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는 1536년 이문건이 부친 이윤탁의 묘에 세운 묘비이다. 묘비에는 한글로 경계문이 새겨져 있으며, 현존하는 한글 비석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68년 재발견되었으며, 197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007년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었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글 사용의 증거로서 국어학적 가치를 지닌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글 금석문 - 다이간인
다이간인은 웅예 영엄이 초암으로 시작하여 사찰로 개칭되었고, 에도 막부로부터 주인장을 받았으며, 사면석탑에 새겨진 한글은 한글 창제 초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지바현 지정 유형문화재이다. - 묘비 - 광개토대왕릉비
광개토대왕릉비는 414년에 고구려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고구려 역사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록하여 고구려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 묘비 - 이덕사 이태연 묘비
이덕사 이태연 묘비는 조선 시대 문신인 이덕사와 이태연의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16년에 건립된 흑색 화강암 또는 대리석 재질의 묘비로, 묘비명과 음기를 통해 이들의 생애, 관직, 업적 등을 알 수 있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지닌 자료이다.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지도 | |
기본 정보 | |
이름 |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
한자 표기 | 서울 李允濯 한글靈碑 |
유형 | 보물 |
지정 번호 | 1524 |
지정일 | 2007년 9월 18일 |
시대 | 조선 중종 31년 (1536년) |
위치 | 서울특별시 노원구 하계동 12 |
문화재청 | 12,15240000,11 |
추가 정보 | |
문화재 유형 | 유형문화재 |
문화재 이름 | 한글고비 |
문화재 지정 번호 | 27 |
문화재 지정일 | 1974년 1월 5일 |
문화재 지정 해제일 | 2007년 9월 18일 |
문화재청 문화재 정보 | 21,00270000,11 |
![]() |
2. 역사
1536년(중종 31년), 이문건이 아버지 이윤탁의 묘를 어머니 고령 신씨의 묘와 합장하면서 묘비를 세웠다. 이윤탁은 중종 때 승문원 부정자를 지냈다. 원래 묘는 1535년 태릉 자리에 있었으나, 국가의 수복 사업으로 이장해야 했다. 이문건은 묘의 재훼손을 막기 위해 비석에 경계문을 새겼다. 비석은 사각 받침돌 위에 비몸만 세운 간결한 구조이며, 비몸 윗변 양쪽은 비스듬히 다듬었다.
이 비석은 1968년에 다시 발견되었고,[2] 1974년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89년 대한주택공사의 택지개발사업으로 묘지 이전 요청이 있었으나,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와 성주 이씨 종중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1998년 묘를 도로 바깥으로 15m 옮기기로 합의하여 묘비와 함께 이장했다.[3]
2007년 대한민국의 보물로 격상되었으며,[4] 2012년 도로명 주소 도입으로 묫자리 옆 6차선 도로에 '한글비석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2. 1. 경계문 내용
한 비(碑)라. 거운 사람은 재화(災禍)를 입으리라. 이는 글(한문) 모르는 사람더러 알리노라.[2] 이는 묘의 훼손을 경계하는 내용이다.3. 의의
1536년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90년 후이다. 글씨는 한글 창제 당시와 유사한 서체와 서민적인 문체로 쓰여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비' 중 하나로 평가되며, 한글이 널리 사용되지 않던 시기에 '한글 묘비'를 세웠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고 국어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3. 1. 국어학적 가치
이 비는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90년 후인 1536년에 세워졌다. 글씨는 한글 창제 당시와 똑같은 글씨에 서민적인 문체로 쓰여 있다. 현존하는 ‘한글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되며, 한글이 널리 사용되지 못했던 시기에 ‘한글묘비’를 세웠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돋보이며 국어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이 ‘한글영비’는 국어생활사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 첫째, 중종 31년(1536) 당시 한글의 보급 정도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 둘째, ‘한글영비’에 새겨진 한글 서체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체와 용비어천가 서체의 중간 형태를 띤다.
- 셋째, 비석 이름인 ‘영비(靈碑)’를 제외하고는 국한문 혼용이 아닌 순 한글로 쓰여 있다. 본격적인 한글 문헌은 18세기에나 등장하지만, 이 ‘한글영비’는 16세기에 이미 순 한글 문장으로 쓰였다.
- 넷째, ‘한글영비’는 번역문이 아닌 우리말 원문이다. 15세기 이후 한글 자료는 한문 원문을 번역한 언해문이 주를 이루었으나, 이 ‘한글영비’는 짧지만 처음부터 우리말로 쓰인 문장으로, 한글이 한문 번역 도구가 아닌 우리 생각과 느낌을 직접 전달하는 도구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 다섯째, ‘한글영비’에 쓰인 국어 현상은 당시 언어를 반영하여 당시 국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4. 사진
참조
[1]
간행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지정 해제
http://event.seoul.g[...]
서울특별시장
2007-09-27
[2]
뉴스
墓碑에 옛 우리말 한글 金石文 첫 발견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68-09-28
[3]
뉴스
하계동 도로변 묘비 8월까지 이전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98-01-07
[4]
웹인용
문화재청 공고 제2007-61호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예고
http://www.cha.go.kr[...]
대한민국 문화재청
2007-05-23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