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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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스크인은 피레네 산맥 서부에 거주하는 민족으로,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고대 바스크인에서 유래되었으며, 인도유럽어족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고립어인 바스크어를 사용한다. 바스크인들은 스페인, 프랑스,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각 지역에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나바라 왕국을 세우기도 했으나, 현재는 스페인과 프랑스에 분할되어 있다. 바스크 지방은 자치권을 요구하며, 바스크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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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스크인 | |
|---|---|
| 기본 정보 | |
| 민족 이름 | 바스크인 |
| 고유 이름 | |
| 인구 | 약 300만 명 |
| 거주 지역 | |
| 스페인 | (바스크 지방의 스페인 지역 거주민, 일부는 바스크인으로 자처하지 않음) |
| 스페인 인구 | 2,410,000명 |
| 프랑스 | (프랑스령 바스크 지방 거주민, 일부는 바스크인으로 자처하지 않음) |
| 프랑스 인구 | 239,000명 |
| 미국 | (바스크 혈통이라고 자칭하는 사람) |
| 미국 인구 | 57,793명 |
| 캐나다 | (혼혈 포함) |
| 캐나다 인구 | 7,745명 |
| 언어 | |
| 사용 언어 | 바스크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가스콘어 |
| 종교 | |
| 종교 | 기독교 (주로 가톨릭교) 외 |
| 민족 관련 정보 | |
| 관련 민족 | 이베리아인 바스크계 칠레인 바스크계 아르헨티나인 스페인인 프랑스인 |
| 추가 정보 | |
| 로마자 표기 | |
2. 유래
현대의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구석기 시대 유럽에 먼저 진입한 고유럽인(Pre-European)의 일종인 고대 바스크인(Proto-Basque)이 인도유럽어 민족 및 연관 문화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바스크 지방에서 언어,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한 것으로 추정된다.[79] 형질상 대부분의 현대 바스크인은 인근 민족과 차이가 적으므로 보통 언어·문화적 의미에서의 후예일 뿐으로 간주되나, 고유럽인에게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mtDNA 하플로그룹이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나는 것이 이주경로를 추정할 근거를 제공하기도 한다.[79] 일각에서는 고대 이베리아어와 연관성과 서유럽의 일부 지명에 남긴 기층(substratum)적 흔적을 주장하기도 한다. 조지아어 등 캅카스 제어와의 연관성이 주장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유전적, 언어학적 차이로 인해 부정된다.[80]
영어 단어 "Basque"는 바스크/Basque영어 또는 배스크/Basque영어로 발음되며, 프랑스어 "Basque"(바스크/Basque프랑스어)에서 유래했고, 이는 다시 가스콩어의 "Basco"(바스쿠/Bascooc), 스페인어 "Vasco"(바스코/Vascoes)와 어원이 같은 단어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들은 다시 라틴어 "Vascō"(와스코/Vascōla; 복수형 "Vascōnēs"—아래 역사 부분 참조)에서 나왔다. 라틴어 는 일반적으로 가스콩어와 스페인어에서 양순음 와 로 진화했는데, 아마도 바스크어와 관련된 아키타니아어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라틴어 /w/는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및 다른 로망스어족에서는 로 진화했다).
기원전 2세기와 1세기의 바스크 지방에서 발견된 여러 개의 동전에는 "barscunes"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주조 장소는 확실하지 않지만, 역사가들이 바스코네스족이 거주했던 지역의 중심지인 팜플로나 근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학자들은 "정상", "꼭대기" 또는 "잎"을 의미하는 "bhar-s-'"를 바탕으로 켈트어 어원을 제시했는데, 이에 따르면 "barscunes"는 "산악민족", "키 큰 사람들" 또는 "자랑스러운 사람들"을 의미할 수 있다. 다른 학자들은 "경계", "국경", "변방"을 의미하는 원인도유럽어족 어근 "*bar-"와의 관계를 주장했다.[12]
바스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euskaldunak"라고 부르며, 단수형은 "euskaldun"이다. 이 단어는 "euskal-"(즉, "바스크어")과 "-dun"(즉, "~한 사람")으로 구성되며, "euskaldun"은 문자 그대로 바스크어 화자를 의미한다. 모든 바스크인이 바스크어 화자는 아니다. 따라서 19세기에 바스크어를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바스크인을 의미하는 신조어 "euskotar" (복수형 "euskotarrak")이 만들어졌다. 알폰소 이리고옌은 "euskara"라는 단어가 고대 바스크어 동사 "enautsi"("말하다"—현대 바스크어 "esan"과 비교)와 접미사 "-(k)ara"("~하는 방식")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euskara"는 문자 그대로 "말하는 방식" 또는 "말하는 방법"을 의미할 것이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 중 하나는 1571년 바스크 작가 에스테반 데 가리바이가 쓴 스페인어 책 "Compendio Historial"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바스크어의 이름을 "enusquera"라고 기록했는데, 이는 필기 실수일 수도 있다.
19세기에 바스크 민족주의 운동가 사비노 아라냐는 원래 어근 "euzko"를 제시했는데, 그는 이것이 "eguzkiko"("태양의"—원래 태양 종교에 대한 가정과 관련됨)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했다. 아라냐는 이 가정된 어근을 바탕으로 7개의 바스크 역사적 영토로 구성된 독립 바스크 국가를 위해 Euzkadi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아라냐의 신조어 "Euzkadi"(표준 철자는 "Euskadi")는 현재 자치 지방인 바스크 지방의 공식 명칭이기 때문에 바스크어와 스페인어 모두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13]
2. 1. 기원
현대의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구석기 시대 유럽에 먼저 진입한 고유럽인(Pre-European)의 일종인 고대 바스크인(Proto-Basque)이 인도유럽어 민족 및 연관 문화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바스크 지방에서 언어,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한 것으로 추정된다.[79] 형질상 대부분의 현대 바스크인은 인근 민족과 차이가 적으므로 보통 언어·문화적 의미에서의 후예일 뿐으로 간주되나, 고유럽인에게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mtDNA 하플로그룹이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나는 것이 이주경로를 추정할 근거를 제공하기도 한다.[79] 조지아어 등 캅카스 제어와의 연관성이 주장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유전적, 언어학적 차이로 인해 부정된다.[80]고전적인 유전자 표지(예: 혈액형)와 바스크어의 인도유럽어 이전 언어에 대한 연구에서 나타난 바스크인의 독특함은, 바스크인이 유럽에 정착한 최초의 현생인류의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오랜 대중적 견해를 불러일으켰다.[14] 이러한 이유로 20세기 초반과 후반의 인류학적 및 유전학적 연구는 바스크인이 원래의 크로마뇽인의 후손이라고 이론화했다.[15][16] 하지만 고립으로 인해 유전적으로 어떤 면에서는 독특하지만, 바스크인들은 여전히 그들의 Y-DNA와 mtDNA 염기서열, 그리고 다른 유전적 좌위에서 전형적인 유럽인이다. 이러한 염기서열은 유럽 서부, 특히 대륙의 서쪽 가장자리를 따라 널리 퍼져 있다.[17][18]
2015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바스크인은 유럽에 농경을 가져온 집단과 원주민 수렵채집민의 혼합 집단을 기원으로 하며, 이후 주변 집단과 고립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68] 또한, 남서유럽에 농경이 전래된 이후 5500년 전~3500년 전 사람들의 고인골에서 채취한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바스크인과 가장 가까운 조상임이 판명되었다.[69] 바스크인의 Y염색체는 하플로그룹 R1b가 90%의 높은 빈도를 차지한다.[70] 인도유럽어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도유럽계 하플로그룹 R1b가 높은 빈도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는 남성 중심의 정복자 집단이 원주민 바스크 여성과 많은 자녀를 낳았지만, 그 아이들은 아버지의 인도유럽어가 아닌 어머니의 바스크어로 자랐기 때문에, 부계는 R1b의 인도유럽계임에도 불구하고 언어는 바스크어를 유지했다”는 가설이 있다.[71] (단, 바스크인은 소규모 집단이기 때문에 유전적 부동을 거쳤으며, R1b의 높은 빈도는 병목 현상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하플로그룹 R1b(S116)는 청동기 시대에 바스크 지방에 전래된 것으로 여겨진다.[72] 또한 바스크인은 표현형으로 최대 35%, 유전형으로 60%가 Rh-형 혈액이다.[73]

2. 2. 어원
영어 단어 "Basque"는 또는 로 발음되며, 프랑스어 "Basque"()에서 유래했고, 이는 다시 가스콩어의 "Basco"(), 스페인어 "Vasco"()와 어원이 같은 단어에서 유래했다.[12] 이 단어들은 다시 라틴어 "Vascō"(; 복수형 "Vascōnēs"—아래 역사 부분 참조)에서 나왔다.[12] 라틴어 는 일반적으로 가스콩어와 스페인어에서 양순음 와 로 진화했는데, 아마도 바스크어와 관련된 아키타니아어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12] (라틴어 /w/는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및 다른 로망스어족에서는 로 진화했다).기원전 2세기와 1세기의 바스크 지방에서 발견된 여러 개의 동전에는 "barscunes"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12] 주조 장소는 확실하지 않지만, 역사가들이 바스코네스족이 거주했던 지역의 중심지인 팜플로나 근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12]
바스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euskaldunak"라고 부르며, 단수형은 "euskaldun"이다. 이 단어는 "euskal-"(즉, "바스크어")과 "-dun"(즉, "~한 사람")으로 구성되며, "euskaldun"은 문자 그대로 바스크어 화자를 의미한다. 모든 바스크인이 바스크어 화자는 아니다. 따라서 19세기에 바스크어를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바스크인을 의미하는 신조어 "euskotar" (복수형 "euskotarrak")이 만들어졌다.
