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안튜페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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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블라디미르 안튜페예프는 소련과 러시아에서 활동한 인물로, 라트비아와 몰도바에서 기소된 경력이 있다. 그는 소련 OMON 특수 경찰 메이저 출신으로,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트란스니스트리아 독립 운동에 참여하여 국가보안부(MGB)를 창설했다. 2014년에는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의 부총리를 역임했으며, 유럽 연합의 제재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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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안튜페예프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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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블라디미르 안튜페예프 |
원어 이름 | 블라디́мир Ю́рьевич Антюфе́ев (러시아어) |
출생일 | 1951년 2월 19일 |
출생지 | 노보시비르스크,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소련 |
국적 | 러시아, 트란스니스트리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
배우자 | 갈리나 안튜페예바 |
경력 | |
직책 |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인민 의회 의장 |
임기 시작 | 2014년 7월 28일 |
임기 종료 | 2014년 11월 14일 |
이전 | 데니스 푸실린 |
이후 | 안드레이 푸르긴 |
직책 1 | 트란스니스트리아 국가 보안부 장관 |
임기 시작 1 | 1992년 9월 |
임기 종료 1 | 2012년 12월 17일 |
이전 1 | 신설 |
이후 1 | 블라디슬라프 피나긴 |
2. 생애 및 경력
블라디미르 안튜페예프는 소비에트 연방 시절 경찰 간부로 경력을 시작하여 트란스니스트리아 분리 독립 운동과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 건국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다.
안튜페예프는 소련 OMON 특수 경찰 출신으로, 리가 형사 수사 부국장을 지냈다. 1990년부터 1991년까지 리가 OMON 사령관으로 복무하며 라트비아 독립 움직임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다. 1991년 라트비아 정부로부터 "국가에 대한 범죄" 혐의로 기소되자 모스크바로 도피했다.
이후 '바딤 셰프초프'라는 가명으로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활동하며 국가보안부를 창설하고 이끌었다. 2004년에는 유럽 연합으로부터 입국 금지 인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2004년 몰도바 공화국 검찰청은 안튜페예프를 몰도바 국가에 대한 범죄 및 여러 암살 혐의로 기소된 장교의 석방 혐의로 기소했다.
2012년 초, 트란스니스트리아 대통령 예브게니 셰프추크에 의해 해임되고 권력 남용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자 2012년 모스크바로 돌아가 남오세티야, 압하지야, 크림반도에서 보안 관련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란스니스트리아 최고 소비에트의 대리이자 입법 위원회 위원장인 갈리나 안튜페예바와 결혼했다. 안튜페예프는 "우리는 몰도바에 실질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내 인생의 목적은 이 땅 [트란스니스트리아]을 러시아를 위해 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 1. 초기 생애
블라디미르 안튜페예프는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 SFSR 노보시비르스크에서 태어났다. 1974년 벨로루시 SSR 민스크의 경찰학교를 졸업했으며, 2003년 러시아 대통령 산하 국립 경제 및 공공 행정 아카데미에서 "남서부 지역의 러시아 지전략"에 관한 박사 학위 논문을 발표했다.[1]2. 2. 소련 시절 경력
벨로루시 SSR 민스크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리가 형사 수사 부국장을 역임했다. 1990년부터 1991년까지 리가 OMON 사령관으로 복무했다. 1990년 8월, 안튜페예프는 라트비아 MVD 회의를 조직한 사람 중 한 명이었으며, 이 회의에서 라트비아 경찰의 약 80%가 라트비아 인민 전선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소비에트 연방 헌법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이 경찰력은 이후 1991년 1월 KGB 주도의 친통일 쿠데타 미수에 연루되었다. 이러한 행위로 인해 라트비아 정부는 1991년 8월 안튜페예프를 "국가에 대한 범죄"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체포되기 2시간 전에 모스크바로 도망쳤다고 한다.2. 3. 트란스니스트리아 활동
1991년 티라스폴로 건너가 '바딤 셰프초프'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트란스니스트리아 독립 운동에 참여했다. 안튜페예프는 빅토르 알크스니스의 도움과 추천으로 트란스니스트리아로 가게 되었다. 그는 트란스니스트리아 정부의 내무 및 보안 조직을 구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특히 국가보안부(MGB)를 창설하고 수장으로서 이끌었다.1997년 알렉산드르 레베드에 의해 그의 실제 정체가 폭로되었다.
