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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영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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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범어사 고승 진영은 조선 후기(19세기)에 제작된 덕 높은 승려의 초상화로, 총 9점이 지정되어 있다. 이 진영들은 19세기 불교 미술의 특징을 보여주며, 각 고승들의 행적을 통해 조선 후기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진영에는 해당 고승의 행적을 보여주는 화제, 찬문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범어사 중창 불사에 기여한 인물들의 초상화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진영에 나타난 묘사 기법, 불교계의 교류 등을 통해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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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영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부산 범어사 영탱
부산 범어사 영탱
이름부산 범어사 영탱
한자 표기釜山 梵魚寺 影幁
국가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자료
지정 번호100
지정일2018년 1월 31일
주소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 (범어사 성보박물관)
시대조선시대
소유자범어사
수량9점

2. 범어사 고승 진영의 특징

범어사 고승 진영 9점은 조선 후기(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진영 제작 기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1] 각 진영에는 화가, 제작 시기, 고승의 이력 등을 추정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담겨 있다.

2. 1. 구도 및 표현 기법

범어사에 소장된 고승 진영들은 대부분 19세기에 제작되었으며,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과 함께 근대 화풍이 나타나는 부분도 있다.

  • 좌법 형식과 배경: 좌법 형식으로 바닥에 앉은 자세, 화문석 문양, 배경 상단의 길상문 등은 19세기 진영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1] 범어사 해성당대사 진영과 범어사 환성당 지안대사 진영에서 볼 수 있듯이, 도식화된 바닥과 벽면의 이단 구도는 당시 양식을 반영한다.[1]
  • 의복 표현: 가사와 장삼의 옷주름과 문양은 19세기 진영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1] 범어사 설송당 연초대사 진영에서처럼, 군청색 장삼 위에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옷 주름을 농담으로 처리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1]
  • 얼굴 묘사: 세필을 사용하여 섬세하게 묘사한 상호의 필치는 19세기 진영의 특징이다.[1] 범어사 해성당대사 진영에서 보이는 인물상 안면부의 주름, 머리카락, 눈썹, 수염 묘사는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1]
  • 근대 화풍: 범어사 남파당 채우대사 진영에서는 음영법 및 설채법 등 근대 화풍의 특징이 나타나는데, 이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제작되었음을 보여준다.[1]

2. 2. 형상 및 자세

범어사 영탱 속 고승 진영들은 대부분 바닥에 앉거나 의자에 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손에는 염주, 주장자, 불자 등을 들고 있다.[1] 얼굴 표정과 시선 처리는 각 고승의 개성과 수행 경력을 짐작하게 한다.[1]

진영형상 및 자세
범어사 낙성당 취규대사 진영바닥에 앉은 좌법 형식이며, 돗자리의 화문석 문양, 가사 및 장삼의 옷주름과 문양, 세밀하게 묘사한 얼굴, 배경 상단 벽면의 길상문 흔적 등으로 보아 19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1]
범어사 해성당대사 진영화문석이 깔린 바닥 위에 결가부좌한 자세로, 향좌측을 향해 장염주와 주장자를 쥐고 정적인 모습으로 앉아 있다. 도식화된 바닥과 벽면의 이단 구도, 인물 얼굴 주름, 머리카락, 눈썹, 수염 묘사에서 19세기 특징이 나타난다.[1]
범어사 신암당 계홍대사 진영배경 상단의 화문과 하단의 돗자리 문양 등에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경의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1]
범어사 금봉당대사 진영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바닥의 돗자리 문양 등이 특징적이다.[1]
범어사 용파당대사 진영불자를 손에 잡고 화면 오른쪽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바닥 돗자리 문양, 의자와 불자의 표현법 등에서 1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1]
범어사 호암당대사 진영불자를 들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며,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1]
범어사 설송당 연초대사 진영군청색 장삼 위에 붉은색 가사를 걸쳤고, 옷 주름은 군청색으로 농담 처리하여 묘사하였다.[1]
범어사 환성당 지안대사 진영등받이에 녹색 천이 드리워져 있고, 양쪽에 용두 장식이 있는 의자에 앉아 향좌측을 응시하고 있다. 도식화된 의습선 표현, 바닥과 벽면의 이단 구도, 인물 얼굴 표현 등에서 19세기 특징이 나타난다.[1]
범어사 남파당 채우대사 진영음영법 및 설채법에서 근대 화풍의 특징이 드러나며, 제작 시기는 19세기 말 ~ 20세기 초로 추정된다.[1]


