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오스트레일리아의 날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오스트레일리아의 날은 1788년 1월 26일 영국 함대가 시드니 코브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는 호주의 국경일이다. 초기에는 공식적인 기념일로 인식되지 않았으나, 1818년 락런 매쿼리 총독이 기념식을 거행하면서 시작되었다. 현재는 전국적인 행사로 발전하여 다양한 축하 행사가 열리지만, 호주 원주민과 그 지지자들은 이 날을 침략의 날로 여기며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한다. 1938년에는 애도의 날이 선포되었고, 1988년에는 200주년 기념 행사가 대규모로 열렸다. 오늘날에는 시민권 수여식, 올해의 호주인 시상식, 불꽃놀이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며, 호주인들은 역사와 미래를 함께 생각하는 날로 여기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오스트레일리아의 공휴일 - 성금요일
    성금요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날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날로, 부활절 전 금요일에 해당하며, 금식과 회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날로 지켜진다.
  • 오스트레일리아의 공휴일 - 멜버른 컵
    멜버른컵은 매년 11월 첫째 화요일에 호주에서 열리는 3200미터 장애물 경주로, 3세 이상 경주마 24마리가 출전하며, "한 국가를 멈추게 하는 경주"로 불릴 만큼 큰 인기를 누리고 빅토리아주 일부 지역에서는 공휴일로 지정된다.
  • 1월의 기념일 - 성년의 날
    성년의 날은 매년 5월 셋째 주 월요일에 사회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우고 성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부여하기 위해 기념하는 날로, 삼한시대부터 유래하여 조선시대의 관례와 계례를 거쳐 현대에는 여성가족부 주관 기념행사와 선물 문화로 이어진다.
  • 1월의 기념일 - 한글날
    한글날은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는 날로, 대한민국에서는 매년 10월 9일에 기념하며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알리고 한글 사랑 의식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날
기본 정보
2014년 오스트레일리아 데이의 시드니 하버
2014년 오스트레일리아 데이의 시드니 하버
다른 이름애니버서리 데이
파운데이션 데이
서바이벌 데이
인베이전 데이
기념 대상오스트레일리아 시민, 거주민 및 해외 거주자
기간1일
빈도매년
날짜1월 26일
기념 행사가족 모임
불꽃놀이
피크닉 및 바비큐
퍼레이드
시민권 수여식
오스트레일리아 데이 훈장
오스트레일리아 올해의 인물 발표
기타 많은 축하 행사와 함께 시위 및 추모식
종류국가
세부 종류국가
의미1788년 제1함대가 시드니 코브에 상륙한 날짜
역사적 배경
날짜 의미1788년 제1함대가 시드니 만에 상륙한 날
논쟁원주민들에게는 식민지화 시작을 상징하는 날로, '인베이전 데이' 또는 '서바이벌 데이'로도 불림
날짜 변경에 대한 논쟁 지속
현대적 기념 행사
행사 종류가족 모임, 불꽃놀이, 피크닉, 바비큐
퍼레이드, 시민권 수여식
오스트레일리아 데이 훈장 수여
오스트레일리아 올해의 인물 발표
논쟁날짜 변경에 대한 논쟁
여론
날짜 변경대부분의 원주민은 오스트레일리아 데이의 날짜와 명칭 변경을 원함
여론 조사에서 날짜 변경에 대한 의견 변화가 나타남
입장일부는 날짜 변경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주장
일부는 오스트레일리아 민족주의를 더욱 강화한다고 주장
60%의 오스트레일리아인이 1월 26일에 오스트레일리아 데이를 유지하기를 원하지만, 35세 미만은 반대함
기타
관련 정보SBS 뉴스
National Australia Day Council
ABC 뉴스

2. 역사

1788년 1월 26일, 영국 함대가 시드니 코브에 도착하여 식민지를 개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의 날이 제정되었다.[20] 초기에는 주목받지 못했으나, 1818년 뉴사우스웨일스주 주지사 락런 매쿼리가 기념식을 거행하면서 점차 자리를 잡았다.[29] 1838년에는 식민지 건설 50주년을 기념하여 오스트레일리아 최초의 공휴일로 선포되었다.[34]

