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레리오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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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엔트레리오스 주는 아르헨티나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위치하며, 파라나 강과 우루과이 강 사이의 평평한 지형을 특징으로 한다. 엘 팔마르 국립공원과 프레델타 국립공원을 비롯한 국립공원과 온천이 있으며, 다양한 기후대를 보인다. 역사는 차루아족과 차나족의 거주에서 시작하여 스페인 식민지 시대를 거쳐 아르헨티나 독립 전쟁, 엔트레리오스 공화국을 겪으며, 후스토 호세 데 우르키사의 통치하에 아르헨티나 연방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 경제는 농업이 중심이며, 쌀, 콩, 밀, 감귤 등을 생산하고, 축산업, 제조업, 임업도 발달했다. 17개의 도(departamentos)로 나뉘어 행정 구역을 구성하며, 주지사가 이끄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로 구성된 정부 체제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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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레리오스주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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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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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 | "Federación, libertad y fuerza" (연방, 자유,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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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정보 | |
공식 명칭 | 엔트레 리오스 주 (Provincia de Entre Ríos) |
국가 | 아르헨티나 |
행정 구역 | 17개 데파르트멘토 |
자치체 및 정부 위원회 | 266개 |
주도 | 파라나 |
지도자 정당 | PRO |
주지사 | 로헬리오 프리지에리오 |
부주지사 | 알리시아 알루아니 (PRO) |
입법부 | 상원 (17석), 하원 (34석) |
국가 하원 의원 | 9석 |
국가 상원 의원 | 알프레도 데 앙헬리 (PRO), 에드가르도 쿠에이데르 (FDT), 스텔라 마리스 엘리사 올라야 데 모레이라 (UCR) |
면적 | |
총 면적 | 78,781 제곱킬로미터 |
순위 | 17위 |
인구 통계 | |
총 인구 (2022년) | 1,426,426명 |
인구 순위 | 8위 |
인구 밀도 | 자동 계산 |
인구 통계 명칭 | entrerriano (엔트레리아노) |
경제 | |
GDP (2018년) | 2,920억 페소 (미화 112억 달러) |
시간대 | |
시간대 | ART |
UTC 오프셋 | -3 |
기타 정보 | |
ISO 3166-2 | AR-E |
HDI (2021년) | 0.836 매우 높음 (20위) |
웹사이트 | 엔트레 리오스 주 공식 웹사이트 |
2. 지리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일부인 엔트레리오스 주는 거의 평평하며, 높이가 약 100미터인 언덕이 있다. "로마다" 또는 "쿠치야"라고 불리는 두 개의 주요 낮은 언덕 시스템이 있는데, 서쪽의 쿠치야 데 몬티엘과 동쪽의 쿠치야 그란데로, 과레과이 강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
엔트레리오스(Entre Ríos)는 스페인어로 '강 사이'라는 뜻이다. 이름 그대로 북쪽은 과이키라로 강, 서쪽은 파라나 강, 동쪽은 우루과이 강에 둘러싸여 있다.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는 배로만 갈 수 있었다. 팜파에 위치해 평탄한 초원이 펼쳐져 있으며, 강 건너 우루과이처럼 온천도 많다.
국립공원과 예수회 선교지 유적이 남아 있다.
2. 1. 수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일부로서, 엔트레리오스 주는 거의 100미터 높이의 언덕과 함께 완전히 평평하다. 낮은 구릉지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서쪽의 쿠칠라 데 몬티엘(Cuchilla de Montiel)과 동쪽의 쿠칠라 그란데(Cuchilla Grande)이다. 엔트레리오스 주의 이름은 "강 사이"를 의미한다. 서쪽과 남쪽으로는 파라나 강과 삼각주, 동쪽으로는 우루과이 강과 모코레타 강, 북쪽으로는 과이키라로 강이 있다.엘 팔마르 국립공원과 프레델타 국립공원 두 곳의 국립공원이 엔트레리오스 주에 있다. 우루과이 강 유역을 따라 페데라시온, 빌라 엘리사, 콜론 등의 도시에도 온천이 있다.