3. 각 진영별 상세

고승 진영은 덕이 높은 승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로, 조선 후기(19세기)에 제작된 9점이 일괄 지정되었다.[1] 각 진영은 제작 시기와 화풍, 해당 승려의 행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진영제작 시기특징비고
낙성당 취규대사 진영19세기 중후반좌법, 화문석 문양, 섬세한 얼굴 묘사범어사 67대 주지, 범어사 중창
해성당대사 진영19세기3폭 액자 형식, 장염주와 주장자
신암당 계홍대사 진영19세기 후반 ~ 20세기 초반배경 화문, 돗자리 문양범어사 승통 시대 132대 주지, 범어사 중창
금봉당 상문대사 진영19세기 말 ~ 20세기 초경허당 성우 제찬범어사 주지 역임
용파당 도주대사 진영19세기불자, 의자, 구봉 지화 제찬통도사 영각에 진영 봉안
호암 체정대사 진영19세기 후반불자, 의자, 송익휘 영찬서산휴정 법통 계승
설송당 연초대사 진영군청색 장삼, 붉은색 가사, 농담 처리 옷 주름청도 운문사, 밀양 표충사, 양산 통도사 주석
환성당 지안대사 진영19세기녹색 천, 용두 장식, 도식화된 표현화엄학, 제주도 유배 중 입적
남파당 채우대사 진영19세기 말 ~ 20세기 초음영법, 설채법, 근대 화풍범어사 승통 시대 133대 주지


3. 1. 범어사 낙성당 취규대사 진영

범어사 제67대 주지를 지낸 낙성당(洛城堂) 취규대사의 진영(초상화)이다. 진영 왼쪽 상단에 흰 글씨로 '시암중창대공덕주(是庵重創大功德主)'라는 화제가 적혀 있어, 취규대사가 범어사 중창에 큰 공덕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1]

작품은 본지 상단 부분이 부분적으로 훼손되었지만, 전반적으로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바닥에 앉은 좌법 형식, 돗자리의 화문석 문양, 가사 및 장삼의 옷주름과 문양, 세밀하게 묘사한 얼굴 표현, 배경 상단의 길상문 흔적 등으로 볼 때 19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진영으로 추정된다.[1]

3. 2. 범어사 해성당대사 진영

해성당대사 진영은 3폭을 연결하여 하나의 화면으로 제작한 액자 형식이다. 향우측 상단에는 검은색 바탕에 백색으로 해성당대선사지진영(海城堂大禪師之真影)이라 기술되어 있으며, 향좌측 상단에는 찬문란은 있으나 공백으로 남아 있다.[1] 표구 및 화면의 보존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해성대사는 화문석이 시문된 바닥 위에 결가부좌하여 향좌측을 향하여 장염주와 주장자를 쥐고 정적인 모습으로 앉아 있다.[1] 도식화된 바닥과 벽면의 이단 구도를 비롯한 인물상 안면부의 주름 표현과, 머리카락, 눈썹, 수염의 묘사에서 19세기 특징이 드러나고 있어 그 제작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1]

3. 3. 범어사 신암당 계홍대사 진영

19세기 범어사 승통 시대 132대 주지를 역임했던 신암당 계홍대사의 진영(초상화)이다. '시암 중창 신암당 계홍대선사 지진(是庵重創信庵堂戒弘大禪師之眞)'이라는 화제(그림의 제목)를 통해 계홍대사가 당시 범어사 중창 불사에 힘썼음을 알 수 있다.[1] 배경 상단의 화문과 하단의 돗자리 문양 등에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경의 양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제작 당시의 상태도 잘 유지하고 있다.[1] 포운당(布雲堂) 윤경(閏褧)이 쓴 찬문이 있다.[1]

