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키르-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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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키르-하르는 1990년대에 텔 엘-다바에서 발굴된 문설주에 새겨진 비문을 통해 알려진, 이집트 제15왕조의 힉소스 왕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카이로 박물관에 소장된 문설주에는 그의 네브티, 황금 매 명칭, 노멘과 함께 "아홉 개의 활을 가진 민족"을 제압하고 경계를 확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키르-하르라는 이름은 "하르의 보상" 또는 "하닷의 기억"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힉소스 칭호를 사용한 점을 통해 힉소스 왕조 내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와 그들의 기원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파피루스 칼스버그 642에 언급된 사케르가 사키르-하르를 지칭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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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키르-하르 | |
---|---|
기본 정보 | |
역할 | 힉소스 |
이름 | 힉소스, 사키르-하르 |
호루스 이름 | 사키르-하르 |
호루스 이름 (이집트어) | Ḥq3 ḫ3swt Skr Hr |
호루스 이름 (의미) | 외국 땅의 통치자 (='힉소스'), 하르의 보상 |
네브티 이름 | 테스-페듀트 |
네브티 이름 (이집트어) | Ṯz-pḏwt |
네브티 이름 (의미) | 활 사람들을 정복하는 자 |
황금 호루스 이름 | 이리-타쉬-에프 |
황금 호루스 이름 (이집트어) | Jrj-t3š.f |
황금 호루스 이름 (의미) | 그의 경계를 세우는 자 |
통치 | |
통치 시기 | 알 수 없음 |
이전 통치자 | 살리티스? |
다음 통치자 | 키얀? |
가계 | |
왕조 | 제15왕조 |
아버지 | 알 수 없음 |
어머니 | 알 수 없음 |
배우자 | 알 수 없음 |
자녀 | 알 수 없음 |
기타 정보 | |
유물 | 텔 엘-다브아에서 발견된 문설주 |
2. 증거
사키르-하르는 1990년대에 만프레드 비에탁이 고대 아바리스인 텔 엘-다바에서 발굴한 문설주에 새겨진 단 하나의 비문으로 알려져 있다.[1] 이 문설주는 사키르-하르가 이집트 제15왕조의 힉소스 왕 중 한 명임을 확인해 준다. 사키르-하르의 직계 후계자는 키안이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 왕조 내에서 사키르-하르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사키르-하르라는 이름은 "하르의 보상"으로 번역될 수 있으며, 아모리어 ''Sikru-Haddu''에서 유래하여 "하닷의 기억"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사키르-하르는 키안과 야나시 이후 아포피스 바로 전에 통치했을 수 있다.
사키르-하르는 이집트식 칭호와 함께 ''heka-khawaset''(힉소스)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이는 도널드 레드포드(Donald Redford)를 포함한 학자들이 이전에 제안한 바와 같이, 사키르-하르가 속한 왕들이 의도적으로 이 칭호를 스스로 사용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비에타크(Bietak)는 "이 새로운 용어 [''heka-khawaset'']가 원래 이집트인들에 의해 그 땅의 새로운 통치자들을 비하하는 방식으로 적용되었을지라도, 통치자들은 스스로 '힉소스'를 공식적인 통치자 칭호로 사용했다"고 언급하며 이 의견에 동의했다. 그 이후 연구를 통해 이집트인들이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는 주장이 반박되었으며, "외국 땅의 통치자"라는 ''heka-khawaset'' 칭호가 힉소스 통치자들에 의해 발명되었고, 아마도 그들의 기원이나 더 명확하게는 아모리 관련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더욱 입증되었다.
슈나이더(Schneider, 2018)는 데마틱 파피루스 칼스버그 642(Papyrus Carlsberg 642)에 나오는 불경스러운 통치자 사케르(Saker)를 언급하는 후기 힉소스 전통을 지적하는데, 이는 샤키르-하르(Śkrhr)를 지칭할 수 있다.[2][3][4]
2. 1. 카이로 TD-8316 문설주
만프레드 비에탁이 1990년대에 고대 아바리스인 텔 엘-다바에서 발굴한 문설주에 새겨진 단 하나의 비문으로 증명된다.[1] 이 문설주는 카이로 TD-8316이라는 카탈로그 번호로 카이로에 소장되어 있으며, 고대 이집트 양식으로 그의 부분적인 왕의 칭호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그의 네브티와 황금 매 명칭, 그리고 그의 노멘이 포함되어 있다.[2] 문설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다.[호루스, ... ...], 와제트와 네크베트의 왕관을 소유한 자로서, 활을 가진 민족을 제압한다. 자신의 경계를 확립하는 황금 매. 헤카-카와셋, 사키르-하르.[3][4]
3. 이론
문설주는 사키르-하르가 이집트 제15왕조의 힉소스 왕 중 한 명임을 확인해 준다. 사키르-하르의 직계 후계자는 이 왕조의 세 번째 힉소스 왕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강력한 통치자 키안이었을 수 있지만, 사키르-하르가 이 왕조 내에서 정확히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는 아직 확고하게 확립되지 않았다.