19세기 후반, 호주 원주민 협회(ANA)는 1월 26일을 "ANA 데이"로 기념하기 시작했다.[5] 1910년 남호주는 1월 26일을 "건국 기념일"로 채택했고,[25] [37] 1935년에는 모든 주에서 1월 26일을 오스트레일리아의 날로 기념하게 되었다.[25] 1938년, 원주민 진보 협회와 호주 원주민 연맹은 이날을 "백인들의 우리나라 탈취"에 대한 항의로 애도의 날로 선포하기도 했다.[46] 1946년, 연방 및 주 정부는 1월 26일을 "호주 날"로 통일하기로 합의했다.[47]

1988년, 오스트레일리아 이주 200주년 기념 행사가 대규모로 개최되었고,[25] 1994년부터는 모든 주와 준주에서 1월 26일을 통일된 공휴일로 기념하고 있다.[6]

2023년 호주 날,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 전시된 "새벽의 반영" 원주민 예술 작품

2. 1. 첫 함대의 도착: 1788년

1787년 5월 13일, 영국 해군성은 11척의 함대로 구성된 첫 함대(First Fleet)를 뉴홀랜드(New Holland)로 파견했다.[18] 아서 필립 함장의 지휘 아래, 이 함대는 제임스 쿡 중위가 탐험했던 뉴사우스웨일스 해안의 보타니 만에 유형지를 설립하려 했다. 이는 북아메리카에서 13개 식민지를 상실한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18] 함대는 1788년 1월 18일부터 20일 사이에 도착했지만, 보타니 만은 부적합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1월 21일, 필립과 몇몇 장교들은 포트 잭슨으로 이동하여 정착에 더 적합한 장소인지 살펴보았다. 그들은 1월 23일까지 그곳에 머물렀고, 필립은 그들이 상륙한 지점을 시드니 코브라고 명명했다. 그들은 또한 현지 원주민들과 접촉했다.

1월 23일 저녁, 필립은 함대를 시드니 코브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1월 24일, 아스트롤라브(Astrolabe)호와 부솔(Boussole)호를 발견했다.

1월 25일, 아서 필립, 필립 기들리 킹, 몇몇 해병대원들과 약 40명의 유죄 판결자들을 태운 호만이 시드니 코브에 정박했다. 한편, 호의 함장 존 헌터는 프랑스 함선과 접촉하여 사령관 로베르 쉬통 드 클로나르 함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클로나르는 헌터에게 함대 사령관이 장 프랑수아 드 갈로 드 라 페루즈라고 알렸다. 다른 배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1월 26일에 모두 시드니 코브로 항해했다.[19]

1788년 1월 26일 시드니 코브에서 영국 국기를 게양하는 아서 필립 함장. 알저넌 털미지(Algernon Talmage)의 1937년 유화 스케치.


호주 건국 기념판, 서큘러 키 로프터스 거리


1월 26일, 시드니 코브에 상륙하여 야영지를 위한 지면 정리가 시작되었다. 필립의 기록에 따르면, 26일 저녁에 해안에 국기가 게양되었고, 총독과 몇몇 주요 장교들과 다른 사람들이 깃대 주변에 모여 왕의 건강과 정착의 성공을 기원하며 축배를 들었다.[20]

그러나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의 공식적인 설립은 1788년 2월 7일에 이루어졌다. 영국 국왕 조지 3세에게 모든 토지를 귀속시킨 것도 1788년 2월 7일부터다.[21][22][23]

2. 2. 초기 기념 (1788–1838)

1788년 식민지 건설 기념일은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1806년과 1808년의 ''뉴사우스웨일즈 연감''에서도 1월 26일을 특별하게 언급하지 않았다.[24] 그러나 1808년이 되자 식민지 이주민들, 특히 자유민 신분이 된 유형수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에 대한 사랑을 축하하기" 위해[25] "술과 흥겨운 축제"를 열기 시작했다.[26] 1808년 축제는 1월 25일 일몰부터 밤늦도록 이어졌으며, 주요 축배는 조지 존스턴 소령에게 돌아갔다. 존스턴은 첫 함대에서 육지에 내린 첫 번째 장교라는 영예를 안았는데, 유형수 제임스 루스(James Ruse)의 등에 업혀 상륙정에서 내렸다. 애너데일로 귀가하는 길에 작은 배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스턴은 이듬날인 1808년 1월 26일 "럼 반란(Rum Rebellion)"으로 알려지게 된 사건에서 윌리엄 블라이(William Bligh) 총독을 체포하는 데 뉴사우스웨일즈 군단(New South Wales Corps) 장교들을 이끌었다.