2. 2. 국립공원 및 온천
이 주에는 엘 팔마르 국립공원과 프레델타 국립공원 두 곳의 국립공원이 있다. 또한 페데라시온, 빌라 엘리사, 콜론과 같은 도시들의 우루과이 강 유역을 따라 여러 온천이 있다.3. 기후
이 지방은 크게 두 개의 기후 지역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습하고 온화한 기후로, 중부와 남부 대부분을 차지한다. 평균 기온은 겨울철 10°C에서 여름철 26°C 사이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1000mm이다.[9] 두 번째는 아열대 기후로, 겨울철 13°C에서 여름철 27°C까지 기온이 나타난다. 겨울은 더 짧고 강수량은 더 많아 연평균 1300mm이다.[9]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엔트레리오스 주는 습윤 아열대 기후(''Cfa'')로 분류된다.[8] 연평균 강수량은 1000mm 이상이다.[9]
1991년부터 2020년까지 관측 자료를 보면, 여름철(12월~2월) 평균 최고 기온은 31°C, 최저 기온은 18°C이며, 평균 기온은 24°C이다. 겨울철(6월~8월) 평균 최고 기온은 18°C, 최저 기온은 7°C이며, 평균 기온은 13°C이다. 같은 기간 평균 계절별 강수량은 여름(12월~2월) 371mm, 봄(3월~5월) 348mm, 겨울(6월~8월) 148mm, 가을(9월~11월) 302mm이다.[10]
주 내에서도 기후 차이가 있어, 북쪽 지역이 중부 및 남쪽 지역보다 더 따뜻하다. 북쪽 지역은 남쪽 지역보다 연간 강수량이 더 많지만, 겨울철에는 상대적으로 건조하다. 반면 남쪽 지역은 특히 겨울철(6월~8월)에 강수량이 더 많다. 주의 북쪽, 코리엔테스주 방향에서는 평균 기온이 겨울철 13°C에서 여름철 27°C까지 나타나며, 연평균 강수량은 1300mm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주 방향으로 주의 남쪽 지역은 기후가 약간 더 온화하여, 평균 기온이 겨울철 10°C에서 여름철 26°C 사이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1000mm이고 겨울철 강수량 변동이 적다.[9]
4. 역사
엔트레리오스 주의 역사는 원주민 시대, 스페인 식민 시대, 독립 전쟁과 엔트레리오스 공화국 시기, 그리고 우르키사를 중심으로 한 아르헨티나 연방 시대로 나눌 수 있다.
1520년 로드리게스 세라노가 우루과이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스페인인들이 이 지역에 처음 들어왔다. 16세기 말 라파스 지역에 최초의 스페인 정착지가 세워졌고, 에르난다리아스와 후안 데 가라이 등의 탐험가들이 이 지역을 탐험했다. 17세기 말에는 산타페주에서 온 식민지 개척자들이 파라나 강가에 정착하면서 노고야, 빅토리아, 과레과이, 과레과이추, 콘셉시온델우루과이, 콩코르디아 등의 마을들이 생겨났다. 1783년 토마스 데 로카모라는 이 지역을 탐험하고 여러 마을에 공식 지위를 부여하며, 이 지역을 "엔트레리오스"라고 처음 불렀다.[1]
5월 혁명 이후, 엔트레리오스는 아르티가스의 연방 동맹에 가담했다. 1820년 프란시스코 라미레스는 엔트레리오스 공화국을 선언했지만, 1821년 그의 암살로 공화국은 막을 내렸다.[1]
1853년 우르키사는 아르헨티나 연방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파라나는 수도가 되었다.[1] 우르키사는 이민을 장려하여 많은 유럽인들이 엔트레리오스에 정착했다. 1903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주민의 약 36%가 이민자였다.[1]
4. 1. 원주민 시대

현재 엔트레리오스주 지역의 첫 거주민은 차루아족과 차나족이었다. 스페인인들은 1520년 로드리게스 세라노가 태평양을 찾아 우루과이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 지역에 들어왔다.[1]
최초의 스페인 영구 정착지는 16세기 말 현재의 라파스 지역에 세워졌다.[1] 아순시온 총독을 거쳐 부에노스아이레스 총독이었던 에르난다리아스는 엔트레리오스 미개척지를 탐험하는 원정을 지휘했다.[1] 후안 데 가라이는 산타페를 건설한 후 이 지역을 탐험하여 'la otra banda'("다른 둑")라고 불렀다.[1]
