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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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운산성은 차령산맥의 서운산 봉우리 두 개를 연결하여 말안장 모양으로 쌓은 토성으로, 북산리성터라고도 불린다. 성의 둘레는 620m이며, 흙을 쌓은 곳은 450m가량 된다.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 홍계남 장군이 왜적 방어에 활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성안에서는 장수바위, 성문터, 우물터, 절터, 돌부처, 작은 동굴, 토기 조각 등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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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산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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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이름 | 서운산성 |
유형 | 기념물 |
지정 번호 | 81 |
지정일 | 1985년 6월 28일 |
주소 |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북산리 산2번지 |
시대 | 삼국시대 |
면적 | 미확인 |
수량 | 일원 |
2. 지리적 위치 및 구조
차령산맥의 주봉인 서운산의 봉우리 두 개를 연결하여 쌓은 말안장 모양의 토성으로, '북산리성터'라고도 불린다. 흙은 능선을 따라 깎아서 다졌으며 가파른 자연지세를 최대한 이용하였다. 성 안쪽에는 도랑을 판 흔적이 남아 있다. 성안에는 전투시 지휘소로 이용된 장수바위가 있고, 북쪽과 남쪽에 성문터가 있는데 주로 남쪽으로 출입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성안에서는 우물터, 절터, 돌부처, 작은 동굴, 토기 조각들이 발견되었으며, 출토된 유물로 보아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으로 추정된다.
2. 1. 지형적 특징
이 성은 서운산의 서쪽 능선에서 서남 방향으로 해발 536m에서 460m 지점까지 골짜기처럼 비탈진 사면을 삼태기 모양으로 둘러싼 반면식 토축산성이다. 둘레는 약 620m이고 성벽의 높이는 6m~8m이며, 성벽 윗부분의 너비는 2m~4m인데 성터 안쪽의 흙을 깎아 판축한 듯 성벽 안쪽이 내황처럼 파여져 있다. 동서 양쪽 끝이 높게 된 말안장 모양의 북벽은 거의 자연지세를 이용하였고, 성안에는 우물터, 절터와 돌부처가 있으며, 용굴이라 불리는 작은 동굴도 있다.[1]2. 2. 성벽 구조
서운산성은 '북산리성터'라고도 부른다. 성 둘레는 620m이고, 흙을 쌓은 곳은 450m가량이다. 성벽 윗부분의 너비는 2~4m이며, 성터 안쪽의 흙을 깎아 판축한 듯 성벽 안쪽이 내황처럼 파여져 있다. 동서 양쪽 끝이 높게 된 말안장 모양의 북벽은 거의 자연지세를 이용하였다. 남벽 일부를 제외하고 비교적 성벽이 잘 남아있으며, 성벽 안쪽에는 도랑을 판 흔적도 있다.[1]3. 역사
서운산성은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운산의 봉우리 2개를 연결하여 말안장 모양으로 쌓은 토성으로, '북산리성터'라고도 불린다. 성벽 안쪽에는 도랑을 판 흔적도 있다. 성의 둘레는 620m이고, 흙을 쌓은 곳은 450m가량 되는데, 능선을 따라 깎아서 다졌으며 가파른 자연지세를 최대한 이용하였다. 성안에는 전투시 지휘하던 곳으로 이용된 장수바위가 있고, 북쪽과 남쪽에 성문터가 있는데 주로 남쪽으로 출입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1]
3. 1. 삼국시대
서운산의 봉우리 2개를 연결하여 말안장 모양으로 쌓은 토성인 서운산성은 '북산리성터'라고도 불린다. 성 안에서는 우물터, 절터, 돌부처, 작은 동굴, 토기 조각들이 발견되었으며,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으로 추정된다.[1]3. 2.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홍계남 장군이 북쪽으로 올라오는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성 안에서 발견된 유물로 볼 때 삼국시대에 처음 쌓아서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이용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왜적을 물리치자 널리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1]3. 3. 임진왜란
임진왜란 때 의병장 홍계남이 북상하는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 서운산성을 활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홍계남은 성을 수축하여 방어전을 전개했다는 기록이 있다.[1]4. 주요 시설
성 안에는 우물터, 절터, 돌부처, 용굴이라 불리는 작은 동굴[1] 등이 남아있으며, 출토되는 토기 조각 등의 유물로 보아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으로 추정된다.[1]
4. 1. 장수바위
성 안에는 전투 시 지휘소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수바위가 있다.[1]4. 2. 성문터
북쪽과 남쪽에 성문터가 있는데 주로 남쪽으로 출입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1] 성안에서는 우물터, 절터, 돌부처, 작은 동굴, 토기 조각들이 발견되었으며, 이곳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으로 생각된다.[1]4. 3. 기타 시설
성 안에는 전투 시 지휘하던 곳으로 이용된 장수바위가 있고, 북쪽과 남쪽에 성문 터가 있는데 주로 남쪽으로 출입을 하였던 것 같다. 성안에서는 우물터, 절터, 돌부처, 용굴이라 불리는 작은 동굴[1], 토기 조각들이 발견되었으며, 이곳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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