연감(Almanac)들은 "첫 상륙일(First Landing Day)" 또는 "건국일(Foundation Day)"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성공한 이민자들은 기념 만찬을 열기 시작했다.[27] 1817년 ''시드니 가제트 앤 뉴사우스웨일즈 애드버타이저(The Sydney Gazette and New South Wales Advertiser)''는 아이작 니콜스(Isaac Nichols)의 집에서 열린 비공식 모임 중 하나를 보도했다.

1818년, 식민지 건설 30주년을 맞아 랙런 매쿼리(Lachlan Macquarie) 총독은 첫 공식 기념식을 통해 이 날을 기념하기로 했다.[29] 총독은 이 날을 모든 정부 직원의 공휴일로 선포하고 각자에게 "약 0.45kg의 신선한 고기"를 추가로 지급할 것을 명령했으며, 도우스 포인트에서 30발의 예포를 발사하도록 명령했다 – 식민지가 존재했던 해수만큼.[30] 이는 이후 총독들에 의해 계속 이어지는 전통이 되었다.[25]

1838년 1월 26일, 시드니 레가타의 전통이 된 첫 번째 행사


당시 건국일(Foundation Day)로 알려진 이 날은 뉴사우스웨일즈에서 공식적으로 기념되었고, 스포츠 행사와 관련되게 되었다.[29] 그중 하나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는 전통이 되었다. 1837년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 데이 레가타(regatta)가 된 최초의 경주가 시드니 항(Sydney Harbour)에서 열렸다.[25][31] 1등급 범선부터 뱃사공(watermen)의 스키프(skiff)까지 다양한 종류의 배에 대한 5개의 경주가 열렸고, 사람들은 해안과 항구에 있는 배의 갑판, 특히 증기선(steamboat)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n)''호와 ''프랜시스 프리링(Francis Freeling)''호에서 축제를 관람했다 – 후자는 축제 기간 동안 좌초되어 다음 날 다시 띄워야 했다.[32] 레가타의 성공에 만족한 주최측은 이를 매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31] 그러나 일부 축하 행사는 "통합 오스트레일리아인(United Australians)" 만찬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난 사람들로 제한되면서 엘리트주의적인 분위기를 띄게 되었다.[25] ''시드니 헤럴드(Sydney Herald)''는 만찬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그 결정을 정당화했다.

이듬해인 1838년은 식민지 건설 50주년이었고,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최초의 공휴일이 선포되었다. 레가타가 두 번째로 열렸고, 사람들은 행사를 보기 위해 해안가에 모였거나 5척의 증기선 (''메이트랜드(Maitland)'', ''익스페리먼트(Experiment)'',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래피드(Rapid)'', 그리고 소형 증기선 ''파이어플라이(Firefly)'')에 승선하여 물 위에서 행사를 지켜보았다. 정오에는 도우스 포병대에서 영국 왕실기가 게양되면서 50발의 대포가 발사되었고, 저녁에는 로켓과 다른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았다.[34] 만찬은 전년도보다 규모가 작아 1837년 160명에 비해 40명만 참석했고,[33][34] 기념일 전체는 "모든 사람을 위한 날"로 묘사되었다.[29]

2. 3. 기념일의 확장 (1839–1935)

1888년 이전에는 1월 26일이 뉴사우스웨일스주의 행사였으며, 각 식민지는 자체적인 건국 기념 행사를 가졌다. 태즈메이니아에서는 레가타 데이가 처음에는 아벨 타스만 상륙 기념일인 12월에 열렸다.[35] 남호주는 12월 28일 원포고일을 기념했다. 서호주는 6월 1일 자체적인 건국 기념일(현재 서호주 데이)을 기념했다.[25]

1788년 시드니 코브에 첫 함대가 도착하고 아서 필립 선장이 동부 대륙에 대한 영국 주권을 선포한 1월 26일을 기념하기로 한 결정은 1871년 빅토리아주에서 설립된 백인 "토착 출신" 중산층 남성들의 단체인 호주 원주민 협회(ANA)에 의해 뉴사우스웨일스주 외부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졌다.[36] 그들은 이 날을 "ANA 데이"라고 불렀다.[5]

