재청 ID | 21,01860000,21 |
2. 범어사 고승 진영 (19세기)
고승 진영은 덕이 높은 승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로, 조선 후기(19세기)에 제작된 7점이 일괄 지정되었다.[1]
진영 | 특징 |
---|---|
범어사 해송당 초영대사 진영 | 범어사 해운당 민오대사 진영과 동일 초본을 사용한 듯 도상이 거의 일치한다. |
범어사 해운당 민오대사 진영 | 범어사 해송당 초영대사 진영과 도상이 거의 일치하며, 통도사 소장본과 함께 원효대사와 사명대사 진영과 동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범어사 청암당 연백대사 진영 | |
범어사 우운당 진희대사 진영 | |
범어사 퇴은당대사 진영 | 비단 3폭을 연결하여 제작하였다. |
범어사 울암당 경의대사 진영 | |
범어사 월파당 진묵대사 진영 |
이 진영들은 모두 비단에 채색하여 제작되었으며, 크기는 세로 123.5cm~128.4cm, 가로 84.3cm~ 93.4cm이다. 각 진영에는 해당 고승의 행적, 화제, 도상적 특징, 제작 시기 추정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들 진영은 평좌상에서 바닥가부좌상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양상을 보여주거나, 19세기 고승 진영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등 조선 후기 불교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1]
2. 1. 해송당 초영대사 진영
'''범어사 해송당 초영대사 진영'''은 비단에 채색한 것으로, 크기는 세로 123.8cm, 가로 93.0cm이다. 조선 후기 고승인 초영대사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으나, 범어사 부도전에서 부도비를 확인할 수 있다.[1] 해운당 민오대사 진영과 거의 일치하는 도상 및 표현 기법을 보여준다. 향좌측 상단에 화제가 있다. 평좌상에서 바닥가부좌상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양상을 보여주는 진영으로 학술적 가치가 있다.[1]2. 2. 해운당 민오대사 진영
'''해운당 민오대사 진영'''은 조선 후기 작품으로, 비단에 채색하였으며 크기는 세로 123.5cm, 가로 93.4cm이다.[1] 범어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고승인 민오대사의 모습을 담고 있다. 향우측 상단에는 화제가 있다.[1]이 진영은 초영대사 진영과 밑그림이 같아 매우 유사하다.[1] 원대사 진영 및 사명대사 진영과도 표현 기법이 동일하여, 같은 화승(畵僧)이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1]
청도 운문사 소장된 1868년 사불산화파 하은응상의 작품과도 유사하여, 같은 시기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1] 평좌상(바닥에 앉은 자세)에서 바닥가부좌상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양상을 보여주는 진영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1]
2. 3. 청암당 연백대사 진영
비단에 채색하였으며, 크기는 세로 123.5cm, 가로 93.0cm이다.[1] 조선 후기 고승인 연백대사에 대한 행적은 남아있지 않지만 범어사 부도전에서 부도비를 확인할 수 있다.[1] 화면 향좌측 상단에는 '청암당연백대선사지진영(靑巖堂演白大禪師之眞影)'이라고 쓴 묵서 화제가 있다.[1]화면 하부에 화문석이 표현된 바닥 위에 결가부좌하여 향좌측을 향하여 장염주와 주장자를 쥔 형상과 도식화된 바닥 및 벽면의 이단 구도 등에서 조선 후기 19세기에 주로 나타나고 있는 고승 진영의 형식을 따르고 있어 이 작품의 제작 시기 역시 19세기로 추정된다.[1]
2. 4. 우운당 진희대사 진영
