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포왜성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송진포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축조한 성으로, 동쪽의 송진포왜성과 서쪽의 장문포왜성 중 하나이다. 해발 약 60m 정상부를 중심으로 하는 동곡륜군과 약 90m를 중심으로 하는 서곡륜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 곡륜군 사이에는 궁도장이 설치되어 있다. 동곡륜군은 3개의 곡륜으로 구성되며, 서곡륜군은 정상부 곡륜, 산록 곡륜,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석축으로 이루어져 전형적인 왜성의 형태를 띤다. 현재 시지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지 않으며, 장목궁도장 부근에 위치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거제시의 건축물 - 장승포시외버스정류장
장승포시외버스정류장은 경상남도 거제시 장승포동에 위치하며 수도권, 충청권, 호남권 및 영남권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시외버스 노선을 운영한다. - 거제시의 건축물 - 거가대교
거가대교는 부산과 거제도를 연결하는 총 8.2km의 왕복 4차선 도로이며, 사장교와 가덕해저터널로 구성되어 2010년 개통되었고, 민간 자본으로 건설되어 통행료를 징수한다. - 경상남도의 성 - 밀양읍성
밀양읍성은 경상남도 밀양시에 있었던 조선 시대 읍성으로, 1479년에 축조되어 1.4km의 둘레와 2.7m의 높이를 가졌으나, 경부선 철도 부설 공사로 인해 대부분 파괴되고 현재는 일부만 남아 있다. - 경상남도의 성 - 진주성
진주성은 고려 시대부터 왜구 방어의 요충지였고 임진왜란 당시 격전지였던 경상남도 진주시에 위치한 석성으로,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제1차 진주성 전투와 많은 민관군이 순절한 제2차 진주성 전투의 역사를 지니며 현재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어 촉석루, 의기사, 영남포정사 등 다양한 문화재와 유적을 포함하여 관리되고 있다. - 왜성 - 금정산성
금정산성은 부산, 양산에 걸쳐 있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산성으로, 조선 중기부터 존재했으며 낙동강 하구와 동래를 방어하는 요충지로서 숙종 때 개축되었고 현재 일부 복원되어 사적 제215호로 지정되었다. - 왜성 - 운화리성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운화리에 위치한 운화리 성지는 대운산 지맥을 따라 타원형으로 축조되었으며, 자연석과 흙으로 쌓은 높이 2~3m의 성벽과 석단 시설을 통해 삼국시대 또는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산성이다.
송진포왜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개요 | |
이름 | 송진포왜성 |
로마자 표기 | Songjinpowaeeseong |
위치 |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산6-3 |
종류 | 비지정문화재 |
상세 정보 | |
시대 | 조선 |
수량 | 420m |
소유 | 거제시 |
관리 | 거제시 |
추가 정보 | |
웹사이트 | 송진포왜성 성곽 표본 사진 |
2. 역사
1593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쌓은 왜성이다. 성의 둘레는 약 420m, 높이는 약 3m, 폭은 약 3.2m였다. 성의 모양이 떡시루와 같다고 하여 '''시루성'''(甑城|시루성jpn), 또는 삼태기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농바우''' 또는 '''농암산왜성'''(籠岩山倭城)이라고도 불렸다. 성 안에는 과거 누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터만 남아 있으며, 주변에서 기와 조각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2. 1. 축성 배경
1593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축성한 왜성이다. 성의 모양이 떡시루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시루성'''(甑城jpn) 또는 삼태기처럼 생겼다고 하여 '''농바우'''라고도 불렸으며, 이 때문에 '''농암산왜성'''(籠岩山)이라고도 했다.2. 2. 구조 및 특징