1888년에는 애들레이드를 제외한 모든 식민지 수도에서 "기념일"을 기념했다. 1910년 남호주는 1월 22일에 열렸던, 1910년 5월 사망한 에드워드 7세의 즉위를 기념하는 또 다른 공휴일인 즉위 기념일을 대체하기 위해 1월 26일을 "건국 기념일"로 채택했다.[25] [37]

최초의 호주 데이는 제1차 세계 대전에 호주가 참전한 데 대한 대응으로 제정되었다. 1915년, 네 명의 군인의 어머니인 엘렌 "엘리" 워튼 커크 MBE(결혼 전 성씨 클레멘츠)는 부상당한 병사들을 위한 기금 마련을 구체적인 목표로 삼아 국경일을 생각해 냈으며,[38]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이 용어가 만들어졌다.[39][37] 1915년 호주 데이를 기념하기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7월 30일이 선택되었으며,[40] 전쟁 노력을 지원하기 위한 많은 모금 활동이 이 날에 진행되었다.[41] 제1차 세계 대전의 그 이후 해에도 7월에 개최되었다: 1916년 7월 28일,[41] 1917년 7월 27일,[42] 1918년 7월 26일.[43]

1월 26일에 기념될 국경일이라는 아이디어는 앤잭 데이와의 경쟁 때문에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44] 빅토리아주는 1931년에 1월 26일을 호주 데이로 채택했으며,[29] 1935년까지 호주의 모든 주에서 1월 26일을 호주 데이로 기념했다(하지만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는 여전히 기념일로 알려져 있었다).[25] "건국 기념일"이라는 이름은 지역적으로 계속 사용되었다.[45]

2. 4. 애도의 날과 200주년 기념 (1936–1988)

1938년 시드니에서 열린 150주년 기념 퍼레이드


1938년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영국 식민지 개척 150주년이 널리 기념되었다. 1936년에 기념위원회 설립과 함께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 해 뉴사우스웨일스는 전통적인 연휴를 포기한 유일한 주였으며, 연례 기념일 공휴일은 기념일인 1월 26일 수요일에 지정되었다.[25] 그러나 이 날은 원주민 진보 협회(Aborigines Progressive Association)와 호주 원주민 연맹(Australian Aborigines League)에 의해 "백인들의 우리나라 탈취"에 대한 항의로 애도의 날로 선포되기도 했다.[46]

1946년 연방 및 주 정부는 1월 26일을 "호주 날"로 기념일을 통일하기로 합의했지만,[47] 공휴일은 기념일에 가장 가까운 월요일로 지정되었다.[48]

1949년 1월 26일, 1948년 국적 및 시민권법(Nationality and Citizenship Act 1948)이 발효되어 최초로 오스트레일리아 시민권이 만들어졌다. 이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국민들은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의 다른 모든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영국 신민이었지만, 이제는 영국 신민이자 오스트레일리아 시민이 되었다.[49][50]

역사가 켄 잉글리스(Ken Inglis)는 1967년 당시 호주 날이 캔버라에서는 공개적으로 기념되지 않았다고 썼다.[44]

2. 5. 현대의 기념 (1988년 이후)

1988년 오스트레일리아 이주 20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첫 함대 도착 200주년 기념행사가 대규모로 조직되었으며, 모든 주요 도시에서 많은 중요한 행사가 열렸다.[25] 시드니 행사에는 2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으며,[29] 거리 파티, 콘서트 (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계단과 전정, 그리고 다른 많은 공공 장소에서 공연 포함), 미술 및 문학 경연 대회, 역사 재현, 그리고 새로운 위치에 있는 파워하우스 박물관 개관 등이 포함되었다. 첫 함대 도착 재현 항해가 시드니 항구에서 열렸으며, 1년 전 포츠머스에서 항해해 온 배들이 참여했다.[25][29]

시드니 항구, 1988년 1월 26일


퍼스의 호주 날


줄리아 길라드(Julia Gillard) 총리의 2013년 캔버라 국기 게양 및 시민식


수년 동안 퍼스 시 스카이웍스(City of Perth Skyworks)는 호주에서 가장 큰 호주 날 불꽃놀이 행사였다.