그러나 이 지역은 17세기 말에 인접한 산타페주에서 온 식민지 개척자들이 파라나 강가의 바하다에 정착하기 전까지, 즉 현재 주도인 곳까지 완전히 원주민의 거주지였고 유럽 민족의 거주지는 아니었다.[1] 동시에 현재 노고야, 빅토리아, 과레과이, 과레과이추, 콘셉시온델우루과이, 콩코르디아로 알려진 마을들이 나타났다.[1]
토마스 데 로카모라는 1783년 브라질로부터의 포르투갈 침략 위협 속에서 이 지역을 더욱 탐험했고, 위에 언급된 많은 마을에 공식 지위를 부여했다. 그는 또한 이 지역을 ''Entre Ríos''라고 처음 언급한 사람이었다.[1] 이 단계에서 유럽인 정착은 미미했지만, 5월 혁명 동안 파라나 해안 도시의 소수의 식민지 개척자들은 마누엘 벨그라노와 그의 군대를 지지했다.[1]
4. 2. 스페인 식민 시대
현재 엔트레리오스주 지역의 첫 거주민은 차루아족과 차나족이었다. 스페인인들은 1520년 로드리게스 세라노가 태평양을 찾아 우루과이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 지역에 들어왔다.[1]
최초의 스페인 영구 정착지는 16세기 말 현재의 라 파스 데파트먼트에 세워졌다.[1] 아순시온 총독을 거쳐 부에노스아이레스 총독이었던 에르난다리아스는 엔트레리오스 미개척지를 탐험하는 원정을 지휘했다.[1] 후안 데 가라이는 산타페를 건설한 후 이 지역을 탐험하여 'la otra banda'("다른 둑")라고 불렀다.[1]
그러나 이 지역은 17세기 말에 인접한 산타페주에서 온 식민지 개척자들이 파라나 강가의 바하다에 정착하기 전까지, 즉 현재 주도인 곳까지 완전히 원주민의 거주지였고 유럽 민족의 거주지는 아니었다.[1] 동시에 현재 노고야, 빅토리아, 과레과이, 과레과이추, 콘셉시온 델 우루과이 및 콩코르디아로 알려진 마을들이 나타났다.[1]
토마스 데 로카모라는 1783년 브라질로부터의 포르투갈 침략 위협 속에서 이 지역을 더욱 탐험했고, 위에 언급된 많은 마을에 공식 지위를 부여했다.[1] 그는 또한 이 지역을 ''Entre Ríos''라고 처음 언급한 사람이었다.[1] 이 단계에서 유럽인 정착은 미미했지만, 5월 혁명 동안 파라나 해안 도시의 소수의 식민지 개척자들은 마누엘 벨그라노와 그의 군대를 지지했다.[1]
1820년 9월 29일, 지도자(''카우디요'') 프란시스코 라미레스는 이 지역을 자치체인 엔트레리오스 공화국으로 선언했다.[1] 이것은 다음 해 7월 10일 그의 암살로 끝났다.[1]

185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주를 제외한 모든 주의 회의에서 파라나가 아르헨티나 연방의 수도로 선출되었고, 엔트레리오스 주지사이자 지도자 (''카우디요'') 우르키사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1] 주의 수도는 콘셉시온 델 우루과이로 옮겨졌다.[1] 나중에 우르키사는 1859년 세페다 전투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승리한 후, 1861년 파본 전투에서 그의 군대를 철수하게 하여 그의 라이벌 바르톨로메 미트레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대통령이 되도록 허용했다.[1] 당시 그는 1860년부터 1864년까지 주지사로서 세 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있었고 자발적인 중단 후 1886년에 재선되었지만, 1870년에 그의 지지자였던 리카르도 로페스 호르단이 그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아 암살을 명령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총 16년간의 통치를 마치기 전에 암살당했다.[1]
우르키사는 "식민지 계약"을 통해 아르헨티나 이민을 장려하여 유럽(주로 볼가 독일인, 러시아인 (러시아 유대인 및 폴란드인 포함), 이탈리아인, 스위스인 및 프랑스인) 정착민과 함께 많은 농업 식민지를 건설했다.[1] 1903년 인구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주의 425,373명의 주민 중 153,067명이 이민자였다.[1]
4. 3. 로카모라의 탐험과 엔트레리오스 명명