사키르-하르의 이름과 ''heka-khawaset''(힉소스) 칭호, 그리고 이 칭호의 기원과 관련된 이론은 하위 섹션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3. 1. 왕조 내 위치
사키르-하르는 이집트 제15왕조의 힉소스 왕 중 한 명으로, 그의 직계 후계자는 이 왕조의 세 번째 힉소스 왕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강력한 통치자 키안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사키르-하르가 이 왕조 내에서 정확히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1]사키르-하르라는 이름은 "하르의 보상"[2]으로 번역될 수 있으며, 아모리의 ''Sikru-Haddu''에서 유래하여 "하닷의 기억"[3]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사키르-하르는 키안과 야나시 이후 아포피스 바로 전에 통치했을 수 있다.
사키르-하르가 이집트식 칭호와 함께 ''heka-khawaset''(힉소스)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사키르-하르가 속한 왕들의 계보가 도널드 레드포드(Donald Redford)를 포함한 학자들이 이전에 제안한 바와 같이 의도적으로 이 칭호를 스스로 사용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4] 비에타크(Bietak)는 이 새로운 용어(''heka-khawaset'')가 원래 이집트인들에 의해 그 땅의 새로운 통치자들을 비하하는 방식으로 적용되었을지라도, 통치자들은 스스로 '힉소스'를 공식적인 통치자 칭호로 사용했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그 이후 연구를 통해 이집트인들이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는 주장이 반박되었으며, "외국 땅의 통치자"라는 ''heka-khawaset'' 칭호가 힉소스 통치자들에 의해 발명되었으며, 아마도 그들의 기원이나 더 명확하게는 아모리 관련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더욱 입증되었다.
3. 2. 이름의 의미
사키르-하르라는 이름은 "하르의 보상"[1]으로 번역될 수 있으며, 아모리어 ''Sikru-Haddu''에서 유래하여 "하닷의 기억"[2]을 의미할 수도 있다. 사키르-하르는 이집트식 칭호와 함께 ''heka-khawaset''(힉소스)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사키르-하르가 속한 왕들의 계보가 의도적으로 이 칭호를 스스로 사용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3] 비에타크(Bietak)는 "이 새로운 용어 [''heka-khawaset'']가 원래 이집트인들에 의해 그 땅의 새로운 통치자들을 비하하는 방식으로 적용되었을지라도, 통치자들은 스스로 '힉소스'를 공식적인 통치자 칭호로 사용했다"고 언급했다.[4] 이후 연구를 통해 이집트인들이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는 주장이 반박되었으며, "외국 땅의 통치자"라는 ''heka-khawaset'' 칭호가 힉소스 통치자들에 의해 발명되었고 아마도 그들의 기원이나 더 명확하게는 아모리 관련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더욱 입증되었다.3. 3. 힉소스 칭호 사용
사키르-하르는 이집트식 칭호와 함께 ''heka-khawaset''(힉소스)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이는 사키르-하르가 속한 왕들의 계보가 도널드 레드포드를 포함한 학자들이 이전에 제안한 바와 같이 의도적으로 이 칭호를 스스로 사용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비에타크(Bietak)는 "이 새로운 용어 [''heka-khawaset'']가 원래 이집트인들에 의해 그 땅의 새로운 통치자들을 비하하는 방식으로 적용되었을지라도, 통치자들은 스스로 '힉소스'를 공식적인 통치자 칭호로 사용했다"고 언급하며 이에 동의했다. 그 이후 연구를 통해 이집트인들이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는 주장이 반박되었으며, "외국 땅의 통치자"라는 ''heka-khawaset'' 칭호가 힉소스 통치자들에 의해 발명되었고, 아마도 그들의 기원이나 더 명확하게는 아모리 관련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더욱 입증되었다.3. 4. 파피루스 칼스버그 642
슈나이더(Schneider, 2018)는 사초문자 파피루스 칼스버그 642(Papyrus Carlsberg 642)에 나오는 불경스러운 통치자 사케르(Saker)를 언급하는 후기 힉소스 전통을 지적하는데, 이는 샤키르-하르(Śkrhr)를 지칭할 수 있다.[2][3][4]참조
[1]
서적
Handbuch der ägyptischen Königsnamen
Verlag Philipp von Zabern
1999
[2]
문서
[3]
논문
2006
[4]
논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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