서호주(Western Australia) 데니마크(Denmark)의 버리지 공원(Berridge Park)에서 열린 호주 날 바비큐


시민권 수여식, 올해의 호주인(Australian of the Year) 시상식, 그리고 1975년에 도입된 호주 수훈(Australia Day Honours)[51] 등 다양한 기념 행사와 시민 의식은 1950년대부터 호주 날에 거행되기 시작했다.[44]

1988년 이후 호주 날 참여가 증가했고, 1994년 모든 주와 준주는 요일과 관계없이 1월 26일을 통일된 공휴일로 처음 기념하기 시작했다.[6] 이전에는 일부 주에서는 긴 주말을 제공하기 위해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공휴일을 기념했다.[52] 2007년에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8%가 조직된 호주 날 행사에 참석했고, 26%는 가족 및 친구들과 함께 기념했다고 한다.[53] 이것은 이전 조사 프로젝트의 결과를 반영하는 것으로, 응답자의 66%가 2005년 호주 날을 적극적으로 기념할 것으로 예상했다.[54]

야외 콘서트, 지역 바비큐, 스포츠 경기, 축제 및 불꽃놀이는 호주 전역의 지역 사회에서 열리는 많은 행사 중 일부이다. 이러한 공식 행사는 각 주와 준주에 있는 공식 위원회 또는 위원회와 지역 위원회인 호주 날 협의회(National Australia Day Council)가 주관한다.[55]

시드니에서는 항구가 중심이 되고, 페리 경주와 범선 경주와 같은 보트 경주가 열린다. 애들레이드에서는 엘더 공원(Elder Park)에서 퍼레이드, 콘서트 및 불꽃놀이를 하는 "도시에서의 호주 날(Australia Day in the City)"이 주요 행사이며, 2019년에는 지역 사회에 기여한 원주민들을 인정하고 기억하며 존중하기 위해 새로운 야외 예술 설치물이 설치되었다.[56] 멜버른(Melbourne)의 행사는 국민 행진과 보야지스 콘서트(Voyages Concert)를 특징으로 다문화주의를 강조한다.[57][58] 퍼스에서는 2022년까지 수년 동안 스카이웍스가 호주 날에 선보이는 가장 큰 단일 행사였다.[59]

2012년 이후, 2015년과 2020~2022년을 제외하고 멜버른 빅토리 FC(Melbourne Victory FC)와 시드니 FC(Sydney FC) 간의 빅 블루 경기가 매년 호주 날에 열렸다.[60]

시민권 수여식도 일반적으로 열리며, 호주 날은 현재 호주 시민권을 취득하는 가장 큰 행사이다. 2011년 1월 26일에는 300건 이상의 시민권 수여식이 열렸고, 143개국 출신 약 13,000명이 호주 시민권을 취득했다.[61]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시민권 수여식에는 기존 시민들의 선서가 포함되었다. 2007년에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8.6%가 시민권 수여식이 호주 날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했다.[53] 2019년 9월, 모리슨 정부(Morrison government)는 ''호주 시민권 수여식 규정(Australian Citizenship Ceremonies Code)''을 수정하여 지방 의회가 호주 날에 시민권 수여식을 개최하도록 했다.[62]

공식 호주 날 대사 프로그램은 고성취 호주인들의 지역 사회 기념 행사 참여를 지원함으로써 전국 지역 사회의 기념 행사를 지원한다. 2011년에는 385명의 대사가 384개의 지역 사회 기념 행사에 참여했다.[63] 호주 훈장(Order of Australia) 시상식도 호주 날의 특징이다. 호주 날 공로 메달(Australia Day Achievement Medallion)은 정부 및 비정부 기관 모두에서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은 시민들에게 지방 정부에서 수여된다. 총독과 총리는 모두 전 국민에게 연설을 한다. 매년 호주 날 전야에 총리는 "호주 공동체와 국가에 대한 중요한 기여"를 보여주고 "호주 공동체를 위한 영감을 주는 역할 모델"인 호주 시민에게 수여되는 올해의 호주인 상 수상자를 발표한다.[64] 이 상의 하위 부문에는 올해의 젊은 호주인(Young Australian of the Year)과 올해의 고령 호주인(Senior Australian of the Year), 그리고 호주의 지역 영웅 상이 포함된다.