로드리게스 세라노가 태평양을 찾아 우루과이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1520년에 스페인인들이 이 지역에 들어왔다.[1]최초의 스페인 영구 정착지는 16세기 말 현재의 라 파스 데파트먼트에 세워졌다.[1] 아순시온 총독을 거쳐 부에노스아이레스 총독이었던 에르난다리아스는 엔트레리오스 미개척지를 탐험하는 원정을 지휘했다.[1] 후안 데 가라이는 산타페를 건설한 후 이 지역을 탐험하여 'la otra banda'("다른 둑")라고 불렀다.[1]
그러나 이 지역은 17세기 말에 인접한 산타페주에서 온 식민지 개척자들이 파라나강가의 바하다(현재 주도)에 정착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원주민의 거주지였고 유럽 민족의 거주지는 아니었다.[1] 동시에 현재 노고야, 빅토리아, 과레과이, 과레과이추, 콘셉시온 델 우루과이 및 콩코르디아로 알려진 마을들이 나타났다.[1]
토마스 데 로카모라는 1783년 브라질로부터의 포르투갈 침략 위협 속에서 이 지역을 더욱 탐험했고, 위에 언급된 많은 마을에 공식 지위를 부여했다.[1] 그는 또한 이 지역을 ''Entre Ríos''라고 처음 언급한 사람이었다.[1] 이 시기에 유럽인 정착은 미미했지만, 5월 혁명 동안 파라나 해안 도시의 소수의 식민지 개척자들은 마누엘 벨그라노와 그의 군대를 지지했다.[1]
4. 4. 5월 혁명과 엔트레리오스 공화국
1520년 로드리게스 세라노가 태평양을 찾아 우루과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스페인인들이 현재 엔트레리오스 주 지역에 들어왔다. 1783년 토마스 데 로카모라는 이 지역을 탐험하고 여러 마을에 공식 지위를 부여했으며, 이 지역을 ''엔트레리오스''라고 처음 언급했다. 5월 혁명 동안 파라나 해안 도시의 소수의 식민지 개척자들은 마누엘 벨그라노와 그의 군대를 지지했다.1820년 9월 29일, 지도자(''카우디요'') 프란시스코 라미레스는 이 지역을 자치적인 엔트레리오스 공화국으로 선언했다.[1] 그러나 이는 1821년 7월 10일 그의 암살로 끝났다.[1]
4. 5. 우르키사와 아르헨티나 연방
1820년 9월 29일, 지도자(''카우디요'') 프란시스코 라미레스는 이 지역을 자치체인 엔트레리오스 공화국으로 선언했으나, 다음 해 7월 10일 그의 암살로 끝났다.[1]
1853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를 제외한 모든 주의 회의에서 파라나가 아르헨티나 연맹의 수도로 선출되었고, 엔트레리오스 주지사이자 지도자 ''(카우디요)'' 우르키사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1] 주의 수도는 콘셉시온 델 우루과이로 옮겨졌다.[1] 나중에 우르키사는 1859년 세페다 전투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승리한 후, 1861년 파본 전투에서 그의 군대를 철수하게 하여 그의 라이벌 바르톨로메 미트레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대통령이 되도록 허용했다.[1] 그는 1860년부터 1864년까지 주지사로서 세 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있었고 자발적인 중단 후 1886년에 재선되었지만, 1870년에 그의 지지자였던 리카르도 로페스 호르단이 그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아 암살을 명령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총 16년간의 통치를 마치기 전에 암살당했다.[1]
우르키사는 "식민지 계약"을 통해 아르헨티나 이민을 장려하여 유럽(주로 볼가 독일인, 러시아인 (러시아 유대인 및 폴란드인 포함), 이탈리아인, 스위스인 및 프랑스인) 정착민과 함께 많은 농업 식민지를 건설했다.[1] 1903년 인구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주의 425,373명의 주민 중 153,067명이 이민자였다.[1]
4. 6. 이민과 농업 식민지
오늘날의 엔트레리오스 주에 처음으로 정착한 것은 차루아족과 과라니족이었으며, 각각 다른 지역에서 생활했다. 로드리게스 세라노가 태평양을 향해 우루과이 강을 거슬러 올라간 1520년에 스페인인이 이 땅에 발을 들였다.