3. 역사
로마 시대 문헌에는 바스코네스족과 아퀴타니족 등 바스크계 부족 집단이 등장한다.[19][20] 스트라보와 플리니우스는 바스코네스인, 아키타니인 등을 언급하였으며, 이들은 아키타니아어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세 초기 바스코니아 공국은 서고트 왕국, 우마이야 칼리파국, 프랑크 왕국 등의 세력 확장 속에서 여러 영지로 지배받았다.[19][20] 1천년기가 시작될 무렵, 바스코니아의 영토는 수르, 라부르와 같은 여러 봉건 지역으로 분열되었다.
중세에 바스크인이 주도한 나바라 왕국이 성립하여 아라곤, 카스티야, 프랑스 서남부 등에 영향력을 미쳤다. 팜플로나 왕국은 나바라 왕국으로 알려졌으며, 봉건화 과정을 거쳤다. 카스티야는 주요 서부 영토를 정복(1199–1201)하여 나바라 왕국으로부터 해안선을 빼앗아 왕국을 내륙국으로 만들었으며, 바스크 사람들은 밴드 전쟁으로 황폐해졌다. 이후 왕국의 대부분은 결국 스페인 군대의 공격(1512–1524)으로 무너졌다. 그러나 피레네 산맥 북쪽의 하부 나바라는 1620년 프랑스의 속주가 되었다.
16세기 나바라 정복으로 나바라 왕국이 스페인에 편입되었으나, 바스크인들은 자치 정부를 유지하였다.[19][20] 그러나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령 바스크 지방은 자치권을 잃었고,카를로스파 전쟁 중 스페인령 바스크 지방 역시 자치권을 잃었다.[21]
19세기 말부터 바스크 민족주의가 강해지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프랑코 정권 시기 바스크 민족주의는 탄압받았고, 1959년 분리주의 무장조직인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가 성립되어 테러를 일으키기도 했다. 스페인의 민주화 이후 1978년 바스크주가 자치권을 획득하였고, 프랑스령 바스크도 부분적 자치권을 인정받고 있다. 2017년 ETA는 완전히 무장해제를 선포했다.
3. 1. 고대 ~ 중세
로마 시대 문헌에는 바스코네스족과 아퀴타니족 등 바스크계 부족 집단이 등장한다.[19][20] 스트라보와 플리니우스는 바스코네스인, 아키타니인 등을 언급하였으며, 이들은 아키타니아어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중세 초기 바스코니아 공국은 서고트 왕국, 우마이야 칼리파국, 프랑크 왕국 등의 세력 확장 속에서 여러 영지로 지배받았다.[19][20] 1천년기가 시작될 무렵, 바스코니아의 영토는 수르, 라부르와 같은 여러 봉건 지역으로 분열되었다.
중세에 바스크인이 주도한 나바라 왕국이 성립하여 아라곤, 카스티야, 프랑스 서남부 등에 영향력을 미쳤다. 팜플로나 왕국은 나바라 왕국으로 알려졌으며, 봉건화 과정을 거쳤다. 카스티야는 주요 서부 영토를 정복(1199–1201)하여 나바라 왕국으로부터 해안선을 빼앗아 왕국을 내륙국으로 만들었으며, 바스크 사람들은 밴드 전쟁으로 황폐해졌다. 이후 왕국의 대부분은 결국 스페인 군대의 공격(1512–1524)으로 무너졌다. 그러나 피레네 산맥 북쪽의 하부 나바라는 1620년 프랑스의 속주가 되었다.
3. 2. 근세 ~ 현대
16세기 나바라 정복으로 나바라 왕국이 스페인에 편입되었으나, 바스크인들은 자치 정부를 유지하였다.[19][20] 그러나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령 바스크 지방은 자치권을 잃었고,카를로스파 전쟁 중 스페인령 바스크 지방 역시 자치권을 잃었다.[21]19세기 말부터 바스크 민족주의가 강해지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프랑코 정권 시기 바스크 민족주의는 탄압받았고, 1959년 분리주의 무장조직인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가 성립되어 테러를 일으키기도 했다. 스페인의 민주화 이후 1978년 바스크주가 자치권을 획득하였고, 프랑스령 바스크도 부분적 자치권을 인정받고 있다. 2017년 ETA는 완전히 무장해제를 선포했다.
4. 지리
4. 1. 정치 및 행정 구역
바스크 지방은 크게 세 개의 행정 구역으로 나뉜다. 스페인에는 바스크 자치 지방과 나바라가 있으며, 프랑스에는 피레네-아틀란티크 주의 일부 지역이 포함된다.[22]스페인 헌법에 의해 설립된 바스크 자치 지방은 알라바, 비스카이아, 기푸스코아 3개 주로 구성된다.[22] 이 세 주는 역사적으로 바스크 지방에 속하는 7개 주 중 서쪽에 위치한 3개 주만을 포함한다.
나바라는 별도의 자치 공동체를 구성하며, 역사적으로 상부 나바라로도 불린다.
프랑스에 속하는 바스크 지방은 라부르, 하부 나바라, 수르 등으로 구성되지만, 프랑스 내에서 공식적인 지위는 없다.
4. 2. 인구, 주요 도시 및 언어
바스크 자치 지방에는 2,123,000명이 거주하며, 주요 도시는 빌바오(Bilbao) (비스카이 주), 산세바스티안(San Sebastián) (기푸스코아 주), 비토리아가스테이스(Vitoria-Gasteiz) (알라바 주)이다. 바스크어와 스페인어가 공용어이다. 스페인 헌법에 따라 스페인어 사용은 의무이며, 자치헌장에 따라 바스크어 사용은 권리이므로 사실상 모든 사람이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프랑코 독재 시대 동안 탄압받았던 바스크어는 현재 다시 증가 추세에 있으며, 현재 바스크 자치 지방 인구의 약 33%가 바스크어를 사용한다.나바라에는 601,000명의 인구가 있으며, 주요 도시는 팜플로나(바스크어: 이루냐(Iruñea))이다. 많은 바스크 민족주의자들은 팜플로나를 바스크인의 역사적 수도로 여긴다. 나바라의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며, 바스크어는 북부 지역에서만 공용어로 인정된다.