2009년 조사에 따르면 호주인들은 호주 날에 역사와 미래를 거의 동등하게 반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43%는 호주 날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라고 동의했고, 41%는 "우리의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으며, 13%는 "이때 현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3%는 확신하지 못했다.[65] 제1함대의 도착을 반영하는 날짜에도 불구하고, 현대 기념 행사는 특별히 역사적인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대규모 재현 행사는 없으며, 국가 지도자의 참여는 주로 올해의 호주인 시상식 발표 및 시민권 수여식과 같은 행사에 집중된다.[66]

2009년 11월 뉴스폴(Newspoll)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0%가 호주 날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호주의 원주민과 문화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고 보고되었다. 유사한 비율(89%)이 "국가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했다.[67]

3. 논쟁: 침략의 날, 생존의 날

일부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날을 영국 정착이 호주 원주민들에게 미친 부정적 영향의 상징으로 여긴다.[68] 1888년, 뉴사우스웨일스 주 총리 헨리 파크스(Henry Parkes)는 원주민을 기념 행사에 포함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가 그들을 강탈했다는 것을 상기시켜야 합니까?"라고 대답했다.[69]

1938년 150주년 기념 행사에는 원주민 진보 협회(Aborigines Progressive Association)와 호주 원주민 연맹(Australian Aborigines League)이 "백인의 우리나라 탈취"에 항의하여 선포한 추모의 날이 함께 진행되었다.[46] 1988년 200주년 기념 행사에서는 시드니에 모인 많은 수의 원주민들이 원주민 문화의 상실을 기리는 "침략의 날" 기념식을 주도했다.[7] 일부 원주민 인사와 다른 사람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날을 "침략의 날"이라고 계속 부르고 있으며, 매년 거의 항상, 때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날 행사에서 항의가 발생한다.[70] 수천 명의 사람들이 호주 국가의 날에 수도의 주요 도시에서 시위 행진에 참여하며, 2018년 멜버른 시위 참가자 수는 수만 명에 달했다.[71][72][73][74]

이 기념일은 "생존의 날"이라고도 불리며, 1992년 시드니에서 처음 열린 생존의 날 콘서트와 같은 행사를 통해 원주민과 그들의 문화가 식민지배와 차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기념한다.[75] 2016년, 국립 원주민 텔레비전(National Indigenous Television)은 이 날의 혼합된 성격을 인정한다는 근거로 "생존의 날"을 선호하는 이름으로 선택했으며, 이 용어는 "침략을 인정하지만" 원주민 전체 이야기를 구성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76]

이에 대한 대응으로 공식 기념 행사에서는 과거를 기리고 현재를 축하하는 시드니에서 열린 Woggan-ma-gule 의식과 같은 의식을 통해 원주민을 포함하려고 노력했다.[77] 호주 공무원(Australian Public Service)을 포함한 여러 주요 공공 및 민간 고용주들은 직원들이 오스트레일리아의 날에 근무하고 다른 날에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2015년 이후 에센셜 미디어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오스트레일리아의 날을 기념하는 사람들의 수가 감소하고 있으며, 이는 태도 변화를 나타낸다. 2019년에는 40%, 2020년에는 34%가 이 날을 기념했다. 2021년에는 29%로 감소했으며, 같은 해 53%는 이 날을 단순한 공휴일로 여긴다고 답했다.[79]

디킨 대학교(Deakin University) 연구팀의 여론 조사 결과(2021년 11월)에 따르면 응답자의 60%가 날짜 변경에 강하게 반대하거나 반대했지만, 2023년 6월에는 이 수치가 56%로 떨어졌다. 1월 26일에 오스트레일리아의 날을 기념하는 것에 대해 승인하는지 질문했을 때, 35세 미만 응답자는 각각 53%와 57%가 반대했고, 35세에서 54세 사이 응답자는 각각 35%와 42%가 반대했다. 저자는 "젊은 호주인들이 변화를 위한 압력을 주도하고 있지만, 모든 연령대에서 변화를 향한 움직임이 있다"고 언급한다.[80]

