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카스티요 (치첸이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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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엘 카스티요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치첸이트사에 있는 마야 문명의 피라미드이다. 기원후 900~1000년경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전 건물 위에 덧씌워진 형태로, 세계축으로 여겨지는 곳에 세워졌다. 1920년대부터 발굴 및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으며, 내부에서는 붉은 재규어 왕좌와 인간 유해가 발견되었다. 엘 카스티요는 천문학적 정렬을 이루고 있으며, 최근에는 신전 아래 거대한 세노테가 발견되기도 했다. 현재는 유적 보호를 위해 등반이 금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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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카스티요 (치첸이트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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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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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엘 카스티요 |
고대 명칭 | 쿠쿨칸 |
유형 | 메소아메리카 계단식 피라미드 |
위치 | 티눔 자치구, 멕시코 |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 https://whc.unesco.org/en/list/483 |
유네스코 ID | 483 |
유네스코 등재 연도 | 1988년 |
문화유산 기준 | (i), (ii), (iii) |
건설 시기 | 서기 8세기–12세기 |
재료 | 석회암 |
구조 | |
높이 (사원 제외) | 24m |
높이 (사원 포함) | 30m |
사원 자체 높이 | 6m |
기저 | 55.3m |
경사 (모서리) | 37°29'44" |
경사 (측면) | 47º19'50" |
2. 역사
엘 카스티요는 옛 건물 위에 새 건물을 덧씌우는 메소아메리카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건설되었다. 현재 모습은 대략 서기 9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아래에는 서기 600년에서 800년 사이에 지어진 더 오래된 신전이 묻혀 있다.[5] 마야인들은 이곳을 우주의 중심축으로 여겨 신성시했다고 전해진다.[5]
1566년 스페인 주교 디에고 데 란다가 유카탄 반도의 신전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약 3세기 만인 1843년, 존 로이드 스티븐스가 그의 저서 《유카탄 여행기》(Incidents of Travel in Yucatan)에서 엘 카스티요를 자세히 묘사했으며, 당시 치첸이트사는 후안 소사라는 인물이 소유한 사유지였다. 프레데릭 캐더우드는 당시 식물로 뒤덮인 피라미드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20세기 초, 워싱턴의 카네기 재단이 멕시코 정부의 허가를 받아 1927년부터 본격적인 발굴 및 복원 작업을 시작했다. 1931년에는 내부 구조 존재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이후 발굴을 통해 피라미드 아래 더 오래된 구조물이 확인되었다. 또한 세노테 위에 지어졌다는 사실과 내부에서 차크 몰 조각상, 붉은 재규어 왕좌 등이 발견되었다.[5][6]
2. 1. 건설 과정
엘 카스티요는 다른 메소아메리카 지방의 피라미드들과 유사하게, 옛 건물 위에 새로운 건물을 덧씌우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여러 단계에 걸쳐 신전을 건설하는 마야인들의 일반적인 관행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엘 카스티요는 마야인들이 우주의 중심축으로 여겼던 '세계의 축'(axis mundi) 위에 세워졌다.[5] 마야인들은 건물이 들어선 장소 자체를 신성하게 여겼으며,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는 기존 건물의 신성함을 보존하기 위해 의례적으로 파괴하는 관습이 있었다.[5] 이러한 관습은 11세기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피라미드 아래에는 더 오래된 구조물이 묻혀 있는데, 이는 통칭 '기반시설' 또는 '하부 구조'라고 불린다. 이 내부 구조물은 대략 서기 600년에서 800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외부의 피라미드는 그 이후인 서기 9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건설된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 복원 작업 중에는 고고학자들과 관광객들의 접근을 쉽게 하기 위해 북동쪽 외부 계단의 난간 부분에 입구가 만들어졌다.