스페인인에 의한 최초의 항구적 정착지는 16세기 말, 오늘날의 라파스 현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아순시온, 다음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지사를 역임한 에르난다리아스는 엔트레리오스의 미개척지를 탐사했다. 후안 데 가라이는 산타페를 건설한 후 이 지역을 탐험하여 라 오트라 반다(강 건너편)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17세기 말, 인접한 산타페 주에서 식민 단체가 오늘의 주도인 바하다 델 파라나에 정착하기 전까지, 이 지역은 예외 없이 원주민의 손에 있었고 유럽인에게 정착되지 않은 채였다. 또한 이 시기에 현재의 노고야, 빅토리아, 과레과이, 과레과이추, 콘셉시온 델 우루과이, 콘코르디아 등의 도시가 건설되었다.
브라질의 포르투갈 군의 침공 위협으로 인해 토마스 데 로카모라가 1783년에 이 지역을 더 탐험하여 앞서 언급한 도시의 많은 곳에 공적 지위를 부여했다. 그는 처음으로 이 지역을 엔트레리오스라고 불렀다. 이 당시 유럽인 정착지의 규모는 미미했지만, 5월 혁명 동안 파라나 연안에 있는 도시에 거주하는 소수의 정착민이 파라과이로 진군하는 마누엘 벨그라노의 군대를 지원했다.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전쟁에서 엔트레리오스 주는 아르티가스의 연방 동맹에 가담했다. 연방 동맹에 속했던 엔트레리오스 주의 프란시스코 라미레스 장군은 통령인 아르티가스 장군이 포르투갈에 패배하여 파라과이로 망명한 후에도 연방 동맹의 장군으로서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싸워 승리했으므로, 1820년 9월 29일부터 1년 후인 7월 10일에 암살될 때까지 현재의 엔트레리오스 주와 코리엔테스 주, 미시오네스 주를 합쳐 엔트레리오스 공화국을 수립했다.
1853년에 열린 부에노스아이레스 외 전 주의 모임에서 파라나는 아르헨티나 연합의 수도로 선출되었고, 엔트레리오스 지사 우르키자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주도는 콘셉시온 델 우루과이로 옮겨졌다. 후에 우르키자는 세페다 전투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측에 승리했지만 파본 전투에서 자신의 병사들의 후퇴를 허용했고, 그 결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측의 바르톨로메 미트레가 대통령에 취임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는 16년의 임기 후 1870년에 암살되었다. 그의 지지자였던 리카르도 로페스 호르단이 그에 대한 신뢰를 잃고 암살을 명령했다고도 한다.
우르키자는 "식민 계약"으로 유럽인(주로 볼가 독일인, 러시아인(러시아령 내 유대인이나 폴란드인 포함), 이탈리아인, 스위스인, 프랑스인)을 이용하여 많은 경작 정착지를 건설하고 이민을 모았다. 1903년의 인구 조사에서는 이 지역의 425,373명의 주민 중 153,067명이 이민이었다.
5. 경제
엔트레리오스 주의 경제는 아르헨티나에서 여섯 번째로 큰 규모이다. 2006년 생산량은 77.1억달러로 추정되었으며, 1인당 국민 소득은 6710USD였다.(이는 전국 평균보다 약 4분의 1 적은 수준)[5] 2013년 생산량은 638.14억아르헨티나 페소 (약 116.88억달러)로 추정되었으며, 1인당 국민 소득은 48327ARS (약 8851USD)였다.[6][7] 이는 2013년 아르헨티나의 평균 1인당 GDP인 69678ARS (약 12762USD)보다 21% 낮은 수준이다.[6][7]
농업과 제조업은 주 경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각각 생산량의 약 15%를 담당한다. 제조업은 주로 농업과 관련된 식품 및 음료 산업, 밀가루 및 쌀 제분소 등이 발달해 있으며, 이 외에도 목재, 화학, 야금, 기계 산업 등이 있다.[5]
5. 1. 농업
엔트레리오스 주는 농업이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생산량의 약 15%를 담당한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전국 생산량의 60%), 콩, 밀, 옥수수, 감귤 등이 있다. 특히 감귤은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이 생산되며, 생산량의 16%가 주로 유럽으로 수출된다.[5]축산업은 소(450만 마리) 사육이 중심이며, 60,000 km2 면적에서 양 사육도 이루어지지만 그 비중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5] 유제품 산업은 현재 확장 추세에 있으며, 연간 약 25만 톤의 유제품을 생산한다.[5]
엔트레리오스 주는 닭과 계란의 전국 생산량에서 각각 37%와 25%를 차지하는 주요 생산지이다.[5] 또한, 꿀과 그 가공 제품 생산도 성장하고 있으며, 주로 수출용으로 생산된다.[5]
5. 2. 축산업 및 기타 산업
엔트레리오스주의 경제는 오랫동안 농업 중심적이었으며, 생산량의 약 15%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다음과 같다.[5]축산업은 소 (450만 마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60,000 km2 면적에서 양 생산도 이루어지지만 그 비중은 감소하고 있다. 유제품 산업은 연간 약 25만 톤의 유제품을 생산하며, 현재 확장세를 보이고 있다.[5]
닭과 계란의 전국 생산량에서 엔트레리오스주는 닭고기 37%와 달걀 25%를 차지한다. 또한, 주로 수출용인 꿀과 그 파생 제품 생산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5]
제조업은 엔트레리오스주에서 생산량의 15%를 차지한다. 주로 농업과 관련된 식품 및 음료 산업, 밀가루 및 쌀 제분소 등이 발달해 있으며, 이 외에도 목재, 화학, 야금, 기계 산업 등이 있다.[5]
6. 행정 구역
엔트레리오스 주는 17개의 도(departamentos)로 나뉜다. 각 도의 이름과 도청 소재지는 다음과 같다.
도 | 도청 소재지 |
---|---|
콜론 | 콜론 |
콩코르디아 | 콩코르디아 |
디아만테 | 디아만테 |
페데라시온 | 페데라시온 |