참조

[1] 웹사이트 Why Australia Day is really held on 26 January https://www.sbs.com.[...] 2023-01-24
[2] 웹사이트 Australia Day https://www.australi[...] National Australia Day Council
[3] 뉴스 The Australia Day events planned for the nation's capital cities https://www.abc.net.[...] 2024-01-25
[4] 간행물 National Australia Day Council Annual Report 2010–11
[5] 뉴스 Australia Day in question http://www.theage.co[...] 2008-01-26
[6] 뉴스 The evolution of Australia Day controversy https://www.bbc.com/[...] 2018-01-25
[7] 웹사이트 90 years apart and bonded by a nation http://www.theage.co[...] Australia Day Council of New South Wales 2009-01-25
[8] 웹사이트 Australia Day, Invasion Day, Survival Day: What's in a name? http://www.sbs.com.a[...] National Indigenous Television|NITV 2016-01-21
[9] 뉴스 Most Indigenous Australians want date and name of Australia Day changed, poll finds https://www.theguard[...] 2017-01-26
[10] 웹사이트 Abolish Australia Day – changing the date only seeks to further entrench Australian nationalism https://indigenousx.[...] 2018-01-23
[11] 뉴스 'Abolish Australia Day': Invasion Day marches draw tens of thousands of protesters https://www.theguard[...] 2018-01-26
[12] 웹사이트 Ipsos Australia Day Poll Report https://www.ipsos.co[...] 2021-01-24
[13] 웹사이트 Not going to solve anything: Why some Australians don't want a date change https://www.smh.com.[...] 2021-01-24
[14] 뉴스 We're changing our minds on Australia Day and it's happening rapidly, Australia Talks reveals https://www.abc.net.[...] Australian Broadcasting Corporation 2021-06-18
[15] 웹사이트 New Poll: Majority Of Australians Support Australia Day On 26 January https://ipa.org.au/p[...] 2022-01-16
[16] 웹사이트 60% of Australians want to keep Australia Day on January 26, but those under 35 disagree http://theconversati[...] 2022-01-24
[17] 뉴스 Guardian Essential poll reveals growing support for changing the date of Australia Day https://www.theguard[...] 2022-01-26
[18] 논문 Great Britain's Secret Convict Trade to America, 1783–1784 1984-12
[19] 서적 1788: The Brutal Truth of the First Fleet
[20] 서적 The Voyage of Governor Phillip to Botany Bay with an Account of the Establishment of the Colonies of Port Jackson and Norfolk Island; compiled from Authentic Papers, which have been obtained from the several Departments to which are added the Journals of Lieuts. Shortland, Watts, Ball and Capt. Marshall with an Account of their New Discoveries, embellished with fifty five Copper Plates, the Maps and Charts taken from Actual Surveys, and the plans and views drawn on the spot, by Capt. Hunter, Lieuts. Shortland, Watts, Dawes, Bradley, Capt. Marshall, etc. http://gutenberg.net[...] 1789
[21] 웹사이트 NSW Land and Property Management Authority, A Guide to Searching New South Wales Land Title Records http://www.baseline.[...]
[22] 웹사이트 Australia Day http://www.statusquo[...]
[23] 웹사이트 New South Wales 1867–1870 http://www.ausflag.c[...]
[24] 서적 The Colonial Earth Melbourne University Publishing
[25] 웹사이트 Celebrating Australia: A History of Australia Day essay http://www.australia[...] National Australia Day Council
[26] 웹사이트 Student Resources: Australia Day History http://www.australia[...] Australia Day Council of New South Wales
[27] 뉴스 Australia Day, Invasion Day, Survival Day: a long history of celebration and contestation https://theconversat[...]
[28] 뉴스 Sydney http://nla.gov.au/nl[...] 1817-02-01
[29] 웹사이트 Student Resources: Australia Day History http://www.australia[...] Australia Day Council of New South Wales
[30] 뉴스 Government and General Orders http://nla.gov.au/nl[...] 1818-01-24
[31] 뉴스 The Regatta http://nla.gov.au/nl[...] 1837-01-28
[32] 뉴스 Regatta http://nla.gov.au/nl[...] 1837-01-30
[33] 뉴스 Dinner of the United Australians http://nla.gov.au/nl[...] 1837-01-30
[34] 뉴스 The Jubilee http://nla.gov.au/nl[...] 1938-01-29
[35] 뉴스 The Regatta http://nla.gov.au/nl[...] 1838-12-07