프랑스 바스크 지방(French Basque Country)에는 약 25만 명이 거주한다. 오늘날 바스크어 사용자들은 이 지역을 이파랄데(Iparralde, 바스크어로 북쪽)라고 부르고, 스페인령 지역을 에고알데(Hegoalde, 남쪽)라고 부른다. 인구 상당수는 해안의 바욘(바스크어: 바이오나(Baiona)), 앙글레(바스크어: 앙겔루(Angelu)), 비아리츠(바스크어: 미아리체(Miarritze))를 포함하는 BAB 도시권에 거주한다. 전통적으로 BAB 도시권 외부에서 사용되던 바스크어는 프랑스어에 밀려 빠르게 사용자가 줄고 있다. 프랑스 바스크 지방은 프랑스 내에서 자치권이 없으며, 바스크어는 공식 지위를 갖지 못한다.

5. 바스크 디아스포라
역사적으로 많은 바스크인들이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스페인, 프랑스, 아메리카 대륙 등지로 이주했다.[23][24][25][26] 북아메리카(미국, 캐나다), 라틴 아메리카,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 수백만 명의 바스크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23] 역사적으로 해외 바스크 사람들은 종종 목축과 농장, 해양 어업 및 상업에 종사했다.[23]

칠레에는 250만 명에서 500만 명에 이르는 바스크계 후손이 살고 있으며, 바스크인들은 칠레의 문화적, 경제적 발전에 있어서 주요한, 아니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24][25] 미겔 데 우나무노는 "바스크인에게 명확히 기인할 수 있는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예수회와 칠레입니다."라고 말했다.[24] 칠레 역사가 루이스 타이어 오헤다는 17세기와 18세기에 칠레로 이주한 이민자의 48%가 바스크인이었다고 추산했다.[25]
멕시코에서는 바스크 이민자 후손들이 주로 몬테레이, 살티요, 레이노사, 카마르고 도시와 할리스코주, 두랑고주, 누에보레온주, 타마울리파스주, 코아우일라주, 소노라주에 집중되어 있다. 바스크인들은 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목장주와 바케로(미국의 카우보이에 해당)였고, 나머지는 멕시코시티, 과달라하라, 푸에블라와 같은 주요 도시에서 작은 상점을 열었다.
콜롬비아에서는 많은 수의 바스크인들이 주로 안티오키아와 커피 재배 지역에 정착했다. 1955년, 호아킨 오스피나는 "바스크 사람들과 '안티오케뇨스'보다 더 유사한 것이 있을까요?"라고 말했다.[27] 또한, 작가 아르투로 에스코바르 우리베는 그의 저서 "''안티오키아의 신화''"(1950)에서 "깨끗한 상승세로 이베리아 반도의 바스크 지방 농부를 능가하는 안티오키아는 조상들의 미덕을 물려받았습니다. ... 백인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산악 지대에서의 확장은 ... 콜롬비아 지도에 그들의 인종의 원형을 투영했습니다."라고 말했다.[28]
과테말라에서는 대부분의 바스크인들이 사카테페케스 주, 안티구아 과테말라, 할라파에 6대째 거주하고 있으며, 일부는 과테말라시티로 이주했다.
미국 내 여러 중요한 바스크인 공동체 중 가장 큰 규모는 아이더호주 보이시 지역에 있으며, 바스크 박물관 및 문화 센터가 자리 잡고 있고 매년 바스크 축제가 열리고 5년마다 바스크 디아스포라 축제가 열린다. 네바다주 리노는 네바다대학교 리노 캠퍼스(University of Nevada, Reno)에 바스크 연구 센터와 바스크 연구 도서관이 있는 또 다른 중요한 바스크인 거주 지역이다. 네바다주 엘코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네바다주에 정착한 스페인, 프랑스, 멕시코 국적의 바스크인들의 춤, 요리, 문화를 기념하는 연례 바스크 축제를 개최한다.
캘리포니아주에는 바스크인들이 많이 거주하는데, 특히 캘리포니아주 스톡턴,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 캘리포니아주 베이커스필드 사이의 샌호아킨 밸리에 집중되어 있다. 캘리포니아주 치노에도 바스크 문화의 역사가 있으며, 매년 두 차례의 바스크 축제가 열려 바스크인들의 춤, 요리, 문화를 기념한다.
텍사스주에는 뉴스페인 정복에 참여했던 바스크인들의 후손인 히스패닉계 인구가 상당수 거주하고 있다. 초기 텍사스인 중 많은 수가 바스크인 혈통을 가지고 있었으며, 알라모 전투에서 다른 텍사스인들과 함께 싸운 사람들도 포함된다.
유럽계 스페인-프랑스 및 라틴 아메리카 국적의 바스크인들은 미국 서부의 루이지애나주, 뉴멕시코주, 애리조나주, 유타주, 콜로라도주, 와이오밍주, 몬태나주, 오리건주, 워싱턴주와 같은 주들에도 정착했다.
- '''아르헨티나'''
- * 후안 데 가라이[74] : 통치자. 부에노스아이레스 재건자.
- * 이폴리토 이리고옌 : 정치가. 아르헨티나 대통령.
- * 체 게바라[74] : 혁명가. 쿠바 혁명에 참여했다.
- * 에바 페론[74] : 배우. 후안 페론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부인.
- * 막시마 소레기에타 : 빌럼-알렉산더 네덜란드 국왕의 왕비.
- * 곤살로 이과인 : 축구 선수.
- '''칠레'''
- *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제29대 칠레 대통령(1970-1973)
- *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제30대 칠레 대통령(1974-1990)
- * 가브리엘라 미스트랄(Gabriela Mistral): 시인, 노벨 문학상 수상.
- *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시인, 노벨 문학상 수상.
- '''미국'''
- * 베니 유키데 (Benny Urquidez): 격투가, 액션 배우, 미국인
- * 후안 카를로스 페레스 (Juan Carlos Pérez): 뮤지션. 바스크어로 노래하는 록 밴드 Itoiz에서 활동.
- '''멕시코'''
- * 펠릭스 마리아 솔라가(Félix María Calleja): 군인, 정치가. 멕시코 잠정 대통령.
- * 하비에르 아길레(Javier Aguirre): 축구 선수, 축구 감독.
- 시몬 볼리바르[74]: 라틴아메리카 독립 운동을 지도한 정치가, 군인, 사상가. 성(姓)은 바스크 지방의 볼리바르 마을에 유래한다.
6. 문화


=== 언어 ===
바스크어 또는 에우스카라어(''Euskara'')는 오늘날 바스크 지역 인구의 25~30%가 사용하고 있다.[31] 바스크인들은 자신을 ''euskaldun''(바스크어 사용자), 자신들의 나라를 ''Euskal Herria''(바스크어의 나라)라고 부르는데, 이는 바스크어가 문화적으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공식 정책은 역사적으로 바스크어 사용을 제한하여 바스크어를 정치적 문제로 만들었지만,[32] 최근에는 바스크어 교육, 사용, 집필 및 계발이 활발해지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많은 바스크인들은 바스크 정체성과 함께 자신이 거주하는 국가(스페인 또는 프랑스)의 정체성을 함께 가지는 경우가 많다.[32] 예를 들어, 프랑스를 대표하는 바스크 출신 라그비 유니온 선수인 이마놀 하리노르도키는 "저는 프랑스인이자 바스크인입니다. 아무런 갈등이 없습니다. 두 가지 모두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국가 정체성에 대해 언급했다.[33]
국가 언어 장려, 학교 정책, 대중 매체 및 이주 효과의 결과로, 오늘날 거의 모든 바스크인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국가의 공식 언어를 사용한다. 바스크어만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며, 본질적으로 모든 바스크어 사용자는 국경 양쪽에서 이중 언어 사용자이다. 스페인어 또는 프랑스어는 다른 지역 출신 시민들의 일반적인 모국어이며, 많은 바스크인들의 모국어이기도 하다. 최근 바스크 정부의 정책은 이러한 언어 사용 패턴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34]
바스크어는 다른 유럽 언어의 대부분이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유전적으로 고립어로 여겨진다.[35] 바스크어는 또한 대부분의 다른 현대 유럽 언어들보다 더 오랫동안 현재의 영토 위치와 그 주변에서 계속해서 사용되어 왔다.[35] 그러나 바스크어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이자 "세계 언어 중 독특한 언어"로 묘사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36] 바스크어는 수 세기 동안 이웃 서유럽 언어들과 끊임없이 접촉하여 수많은 어휘적 특징과 유형론적 특징을 공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스크어는 또한 현대 언어이며, 현재의 출판 및 의사소통 형태뿐만 아니라 매우 광범위한 사회적 및 문화적 맥락, 스타일 및 레지스터에서 사용되는 쓰기와 인쇄 언어로 자리 잡았다.
