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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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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심운영은 명나라 말기에 활약한 여성 군인이다. 1624년 절강성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무술에 관심을 보였으며, 아버지 심지서가 요족 반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하자 10여 명의 사병을 이끌고 야습하여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고 적을 퇴각시켰다. 이후 유격장군으로 임명되어 병사들을 통솔했으며, 1639년 가만책과 결혼했으나, 가만책이 전사한 후 군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서당을 설립하여 자제들을 가르쳤다. 심운영의 일대기는 희곡, 시, 경극 등 다양한 문학 작품에서 재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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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운영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심운영
한자 표기沈雲英
로마자 표기Syeom Un-yeong
직책명나라유격장군
성별여성
민족한족
생애
출생1624년
출생지명나라 절강성 소산부 소산현
사망1660년
사망지 절강성 소산부 소산현
임기1638년 ~ 1642년
가족 관계
부친심지서
모친황씨
형제자매심향림
배우자가만책
자녀심조양
군사 경력
소속명군
충성
복무 기간1638년 ~ 1642년
최종 계급유격장군
주요 참전 전투/전쟁(정보 없음)

2. 생애

심운영은 천계 4년(1624년) 절강성 소산부 소산현에서 태어나, 후난성 다오저우 수비대를 지휘하던 아버지 심지허를 따라 군인의 삶을 살았다.[2][6] 성장한 그녀는 호남성에서 장헌충 휘하의 도적에 맞서 싸웠다.[7]

1643년, 아버지 심지허가 장헌충의 반란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하자,[1] 심운영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도시를 방어하고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했다. 조정에서는 이례적으로 그녀를 아버지의 후임으로 공식 임명했다.[3]

이후 심운영은 청나라 군대와 고계영의 군대로부터 명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으나, 1644년 베이징 함락과 마지막 명나라 황제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2. 1. 초기 생애 및 군 경력

심운영은 천계 4년(1624년) 절강성 소산부 소산현에서 심지서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무술에 관심이 많아 관련 도서를 많이 읽었다.[6]

숭정 11년(1638년), 호광성 등지의 요족 반군이 봉기했을 때 아버지 심지서와 함께 종군하였다.[8] 심지서는 적을 험한 지형에서 포위섬멸하려 했으나 동림당 명신 채관치가 원군을 보내지 않아 전사하였다.[8] 심운영은 10여 명의 사병을 이끌고 야습하여 적병 30여 명을 베고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였다.[9]

전쟁이 끝난 후, 심운영은 아버지의 공적을 보고하고 채관치의 태만을 고발하였다.[11] 숭정제는 채관치를 질책하고 전출시킨 후, 심지서를 소무장군으로 추증하고 심운영을 유격장군으로 임명하여 병사들을 통솔하게 했다.[12]

2. 2. 가만책과의 결혼

숭정 12년(1639년), 양사창 휘하의 도사 가만책이 군무 인수인계 과정에서 심운영을 알게 되었다. 가만책의 부인이 세상을 떠난 상황이었기에, 가만책은 심운영에게 청혼하였다. 당시 가만책은 40세였고 심운영은 18세였으므로, 심운영의 어머니 황씨는 나이 차이를 이유로 이 혼인을 반대하였다. 그럼에도 가만책은 혼인을 포기하지 않고 백은 천 냥을 초례로 내놓았고, 어사를 중매인으로 청하여 결국 숭정 13년(1640년) 봄에 혼인이 성사되었다.[13]

명나라 말기의 혼란스러운 군사 상황으로 인해 자리를 비울 만한 상황이 별로 없었기에, 두 사람이 실제로 함께 지낸 시간은 100여 일에 불과했다. 숭정 15년(1642년) 12월, 가만책은 형주에서 전사하였다.[14]

2. 3. 은퇴 및 교육 활동

숭정 15년(1642년) 12월, 남편 가만책이 형주에서 전사하자,[14] 심운영은 군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15] 과부가 된 심운영은 처음에는 여직공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이후 서당을 설립하여,[16] 본족 자제들에게 경서와 서예를 가르쳤다. 심운영에게 《춘추호씨전》을 배운 유족자 심조양은 명사가 되었다.[17] 순치 16년(1659년)에 3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18]

3. 문학 작품에서의 심운영

심운영의 일대기는 여러 문학 작품에서 다뤄졌다. 동융은 심유영과 진량옥을 소재로 한 희곡을 출판했고,[2] 장채신은 〈심 장군의 노래〉를 통해 심운영을 기렸으며,[3] 정염추는 심운영에 관한 경극을 썼다.[4]