2. 2. 발굴 및 복원

1566년, 스페인 수도자 디에고 데 란다는 《유카탄 보고서》(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라는 원고에 이 신전을 묘사하였다. 약 3세기 후인 1843년, 존 로이드 스티븐스는 그의 저서 《유카탄 여행기》(Incidents of Travel in Yucatan)에서 신전의 건축 양식을 더 자세히 설명했다. 당시 치첸이트사는 후안 소사라는 사람이 소유한 사유지 내에 있었다. 프레데릭 캐더우드는 책의 삽화로 사면이 무성한 식물로 뒤덮인 신전의 모습을 석판화로 그렸다. 20세기 초에 촬영된 일부 사진에서도 신전의 일부가 여전히 식물에 덮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24년, 워싱턴 D.C.의 카네기 과학 연구소는 멕시코 정부에 치첸이트사 지역 탐사 및 복원 허가를 요청했고, 1927년 멕시코 고고학자들의 지원을 받아 작업을 시작했다. 1931년 4월, 현재의 신전이 더 오래된 신전 위에 지어졌다는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다. 1932년 6월 7일, 산호, 흑요석, 터키석, 옥 등으로 장식된 물건들과 함께 인간의 유해가 담긴 상자가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현재 멕시코시티의 국립 인류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엘 카스티요는 물이 찬 자연적인 구덩이, 즉 세노테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고고학계는 초기 구조물이 현재 위치보다 남동쪽 세노테에 더 가깝게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한다.[5] 이는 마야인들이 세노테의 존재를 알고 의도적으로 그 위에 신전을 건설하여 종교적 믿음을 표현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5]

1935년 4월, 신전 내부에서 손톱, 이빨, 눈이 진주 조개로 상감된 차크 몰 조각상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이 발견된 방은 '제물의 방' 또는 '북쪽 방'으로 불리게 되었다. 1년여 뒤인 1936년 8월, 첫 번째 방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두 번째 방('희생의 방')이 발견되었다. 이 방 안에서는 붉은 재규어 형태의 왕좌와 함께 벽에 기대어 북북동쪽을 향하도록 놓인 두 줄의 인간 뼈가 발견되었다. 연구자들은 이 발견들을 통해 현재 신전 아래에 너비 33m, 높이 17m의 9층 구조를 가진 더 오래된 피라미드가 존재하며, 희생의 방 바닥이 바로 이 옛 피라미드의 꼭대기 부분이라고 결론지었다.
붉은 재규어 왕좌는 실제 사용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X선 형광 분석(XRF) 결과, 왕좌는 주사(황화수은, HgS)가 포함된 붉은색 안료로 칠해져 있었다.[6] 주사는 치첸이트사 근처에서는 나지 않아 먼 곳에서 해상 교역을 통해 들여와야 했던 귀한 재료였다.[6] 붉은색은 마야 문명에서 죽음, 희생, 그리고 부활과 생명을 상징하는 중요한 색이었다.[6] 마야인들은 사물에 생명력을 부여한다고 믿었기에, 귀한 동물인 재규어를 붉게 칠한 것은 신전을 봉인하는 의식적인 의미에서 재규어를 제물로 바친 것일 수 있다.[6] 왕좌의 네 송곳니는 국립 인류학 및 역사 연구소(연체동물학)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 소라 껍데기(''Lobatus costatus'')를 갈아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이 역시 교역을 통해 얻은 귀한 자원이었을 것이다.[6] 왕좌에 박힌 녹색 돌들은 연옥(옥)으로, 마야 문명에서 가장 희귀하고 가치 있는 광물 중 하나였으며, 이 역시 멀리서 수입해 온 최상급 품질의 것이었다.[6]
고고학자들은 이 재규어 왕좌가 다른 마야 유적의 벽화에 묘사된 왕좌들과 형태가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최고 대사제나 왕이었을 것이며, 세계의 중심에 앉아 우주적 질서를 조정하고 자연을 통제하는 신적인 존재로 여겨졌을 것으로 추측된다.[6] 왕좌에서 발견되는 죽음과 지하 세계 관련 상징들, 그리고 왕좌가 봉인된 방 안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왕좌는 신전을 의례적으로 닫기 위한 봉헌물로서의 성격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6]
3. 구조
엘 카스티요는 다른 메소아메리카 지방의 피라미드들과 유사하게, 옛 건물에 새로운 건물을 덧씌우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신전은 약 서기 900년에서 1000년 경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아래에 묻혀있는 옛 신전은 약 서기 600년에서 800년 경에 건설된 것으로 예측된다. 고고학계의 연구에 의하면, 엘 카스티요는 당시 마야인들이 '세계축'(axis mundi)이라고 여기던 곳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5] 세계축이란 우주의 중심을 이루는 축으로, 그 장소 자체가 신성하게 여겨졌으며,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는 기존 건물을 의례적으로 파괴하여 그 신성함을 보존하려 했다.[5] 이러한 관습은 11세기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피라미드 아래에 묻힌 옛 피라미드는 '하부 구조'(substructure)라고 불린다.