3. 4. 범어사 금봉당대사 진영

19세기 후반 범어사 주지를 역임했던 금봉당(金峯堂) 상문대사의 진영이다. 상문대사의 행적은 자세히 전해지지 않으나, 범어사에 남아있는 기록들을 통해 그의 활동을 추정할 수 있다. 1874년에 제작된 무자갑보사단비(戊子甲補寺壇碑)에는 승통(僧統)으로, 1882년 대웅전 석가모니후불도(釋迦牟尼後佛圖)와 1891년 동래 범어사 중수 명부전 상량문(東萊梵魚寺重修冥府殿上樑文)에는 범어사 산중대덕(山中大德)으로 이름이 올라있다.[1]

조선 말 경허당(鏡虛堂) 성우(惺牛) (1846년~1912년)의 제찬이 있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영에는 일부 긁힌 흔적 등이 있지만, 부산의 문화재자료로서 가치는 충분하다.[1]

3. 5. 범어사 용파당대사 진영

불자를 손에 잡고 화면 오른쪽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있는 용파대사의 모습을 그렸다. 용파당대사의 행적은 상세하게 알 수 없으나 조선 말기의 승려로, 어려서 월출산에 들어가 침월(枕月)대사에게 계(戒)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1] 다만 통도사 영각에 봉안된 용파당 도주 선사의 진영을 통해 법명이 도주(道周)임을 알 수 있다.[1] 범어사 용파당대사 진영 오른쪽에는 구봉(九鳳) 지화(知和)[1840년대 활동]가 쓴 제찬이 있는데, 그는 1872년 통도사 금강계단 수축불사를 시행하였던 것으로 보아 당시 주지였음을 알 수 있으며, 통도사에는 1878년 제작된 지화의 진영이 전하고 있어 이를 통해 용파당대사의 진영은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1]

3. 6. 범어사 호암당대사 진영

조선 후기의 고승 호암체정(1687~1748)의 진영이다. 한쪽에는 영찬이 실려 있는데, 찬자인 송익휘(宋翼輝, 1701~?)는 환성지안의 제자이자 서산휴정의 법통을 계승한 호암스님을 문중의 표상이자 세상에 출현한 보살이라 칭송하였다.[1] 송익휘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홍계희(洪啓禧, 1703~1771)도 "환성의 의발(衣鉢)을 전수 받아 청허의 금탕(金湯, 금성탕지)을 지켜갈 이"라 비문을 지을 정도로 18세기에 호암스님은 서산과 환성의 적전(嫡傳)으로 이름이 높았다.[1] 이같은 명성은 후대로 이어져 환성문인 가운데 함월해원은 북쪽에서, 호암체정은 남쪽에서 크게 이름을 떨쳤다고 「산사약초(山史畧抄)」에 기록되어 있다.[1]

이 진영은 모본(模本)을 가지고 그린 듯 불자를 들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19세기 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1]

3. 7. 범어사 설송당 연초대사 진영

1676년(숙종 2) 연초는 13세의 나이로 석제(釋霽)를 은사로 모시고 청도 운문사에서 출가한 후 환성(喚醒) 지안(志安) 아래서 수학하였다.[1]

두 스승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은 연초는 교파(敎派)와 선파(禪派)로 갈라졌던 2파를 하나로 통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만년에는 학인들을 받지 않고 참선만하다가 1750년(영조 26) 75세로 입적하였다. 연초대사는 군청색 장삼 위에 붉은색 가사를 걸쳤는데, 옷 주름은 군청색으로 농담 처리하여 묘사하였다. 화면 향우측에는 '□□□□□국일도 대선사 설송당(□□□□□國一都大禪師兩宗正事雪松堂)'이라는 화제가 있고, 향좌측의 찬문란은 공백으로 남아 있다.[1]

3. 8. 범어사 환성당 지안대사 진영

화엄학으로 이름 높았던 환성당 지안 대사(1664~1729)의 진영이다. 설송당 연초 대사의 스승이기도 한 지안 대사는 수천 명의 군중이 모여 법회를 열었던 일로 1729년(영조 5년) 가을에 구속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유배된 지 7일 만인 칠월 칠석날에 입적하였다.[1] 선사의 진영은 범어사 외에 통도사동국대학교 박물관에도 소장되어 있다.