=== 토지와 상속 ===
바스크인들은 자신의 집(''etxe(a)'')에 깊은 애착을 가지며, 이는 가족의 뿌리와 동의어이다. 특히 전통적인 자급자족 가족 경영 농장인 '''바세리(baserri)'''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일부 바스크 성씨는 오래된 바세리 또는 주거 명칭에서 유래되었으며, '''벤고에체아(Bengoetxea)'''("더 아래쪽의 집"), '''고이코에체아(Goikoetxea)'''("위쪽의 집"), '''에체베리아(Etxeberria)'''("새 집") 등이 그 예이다.[37]

'''푸에로스'''에서 인정된 고대 바스크 상속 패턴은 상속받은 토지 소유의 통합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장남 또는 장녀에게 상속되는 경우가 많았다.[38] 산업화 이후 이러한 시스템은 많은 시골 바스크인들이 스페인, 프랑스 또는 아메리카로 이주하게 만들었다. 현대적인 기준으로는 가혹했던 이 관습은 스페인 콘키스타도르인 로페 데 아기레(Lope de Aguirre)와 프란시스코 바스케스 데 코로나도(Francisco Vásquez de Coronado)에서부터 탐험가, 선교사, 가톨릭 교회의 성인인 프란체스코 하비에르(Francis Xavier)에 이르기까지 세계로 나가 자신의 길을 개척한 많은 기업가적인 바스크 출신 인물들을 만들어냈다.
바스크 사회는 원래 모계 사회였다는 믿음이 있지만, 현재는 부계 사회의 친족 제도와 상속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인 바스크 사회와 현대 바스크 사회 모두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이웃 문화보다 다소 더 나은 편이며, 여성은 가정 경제에 대한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과거에는 일부 여성이 집단적인 마법 의식에 참여했고, 오늘날 대부분 잊혀진 풍부한 민속의 핵심 참여자였다.
=== 요리 ===
바스크 요리는 바스크 문화의 중심에 있으며, 이웃 지역 사회와 바다와 육지에서 나는 농산물의 영향을 받았다. 20세기 바스크 문화의 특징은 요리 동호회(txoko) 현상인데, 남성들이 모여 요리하고 음식을 즐기는 음식 클럽이다. 최근까지 여성들은 일 년에 하루만 출입이 허용되었다. 사과주(Sagardotegiak)집은 기푸스코아에 있는 인기 있는 레스토랑으로, 사과주가 제철인 몇 달 동안만 문을 연다.
=== 문화적 생산 ===
20세기 말, ETA의 폭력(2010년 종식)과 중공업 위기 속에서도 바스크 지방의 경제는 놀랍게 회복되었다. 프랑코 정권에서 탈피하여 활기를 되찾은 바스크어와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바스크어는 지리적으로 확장되었는데, 몇십 년 전만 해도 바스크어가 거의 사라졌던 팜플로나, 빌바오, 바욘과 같은 주요 도시 중심지에서 인구 증가에 힘입은 바가 크다. 현재 바스크어 사용자 수는 유지되거나 약간 증가하고 있다.
=== 음악 ===
바스크 전통 음악은 독특한 악기와 리듬을 사용하며, 트리키티샤(아코디언의 일종), 찰라파르타(나무 타악기)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 바스크 음악은 록, 팝, 포크 등 다양한 장르에서 바스크어 가사를 사용하여 바스크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다.
=== 종교 ===
전통적으로 바스크인들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였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까지 바스크인들은 집단적으로 매우 독실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로 남아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서유럽 대부분의 지역과 마찬가지로 교회 출석률이 감소했다. 이 지역은 프란체스코 하비에르와 미셸 가리코이츠와 같은 선교사들을 배출했다. 예수회의 창립자인 이냐시오 데 로욜라는 바스크인이었다. 캘리포니아의 프란체스코회 소속 페르민 라수엔은 비토리아에서 태어났다. 라수엔은 프란체스코회 사제 후니페로 세라의 후계자였으며 해안선을 따라 현재 남아 있는 21개의 캘리포니아 미션 중 9개를 설립했다.
대륙 바스크 지방에서 일어난 프로테스탄티즘의 싹은 호아네스 레이사라가에 의해 바스크어로 번역된 최초의 신약 성경을 탄생시켰다. 독실한 위그노 신자였던 나바라의 잔 3세 여왕은 백성들을 위해 바스크어와 베아른 방언으로 신약 성경을 번역하도록 의뢰했다. 나바라의 앙리 3세가 프랑스 국왕이 되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했을 무렵, 바스크 공동체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은 사실상 사라졌다.
바욘에는 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종교재판을 피해 도망친 세파르디 유대인들로 구성된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 1512년부터 1521년까지 카스티야의 침략 이전에는 나바라에 중요한 유대인과 무슬림 공동체가 있었다.
오늘날, 단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스크인의 50% 조금 넘는 사람들만이 하느님에 대한 어떤 종류의 신앙을 고백하고 나머지는 불가지론자 또는 무신론자이다. 종교적 회의론자의 수는 젊은 세대에서 눈에 띄게 증가하는 반면, 나이든 세대는 더 종교적이다.[39] 바스크 지방에서 가톨릭은 단연코 가장 큰 종교이다. 2019년 바스크인 중 로마 가톨릭 신자라고 밝힌 비율은 60%였다.[40] 하지만 스페인에서 가장 세속화된 지역 중 하나로, 24.6%는 비종교인이었고 12.3%는 무신론자였다.
=== 그리스도교 이전의 종교와 신화 ===
그리스도교화 이전의 신앙은 마리라는 여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많은 지명에 마리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이러한 장소가 마리의 숭배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41] 예를 들어, 날씨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암보토코 마리''가 있다. 마리의 배우자는 수가르이다. 이 지저스 부부는 최고의 윤리적 권능과 창조와 파괴의 힘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신성한 봉우리의 높은 동굴에 모였을 때 폭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러한 만남은 일반적으로 역사적인 아켈라레 또는 마녀 집회의 날인 금요일 밤에 일어났다. 마리 여신은 암보토 산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기적으로 밝은 빛으로 하늘을 가로질러 친도키 산에 있는 다른 집으로 향했다고 한다.
전설에는 ''젠틸락''(거인에 해당), ''라미악''(요정에 해당), ''마이루악''( 돌 원을 건설한 사람들, 문자 그대로 무어인), ''이라트초악''(악마), ''소르기낙''(마녀, 마리의 여사제) 등과 같이 수많은 정령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신석기 시대의 돌 구조물인 돌멘이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아니면 동물이나 휴식을 취하는 목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건설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일부 돌멘과 크롬렉은 매장지이자 경계 표지 역할도 한다.
=== 사회 ===
역사적으로 바스크 사회는 유럽 사회와 비교했을 때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 스트라보의 『지리학』(Geographica)에서는 기원전 20년경부터 기원후 20년경 사이에 스페인 북부에 대해 "일종의 여성 통치—결코 문명의 표시가 아니다"라고 언급하며, 여성은 재산을 상속하고 관리하며 교회에서도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한 증거는 매우 부족하다.[42] 20세기 초까지 바스크 지방에서는 모계 상속법이 존재했고 여성이 농업 노동을 담당했다. 프랑스 혁명 직전까지 바스크 여성은 '가정의 여주인', 세습 수호자이자 혈통의 우두머리였다.[43] 그러나 바스크 사회가 '모계 사회'였다는 주장은 20세기 민족주의와 관련된 것으로, 이전 사회에 대한 기록과는 상충된다.[44] 나바라 왕국이 봉건제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바스크인들은 다른 봉건 유럽과는 다른 사회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지역 주택 소유주들이 교회 앞에 모여 대표를 선출하는 엘리사테 전통이 있었으며, 중세 시대에는 대부분의 토지가 교회나 왕이 아닌 농민 소유였다.[35][45]
=== 스포츠 ===
==== 펠로타 ====
필로타는 바스크 지역의 독특한 구기 종목이다. 몇몇 변형된 종목들은 자이알라이라는 이름으로 미국과 마카오로 수출되었다.