1593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장목만 동쪽에 축조한 왜성이다. (서쪽에는 장문포왜성이 있다.)[1] 성곽의 전체 둘레는 약 420m, 높이는 약 3m, 폭은 약 3.2m이다. 떡시루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시루성'''(甑城|시루성일본어), 또는 삼태기처럼 생겼다고 하여 '''농바우''' 또는 '''농암산왜성'''(籠岩山倭城)이라고도 불린다.성은 크게 해발 약 60m 정상부를 중심으로 한 동쪽 곡륜군(東曲輪群)과 서쪽 해발 약 90m 지점을 중심으로 한 서쪽 곡륜군(西曲輪群)으로 나뉜다.[1] 두 곡륜군 사이의 안부(鞍部)에는 현재 궁도장이 들어서 있으며, 궁도장 건설 시 동쪽 곡륜군의 일부가 진입로로 사용되면서 훼손되었으나 비교적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1]
'''동쪽 곡륜군'''은 3개의 곡륜으로 구성된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중심 곡륜은 동서 약 25m, 남북 약 40m 규모이며, 석축 높이는 약 3m이다. 출입구는 남쪽에 치우쳐 동서 양쪽에 있으며, 동쪽 출입구에는 계단과 함께 'L'자 형태의 작은 곡륜(소곡륜)이 덧대어 방어력을 높인 구조가 확인된다.[1]
'''서쪽 곡륜군'''은 동쪽보다 복잡한 구조를 가진 전형적인 왜성의 형태로, 높이나 구조, 군사적 측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릉 정상부의 곡륜과 산기슭의 곡륜,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하는 석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부 곡륜은 동서 약 10m, 남북 약 15m 규모이고, 잔존 석축 높이는 약 2m이다. 출입구는 남쪽과 서쪽에 있으며, 두 곳 모두 바깥쪽에 'L'자 형태의 석축이 둘러져 있다. 이 곡륜은 북서쪽으로 단을 이루며 해안가로 직접 연결되는 곡륜과 이어진다.[1]
성 내부에서는 과거 누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터만 남아있으며, 기와 조각들이 발견된다. 장목궁도장에서 약 100m 정도 올라간 정상부에는 약 165m2 넓이의 평지가 있어 지휘소 터로 추정된다. 지휘소 터 남쪽, 현재 산소가 있는 큰 바위 부근에서는 과거 기와와 사발 조각이 발견되어 망루 터로 추정되었으나, 현재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해안과 접하는 곳에서도 기와 조각들이 발견되며, 성벽 축조에 사용된 석재를 가공한 흔적이 있는 바위들도 곳곳에서 확인된다.[1]
한편, 장목항 좌우의 왜성 사이에 약 500m 거리의 다리를 놓고 건너다녔다는 구전이 있으며, 19세기 말까지 삼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한 1970년대 농장 개설 당시 발견된 감나무의 재배 형태(배상형, 변칙주간형)를 통해 과거 일본군이 거주했을 가능성을 추정하기도 한다. 이는 당시 한국에서는 자연형으로 감나무를 키우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2. 3. 구전 및 전설
송진포왜성은 떡시루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시루성'''(甑城|일본어}) 혹은 삼태기처럼 생겼다고 하여 '''농바우'''라 하며, 이 성을 농암산왜성(籠岩山)이라고도 불렀다.구전에 따르면 장목항의 좌우에 왜성을 설치하고 약 500m 거리에 다리를 놓고 건너다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또한, 지금은 사라졌지만 100여 년 전에는 삼나무(수기목)와 소나무가 울창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1593년에 일본인들이 심은 삼나무가 1890년대까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다소 과장된 이야기일 가능성도 있다.
1970년에 해동의원 장종석 씨가 농암산(籠岩山)을 구입하여 농장을 개설했는데, 당시 농장의 감나무 대부분이 일본식 재배 형태인 배상형이나 변칙주간형이었던 점을 들어 일본군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당시 한국에서는 감나무를 주로 자연형으로 키웠기 때문이다.