페데랄 | 페데랄 |
과레과이 | 과레과이 |
과레과이추 | 과레과이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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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세데펠리시아노 | 산호세데펠리시아노 |
산살바도르 | 산살바도르 |
탈라 | 로사리오델탈라 |
우루과이 | 콩셉시온델우루과이 |
빅토리아 | 빅토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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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치
주 정부는 일반적으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세 부서로 나뉜다. 행정부는 주지사가 이끌며, 주지사는 인기 투표로 선출되어 내각을 임명한다. 입법부는 하원과 상원으로 구성된 양원제 기구이며, 지방 법률을 제정하고 통과시키는 책임을 맡는다. 사법부는 대법원이 수장이다. 엔트레리오스 주 의회와 엔트레리오스 주 주지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각 문서를 참고할 수 있다.
엔트레리오스 주 헌법은 주의 공식적인 법률이다.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중요한 법 집행 기관은 아르헨티나 연방 경찰이지만, 엔트레리오스 주 경찰이 추가적인 업무를 수행한다.[1]
참조
[1]
웹사이트
Nuevos datos provisorios del Censo 2022: Argentina tiene 46.044.703 habitantes
https://www.infobae.[...]
Infobae
2023-02-03
[2]
웹사이트
PBG Entre Ríos 2018
https://www.entre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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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El mapa del desarrollo humano en Argent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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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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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https://www.entrerio[...]
2024-08
[5]
웹사이트
El déficit consolidado de las provincias rondará los $11.500 millones este año
http://www.iader.org[...]
Instituto Argentino para el Desarrollo de las Economías Regionales
2015-07-10
[6]
웹사이트
Estimación Producto Bruto Provincial de Entre Ríos
https://web.archive.[...]
Dirección General de Estadísticas y Censos de la Provincia de Entre Ríos
2015-07-11
[7]
웹사이트
The average exchange for 1 US dollar was 5.46 Argentine pesos in 2013 according to the World Bank
http://data.worldban[...]
2015-07-11
[8]
간행물
Present and future Köppen-Geiger climate classification maps at 1-km resolution
https://www.nature.c[...]
2018-10-30
[9]
웹사이트
La Provincia
https://www.entrerio[...]
Gobierno de Entre Ríos
2018-04-11
[10]
웹사이트
World Bank Climate Change Knowledge Portal
https://climateknowl[...]
2024-10-17
[11]
웹사이트
Distribución de la población por jurisdicción. Total del país. Año 2022
https://www.censo.go[...]
2023-02-02
[12]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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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ad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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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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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entre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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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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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ata.world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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