==== 전통 스포츠 ====


바스크 지방에서는 일상적인 노동에서 유래한 여러 스포츠가 존재한다. 힘든 노동자들 사이에서 경쟁이 벌어지고 내기가 걸리기도 했다. 그 예로는 다음과 같다.
- '''에스트로파다(estropadak)''' 노젓기 경주: 어부들의 활동에서 유래했다.
- '''소카티라(sokatira)''' 줄다리기
- '''하리-하소츠아(harri-jasotzea)''' 돌 들기: 채석장 작업에서 유래했다.
- '''아이즈콜라리차(aizkolaritza)''' 와 '''트론찰라리차(trontzalaritza)''' 나무 베기와 통나무 톱질
- '''세가 호코아(sega jokoa)''' 낫으로 풀 베기
- '''기자-아베레 프로박(Giza-abere probak)''' 돌덩이 끌기: 건설 작업에서 유래했다.
- * '''이디 프로박(idi probak)''' 소 팀으로 하는 경기
- * '''아스토 프로박(asto probak)''' 당나귀로 하는 경기
- * '''잘디 프로박(zaldi probak)''' 말로 하는 경기
- * '''기손 프로박(gizon probak)''' 사람 팀으로 하는 경기
- '''칭가 에라마테아(txinga eramatea)''' 양손에 무게를 하나씩 들고 나르는 경기: 우유통을 나타낸다.
- '''아하리 토파케타(ahari topaketa)''' 숫양 싸움
- '''하리 술라케타(harri zulaketa)''' 돌덩이에 금속 막대기를 이용하여 구멍을 뚫는 경기: 과거 비스카이 서부의 광산 지역에서만 행해졌다.
- 바스크 양치기 개 경기
팜플로나의 축제인 ''산페르민''에서 열리는 엔시에로(황소 달리기)는 원래 투우장으로 황소를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엔시에로와 기타 황소 및 소 관련 활동은 팜플로나에만 국한되지 않고 바스크 지방의 많은 마을과 도시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 축구 ====
바스크 지방에는 아틀레틱 빌바오, 레알 소시에다드,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SD 에이바르와 같은 여러 축구 클럽이 있으며, 나바라의 클럽인 CA 오사수나(라리가 유일의 바스크어 이름을 가진 클럽—"osasuna"는 "건강"을 의미함)도 있다.[46] 2016-17 시즌에는 이 다섯 클럽이 라리가에서 함께 뛰었는데, 다섯 개의 바스크 클럽이 동시에 그 수준에 도달한 최초의 사례였다. 아틀레틱 빌바오의 영입 정책은 비바스크 선수 영입을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바스크"는 현재 민족적으로 바스크인이거나 바스크 클럽에서 훈련받은 어떤 민족의 선수든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된다.[46] 레알 소시에다드도 이전에 이러한 정책을 사용한 적이 있다.
바스크주 빌바오에 연고지를 둔 축구 클럽 아틀레틱 빌바오는 독자적으로 규정한 “바스크인”만이 선수로 활동할 수 있다는 방침을 100년 이상 유지하고 있다.[77][78]
==== 농구 ====
바스코니아와 빌바오 바스켓을 포함한 여러 프로 농구팀이 바스크 지방에 있으며, 유로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다. 바스코니아는 유로리그 농구 지분을 소유한 11개 클럽 중 하나이다. 빌바오 바스켓은 현재 스페인 최상위 리그인 리가 ACB에 속해 있으며, 바스코니아와 바스크 더비라는 오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기푸스코아 바스켓은 현재 2부 리그인 LEB 오로에서 활동하고 있다.
==== 럭비 유니온 ====
럭비 유니온은 프랑스 바스크 지방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이며, 주요 클럽인 비아리츠 올림피크와 아비롱 바요네는 프랑스 럭비 1부 리그(톱 14)의 전통적인 강호이다. 비아리츠는 특히 녹아웃 경기의 경우 챔피언스컵 경기를 산세바스티안의 아노에타 스타디움에서 정기적으로 치른다. 바스크 클럽들과 카탈루냐 클럽 USA 페르피냥 간의 경기는 항상 치열하다.
==== 사이클 ====
사이클은 바스크에서 인기가 많다. 바스크 정부의 부분적 후원을 받는 에우스칼텔 () 프로 사이클링 팀은 2014년까지 UCI 월드 투어 부문에 참가했다. 주황색 상의와 오르막 등반 능력으로 유명했던 이 팀의 팬들은 투르 드 프랑스에서 유명한 피레네 산맥의 업힐 구간을 따라 선수들을 응원하며 유명했다.
매년 4월에는 일주일 동안 열리는 투르 드 바스크가 아름다운 바스크 지방의 구릉 지대를 선보인다. 빌라바 출신의 미겔 인두라인은 5년 연속 투르 드 프랑스 우승을 차지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이클 선수 중 한 명이다.
6. 1. 언어
바스크어 또는 에우스카라어(''Euskara'')는 오늘날 바스크 지역 인구의 25~30%가 사용하고 있다.[31] 바스크인들은 자신을 ''euskaldun''(바스크어 사용자), 자신들의 나라를 ''Euskal Herria''(바스크어의 나라)라고 부르는데, 이는 바스크어가 문화적으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공식 정책은 역사적으로 바스크어 사용을 제한하여 바스크어를 정치적 문제로 만들었지만,[32] 최근에는 바스크어 교육, 사용, 집필 및 계발이 활발해지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많은 바스크인들은 바스크 정체성과 함께 자신이 거주하는 국가(스페인 또는 프랑스)의 정체성을 함께 가지는 경우가 많다.[32] 예를 들어, 프랑스를 대표하는 바스크 출신 라그비 유니온 선수인 이마놀 하리노르도키(Imanol Harinordoquy)는 "저는 프랑스인이자 바스크인입니다. 아무런 갈등이 없습니다. 두 가지 모두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국가 정체성에 대해 언급했다.[33]국가 언어 장려, 학교 정책, 대중 매체 및 이주 효과의 결과로, 오늘날 거의 모든 바스크인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국가의 공식 언어를 사용한다. 바스크어만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며, 본질적으로 모든 바스크어 사용자는 국경 양쪽에서 이중 언어 사용자이다. 스페인어 또는 프랑스어는 다른 지역 출신 시민들의 일반적인 모국어이며, 많은 바스크인들의 모국어이기도 하다. 최근 바스크 정부의 정책은 이러한 언어 사용 패턴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34]
바스크어는 다른 유럽 언어의 대부분이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유전적으로 고립어로 여겨진다.[35] 바스크어는 또한 대부분의 다른 현대 유럽 언어들보다 더 오랫동안 현재의 영토 위치와 그 주변에서 계속해서 사용되어 왔다.[35] 그러나 바스크어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이자 "세계 언어 중 독특한 언어"로 묘사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36] 바스크어는 수 세기 동안 이웃 서유럽 언어들과 끊임없이 접촉하여 수많은 어휘적 특징과 유형론적 특징을 공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스크어는 또한 현대 언어이며, 현재의 출판 및 의사소통 형태뿐만 아니라 매우 광범위한 사회적 및 문화적 맥락, 스타일 및 레지스터에서 사용되는 쓰기와 인쇄 언어로 자리 잡았다.
