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인성
1. 개요
처인성은 용인시 남사면에 위치한 토성으로, 고려 시대 군창으로 사용되었거나 백제 시대에 축성되었다는 설이 있는 곳이다. 1232년 몽골군의 침입 당시 김윤후가 처인 부곡민과 함께 몽골군 장수 살리타이를 사살하여 승리한 대몽항쟁의 전승지이며,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을 물리친 승전지이기도 하다. 현재 성곽의 흔적만 남아 있으며, 발굴 조사 결과 통일신라 시대 유물이 출토되어 축성 시기는 통일신라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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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성 -
보은 삼년산성
보은 삼년산성은 신라 시대에 축조되어 삼국 통일 과정에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한 돌로 쌓은 산성으로, 축성에 3년이 걸렸다는 기록에서 유래되었으며, 성 내부 유적과 출토 유물은 당시 신라의 건축 기술과 사회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
신라의 성 -
운화리성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운화리에 위치한 운화리 성지는 대운산 지맥을 따라 타원형으로 축조되었으며, 자연석과 흙으로 쌓은 높이 2~3m의 성벽과 석단 시설을 통해 삼국시대 또는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산성이다. -
고려의 성 -
백마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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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성 -
장성 입암산성
장성 입암산성은 전라남도 장성군 입암산에 위치한 산성으로, 1256년 송군비가 축조한 것으로 전해지며 조선 시대 개축과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중요한 방어 시설로 활용되었고, 15km에 달하는 성벽과 남문, 북문, 장기간 방어를 위한 물 확보 설계가 특징이며 주변 관광 명소와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다. -
경기도의 성 -
북한산성
북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양 도성을 방어하는 요충지였으며, 백제 시대에 처음 축조된 후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숙종 때 대대적으로 개축되어 석성으로 완공되었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훼손되었으나 현재는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인 유적이다. -
경기도의 성 -
고양 행주산성
고양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행주대첩 격전지로 역사적 의미가 깊은 경기도 고양시 소재 산성으로, 백제 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추정되며 조선 시대에 축조되었고, 현재 사적 제56호로 지정되어 권율 장군 관련 유적과 기념비가 있으며, 행주대첩 기념 문화제를 비롯한 다양한 축제가 개최된다.
2. 위치 및 지형
3. 역사
용인시 남사면 아곡리 산43번지에 있는 이 성은 총면적 5,820평의 장방형으로 된 토성으로 본래 고려 때 군창(軍倉)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추정되며, 백제 때 축성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성곽 둘레는 425m이며, 북벽 좌측에 출입구가 있고, 남쪽 중간 지점에 후문자리가 있었다.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경사면을 이루고 있으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입구 주변의 4백 평쯤 되는 부분에는 낮은 둔석이 있다. 내부는 지형에 따라 2~3단계의 층급이 있다. 현재 성곽의 흔적만 남아 있다.
조선시대 기록에 의하면 토축된 주위는 3리였으나 이미 성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하였고, 다만 군창만 남아 있다고 하였다. 당시 이 지방은 교통이 발달한 곳이어서 일찍부터 중요시되었기 때문에 처인성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적을 기록하고 있다. 1232년(고려 고종 19년) 9월 몽골군의 2차 침입 때 승장 김윤후가 처인 부곡민과 함께 몽골군 장수 살리타이를 사살하여 승리로 이끈 대몽항쟁의 전승지이다. 이 대첩은 처인 부곡민들이 합심하여 승리로 이끌어 지역민의 단결은 물론 자주주권 수호의식을 고취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처인성 북쪽의 들판은 지금도 사장(死將)터로 불리고 있는데, 일설에는 살리타이가 사살된 장소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처인성에 주둔한 왜군을 수원 독산성에 집결한 관군이 무찔러 탈환한 승전지이기도 하다.
처인성은 1977년 남서쪽 성곽 120m를 쌓았으며, 1979년부터 1980년까지 실시된 공사에서는 동남북 방면의 성벽 205m를 쌓았다. 1979년에는 처인성 대첩기념비가 준공되었다.
3.1. 축성 시기
처인성은 평지에 축성된 토성으로, 용인에서 진위로 가는 길과 수원에서 오산을 거쳐 안성으로 가는 교차 지점에 위치하여 군사적 가치가 높다. 성의 전체 규모는 425m이며, 위에서 보았을 때 사다리꼴에 가깝다.
축성 시기는 백제 시대라는 설과 고려 시대라는 설이 대립했으나, 성 내부 발굴 조사 결과 통일신라 시대 유물이 다량 출토되어 최초 축성 시기는 통일신라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3.2. 고려 시대: 처인성 전투 (대몽항쟁)
1232년(고려 고종 19년) 9월 몽골군의 2차 침입 때 승장 김윤후가 처인 부곡민과 함께 몽골군 장수 살리타이를 사살하여 승리로 이끈 대몽항쟁의 전승지이다. 이 대첩은 처인 부곡민들이 합심하여 승리로 이끌어 지역민의 단결은 물론 자주주권 수호의식을 고취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처인성 북쪽의 들판은 지금도 사장(死將)터로 불리고 있는데, 일설에는 살리타이가 사살된 장소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처인성에 주둔한 왜군을 수원 독산성에 집결한 관군이 무찔러 탈환한 승전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