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라 처치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산드라 처치는 미국의 배우이자 가수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배우의 길을 걸었다. 1953년 연극 《피크닉》으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했으며, 1959년 뮤지컬 《집시》에서 집시 로즈 리 역을 맡아 토니상 뮤지컬 부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 《어글리 아메리칸》과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출연했으며,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샌프란시스코 출신 가수 - 정수정
199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정수정은 2009년 걸그룹 f(x) 멤버로 데뷔하여 가수 활동을 시작했으며,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 샌프란시스코 출신 가수 - 티파니 영
티파니 영은 스테파니 영 황이라는 본명으로, 한국계 미국인 2세 출신 가수 겸 배우이며, 2007년부터 2017년까지 걸 그룹 소녀시대 멤버로 활동했고, 이후 미국에서 티파니 영이라는 예명으로 솔로 가수, 뮤지컬 및 드라마 배우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 1938년 출생 - 백낙청
백낙청은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사회운동가로서, 《창작과비평》 창간, D. H. 로런스 연구, 유신 정권 비판, 남북 화해와 통일 운동 참여, 민족 문학론과 분단 극복론 주창 등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 1938년 출생 -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는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으로, 페루 중앙준비은행 총재, 에너지광산부 장관, 경제재정부 장관, 총리 등을 역임했으며, 2016년 대선에서 당선되었으나 오데브레히트 스캔들로 인해 2018년에 사임했다. - 미국의 여자 가수 - 트레이시 채프먼
트레이시 채프먼은 사회 비판적인 가사와 깊이 있는 음악으로 유명하며 그래미상을 4회 수상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로, 대표곡 〈Fast Car〉는 2023년 컨트리 차트 1위에 오르며 채프먼을 해당 차트 1위에 오른 최초의 흑인 여성 작곡가로 만들었다. - 미국의 여자 가수 - 니콜 키드먼
니콜 키드먼은 호주 영화로 데뷔하여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거둔 호주계 미국인 배우이자 제작자로, 《디 아워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에미상과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하는 등 연기력과 영향력을 인정받으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산드라 처치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출생 이름 | 산드라 리 처치 |
출생일 | 1937년 1월 13일 |
출생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
사망 | 생존 |
직업 | 배우, 가수, 화가 |
활동 기간 | 1944년–1964년 |
학력 | Immaculate Heart High School |
알려진 작품 | Gypsy |
배우자 | 노먼 트웨인 (1964년 결혼, 1975년 이혼) 앨버트 H. 클레이버러 (1976년 결혼, 1997년 사망) |
친척 | Mary Florence Denton (고모할머니) |
2. 생애
1961년 10월, 뮤지컬 ''집시''의 작곡가 줄 스테인과 결혼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12] 1964년 11월, 처치는 바베이도스 브리지타운에 있는 무대 디자이너 올리버 메셀의 집에서 브로드웨이 연극 제작자 노먼 트웨인과 결혼했다.[13] 이 부부는 1975년에 이혼했다. 이후 그녀는 알버트 H. 클레이버그와 결혼하여 그가 1997년 사망할 때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처치의 고모 할머니는 교토 도지샤 대학에서 오랫동안 교직원으로 일했던 교육자 메리 플로렌스 덴턴이다.[14]
2. 1. 초기 생애
처치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두 살 때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연극에 대한 야망이 있던 간호사였던 그녀의 어머니는 5살 때 처치를 배우의 길을 걷게 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로 이사했다. 그녀는 이매큘레이트 하트 고등학교(로스앤젤레스)에 다녔다.그녀는 연기 경력을 시작하게 해준 ''피크닉''의 주연 역할을 오디션 보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2. 2. 경력
산드라 처치는 1950년대부터 연극 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며 배우로 활동했다. 브로드웨이 연극 데뷔 이후 다수의 연극 작품에 출연했으며,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참여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자세한 활동 내역은 아래 하위 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2. 2. 1. 연극
1953년부터 1959년까지 처치는 연극 무대에서 주로 순진하고 젊은 여성 역할인 잉게뉘[1]를 맡아 연기했다. 1953년에는 윌리엄 잉지의 연극 ''피크닉''에서 라프 미커와 함께 매지 오웬스 역으로 재니스 룰을 대신하여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2][3][4] 이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1956)에서는 프란쇼 톤, 시그네 하소와 함께 소냐 역을 연기했으며, 로널드 알렉산더의 연극 ''홀리데이 포 러버스''(1957)에서는 베시 딘 역을 맡았다. 처치는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스버그, 오하이오''를 각색한 연극에서 도로시 맥과이어, 제임스 휘트모어와 함께 헬렌 화이트 역으로 출연했다.처치의 경력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1959년 뮤지컬 ''집시''에서 주인공 집시 로즈 리 역을 맡으면서 찾아왔다.[1][5][6][7][8] 이 역할로 처치는 토니상 뮤지컬 부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극작가 아서 로렌츠는 자서전에서 당시 캐스팅 과정을 회상하며, "수잔 플레셰트와 산드라 처치 사이에서 고민했다. 수잔이 연기는 더 잘했지만, 산드라가 노래를 더 잘했다. 그래서 산드라를 선택했다."라고 밝혔다.[9] 처치는 ''집시''에서 유명한 곡인 "Let Me Entertain You"를 불렀다.[10]
''집시'' 이후 처치는 1960년 조셉 앤서니가 연출한 브로드웨이 연극 ''언더 더 얌 얌 트리''에 출연했다.[11]
2. 2. 2. 영화 및 텔레비전
첫 스크린 출연작은 ''프로듀서 쇼케이스''이다. 1958년에는 영화 ''머거''에서 지니 역을 맡았다. 이후 1959년 텔레비전 시리즈 ''룩 업 앤 리브''와 1960년 ''듀폰 쇼 오브 더 먼스''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1963년에는 유진 버딕과 윌리엄 레더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어글리 아메리칸''에서 매리언 맥화이트 역을 연기했다. 같은 해 텔레비전 드라마 ''일레븐스 아워''와 ''크래프트 서스펜스 시어터''에도 출연했다. 1988년에는 영화 감옥선에 출연했다.3. 사생활
1961년 10월, 처치와 뮤지컬 ''집시''의 작곡가인 줄 스테인이 결혼할 것이라는 보도가 널리 퍼졌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12] 1964년 11월, 그녀는 바베이도스 브리지타운에서 무대 디자이너 올리버 메셀의 집에서 브로드웨이 연극 제작자 노먼 트웨인과 결혼했다.[13] 이 부부는 1975년에 이혼했다. 이후 그녀는 1997년 사망할 때까지 알버트 H. 클레이버그와 결혼 생활을 했다.
처치의 고모 할머니는 교토 도시샤 대학의 오랜 교직원이었던 교육자 메리 플로렌스 덴턴이었다.[14]
4. 출연 작품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