1566년, 수도자 디에고 데 란다는 그의 저서 《유카탄 보고서》(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에서 이 신전을 묘사했다. 약 3세기 후, 존 로이드 스티븐스는 1843년 출판된 《유카탄 여행기》(Incidents of Travel in Yucatan)에서 신전 건축을 더 상세히 기술했다. 당시 치첸이트사 유적지는 후안 소사 소유의 대지에 있었으며, 프레데릭 캐더우드는 스티븐스의 책에 삽화를 그렸는데, 당시 식물로 뒤덮인 신전의 모습을 석판화로 남겼다. 20세기 초 사진들에서도 신전 일부가 식물에 덮인 모습을 볼 수 있다.
1924년, 워싱턴 D.C.의 카네기 과학 연구소는 멕시코 정부 허가를 받아 치첸이트사 탐사 및 복원 작업을 시작했고, 1927년부터 멕시코 고고학자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했다. 1931년 4월에는 쿠쿨칸 신전이 더 오래된 신전 위에 지어졌다는 가설을 확인하기 위한 발굴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1930년대 복원 작업 중 고고학자와 관광객의 접근을 위해 북동쪽 외부 계단 난간에 입구가 만들어졌다.
쿠쿨칸 신전은 물이 찬 싱크홀, 즉 세노테 위에 위치한다. 최근 고고학 조사에 따르면 이전 구조물은 현재 피라미드 중심보다 남동쪽 세노테에 더 가까웠을 수 있다.[5] 이는 마야인들이 세노테의 존재를 알고 의도적으로 그 위에 신전을 건설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5] 신전의 위치는 세노테 사그라다(북쪽), 톨록(Tolloc, 남쪽), 칸주윰(Kanjuyum, 동쪽), 홀툰(Holtun, 서쪽) 등 네 개의 주요 세노테가 만나는 지점에 해당하며, 이는 쿠쿨칸 신전이 '세계의 축'이라는 믿음을 뒷받침한다.[5]
3. 1. 내부 구조
1931년 4월, 워싱턴 D.C.의 카네기 과학 연구소는 멕시코 정부의 허가와 현지 고고학자들의 지원을 받아 엘 카스티요 내부 구조 탐사를 시작했다. 이는 엘 카스티요가 더 오래된 피라미드 위에 덧씌워 지어졌다는 가설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발굴 과정에서 여러 유물과 공간이 발견되었다. 1932년 6월 7일에는 산호, 흑요석, 터키석 등으로 장식된 물건들과 함께 인간의 유해가 담긴 상자가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현재 멕시코시티의 국립 인류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935년 4월, 피라미드 내부에서 손톱과 이빨, 눈이 진주 조개로 상감된 차크 몰(Chacmool) 조각상이 발견되었으며, 이 방은 '제물의 방' 또는 '북쪽 방'으로 불리게 되었다. 약 1년 뒤인 1936년 8월에는 첫 번째 방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두 번째 방이 발견되었는데, 이 방은 '희생의 방'이라 불리며 내부에서 붉은 재규어 조각상과 두 줄로 정렬된 인간의 뼈가 발견되었다.[6]
이러한 발굴 결과를 통해 연구자들은 현재의 엘 카스티요 아래에 더 오래된 피라미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내부 피라미드는 바닥 길이가 33m이고 높이는 약 17m이며, 9개의 단으로 이루어진 구조이다. 차크 몰과 붉은 재규어 왕좌가 발견된 방들은 바로 이 내부 피라미드의 정상 부분에 해당한다.