2. 4. 러시아에서의 활동 및 학력
1974년 벨로루시 SSR 민스크의 경찰학교를 졸업했다. 2003년 러시아 대통령 산하 국립 경제 및 공공 행정 아카데미에서 "남서부 지역의 러시아 지전략"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발표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1]2012년 모스크바로 돌아와 남오세티야, 압하지야, 크림반도에서 보안 관련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2. 5.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 활동
2014년 7월, 안튜페예프는 동부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DPR) "부총리"로 등장했다. 알렉산드르 보로다이 DPR 수장은 모스크바에서 안튜페예프를 만나 반군 보안군(알렉산드르 호다코프스키로부터 인수), 내무, 법원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안튜페예프는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에서 보안군, 내무, 법원을 담당했다.2014년 8월 중순 ''노바야 가제타''와의 인터뷰에서 안튜페예프는 "우리 은행, 상점, 공항 [도네츠크]이 폐쇄된 것은 우크라이나 파시스트와 미국 및 유럽의 프리메이슨 외에는 아무도 탓할 사람이 없다"고 주장했다.[1]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유럽 연합은 안튜페예프를 제재 대상자 명단에 올렸다.
3. 논란 및 비판
안튜페예프는 소비에트 연방 시절 OMON 특수 경찰로 복무했으며, 리가 형사 수사 부국장을 역임했다. 1990년부터 1991년까지 리가 OMON 사령관으로 복무하면서 친소련 활동에 가담했다.
1991년 트란스니스트리아 독립 운동에 참여한 이후, "바딤 셰프초프"라는 가명으로 트란스니스트리아 정부의 내무 및 보안 조직, 특히 국가보안부를 구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실제 정체는 1997년 알렉산드르 레베드에 의해 밝혀졌다.
2003년 러시아 대통령 산하 국립 경제 및 공공 행정 아카데미에서 "남서부 지역의 러시아 지전략"에 관한 박사 학위 논문을 발표했다.[1]
2012년 초, 트란스니스트리아 대통령 예브게니 셰프추크에 의해 해고되었으며, 권력 남용, 공금 횡령 및 문서 파기 혐의로 형사 수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2014년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 (DPR)의 "부총리"로 등장하여 반군 보안군, 내무, 법원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2014년 8월 ''노바야 가제타''와의 인터뷰에서 안튜페예프는 "우리 은행, 상점, 공항이 폐쇄된 것은 우크라이나 파시스트와 미국 및 유럽의 프리메이슨 외에는 아무도 탓할 사람이 없다"고 주장했다.[1]
3. 1. 라트비아 및 몰도바에서의 기소
1991년 8월, 라트비아 정부는 안튜페예프를 "국가에 대한 범죄" 혐의로 기소했다. 이는 1990년 8월 안튜페예프가 라트비아 MVD 회의를 조직하여 라트비아 경찰의 약 80%가 라트비아 인민 전선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소비에트 연방 헌법을 따르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이 있다. 이 경찰력은 이후 1991년 1월 KGB 주도의 친통일 쿠데타 미수에 연루되었다. 안튜페예프는 체포되기 2시간 전에 모스크바로 도망쳤다고 한다.2004년 몰도바 공화국 검찰청은 안튜페예프를 몰도바 국가에 대한 범죄 및 여러 암살 혐의로 기소된 장교를 석방한 혐의로 기소했다. 같은 해 안튜페예프는 유럽 연합에 의해 ''입국 금지 인물''로 지정되었다.
3. 2. 국제적 제재
2004년 유럽 연합(EU)은 안튜페예프를 ''입국 금지 인물''로 지정했다. 2014년 친러시아 우크라이나 소요 사태와 관련하여 유럽 연합은 안튜페예프를 제재 대상자 명단에 추가했다.4. 개인사
블라디미르 안튜페예프는 트란스니스트리아 최고 소비에트의 대리이자 입법 위원회 위원장인 갈리나 안튜페예바와 결혼했다. 그는 "우리는 몰도바에 실질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내 인생의 목적은 이 땅[트란스니스트리아]을 러시아를 위해 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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