장목궁도장에서 100m 정도 올라간 정상에는 약 50평 정도 넓이의 평지가 있는데, 이곳은 지휘소가 있던 자리로 추정된다. 여기서 남쪽으로 조금 가면 큰 바위 몇 개가 있는 곳이 나온다. 현재는 이름 모를 산소가 자리 잡고 있지만, 1973년 답사 기록에 따르면 이곳에서 기와와 사발 조각 등이 발견되어 망루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바다 쪽으로 계속 가다 보면 바다와 접하는 곳에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 4. 1970년대 이후
1970년 송진포왜성 터(농마우, 籠岩山)는 해동의원 장종석 씨가 사들여 농장으로 개발하였다. 당시 농장에 심겨 있던 감나무 대부분이 일본식 정원수 형태인 배상형이나 변칙주간형이었는데, 이는 당시 한국에서 감나무를 자연형으로 키우던 방식과 달라 과거 일본군이 주둔하며 심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장목궁도장에서 100m가량 올라가면 정상 부근에 약 50평 넓이의 평탄한 지형이 나타나는데, 이곳은 당시 지휘소 터로 추정된다. 여기서 남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큰 바위 몇 개가 있는 장소가 나온다. 현재는 이름 없는 산소가 자리 잡고 있지만, 1973년 답사 기록에 따르면 이곳에서 기와와 사기그릇 조각 등이 발견되어 망루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이러한 유적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바다와 맞닿는 성곽 주변에서도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3. 구조 및 특징 (상세)
장목만 동쪽에 위치하며, 서쪽의 장문포왜성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축조한 왜성이다.[1]
성은 해발 약 60m 정상부를 중심으로 하는 동곡륜군(東曲輪群)과 서쪽 약 90m 지점을 중심으로 하는 서곡륜군(西曲輪群)으로 나뉜다.[1] 현재 두 곡륜군 사이의 안부(鞍部)에는 궁도장이 들어서 있다.[1] 서곡륜군은 동곡륜군보다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진 전형적인 왜성의 형태를 띠며, 군사적으로 중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1] 각 곡륜군의 상세한 구조와 특징은 하위 문단에서 설명한다.
3. 1. 동아문화연구원 해설
장목만 양쪽에는 임진왜란 시 일본군의 군사용으로 두 개의 성이 축조되었다. 오른쪽은 송진포왜성이고 왼쪽은 장문포왜성이다.[1]송진포왜성은 해발 약 60m 정상부를 중심으로 하는 동곡륜군(東曲輪群)과 서쪽 약 90m 지점을 중심으로 하는 서곡륜군(西曲輪群)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두 곡륜군 사이를 연결하는 안부(鞍部, 능선이나 산맥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에는 궁도장이 들어서 있다. 궁도장이 설치되면서 동곡륜군의 개곡륜(開谷輪, 골짜기를 감싸며 쌓은 성벽) 일부가 진입로로 이용되어 훼손되었으나,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다.[1]
동곡륜군은 3개의 곡륜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심이 되는 가장 높은 곳의 곡륜은 동서 약 25m, 남북 약 40m 규모이며, 석축 높이는 약 3m이다. 출입구는 남쪽으로 치우친 동서 양쪽 두 곳에 설치되어 있으며, 동쪽 출입구에는 계단이 있다. 또한 동쪽 출입구에는 'L'자 형태의 곡륜이 설치되어 있다.[1]
서곡륜군은 동곡륜군에 비해 복잡하게 축성된 전형적인 왜성의 형태를 띤다. 높이나 구조, 군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서곡륜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곡륜군은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하는 곡륜과 산기슭(山麓)을 중심으로 하는 곡륜, 그리고 이 두 곡륜을 연결하는 석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부 중심 곡륜은 동서 약 10m, 남북 약 15m 규모이고, 석축의 남아있는 높이는 약 2m이다. 출입구는 남쪽과 서쪽 두 곳에 있으며, 두 곳 모두 바깥쪽에 'L'자 형태의 석축을 두르고 있다. 이 곡륜에서 북서쪽으로 단을 이루며 해안가로 바로 이어지는 곡륜과 연결된다.[1]