화면 향좌측에 友雲堂眞熙大禪師之眞影중국어이라고 쓴 화제가 기록되어 있는 우운당 진희대사의 진영은 비단에 채색하였으며, 크기는 세로 124cm, 가로 92.0cm이다.[1] 진희대사는 17세기 중반경 통도사 주지를 역임하면서 많은 불사를 추진한 인물로 화엄강백으로 명성을 떨쳤다.[1] 통도사에는 경남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우운당 진희대사 진영이 소장되어 있다.[1] 범어사 소장본은 원효대사와 사명대사 진영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1] 전체적인 구도, 필치, 장식적인 표현 등에서 일치하며, 조선 후기 19세기 중반 진영의 형식과 표현 기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1]2. 5. 퇴은당대사 진영
'''퇴은당대사 진영'''은 비단에 채색(絹本彩色)한 것으로, 세로 128.4cm, 가로 91.0cm이다.[1] 비단 3폭을 연결하여 하나의 화면으로 제작하였다. 인물상은 등받이가 표현된 좌안 7분면의 바닥가부좌상으로, 화면 향우측에는 "부종수교퇴은당대선사지진(扶宗樹敎退隱堂大禪師之眞)"이라고 쓴 묵지백서의 화제가 있고, 향좌측에는 찬문을 묵서로 기술하였다.[1]화문석이 시문된 바닥 위에 가부좌한 자세와 향좌측을 향하여 장염주와 주장자를 쥔 모습, 도식화된 바닥과 벽면의 이단구도 등에서 조선 후기 19세기 고승 진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1]
2. 6. 울암당 경의대사 진영
울암당 경의대사중국어 진영은 비단에 채색한 그림으로, 크기는 세로 126.5cm, 가로 91cm이다.[1] 울암당 경의대사는 19세기 전반 범어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종정을 지낸 승려이다. 진영에는 화면 오른쪽 위에 먹으로 쓴 화제가 있고, 맞은편에는 청담문인 의전이 쓴 찬문이 기록되어 있다.[1] 이 진영은 바닥에 가부좌한 평좌상 형식을 띄고 있으며, 19세기 고승 진영의 특징과 흐름을 잘 보여준다.[1]2. 7. 월파당 진묵대사 진영
月波堂震默大師眞影|월파당진묵대사 진영중국어은 비단에 채색한 그림으로, 크기는 세로 124.5cm, 가로 84.3cm이다. 화면 상부 향좌측(왼쪽) 부분에 붉은색 바탕에 먹으로 쓴 '月波堂震默大師眞影중국어'이라는 글씨가 있듯이, 진묵대사(1562~1633)의 진영(초상화)이다. 화면을 상부 벽면과 하부 화문석 바닥의 상하 2단으로 구성하고, 선승(禪僧)으로서의 담백한 느낌을 살려낸 고승 진영이다. 조선 후기 19세기 진영의 표현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1]3. 조선 후기 고승 진영의 특징과 의의
조선 후기(19세기)에 제작된 범어사 고승 진영 7점은 당시 고승 진영의 일반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1]
우선, 의자에 앉은 자세에서 바닥에 가부좌를 한 자세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범어사 해송당 초영대사 진영과 범어사 해운당 민오대사 진영은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은 모습이지만, 짧은 다리와 복식 표현 등에서 바닥에 앉은 자세의 특징이 나타난다.[1] 범어사 청암당 연백대사 진영, 범어사 퇴은당대사 진영, 범어사 울암당 경의대사 진영 등은 화문석이 깔린 바닥에 가부좌를 하고 장염주와 주장자를 쥔 모습으로, 19세기 고승 진영의 전형적인 형식을 보여준다.[1]
화풍 면에서는 범어사 해운당 민오대사 진영이 청도 운문사에 소장된 1868년 하은응상의 작품과 동일한 기법을 보이고 있어, 범어사 진영들이 같은 시기에 같은 화승에 의해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1] 범어사 우운당 진희대사 진영은 통도사에 소장된 진영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19세기 중반 진영의 형식과 표현 기법을 잘 보여준다.[1] 범어사 월파당 진묵대사 진영은 벽면과 화문석 바닥의 2단 구도, 선승의 담백한 느낌을 살린 표현 등에서 19세기 진영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1]
이처럼 범어사 고승 진영들은 조선 후기 고승 진영의 형식과 화풍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 또한, 각 진영에 등장하는 고승들의 행적과 사상을 통해 조선 후기 불교계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