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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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은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에 위치한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이다.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 양식을 따르며, 9세기 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기단부에는 팔부중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1948년 명문이 있는 신라 범종이 발견된 선림원 터에 석등, 홍각선사탑비 등과 함께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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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1948년에 명문(銘文)이 있는 신라 범종이 발견되어 주목되었던 선림원터에 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이 있다. 석탑을 비롯하여 석등·홍각선사탑비·석조부도 등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들 석조유물들은 대부분 쓰러져 있었으나 모두 복원되었다.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석탑으로, 법당터 남쪽의 원래 위치에 복원되었다.
여러 장의 돌로 탑의 토대를 만들고, 아래층 기단을 올려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다. 위층 기단 역시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는데, 한 면을 둘로 나눈 뒤 8부중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은 높은 편이며, 2층 몸돌은 반으로 체감되고 각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넓은 편이고, 지붕의 경사가 급하게 내려 오다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약간 들려 있다.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탑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있고, 철제찰주를 꽂았던 구멍이 있으며 그 위에는 보주(寶柱: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모양의 돌이 있으나 원형이 아닌 듯하다.
외형상 정제된 비례를 보여주지만 8부중상의 조각은 섬약하고 석재의 구성도 규율성을 잃고 있다. 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이어받고 있으나 기단부의 짜임이나 각 부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조성연대는 9세기경 신라 후기에 가까운 것으로 짐작된다.
복원공사가 진행되기 전 기단부에서 소탑(小塔) 60여 기와 동탁(銅鐸) 1개가 발견된 일이 있다. 탑 앞에는 안상(眼象)을 새긴 배례석(拜禮石)이 남아 있다.
2. 1. 건립 배경
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은 1948년에 명문(銘文)이 있는 신라 범종이 발견되어 주목되었던 선림원터에 위치한다. 석탑을 비롯하여 석등·홍각선사탑비·석조부도 등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들 석조유물들은 대부분 쓰러져 있었으나 모두 복원되었다.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석탑으로, 법당터 남쪽의 원래 위치에 복원되었다.외형상 정제된 비례를 보여주지만 8부중상의 조각은 섬약하고 석재의 구성도 규율성을 잃고 있다. 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이어받고 있으나 기단부의 짜임이나 각 부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조성연대는 9세기경 신라 후기에 가까운 것으로 짐작된다.
복원공사가 진행되기 전 기단부에서 소탑(小塔) 60여 기와 동탁(銅鐸) 1개가 발견된 일이 있다. 탑 앞에는 안상(眼象)을 새긴 배례석(拜禮石)이 남아 있다.
2. 2. 발굴 및 복원
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은 1948년에 명문(銘文)이 있는 신라 범종이 발견되어 주목되었던 선림원터에 있다. 석탑을 비롯하여 석등·홍각선사탑비·석조부도 등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들 석조유물들은 대부분 쓰러져 있었으나 모두 복원되었다. 이 탑은 법당터 남쪽의 원래 위치에 복원되었다.복원공사가 진행되기 전 기단부에서 소탑(小塔) 60여 기와 동탁(銅鐸) 1개가 발견된 일이 있다. 탑 앞에는 안상(眼象)을 새긴 배례석(拜禮石)이 남아 있다.
3. 구조
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은 기단(基壇) 두 단 위에 탑신(塔身)을 세 층 올린 전형적인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이다. 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이어받았으나, 기단 부분의 짜임이나 각 부분의 조각 기법으로 보아 신라 후기인 9세기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돌 여러 장으로 탑의 토대를 만들고, 아래층 기단을 올려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다. 위층 기단 역시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는데, 한 면을 둘로 나눈 뒤 팔부중상(八部衆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탑신은 몸돌 한 개, 지붕돌 한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 몸돌은 높은 편이지만 2층 몸돌은 높이가 반으로 줄고 각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넓은 편이고, 지붕의 경사가 급하게 내려오다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약간 들려 있으며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탑의 머리 장식으로는 노반(露盤)이 있고, 철제 찰주(擦柱)를 꽂았던 구멍이 있으며 그 위에는 보주(寶柱)모양의 돌이 있으나 원래의 형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탑의 높이는 약 4m이다.
3. 1. 전체적인 특징
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은 기단(基壇) 두 단 위에 탑신(塔身)을 세 층 올린 전형적인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이다. 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이어받았으나, 기단 부분의 짜임이나 각 부분의 조각 기법으로 보아 신라 후기인 9세기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돌 여러 장으로 탑의 토대를 만들고, 아래층 기단을 올려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다. 위층 기단 역시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는데, 한 면을 둘로 나눈 뒤 팔부중상(八部衆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탑신은 몸돌 한 개, 지붕돌 한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 몸돌은 높은 편이지만 2층 몸돌은 높이가 반으로 줄고 각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넓은 편이고, 지붕의 경사가 급하게 내려오다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약간 들려 있으며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탑의 머리 장식으로는 노반(露盤)이 있고, 철제 찰주(擦柱)를 꽂았던 구멍이 있으며 그 위에는 보주(寶柱)모양의 돌이 있으나 원래의 형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탑의 높이는 약 4m이다.