또한 엘 카스티요는 물이 찬 싱크홀, 즉 세노테 위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고고학계는 초기 피라미드 구조물이 현재 위치보다 동남쪽 세노테에 더 가깝게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한다.[5] 이는 마야인들이 의도적으로 세노테 위에 신전을 건설했으며, 세노테를 신성하게 여겼음을 시사한다.[5]
3. 1. 1. 붉은 재규어 왕좌
1935년 4월, 광범위한 발굴 작업 끝에 피라미드 내부에서 손톱과 이빨, 눈이 진주 조개로 상감된 차크 몰(Chacmool) 조각상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이 발견된 방은 '제물의 방'(혹은 '제물 홀', '북쪽 방')이라고 불리게 되었다.[6] 약 1년 후인 1936년 8월, 첫 번째 방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두 번째 방이 발견되었다. '희생의 방'이라고 불린 이 방 안에서는 뒷벽에 기대어 놓인 두 줄의 사람 뼈와 함께 붉은색 재규어 왕좌가 발견되었다. 이 인간 유해는 모두 북동쪽을 바라보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발견들을 통해 현재의 피라미드 아래에 바닥 길이 33m, 9개의 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높이는 약 17m인 옛 피라미드가 존재했을 것으로 결론지었다. 차크 몰과 붉은 재규어 왕좌가 발견된 방은 바로 이 옛 피라미드의 꼭대기 부분에 해당한다.'붉은 재규어 왕좌'라고 불리는 이 조각상은 발견 당시 왕권의 상징이었던 부싯돌이나 녹색 돌 원판들로 장식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실제 사용 목적보다는 의례적인 중요성을 위해 상징적이고 가치 있는 재료들로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6] X선 형광 분석(XRF) 결과, 왕좌는 진사(황화수은, HgS)가 포함된 붉은색 안료로 칠해져 있었다.[6] 진사는 치첸이트사 주변에서는 구할 수 없는 광물이었기 때문에, 먼 곳에서 해상 교역 등을 통해 들여온 귀한 재료였을 것이다.[6] 붉은색은 마야 문명에서 죽음과 희생뿐만 아니라 생명의 창조, 부활을 상징하는 중요한 색이었다.[6] 마야인들은 사물에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귀한 동물인 재규어를 붉은색으로 칠한 것은 재규어 자체를 제물로 바치거나 신전을 봉인하는 의식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6]
왕좌에 박힌 4개의 어금니는 국립 인류학 역사 연구소(INAH)의 연체동물학 전문가들이 디지털 현미경과 비교 분석을 통해 복족류 연체동물인 소라(''Lobatus costatus'')의 껍데기를 갈아 만든 것으로 확인했다. 이 껍데기 역시 교역을 통해 치첸이트사로 들어온 가치 있는 자원이었다.[6] 왕좌에 박힌 녹색 돌들은 옥의 일종인 연옥으로 밝혀졌는데, 옥은 마야 문명에서 가장 희귀하고 귀한 광물 중 하나였으며, 왕좌에 사용된 최상급 품질의 연옥 또한 멀리서 수입해 온 것이다.[6] 이러한 재료들은 치첸이트사가 활발한 교역 네트워크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6]
고고학자들은 이 붉은 재규어 왕좌가 다른 마야 유적지의 벽화나 부조에 묘사된 왕좌들과 형태가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따라서 이 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최고 대사제나 왕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6] 이 자리는 우주의 중심, 즉 '세계의 중심'(''axis mundi'')을 상징하며, 여기에 앉는 인물은 우주적인 질서를 조정하고 자연을 통제하는 신적인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6] 또한 왕좌에 사용된 재료들이 죽음이나 지하 세계와 관련된 상징성을 가지고 있고, 왕좌가 발견된 방 자체가 외부와 단절된 채 봉인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이 왕좌는 신전을 의례적으로 닫고 봉인하기 위한 제물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해석된다.[6]
3. 2. 천문학적 정렬
유적 내 사원은 세노테(물 동굴) 바로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네 개의 다른 세노테, 즉 세노테 사그라다(북쪽), 톨록(남쪽), 칸주윰(동쪽), 홀툰(서쪽)이 만나는 교차점에 정확히 맞춰져 있다. 이러한 배치는 쿠쿨칸 신전이 '세계축'의 중심에 위치한다는 믿음을 뒷받침한다.[5]신전의 서쪽과 동쪽 면은 해가 가장 높이 뜨는 천정 시점의 일몰과 가장 낮게 뜨는 천저 시점의 일출에 맞춰져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는 전통적인 파종 및 수확 시기의 시작과 같은 달력 상의 중요한 행사들과 연관될 수 있다.[7] 하지만 중남미 지역에서 건축물이 천정이나 천저 통과 시점의 태양 위치와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며, 설령 일치한다 하더라도 다른 요인으로 설명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이러한 정렬은 우연의 일치일 수 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8]
한편, 중남미 건축물에서 태양의 방향을 이용해 특정 일출 및 일몰 날짜를 기록하는 것은 흔한 방식이다. 이 날짜들은 마야 달력 시스템의 기본 주기에 해당하는 13일과 20일의 배수만큼 간격을 두고 나타나며, 연중 특정 계절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를 통해 고대 마야인들이 농사 시기나 관련 종교 의례의 일정을 정하기 위해 태양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달력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건축 방식은 마야 저지대[9]뿐만 아니라 중남미 다른 지역에서도[10] 확인된다.