6. 2. 토지와 상속
바스크인들은 자신의 집(''etxe(a)'')에 깊은 애착을 가지며, 이는 가족의 뿌리와 동의어이다. 특히 전통적인 자급자족 가족 경영 농장인 '''바세리(baserri)'''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일부 바스크 성씨는 오래된 바세리 또는 주거 명칭에서 유래되었으며, '''벤고에체아(Bengoetxea)'''("더 아래쪽의 집"), '''고이코에체아(Goikoetxea)'''("위쪽의 집"), '''에체베리아(Etxeberria)'''("새 집") 등이 그 예이다.[37]'''푸에로스'''에서 인정된 고대 바스크 상속 패턴은 상속받은 토지 소유의 통합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장남 또는 장녀에게 상속되는 경우가 많았다.[38] 산업화 이후 이러한 시스템은 많은 시골 바스크인들이 스페인, 프랑스 또는 아메리카로 이주하게 만들었다. 현대적인 기준으로는 가혹했던 이 관습은 스페인 콘키스타도르인 로페 데 아기레(Lope de Aguirre)와 프란시스코 바스케스 데 코로나도(Francisco Vásquez de Coronado)에서부터 탐험가, 선교사, 가톨릭 교회의 성인인 프란체스코 하비에르(Francis Xavier)에 이르기까지 세계로 나가 자신의 길을 개척한 많은 기업가적인 바스크 출신 인물들을 만들어냈다.
바스크 사회는 원래 모계 사회였다는 믿음이 있지만, 현재는 부계 사회의 친족 제도와 상속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인 바스크 사회와 현대 바스크 사회 모두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이웃 문화보다 다소 더 나은 편이며, 여성은 가정 경제에 대한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과거에는 일부 여성이 집단적인 마법 의식에 참여했고, 오늘날 대부분 잊혀진 풍부한 민속의 핵심 참여자였다.
6. 3. 요리
바스크 요리는 바스크 문화의 중심에 있으며, 이웃 지역 사회와 바다와 육지에서 나는 농산물의 영향을 받았다. 20세기 바스크 문화의 특징은 요리 동호회(txoko) 현상인데, 남성들이 모여 요리하고 음식을 즐기는 음식 클럽이다. 최근까지 여성들은 일 년에 하루만 출입이 허용되었다. 사과주(Sagardotegiak)집은 기푸스코아에 있는 인기 있는 레스토랑으로, 사과주가 제철인 몇 달 동안만 문을 연다.6. 4. 문화적 생산
20세기 말, ETA의 폭력(2010년 종식)과 중공업 위기 속에서도 바스크 지방의 경제는 놀랍게 회복되었다. 프랑코 정권에서 탈피하여 활기를 되찾은 바스크어와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바스크어는 지리적으로 확장되었는데, 몇십 년 전만 해도 바스크어가 거의 사라졌던 팜플로나, 빌바오, 바욘과 같은 주요 도시 중심지에서 인구 증가에 힘입은 바가 크다. 현재 바스크어 사용자 수는 유지되거나 약간 증가하고 있다.6. 5. 음악
바스크 전통 음악은 독특한 악기와 리듬을 사용하며, 트리키티샤(아코디언의 일종), 찰라파르타(나무 타악기)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 바스크 음악은 록, 팝, 포크 등 다양한 장르에서 바스크어 가사를 사용하여 바스크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다.6. 6. 종교
전통적으로 바스크인들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였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까지 바스크인들은 집단적으로 매우 독실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로 남아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서유럽 대부분의 지역과 마찬가지로 교회 출석률이 감소했다. 이 지역은 프란체스코 하비에르와 미셸 가리코이츠와 같은 선교사들을 배출했다. 예수회의 창립자인 이냐시오 데 로욜라는 바스크인이었다. 캘리포니아의 프란체스코회 소속 페르민 라수엔은 비토리아에서 태어났다. 라수엔은 프란체스코회 사제 후니페로 세라의 후계자였으며 해안선을 따라 현재 남아 있는 21개의 캘리포니아 미션 중 9개를 설립했다.대륙 바스크 지방에서 일어난 프로테스탄티즘의 싹은 호아네스 레이사라가에 의해 바스크어로 번역된 최초의 신약 성경을 탄생시켰다. 독실한 위그노 신자였던 나바라의 잔 3세 여왕은 백성들을 위해 바스크어와 베아른 방언으로 신약 성경을 번역하도록 의뢰했다. 나바라의 앙리 3세가 프랑스 국왕이 되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했을 무렵, 바스크 공동체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은 사실상 사라졌다.
바욘에는 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종교재판을 피해 도망친 세파르디 유대인들로 구성된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 1512년부터 1521년까지 카스티야의 침략 이전에는 나바라에 중요한 유대인과 무슬림 공동체가 있었다.
오늘날, 단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스크인의 50% 조금 넘는 사람들만이 하느님에 대한 어떤 종류의 신앙을 고백하고 나머지는 불가지론자 또는 무신론자이다. 종교적 회의론자의 수는 젊은 세대에서 눈에 띄게 증가하는 반면, 나이든 세대는 더 종교적이다.[39] 바스크 지방에서 가톨릭은 단연코 가장 큰 종교이다. 2019년 바스크인 중 로마 가톨릭 신자라고 밝힌 비율은 60%였다.[40] 하지만 스페인에서 가장 세속화된 지역 중 하나로, 24.6%는 비종교인이었고 12.3%는 무신론자였다.
6. 6. 1. 그리스도교 이전의 종교와 신화
그리스도교화 이전의 신앙은 마리라는 여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많은 지명에 마리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이러한 장소가 마리의 숭배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41] 예를 들어, 날씨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암보토코 마리''가 있다. 마리의 배우자는 수가르이다. 이 지저스 부부는 최고의 윤리적 권능과 창조와 파괴의 힘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신성한 봉우리의 높은 동굴에 모였을 때 폭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러한 만남은 일반적으로 역사적인 아켈라레 또는 마녀 집회의 날인 금요일 밤에 일어났다. 마리 여신은 암보토 산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기적으로 밝은 빛으로 하늘을 가로질러 친도키 산에 있는 다른 집으로 향했다고 한다.전설에는 ''젠틸락''(거인에 해당), ''라미악''(요정에 해당), ''마이루악''( 돌 원을 건설한 사람들, 문자 그대로 무어인), ''이라트초악''(악마), ''소르기낙''(마녀, 마리의 여사제) 등과 같이 수많은 정령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신석기 시대의 돌 구조물인 돌멘이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아니면 동물이나 휴식을 취하는 목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건설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일부 돌멘과 크롬렉은 매장지이자 경계 표지 역할도 한다.
6. 7. 사회
역사적으로 바스크 사회는 유럽 사회와 비교했을 때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 스트라보의 『지리학』(Geographica)에서는 기원전 20년경부터 기원후 20년경 사이에 스페인 북부에 대해 "일종의 여성 통치—결코 문명의 표시가 아니다"라고 언급하며, 여성은 재산을 상속하고 관리하며 교회에서도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한 증거는 매우 부족하다.[42] 20세기 초까지 바스크 지방에서는 모계 상속법이 존재했고 여성이 농업 노동을 담당했다. 프랑스 혁명 직전까지 바스크 여성은 '가정의 여주인', 세습 수호자이자 혈통의 우두머리였다.[43] 그러나 바스크 사회가 '모계 사회'였다는 주장은 20세기 민족주의와 관련된 것으로, 이전 사회에 대한 기록과는 상충된다.[44] 나바라 왕국이 봉건제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바스크인들은 다른 봉건 유럽과는 다른 사회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지역 주택 소유주들이 교회 앞에 모여 대표를 선출하는 엘리사테 전통이 있었으며, 중세 시대에는 대부분의 토지가 교회나 왕이 아닌 농민 소유였다.[35][45]6. 8. 스포츠
필로타는 바스크 지역의 독특한 구기 종목이다. 몇몇 변형된 종목들은 자이알라이라는 이름으로 미국과 마카오로 수출되었다.바스크 지방에서는 일상적인 노동에서 유래한 여러 스포츠가 존재한다. 힘든 노동자들 사이에서 경쟁이 벌어지고 내기가 걸리기도 했다. 그 예로는 다음과 같다.
- '''에스트로파다(estropadak)''' 노젓기 경주: 어부들의 활동에서 유래했다.
- '''소카티라(sokatira)''' 줄다리기
- '''하리-하소츠아(harri-jasotzea)''' 돌 들기: 채석장 작업에서 유래했다.
- '''아이즈콜라리차(aizkolaritza)''' 와 '''트론찰라리차(trontzalaritza)''' 나무 베기와 통나무 톱질
- '''세가 호코아(sega jokoa)''' 낫으로 풀 베기
- '''기자-아베레 프로박(Giza-abere probak)''' 돌덩이 끌기: 건설 작업에서 유래했다.