3. 2. 기단부
돌 여러 장으로 탑의 토대를 만들고, 아래층 기단을 올려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다. 위층 기단 역시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는데, 한 면을 둘로 나눈 뒤 팔부중상(八部衆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다.3. 3. 탑신부
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은 기단(基壇) 두 단 위에 탑신(塔身)을 세 층 올린 전형적인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이다. 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이어받았으나, 기단 부분의 짜임이나 각 부분의 조각 기법으로 보아 신라 후기인 9세기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탑신은 몸돌 한 개, 지붕돌 한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 몸돌은 높은 편이지만 2층 몸돌은 높이가 반으로 줄고 각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넓은 편이고, 지붕의 경사가 급하게 내려오다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약간 들려 있으며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탑의 머리 장식으로는 노반(露盤)이 있고, 철제 찰주(擦柱)*를 꽂았던 구멍이 있으며 그 위에는 보주(寶柱)모양의 돌이 있으나 원래의 형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3. 4. 상륜부
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의 상륜부에는 노반(露盤)이 있고, 철제 찰주(擦柱)를 꽂았던 구멍이 있으며 그 위에는 보주(寶柱)모양의 돌이 있으나 원래의 형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4. 예술적 특징
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은 기단 두 단 위에 탑신을 세 층 올린 전형적인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이다. 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이어받았으나, 기단 부분의 짜임이나 각 부분의 조각 기법으로 보아 신라 후기인 9세기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돌 여러 장으로 탑의 토대를 만들고, 아래층 기단을 올려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다. 위층 기단 역시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는데, 한 면을 둘로 나눈 뒤 팔부중상(八部衆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팔부중상은 불교의 여덟 수호신으로, 팔부신장(八部神將) 또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이라고도 한다.
탑신은 몸돌 한 개, 지붕돌 한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 몸돌은 높은 편이지만 2층 몸돌은 높이가 반으로 줄고 각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넓은 편이고, 지붕의 경사가 급하게 내려오다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약간 들려 있으며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탑의 머리 장식으로는 노반(露盤, 탑의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이 있고, 철제 찰주(擦柱, 불탑 꼭대기 장식의 중심을 뚫고 세운 기둥)를 꽂았던 구멍이 있으며 그 위에는 보주(寶柱, 탑이나 석등 따위의 맨 꼭대기에 얹은 구슬 모양의 장식)모양의 돌이 있으나 원래의 형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4. 1. 신라 석탑 양식 계승
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으로, 법당터 남쪽의 원래 위치에 복원되었다. 여러 장의 돌로 탑의 토대를 만들고, 아래층 기단을 올려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다. 위층 기단 역시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는데, 한 면을 둘로 나눈 뒤 8부중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은 높은 편이며, 2층 몸돌은 반으로 체감되고 각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넓은 편이고, 지붕의 경사가 급하게 내려 오다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약간 들려 있으며,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탑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머리장식받침)이 있고, 철제찰주를 꽂았던 구멍이 있으며 그 위에는 보주(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모양의 돌이 있으나 원형이 아닌 듯하다.외형상 정제된 비례를 보여주지만 8부중상의 조각은 섬약하고 석재의 구성도 규율성을 잃고 있다. 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이어받고 있으나 기단부의 짜임이나 각 부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조성연대는 9세기경 신라 후기에 가까운 것으로 짐작된다.
4. 2. 신라 후기 양식
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으로, 법당터 남쪽의 원래 위치에 복원되었다. 외형상 정제된 비례를 보여주지만 8부중상의 조각은 섬약하고 석재의 구성도 규율성을 잃고 있다. 여러 장의 돌로 탑의 토대를 만들고, 아래층 기단을 올려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다. 위층 기단 역시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는데, 한 면을 둘로 나눈 뒤 8부중상(八部衆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8부중상은 불교의 여덟 수호신으로, 팔부신장(八部神將) 또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이라고도 한다.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은 높은 편이며, 2층 몸돌은 반으로 체감되고 각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넓은 편이고, 지붕의 경사가 급하게 내려 오다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약간 들려 있다.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탑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있고, 철제찰주를 꽂았던 구멍이 있으며 그 위에는 보주(寶柱: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모양의 돌이 있으나 원형이 아닌 듯하다.
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이어받고 있으나 기단부의 짜임이나 각 부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조성연대는 9세기경 신라 후기에 가까운 것으로 짐작된다.
4. 3. 팔부중상 조각
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의 위층 기단 각 면에는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으며, 한 면을 둘로 나누어 팔부중상(八部衆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팔부중상은 불교의 여덟 수호신으로, 팔부신장(八部神將) 또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이라고도 한다.5. 의의와 평가
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 양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기단부의 짜임새나 각 부분의 조각 수법에서 9세기 신라 후기의 특징을 보여준다. 외형상으로는 정제된 비례를 보여주지만, 8부중상의 조각은 섬약하고 석재의 구성은 규율성을 잃고 있어 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1948년 명문(銘文)이 있는 신라 범종이 발견되어 주목받은 선림원터에는 석탑 외에도 석등, 홍각선사탑비, 석조부도 등이 남아 있었으며, 이들은 대부분 쓰러져 있었으나 모두 복원되었다. 복원 공사 이전 기단부에서는 소탑(小塔) 60여 기와 동탁(銅鐸) 1개가 발견되기도 했다. 탑 앞에는 안상(眼象)을 새긴 배례석(拜禮石)이 남아 있다.
6. 사진
7. 현지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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