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계 아르헨티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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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계 아르헨티나인은 아르헨티나에 거주하거나 아르헨티나 국적을 가진 스페인 혈통의 사람들을 지칭한다. 16세기에 시작된 스페인의 아르헨티나 정착은 아르헨티나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독립 이후에도 스페인 이민은 지속되었다. 1857년부터 1960년까지 약 220만 명의 스페인인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했으며, 특히 갈리시아 출신이 많다. 201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94,030명의 스페인 출생자가 아르헨티나에 거주하고 있다. 스페인 문화는 아르헨티나 문화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양국은 특권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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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계 아르헨티나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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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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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착어 명칭 | (스페인어) (갈리시아어) (바스크어) |
인구 | 68,748명 (2023년 출생 기준) 약 20,000,000명 (2015년 혈통 기준, 아르헨티나 인구의 43.4%) |
거주 지역 | 아르헨티나 전역 (팜파스, 누에보 쿠요, 연안 지역, 북서부, 파타고니아) |
사용 언어 | 주요 언어: 스페인어 소수 언어: 갈리시아어, 카탈루냐어, 라디노어, 바스크어, 아스투리아스-레온어 |
종교 | 주요 종교: 로마 가톨릭교 소수 종교: 무종교 |
관련 민족 | 스페인인, 갈리시아인, 카스티야인, 카탈루냐인, 아스투리아스인, 칸타브리아인, 아라곤인, 바스크인, 세파르드 유대인 |
2. 역사
스페인과 아르헨티나의 관계는 16세기 스페인 정착 시기부터 시작되어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많은 크리오요인 스페인 사람들이 아르헨티나 지역에 거주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비스페인계와 결혼하기도 했다. 스페인은 1580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영구적인 식민지를 건설했지만, 초기 정착은 주로 페루에서 육로를 통해 이루어졌다. 1776년 리오 데 라 플라타 부왕령이 설립되면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번성하는 항구가 되었고, 아르헨티나는 남아메리카에서 스페인 제국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아르헨티나 독립 운동은 이러한 관계를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1810년 5월 25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독립 운동이 시작되었고, 1816년 7월 9일 산 미겔 데 투쿠만에서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독립 이후, 중앙주의자와 연방주의자 간의 갈등이 벌어졌다. 독립 이전에는 스페인 제국의 지배에 반대하고 독립을 원했던 스페인인들은 아르헨티나인으로 불렸고, 독립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스페인인으로 식별되었다. 그러나 독립 후 몇 세대가 지나고, 특히 최근의 이민 이후, 대부분의 아르헨티나인들은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들을 순수한 아르헨티나인으로 여기게 되었다.
2. 1. 식민지 시대
스페인과 아르헨티나의 상호 작용은 16세기 스페인 정착 시기부터 시작되어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많은 크리오요인 스페인 사람들이 아르헨티나 지역에 거주했으며, 일부는 비스페인계와 결혼했다. 스페인은 1580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영구적인 식민지를 건설했지만, 초기 정착은 주로 페루에서 육로를 통해 이루어졌다. 1776년 스페인은 리오 데 라 플라타 부왕령을 설립하여 아르헨티나를 광대한 제국에 더욱 통합시켰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번성하는 항구가 되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는 남아메리카에서 스페인 제국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2. 2. 독립 운동과 갈등
아르헨티나의 독립 운동은 이전의 아르헨티나-스페인 관계를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스페인으로부터의 아르헨티나 독립 운동은 1810년 5월 25일 강력한 도시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시작되었으며, 새로운 국가는 1816년 7월 9일 산 미겔 데 투쿠만에서 스페인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1] 스페인의 패배 이후, 중앙주의자와 연방주의자 그룹은 아르헨티나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오랜 갈등을 벌였다.[1] 독립 이전에는 스페인 제국의 지배에 반대하고 독립을 원했던 아르헨티나의 스페인인들은 아르헨티나인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독립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스페인인으로 식별되었다.[1] 그러나 독립 후 몇 세대가 지나고, 특히 최근의 이민 이후, 대부분의 아르헨티나인들은 새롭게 발전하는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들을 순수한 아르헨티나인으로 보기 시작했다.[1]2. 3. 스페인 이민

식민지 시대 이후(1832-1950) 아르헨티나로의 스페인 이민은 아르헨티나로의 유럽 이민 대이동 기간 동안 스페인 전역에서 더 많이 유입되었다. 1857년부터 1960년까지 220만 명의 스페인인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으며, 대부분 스페인 북부의 갈리시아, 바스크 지방, 칸타브리아, 카탈루냐 출신이었고, 스페인 남부의 에스트레마두라 출신 이민자도 소수 있었다.
갈리시아인은 아르헨티나의 스페인 식민지 시대 이민자 인구의 70%를 차지한다. 갈리시아인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거주하는 도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이다. 갈리시아 출신 이민이 두드러져 오늘날 스페인 내 출신지에 관계없이 모든 스페인인은 아르헨티나에서 (갈리시아인)라고 불린다.[3] 아르헨티나에서 ''갈레고스''에 대한 고정관념은 그들이 둔하고, 완고하며, 구두쇠라는 것이다.[4]
아르헨티나 인구의 약 10~15%는 바스크인의 후손이며, 스페인과 프랑스 모두에 해당하며, 바스크 아르헨티나인으로 묘사된다. 그들은 아르헨티나 대부분의 대도시에서 여러 바스크 문화 센터에 모여 있다. 바스크 출신 아르헨티나인들 사이에서 흔한 관행은 자신을 "프랑스-바스크인"으로 식별하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 문화가 일반적인 아르헨티나인들 사이에서 스페인 문화보다 더 "세련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2013년에는 스페인에서 태어난 스페인 시민권자 92,453명이 아르헨티나에 거주하고 있었고,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스페인 시민권자 288,494명이 있었다.[5]
스페인으로 이주한 아르헨티나인 중 상당수는 귀환권에 따라 유럽 시민권을 쉽게 취득할 수 있는 스페인인 또는 이탈리아인의 후손이다.