- * '''이디 프로박(idi probak)''' 소 팀으로 하는 경기
- * '''아스토 프로박(asto probak)''' 당나귀로 하는 경기
- * '''잘디 프로박(zaldi probak)''' 말로 하는 경기
- * '''기손 프로박(gizon probak)''' 사람 팀으로 하는 경기
- '''칭가 에라마테아(txinga eramatea)''' 양손에 무게를 하나씩 들고 나르는 경기: 우유통을 나타낸다.
- '''아하리 토파케타(ahari topaketa)''' 숫양 싸움
- '''하리 술라케타(harri zulaketa)''' 돌덩이에 금속 막대기를 이용하여 구멍을 뚫는 경기: 과거 비스카이 서부의 광산 지역에서만 행해졌다.
- 바스크 양치기 개 경기
팜플로나의 축제인 ''산페르민''에서 열리는 엔시에로(황소 달리기)는 원래 투우장으로 황소를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엔시에로와 기타 황소 및 소 관련 활동은 팜플로나에만 국한되지 않고 바스크 지방의 많은 마을과 도시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바스크 지방에는 아틀레틱 빌바오, 레알 소시에다드,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SD 에이바르와 같은 여러 축구 클럽이 있으며, 나바라의 클럽인 CA 오사수나(라리가 유일의 바스크어 이름을 가진 클럽—"osasuna"는 "건강"을 의미함)도 있다.[46] 2016-17 시즌에는 이 다섯 클럽이 라리가에서 함께 뛰었는데, 다섯 개의 바스크 클럽이 동시에 그 수준에 도달한 최초의 사례였다. 아틀레틱 빌바오의 영입 정책은 비바스크 선수 영입을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바스크"는 현재 민족적으로 바스크인이거나 바스크 클럽에서 훈련받은 어떤 민족의 선수든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된다.[46] 레알 소시에다드도 이전에 이러한 정책을 사용한 적이 있다.
바스크주 빌바오에 연고지를 둔 축구 클럽 아틀레틱 빌바오는 독자적으로 규정한 “바스크인”만이 선수로 활동할 수 있다는 방침을 100년 이상 유지하고 있다.[77][78] 바스크주를 거점으로 했던 사이클링 팀 에우스칼텔-에우스카디는 원칙적으로 계약하는 선수를 바스크인으로 제한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바스코니아와 빌바오 바스켓을 포함한 여러 프로 농구팀이 바스크 지방에 있으며, 유로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다. 바스코니아는 유로리그 농구 지분을 소유한 11개 클럽 중 하나이다. 빌바오 바스켓은 현재 스페인 최상위 리그인 리가 ACB에 속해 있으며, 바스코니아와 바스크 더비라는 오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기푸스코아 바스켓은 현재 2부 리그인 LEB 오로에서 활동하고 있다.
럭비 유니온은 프랑스 바스크 지방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이며, 주요 클럽인 비아리츠 올림피크와 아비롱 바요네는 프랑스 럭비 1부 리그(톱 14)의 전통적인 강호이다. 비아리츠는 특히 녹아웃 경기의 경우 챔피언스컵 경기를 산세바스티안의 아노에타 스타디움에서 정기적으로 치른다. 바스크 클럽들과 카탈루냐 클럽 USA 페르피냥 간의 경기는 항상 치열하다.
사이클은 바스크에서 인기가 많다. 바스크 정부의 부분적 후원을 받는 에우스칼텔 () 프로 사이클링 팀은 2014년까지 UCI 월드 투어 부문에 참가했다. 주황색 상의와 오르막 등반 능력으로 유명했던 이 팀의 팬들은 투르 드 프랑스에서 유명한 피레네 산맥의 업힐 구간을 따라 선수들을 응원하며 유명했다.
매년 4월에는 일주일 동안 열리는 투르 드 바스크가 아름다운 바스크 지방의 구릉 지대를 선보인다. 빌라바 출신의 미겔 인두라인은 5년 연속 투르 드 프랑스 우승을 차지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이클 선수 중 한 명이다.
6. 8. 1. 펠로타
필로타는 바스크 지역의 독특한 구기 종목이다. 몇몇 변형된 종목들은 자이알라이라는 이름으로 미국과 마카오로 수출되었다.6. 8. 2. 전통 스포츠
바스크 지방에서는 일상적인 노동에서 유래한 여러 스포츠가 존재한다. 힘든 노동자들 사이에서 경쟁이 벌어지고 내기가 걸리기도 했다. 그 예로는 다음과 같다.
- '''에스트로파다(estropadak)''' 노젓기 경주: 어부들의 활동에서 유래했다.
- '''소카티라(sokatira)''' 줄다리기
- '''하리-하소츠아(harri-jasotzea)''' 돌 들기: 채석장 작업에서 유래했다.
- '''아이즈콜라리차(aizkolaritza)''' 와 '''트론찰라리차(trontzalaritza)''' 나무 베기와 통나무 톱질
- '''세가 호코아(sega jokoa)''' 낫으로 풀 베기
- '''기자-아베레 프로박(Giza-abere probak)''' 돌덩이 끌기: 건설 작업에서 유래했다.
- * '''이디 프로박(idi probak)''' 소 팀으로 하는 경기
- * '''아스토 프로박(asto probak)''' 당나귀로 하는 경기
- * '''잘디 프로박(zaldi probak)''' 말로 하는 경기
- * '''기손 프로박(gizon probak)''' 사람 팀으로 하는 경기
- '''칭가 에라마테아(txinga eramatea)''' 양손에 무게를 하나씩 들고 나르는 경기: 우유통을 나타낸다.
- '''아하리 토파케타(ahari topaketa)''' 숫양 싸움
- '''하리 술라케타(harri zulaketa)''' 돌덩이에 금속 막대기를 이용하여 구멍을 뚫는 경기: 과거 비스카이 서부의 광산 지역에서만 행해졌다.
- 바스크 양치기 개 경기
팜플로나의 축제인 ''산페르민''에서 열리는 엔시에로(황소 달리기)는 원래 투우장으로 황소를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엔시에로와 기타 황소 및 소 관련 활동은 팜플로나에만 국한되지 않고 바스크 지방의 많은 마을과 도시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6. 8. 3. 축구
바스크 지방에는 아틀레틱 빌바오, 레알 소시에다드,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SD 에이바르와 같은 여러 축구 클럽이 있으며, 나바라의 클럽인 CA 오사수나(라리가 유일의 바스크어 이름을 가진 클럽—"osasuna"는 "건강"을 의미함)도 있다.[46] 2016-17 시즌에는 이 다섯 클럽이 라리가에서 함께 뛰었는데, 다섯 개의 바스크 클럽이 동시에 그 수준에 도달한 최초의 사례였다. 아틀레틱 빌바오의 영입 정책은 비바스크 선수 영입을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바스크"는 현재 민족적으로 바스크인이거나 바스크 클럽에서 훈련받은 어떤 민족의 선수든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된다.[46] 레알 소시에다드도 이전에 이러한 정책을 사용한 적이 있다.바스크주 빌바오에 연고지를 둔 축구 클럽 아틀레틱 빌바오는 독자적으로 규정한 “바스크인”만이 선수로 활동할 수 있다는 방침을 100년 이상 유지하고 있다.[77][78]
6. 8. 4. 농구
바스코니아와 빌바오 바스켓을 포함한 여러 프로 농구팀이 바스크 지방에 있으며, 유로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다. 바스코니아는 유로리그 농구 지분을 소유한 11개 클럽 중 하나이다. 빌바오 바스켓은 현재 스페인 최상위 리그인 리가 ACB에 속해 있으며, 바스코니아와 바스크 더비라는 오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기푸스코아 바스켓은 현재 2부 리그인 LEB 오로에서 활동하고 있다.6. 8. 5. 럭비 유니온
럭비 유니온은 프랑스 바스크 지방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이며, 주요 클럽인 비아리츠 올림피크와 아비롱 바요네는 프랑스 럭비 1부 리그(톱 14)의 전통적인 강호이다. 비아리츠는 특히 녹아웃 경기의 경우 챔피언스컵 경기를 산세바스티안의 아노에타 스타디움에서 정기적으로 치른다. 바스크 클럽들과 카탈루냐 클럽 USA 페르피냥 간의 경기는 항상 치열하다.6. 8. 6. 사이클
사이클은 바스크에서 인기가 많다. 바스크 정부의 부분적 후원을 받는 에우스칼텔 () 프로 사이클링 팀은 2014년까지 UCI 월드 투어 부문에 참가했다. 주황색 상의와 오르막 등반 능력으로 유명했던 이 팀의 팬들은 투르 드 프랑스에서 유명한 피레네 산맥의 업힐 구간을 따라 선수들을 응원하며 유명했다.매년 4월에는 일주일 동안 열리는 투르 드 바스크가 아름다운 바스크 지방의 구릉 지대를 선보인다. 빌라바 출신의 미겔 인두라인은 5년 연속 투르 드 프랑스 우승을 차지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이클 선수 중 한 명이다.
