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은 2중 기단 위에 3층으로 건립된 석탑으로, 통일신라 말기 양식을 따르고 있다. 1층 탑신석에는 문비가 조각되어 있으며, 성주사 사적기에 의해 사리탑으로 추정된다. 성주사지에는 국보 제8호인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보물 제19호인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보물 제20호, 제47호인 중앙, 서 삼층석탑 등 4점의 국가지정문화재가 있으며, 동 삼층석탑은 2024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되었다. 동 삼층석탑은 다른 석탑들과 함께 동일 장인에 의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균형 잡힌 비례와 우수한 조형성을 갖추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사리탑 -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은 9세기경 통일신라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리탑으로, 바닥돌 안상과 몸돌 윗부분의 십이지신상이 특징이며 능묘 의례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 사리탑 -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은 조선 세조의 명으로 중창된 수종사에 있는 팔각 석탑으로, 조선 왕실의 불교 신앙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며, 1439년 정혜옹주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옥개석 명문을 통해 조성 배경과 발원자를 알 수 있으며, 조선 초기 석조 승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보물이다. - 보령시의 문화유산 - 보령 남포읍성
보령 남포읍성은 충청남도 보령시에 위치한 조선시대 읍성으로, 왜구 침입 방어를 위해 축조되었으며, 돌과 흙으로 쌓은 성벽과 방어 시설, 그리고 관아 건물이 남아 있어 당시 읍성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 보령시의 문화유산 -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은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사지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 석탑으로, 2단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린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을 따르면서도 1층 몸돌 아래 괴임돌을 넣어 고려 석탑 양식을 보여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 신라의 석탑 -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은 신라 선덕여왕 때 분황사 창건과 함께 세워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탑으로, 중국 벽돌 불탑 양식을 본떠 안산암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았으며, 기단 모퉁이 사자상과 탑신 감실, 금강역사상이 특징이다. - 신라의 석탑 - 경주 불국사 다보탑
경주 불국사 다보탑은 751년 불국사 창건 당시 석가탑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다보여래가 석가여래의 설법을 증명하는 장면을 상징하고, 4각, 8각, 원의 조화를 이루는 독창적인 구조와 아름다움을 지닌 한국 석탑의 걸작이다.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이름 |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 |
한자 표기 | 保寧 聖住寺址 東 三層石塔 |
지정 종류 | 보물 |
지정 번호 | 2021 |
지정일 | 2019년 3월 28일 |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 |
시대 | 통일신라 |
관리 | 보령시 |
관련 문화재 | 보령 성주사지 |
문화재청 ID | 12,20210000,34 |
이전 지정 정보 | |
지정 종류 | 유형문화재 |
지정 번호 | 26 |
지정일 | 1979년 7월 3일 |
해제일 | 2019년 3월 28일 |
문화재청 ID | 21,00260000,34 |
2. 역사와 가치
성주사는 847년 낭혜화상이 개창하여 17세기까지 사찰의 명맥이 이어져 오다가 폐사되었다. 성주사 터에는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국보 제8호),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9호),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보물 제20호),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 제47호) 등 4점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관리되고 있다.[1]
동 삼층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개 층으로 조성되었으며, 높이는 4.1m이다. 기단 각 면에는 기둥 형태가 조각되어 있다. 상층 기단 상부에는 괴임대 형식의 별석받침(별도의 돌로 만든 받침석)이 있고, 1층 탑신 전·후면에는 문고리와 자물쇠가 표현된 문비(문짝 모양)가 조각되어 있는 등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 석탑의 특징을 보인다.[1]
2. 1. 독특한 가람배치
성주사는 847년 낭혜화상이 개창하여 17세기까지 사찰의 명맥이 이어져오다가 폐사되었다. 옛 성주사 금당을 중심으로 전면에 오층석탑 1기는 전형적인 가람배치 양식에 따라 배치되었으나, 후면에 배치된 삼층석탑 3기는 국내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가람배치이다. 오층석탑이 조성된 후에 다른 곳에서 옮겨와 배치하였을 가능성도 있다.[1]후면의 삼층석탑 3기 중 서쪽과 중앙의 2기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나, 동쪽의 동 삼층석탑 1기는 충청남도 지정문화재로 관리되다가 이번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되었다.[1] 동 삼층석탑은 조성 양식으로 보아 다른 석탑 3기와 같이 통일신라 말기에 동일한 장인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미 보물로 지정된 탑들 못지않게 균형 잡힌 비례와 체감, 우수한 조형성을 갖추고 있어 지정 가치가 충분하다.[1]
2. 2. 보물 승격
1963년, 성주사 터에 있던 3기의 삼층석탑 중 서쪽과 중앙의 2기는 보물로 지정되었으나, 동 삼층석탑은 충청남도 지정문화재로 관리되어 왔다.[1]동 삼층석탑은 다른 석탑 3기와 마찬가지로 통일신라 말기에 동일한 장인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보물로 지정된 탑들 못지않게 균형 잡힌 비례와 체감, 우수한 조형성을 갖추고 있어 보물로 지정될 가치가 충분하다.[1]
3. 구조적 특징
성주사지 금당지 뒤 3기의 석탑 중 동쪽에 있는 탑이다. 2중 기단 위에 만들어진 3층 석탑으로, 면석과 몸돌에는 우주와 탱주가, 옥개석에는 4단의 층급 받침이 목각되어 있는 등 통일신라 말기(9C)의 전형적인 3층 석탑 양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1]
1층 탑신석에는 문액을 새기고 그 안에 자물쇠와 고리를 양각하였으며, 승탑(부도)로 추정되어 오다가 성주사 사적기에 의해서 사리탑으로 알려지고 있다.[1] 다른 석탑 3기와 같이 통일신라 말기에 동일한 장인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균형 잡힌 비례와 체감, 우수한 조형성을 갖추고 있다.[1]
3. 1. 기단부
동 삼층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개 층으로 조성되었으며, 전체 높이는 4.1m이다. 기단 각 면에는 기둥 형태가 조각되어 있다.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 석탑의 특징으로, 상층 기단 상부에 괴임대 형식의 별석받침(별도의 돌로 만든 받침석)이 있고, 1층 탑신 전면과 후면에는 문고리와 자물쇠가 표현된 문비(문짝 모양)가 조각되어 있다.[1]3. 2. 탑신부
이중 기단 위에 만들어진 3층 석탑으로 면석과 몸돌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가, 옥개석에는 4단의 층급 받침이 목각되어 있는 등 통일신라 말기(9C)의 전형적 3층 석탑 양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1]1층 탑신석에는 문액(門額)을 새기고 그 안에 자물쇠와 고리를 양각하였으며, 승탑(부도)로 추정되어 오다가 성주사 사적기에 의해서 사리탑으로 알려지고 있다.[1]
동 삼층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개의 층으로 조성한 탑으로 총 높이는 4.1m이다. 기단 각 면에는 기둥의 형태가 조각되어 있으며, 상층 기단 상부에 괴임대 형식의 별석받침(별도의 돌로 만든 받침석)을 두고, 1층 탑신 전․후면에 문고리와 자물쇠가 표현된 문비(문짝 모양)가 조각되어 있는 점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 석탑의 특징이다.[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