예일 대학교 보고서에 따르면 1857년에서 1940년 사이에 2,080,000명의 스페인 이민자가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 이 기간 동안 스페인은 전체 이민자의 31.4%를 차지했으며, 이탈리아는 44.9%를 차지했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시대 전반에 걸쳐 발생한 이전의 스페인 이민으로 인해 약 2천만 명의 아르헨티나인이 어느 정도 스페인 혈통을 가지고 있으며,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흔한 성씨 20개는 모두 스페인에서 유래되었다.[8]
1857년부터 1976년까지 스페인에서 아르헨티나로의 순이동은 다음과 같다.
연도 | 스페인 이민자 |
---|---|
1857–1860 | 1,819 |
1861–1870 | 15,567 |
1871–1880 | 24,706 |
1881–1890 | 134,492 |
1891–1900 | 73,551 |
1901–1910 | 488,174 |
1911–1920 | 181,478 |
1921–1930 | 232,637 |
1931–1940 | 11,286 |
1941–1950 | 110,899 |
1951–1960 | 98,801 |
1961–1970 | 9,514 |
1971–1976 | -2,784 |
총계 | 1,380,140 |
2010년 아르헨티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스페인에서 태어난 사람은 94,030명으로 기록되었다.[9] 다음 표는 23개 주와 수도의 분포를 보여준다.
3. 스페인계 아르헨티나인의 분포
순위 주 스페인 출생자 % 1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48,019 51.06 % 2 부에노스아이레스 (CABA) 26,282 28.00 % 3 멘도사 주 4,130 4.39 % 4 산타페 주 3,292 3.50 % 5 코르도바 주 3,256 3.46 % 6 리오네그로 주 1,247 1.32 % 7 산후안 주 1,187 1.26 % 8 추부트 주 1,052 1.12 % 9 투쿠만 주 736 0.78 % 10 살타 주 732 0.77 % 11 산타크루스 주 695 0.74 % 12 네우켄 주 555 0.59 % 13 엔트레리오스 주 437 0.46 % 14 미시오네스 주 327 0.35 % 15 차코 주 326 0.34 % 16 산루이스 주 304 0.32 % 17 라팜파 주 283 0.30 % 18 산티아고델에스테로 주 249 0.26 % 19 후후이 주 232 0.24 % 20 티에라델푸에고 주 227 0.24 % 21 코리엔테스 주 204 0.21 % 22 카타마르카 주 97 0.10 % 23 라리오하 주 94 0.10 % 24 포르모사 주 71 0.07 % 총계 아르헨티나 94,030 100 %
4. 현대 아르헨티나 문화에 미친 영향
오늘날 아르헨티나 문화는 유럽 문제와 유럽 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미국의 문화나 호주 문화가 영국 문화와 다른 것처럼 스페인 문화와는 상당히 다르다.
4. 1. 양국 관계
스페인 문화는 현대 아르헨티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양국 관계는 항상 특권적이고 전략적인 성격을 띠어왔다. 한편으로는 잠재적이고 전반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심각한 불일치 시기를 겪기도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스페인 마드리드 외교는 아르헨티나와 그 주변 국가에 대한 흔들린 명성과 영향력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는 아메리카 대륙 발견 500주년 기념 행사 동안 이루어졌다.[6]
그러나 양국 관계의 다소간의 "온기"에도 불구하고, 이전 수준의 신뢰와 접촉은 관찰되지 않는다. 문화 협력 시도는 두 가지 중요한 장애물에 직면한다. 첫째, 스페인은 아르헨티나 경제에 투자해야 할 만큼 충분한 양의 가용 자금이 없고, 둘째, 아르헨티나인들이 스페인과 관련하여 느끼는 "배신 증후군"은 쉽게 극복될 것 같지 않다.[6]
참조
[1]
웹사이트
Datos sociodemográficos por país de nacimiento
https://estadisticas[...]
2023-11-15
[2]
웹사이트
Cuáles son los 200 apellidos más populares en la Argentina
http://www.clarin.co[...]
2015-11-12
[3]
서적
Diccionario de la lengua española
https://dle.rae.es/g[...]
RAE-ASALE
2023
[4]
뉴스
El estereotipo "gallego", un invento bien piola y argentino
https://www.clarin.c[...]
Clarín
2009-02-04
[5]
웹사이트
http://www.ine.es/ja[...]
[6]
웹사이트
Argentina, en el mundo: Macri muestra en España un proyecto serio para la recuperación de su país
https://elpais.com/e[...]
2017
[7]
웹사이트
90.01.06: South American Immigration: Argentina
http://www.yale.edu/[...]
[8]
웹사이트
Cuáles son los 200 apellidos más populares en la Argentina
http://www.clarin.co[...]
2015-11-12
[9]
웹사이트
2010 Census - Total population born abroad by place of birth, according to sex and age group (see by province)
http://www.indec.g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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