7. 정치

독립된 바스크 국가는 없지만, 스페인의 자치 지역인 바스크 지방은 알라바(아라바), 비스카이(비스카이아), 기푸스코아 3개 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민들의 광범위한 자치 요구에 대한 역사적 결과이자 답변이다.
나바라에는 별도의 자치 규약이 있다. 이는 스페인 민주화 과정(독재 시대의 지위를 '향상'시킨 '아메호라미엔토'(Amejoramiento)) 동안 마련된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합의이다. 이는 1841년까지 나바라 왕국의 지위와 전통적인 제도 및 법적 체계(푸에로)를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 후반까지 나바라의 원래 주요 언어였던 바스크어는 특히 나바라 북부와 중앙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가족 내 전승을 유지해 왔으며, 나바라 법률에서는 바스크어 사용 지역 또는 혼용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나바라에서는 정치적, 언어적, 문화적 충성심과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매우 복잡하다. 정치적으로 일부 바스크 민족주의자들은 바스크 자치 공동체와 통합하기를 원한다.
프랑스 바스크 지방은 현재 공식적인 정치적 실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공식적으로는 베른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 주인 피레네-아틀란티크의 일부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이 지역 시장 중 별도의 바스크 주 설립을 지지하는 시장의 수가 63.87%로 증가했다.[47] 그러나 지금까지 그들의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7. 1. 정치적 갈등
19세기 후반 사비노 아라나(Sabino Arana)에 의해 명확히 제시된 이후, 보다 급진적인 바스크 민족주의는 자결권 심지어 독립을 요구해 왔다. 바스크 지방 내에서 바스크 정치의 이러한 요소는 바스크 지방을 단지 스페인 국가의 또 다른 일부로 보는 견해, 즉 정치적 스펙트럼의 우익에서 더 일반적으로 주장되는 견해와 종종 균형을 이룬다. 반대로, 더 큰 자치 또는 독립에 대한 열망은 좌파 바스크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특히 흔하다. 자결권은 2002년과 2006년 바스크 의회에 의해 주장되었다.[49] 자결권은 1978년 스페인 헌법에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상당수의 바스크 주민들(55%)이 그 해 12월 6일 비준 국민투표에서 기권했고 일부(23.5%)는 심지어 반대 투표를 했다. 그러나 스페인 전체에서는 명확한 다수결로 승인(87%)되었다. 바스크 지방에 대한 자치 정권은 1979년 국민투표에서 승인되었지만, 나바라의 자치 (''Amejoramiento del Fuero'': "헌장 개선")는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고 나바라 코르테스(의회)에서만 승인되었다.ETA는 바스크 분쟁의 주요 당사자였으나, 2011년 영구 휴전을 선언하고 2017년 무장 해제했다.
7. 1. 1. 언어
스페인과 프랑스 정부는 때때로 바스크어의 언어적 및 문화적 정체성을 억압해 왔다. 프랑스는 문화적 소수 집단의 완전한 문화적 흡수를 시도해 온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스페인은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바스크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언어적, 문화적, 심지어 정치적 자치를 허용했지만,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권 하에서는 스페인 내전에서 패배하였던 바스크 민족주의를 탄압했다. 바스크어의 문화 활동은 민속과 가톨릭 교회로 제한되었다.오늘날 스페인 내의 남부 바스크 지방은 광범위한 문화적, 정치적 자치를 누리고 있다. 바스크 교육 시스템의 관할하에 있는 학교 대부분은 바스크어를 주요 교육 언어로 사용한다. 그러나 프랑스 내의 북부 바스크 지방의 상황은 좋지않다. 바스크어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프랑스어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는 자치권 부족과 프랑스어 교육은 바스크어에 큰 압력을 가하고 있다.
나바라에서는 나바라 인민 연합의 반바스크적이고 보수적인 정부가 바스크 문화의 상징에 반대하며 나바라의 스페인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바스크어가 멸종 위기에 처한 언어로 선언되었다.[48]
바스크어는 또한 스페인과 프랑스의 주요 도시, 오스트레일리아,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지역, 그리고 특히 네바다, 아이다호, 캘리포니아의 미국 이민자들에 의해서도 사용되고 있다.[35]
8. 저명한 바스크인
후안 세바스티안 엘카노는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항해 도중 사망한 후 세계 일주에 성공한 최초의 원정대를 이끈 인물이다.[75] 나바라의 산초 3세는 이베리아 북부를 통일하고 히스파니아 황제를 자칭했다. 이냐시오 데 로욜라와 프란체스코 하비에르는 예수회의 창립자이다.[51]
돈 디에고 마리아 데 가르도키 이 아리키바르(1735~1798)는 스페인의 초대 미국 대사였다. 미구엘 데 우나무노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철학자였다.[74]
알베르토 우르타도 신부, S.J.(1901~1952)는 칠레에 자선 주택 시스템인 크리스토의 가정을 설립하고, 칠레 노동조합 협회를 설립하여 가톨릭 교회의 사회 교리에 기반한 노동조합 운동을 장려했다. 그는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시복 및 시성되었다.[51]
- 이니고 아리스타(Íñigo Arista):팜플로나 왕국 초대 국왕.
- 로페 아기레 : 콘키스타도르[74][75]
- 미겔 레가스피 : 콘키스타도르. 초대 필리핀 총독[74]
- 돌로레스 이바르리 : 정치가[74]
- 호세 에체가라이 : 극작가. 노벨 문학상 수상[74]
- 호세 아술멘디 : 철학자
- 후리오 카로 바로하 : 민속학자[74]
- 베르나르도 아차가 : 작가
- 호세바 사리오난디아 : 작가
- 치야르데기 : 작가·정치 활동가
- 파우스트 데 에리알 : 화학자[74]
- 세베로 오초아 : 화학자.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74]
-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 의학자.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
- 소부르 칸두 : 선교사·신부
- 후안 크리스토스토모 아리아가 : 작곡가[74]
- 파블로 데 사라사테 : 작곡가·바이올린 연주자[74]
- 미켈 라보아 : 싱어송라이터
- 에두아르도 칠리다 : 조각가
- 호르헤 오테이사 : 조각가
- 네스토르 바스테레체아 : 조각가
- 가이스카 멘디에타 : 축구 선수
- 사비 알론소 : 축구 선수, 지도자
- 미켈 아르테타 : 축구 선수, 지도자
- 미겔 인두라인 : 사이클 선수
-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 패션 디자이너[74]
- 훌리오 메뎀 : 영화 감독
- 라파엘 모네오 : 건축가
- 에티엔 드 실루엣 : 귀족, 재무총감.[74]
- 모리스 라벨 : 작곡가.[74]
- 에두아르 라로: 작곡가, 비올라 연주자.
- 라베크 자매 : 피아니스트, 피아노 듀오 연주자.
- 루이 자크 만데 다게르 : 화가, 사진가.[74]
- 루이스 페르난데스 : 축구 선수.
- 디디에 데샹 : 축구 선수.
- 빈센테 리살라스 : 축구 선수.
- 이마놀 아리놀도키 : 럭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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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V / E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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