범어사 환성당 지안 대사 진영은 한 폭의 화면으로 제작한 액자 형식의 영정으로, 전체적으로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지안 대사는 등받이에 녹색 천이 드리워져 있고, 양쪽에 용두 장식이 있는 의자에 앉아 왼쪽을 바라보고 있다. 도식화된 옷 주름 표현, 바닥과 벽면의 이단 구도를 비롯한 인물상 얼굴 표현 등에서 19세기 특징이 드러나 제작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1]

3. 9. 범어사 남파당 채우대사 진영

19세기 범어사 승통 시대 133대 주지를 역임했던 남파당(南坡堂) 채우대사의 진영이다. 1882년 범어사 대웅전의 「석가모니 후불도(釋迦牟尼後佛圖 )」 화기에는 상문(尙文) 대사의 은사로 채우대사가 기술되어 있다.[1] 채우대사는 범어사 주지로서 불사와 법등을 밝히는 데 주력한 승려였다. 남파당 채우대사 진영은 음영법 및 설채법에서 근대 화풍의 특징이 드러나는 작품으로, 19세기 말 ~ 2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문화재자료로서 가치가 있다.[1]

4. 범어사 고승 진영의 역사적, 문화적 의의

범어사 고승 진영은 19세기 불교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각 진영에 등장하는 고승들의 행적은 한국 불교사, 특히 조선 후기 불교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1] 진영에 나타난 화제, 찬문 등은 당시 불교계의 사상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1]

고승주요 내용
낙성당 취규대사범어사 제67대 주지를 지냈으며, 진영 왼쪽에 "시암중창대공덕주(是庵重創大功德主)"라는 화제가 있어 범어사 중창에 큰 공덕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1]
해성당대사진영 상단에 "해성당대선사지진영(海城堂大禪師之真影)"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1]
신암당 계홍대사19세기 범어사 승통 시대 132대 주지를 역임했으며, 화제에 "시암 중창 신암당 계홍대선사 지진(是庵重創信庵堂戒弘大禪師之眞)"이라 적혀 있어 범어사 중창 불사에 힘썼음을 알 수 있다.[1]
금봉당 상문대사19세기 후반 범어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범어사 관련 기록([무자갑보사단비(戊子甲補寺壇碑)[1874]], 대웅전 석가모니후불도(釋迦牟尼後佛圖)[1882] 등)과 진영의 제찬(경허당 성우(惺牛)[1846~1912])을 통해 행적과 진영 제작 시기(19세기 말~20세기 초)를 추정할 수 있다.[1]
용파당 도주대사조선 말기 승려로, 통도사 영각에 봉안된 진영과 범어사 진영의 제찬(구봉 지화(九鳳 知和)[1840년대 활동])을 통해 법명(도주(道周))과 진영 제작 시기(19세기)를 추정할 수 있다.[1]
호암당 체정대사조선 후기 고승(1687~1748)으로, 송익휘(宋翼輝, 1701~?)의 영찬과 홍계희(洪啓禧 , 1703~1771)의 비문을 통해 서산휴정의 법통을 계승한 인물로 평가받았음을 알 수 있다.[1]
설송당 연초대사17~18세기 전반 활동한 승려(1676~1750)로, 청도 운문사, 밀양 표충사, 양산 통도사 등에서 주석했다. 교파(敎派)와 선파(禪派) 통합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1]
환성당 지안대사화엄학으로 이름 높았던 승려(1664-1729)로, 설송당 연초대사의 스승이다. 1729년(영조 5) 제주도로 유배되어 입적했다.[1]
남파당 채우대사19세기 범어사 승통 시대 133대 주지를 역임했으며, 범어사 불화 기록(1882년 대웅전 석가모니후불도(釋迦牟尼後佛圖 ))을 통해 행적을 알 수 있다.[1]



이처럼 범어사 고승 진영은 조선 후기 불교 초상화의 양식 변화와 지역적 특색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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