3. 1. 동융의 희곡

동융(董榕, 1760년 사망)은 심운영과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여성 군인인 진량옥을 소재로 한 희곡을 출판했다.[2]

3. 2. 장채신의 시

장채신은 19세기에 〈심 장군의 노래〉라는 시를 통해 심운영의 영웅적인 행적을 기렸다. 이 시는 심운영을 강력한 전사이자 효성이 지극한 딸로 묘사했으며, 문집은 남아있지 않지만 재능 있는 작가로도 묘사하고 있다.[3]

3. 3. 정염추의 경극

20세기 경극의 4대 단 배우 중 한 명인 정염추는 심운영에 관한 경극을 썼다.[4]

참조

[1] 서적 Amazons to Fighter Pilots - A Biographical Dictionary of Military Women (Volume Two) Greenwood Press
[2] 간행물 Ch'in Liang-yü Library of Congress
[3] 서적 The Red Brush: Writing Women of Imperial China Harvard University Press
[4] 서적 Inscribing Jingju/Peking Opera: Textualization and Performance, Authorship and Censorship of the "National Drama" of China from the Late Qing to the Present Brill
[5] 서적 Amazons to Fighter Pilots - A Biographical Dictionary of Military Women (Volume Two) Greenwood Press
[6] 문서 谦斋文集》卷6《女云英传》:“云英身长七尺,面黑无姿容,平居恂恂,下帷读书,非有雄略,弓马亦非所长。”
[7] 서적 Amazons to Fighter Pilots - A Biographical Dictionary of Military Women (Volume Two) Greenwood Press
[8] 문서 《道光永州府志·卷十三·良吏传》:“崇祯十年,猺贼犯永州,监司蔡官治御寇败绩。明年,寇益炽,奉檄出师。至绪命宁远卫弁夏某诱贼设伏于险,以待期鸣礟为号,将尽歼焉。且约监司出兵为后劲,逼贼于木垒。夏畏贼弃礟遁,蔡官治忌功不为援,贼遂出险。至绪与贼遇,知必死,尽力血战……遂遇害,贼掠其尸去,时戊寅四月廿五日也。”
[9] 문서 《道光永州府志·卷十三·良吏传》:“至绪有女云英,小字官弟,年甫笄,读书知兵,有父风。痛父殁,帅十骑仓促赴贼,贼骇愕。连杀三十余级,负父尸还。”
[10] 문서 《西河集》卷97》《故明特授游击将军道州守备列女沈氏云英墓志铭》:“归而启营,示以再战,寇避其威,立徙邻郡。”
[11] 문서 《道光永州府志·卷十三·良吏传》:“叩大府辕门,挝鼓讼父功,数监司逗遁玩寇罪,且曰:‘吾将走京师愬登闻奏状天子。’”
[12] 문서 《道光永州府志·卷十三·良吏传》:“抚按上其事。得旨逮夏于理,斥蔡官治,而调曾樱,敕三省临近兵会剿之,寇始平。至绪得赠昭武将军,荫一子入监。以云英为游击,仍领其部众。”
[13] 문서 《萧山长巷沈氏续修宗谱》卷38《遥祭明故夫君实授都司对庭贾公祭文》:“己卯,君镇湖南,英名赫赫,威武桓桓,衡襄六郡,赖君以安。妾报父仇,治兵邂逅,君适丧偶,蹇修来仪。妾年二九,君年四十,吾母固辞。君不能弃,复以千金求媒侍御,庚寅余春,遂偕伉俪。”
[14] 문서 《萧山长巷沈氏续修宗谱》卷38《遥祭明故夫君实授都司对庭贾公祭文》:“壬午仲冬,仍复原职,立功赎罪。贼兵百万,云集荆南……季冬望后,城陷君死,士卒讣闻,断肠裂腑。”
[15] 문서 《皇明四朝成仁录》卷3《道州死事传》:“云英之夫,四川人贾万策者,故阁部督师标大剿营都司也,奉命镇守荆州南门。贼陷荆州,万策遇害。云英因哭辞诏命,领军俟代。”
[16] 문서 《谦斋文集》卷6《女云英传》:“家居以女工食足,未尝逾阈也。后以年洊饥,女工不足给,则开塾教女子,以笔墨糊其口者。”
[17] 문서 《明遗民录》卷48《沈云英》:“国变后,蠲弃服饰,隐居里门,为女教授。素工书法,旁涉经史,然非本宗子弟不教也。族子兆阳者,从之授《春秋胡氏传》,为知名士。”
[18] 문서 《谦斋文集》卷6《女云英传》:“十有六年,年三十八以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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