해안가 곳곳에서는 성벽에 사용된 석재를 가공한 흔적이 있는 바위들이 확인된다.[1]
3. 2. 동곡륜군
송진포왜성은 해발 약 60m 정상부를 중심으로 하는 동곡륜군(東曲輪群)과 서쪽 약 90m 지점을 중심으로 하는 서곡륜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동곡륜군과 서곡륜군 사이를 연결하는 안부(鞍部)에는 궁도장이 들어서 있다. 궁도장이 설치되면서 동곡륜군의 개곡륜을 진입로로 이용하여 일부가 훼손되었으나 비교적 양호한 상태이다.[1]동곡륜군은 3개의 곡륜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심이 되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곡륜은 동서 약 25m, 남북 약 40m의 규모이며, 석축 높이는 약 3m이다. 출입구는 남쪽으로 치우친 곳의 동쪽과 서쪽 두 곳에 설치되어 있다. 동쪽 출입구에는 계단이 있으며, L자 형태의 곡륜이 설치되어 있다.[1]
3. 3. 서곡륜군
서곡륜군은 동곡륜군에 비해 복잡하게 축성된 전형적인 왜성의 형태를 띠고 있다.[1] 높이나 구조적인 측면, 군사적인 측면에서 서곡륜이 중심적인 곡륜으로 기능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1] 서곡륜군은 구릉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하는 곡륜과 산록을 중심으로 하는 곡륜, 그리고 이 두 곡륜을 연결하는 석축으로 이루어져 있다.[1]정상부를 중심으로 하는 곡륜은 동서 약 10m, 남북 약 15m의 규모이고 석축의 잔존 높이는 약 2m이다.[1] 출입구는 남쪽과 서쪽 두 곳에 설치되어 있으며, 두 곳 모두 바깥쪽에 'L'자 모양의 석축을 두르고 있다.[1] 이 곡륜에서 북서쪽으로 단을 이루며 해안가에 바로 접하는 곡륜으로 연결된다.[1]
3. 4. 해안가 흔적
해안가에는 성벽에 사용한 석재를 가공한 흔적이 있는 바위들이 곳곳에서 확인된다.[1]4. 문화재 지정 및 관리 현황
5. 관광 및 주변 정보
장목궁도장에서 100m 정도 올라가면 정상 부근에 약 50평 넓이의 평지가 나타나는데, 이곳은 과거 일본군의 지휘소가 있던 자리로 추정된다. 이 평지에서 남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큰 바위 몇 개가 있는 장소가 나온다. 1973년 답사 기록에 따르면 이곳에서 기와와 사발 조각 등이 발견되어 망루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었으나, 현재는 명확한 흔적을 찾기 어렵다. 바다와 접하는 성벽 아래쪽에는 지금도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송진포왜성 주변에는 다음과 같은 시설 및 장소가 있다.
시설/장소 | 위치 | 비고 |
---|---|---|
장목진 객사 | 장목중학교 옆 | |
관포 위판장 | 이웃 관포마을 | |
활어 판매센터 | 바닷가 | 대규모 시설 |
송진골프장 | 인근 | |
예술촌 | 송진초등학교 내 |
6. 찾아가는 길
거제시 장목면 송진포리 산36-3번지에 위치한다. 장목궁도장에서 100m 정도 올라가면 송진포왜성이 있다. 장목해양연구소 시험선 뒤쪽으로 보이는 산이 시루성(송진포왜성)이며, 바다 동쪽에 있는 장목해양연구소 주변에는 장문포왜성이 있다.
참조
[1]
간행물
국립문화재연구소 인용
[2]
보고서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 1185번지 일원 내 梁山 架山里遺蹟 Ⅴ. 고찰
https://www.cha.go.k[...]
국립문화재연구소
2015-09-01
[2]
보고서
대한주택공사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양산석산지구 文化遺蹟 地表調査 報告書
http://www.feaci.or.[...]
대한주택공사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2006-12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