치첸이트사의 쿠쿨칸 신전의 경우, 북쪽(주요) 면은 방위각 111.72°로 정렬되어 있다. 이는 5월 20일과 7월 24일의 일몰 시 태양의 위치와 정확히 일치하는데, 이 두 날짜 사이의 간격은 각각 65일과 300일로, 마야 달력의 기본 수인 13과 20의 배수에 해당한다. 주목할 점은 툴룸에 위치한 비슷한 신전에서도 동일한 날짜가 기록된다는 사실이다.[11]
4. 최근 연구 동향
2006년경, 치첸이트사 유적을 관리하는 국립 인류학 역사 연구소(INAH)는 방문객의 추락 사망 사고 이후 안전과 유적 보호를 위해 엘 카스티요 정상으로 올라가거나 내부로 들어가는 것을 금지했다.[12] 방문객들은 이제 기념물 주변에서만 관람할 수 있다.
최근 연구를 통해 신전 아래에서 거대한 세노테(석회암 암반이 함몰되어 지하수가 드러난 자연 샘)가 발견되었다. 이 세노테의 크기는 대략 가로 25m, 세로 35m이며 깊이는 약 20m에 달한다. 내부의 물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노테 위에는 약 5m 두께의 석회암층이 덮여 있으며, 신전은 이 석회암층 위에 건설되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전기 비저항 토모그래피(ERT)라는 비파괴적인 탐사 기법을 사용하여 엘 카스티요의 건축 단계를 조사했다.[5] 유적 손상을 피하기 위해 전극을 피라미드 기저부에 배치하여 탐사를 진행한 결과, 현재의 구조물 아래에 두 단계에 걸쳐 지어진 더 오래된 건축 구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두 번째 하부 구조 위에는 또 다른 신전이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치첸이트사가 오랜 기간에 걸쳐 점유되었음을 시사하며, 각 건축 단계의 연대를 밝히는 것은 도시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5]
5. 사진
참조
[1]
논문
El Sol en Chichén Itzá y Dzibilchaltún: la supuesta importancia de los equinoccios en Mesoamérica
2018
[2]
웹사이트
Did the Maya Build Chirping Pyramids?
https://www.history.[...]
2010-11-17
[3]
웹사이트
Archaeological acoustic study of chirped echo from the Mayan temple at Chichen Itza, in the Yucatan Region of Mexico ... Is this the world's oldest known sound recording?
http://acoustics.org[...]
1998-10-13
[4]
문서
Milbrath 1989: 66
[5]
논문
‘Illuminating’ the interior of Kukulkan's Temple, Chichén Itzá, Mexico, by means of a non-conventional ERT geophysical survey
2018
[6]
논문
Portable XRF analysis for the identification of raw materials of the Red Jaguar sculpture in Chichén Itzá, Mexico
2017
[7]
서적
Landscapes of the Itza : Archaeology and art history at Chichen Itza and neighboring sites
University Press of Florida
2018
[8]
논문
Zenith and nadir passages of the Sun in Mesoamerica
https://journals.equ[...]
2018
[9]
서적
Orientaciones astronómicas en la arquitectura maya de las tierras bajas
Instituto Nacional de Antropología e Historia
2015
[10]
논문
Astronomy, Architecture, and Landscape in Prehispanic Mesoamerica
2018
[11]
논문
"Astronomía en la arquitectura de Chichén Itzá: una reevaluación"
https://revistas-fil[...]
2013
[12]
뉴스
"Fin a una exención para los mexicanos: Pagarán el día del equinoccio en la zona arqueológica,"
Diario de Yucatan
200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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