[36] 웹사이트 January twenty-six https://www.slq.qld.[...] 2021-01-22
[37] 웹사이트 First Fleet or summer holiday: Why does South Australia celebrate January 26? https://www.adelaide[...] 2019-01-24
[38] 뉴스 Idea of Australia Day Originated with Woman http://nla.gov.au/nl[...] 1915-07-29
[39] 웹사이트 The first Australia Day: 30 July 1915 https://www.abc.net.[...] Australian Broadcasting Corporation 2015-07-27
[40] 뉴스 Australia Day fixed for July 30. Meeting committee appointed https://trove.nla.go[...] 1915-06-07
[41] 웹사이트 For Australia's Heroes – the other 'Australia Day', 30 July 1915. https://www.awm.gov.[...]
[42] 뉴스 Adelaide Advertiser, 25 July 1917 https://trove.nla.go[...]
[43] 뉴스 Adelaide Advertiser, 27 July 1918 https://trove.nla.go[...]
[44] 웹사이트 Why Australia Day survives, despite revealing a nation's rifts and wounds http://theconversati[...] 2018-01-21
[45] 뉴스 Australia's National Day http://nla.gov.au/nl[...] 1955-02-03
[46] 웹사이트 The 1938 Day of Mourning https://aiatsis.gov.[...] 2023-01-20
[47] 웹사이트 Chronology http://www.australia[...] Australia Day Council of NSW
[48] 웹사이트 History of Australia Day http://www.australia[...] National Australia Day Council
[49] 웹사이트 Documenting Democracy https://www.founding[...]
[50] 간행물 Proclamation https://www.legislat[...] 1949-01-24
[51] 웹사이트 It's an Honour https://www.pmc.gov.[...] Australian Government
[52] 웹사이트 Celebrating Australia: A History of Australia Day https://www.australi[...] National Australia Day Council
[53] 서적 4th International Event Research Conference Victoria University
[54] 보고서 Newspoll Omnibus Survey Australia Day 2005 Elliott and Shanahan Research
[55] 웹사이트 National Australia Day Council: Annual Report 2008–2009 http://ausdayold.sit[...] National Australia Day Council
[56] 웹사이트 Australia Day https://australiaday[...]
[57] 뉴스 Australia Day Program 2010-01-20
[58] 서적 Australia Day: A Day for All Australians? Palgrave Macmillan
[59] 웹사이트 City of Perth Australia Day Skyworks http://www2b.abc.net[...] Australian Broadcasting Corporation
[60] 웹사이트 'Not a huge fan of it': A-League players uncomfortable with Australia Day fixtures https://www.smh.com.[...] 2023-01-25
[61] 보고서 Annual Report 2010–2011 Department of Immigration and Citizenship
[62] 웹사이트 Record number of Australian citizens to be conferred this Australia Day https://minister.hom[...] 2020-01-26
[63] 보고서 National Australia Day Council Annual Report 2010–11 National Australia Day Council
[64] 웹사이트 Selection criteria http://www.australia[...] National Australia Day Council
[65] 보고서 Newspoll research conducted in November 2009 for the National Australia Day Council Newspoll
[66] 보고서 National Australia Day Council, Annual Report 2008–2009 National Australia Day Council
[67] 웹사이트 Newspoll Omnibus Survey http://www.australia[...] 2018-10-01
[68] 뉴스 Obey the law at least, Abbott tells migrants http://www.smh.com.a[...] 2010-01-23
[69] 뉴스 What our leaders say about Australia Day – and where did it start, anyway? https://www.theguard[...] 2018-01-19
[70] 뉴스 Reconciliation can start on Australia Day http://www.theage.co[...] 2007-01-29
[71] 웹사이트 Invasion Day marked by thousands of protesters calling for equal rights, change of date http://www.abc.net.a[...] 2018-01-30
[72] 뉴스 Australia Day 2018: Thousands turn out for protest in Melbourne CBD http://www.heraldsun[...] 2018-01-28
[73] 뉴스 'Abolish Australia Day': Invasion Day marches draw tens of thousands of protesters https://www.theguard[...] 2018-01-27
[74] 뉴스 Invasion Day rally 2019: where to find marches and protests across Australia https://www.theguard[...] 2019-01-25
[75] 웹사이트 Significant Aboriginal Events in Sydney http://www.cityofsyd[...] 2007-01-29
[76] 웹사이트 Australia Day, Invasion Day, Survival Day: What's in a name? http://www.sbs.com.a[...] 2016-01-20
[77] 웹사이트 Young and free gather to rejoice – National http://www.smh.com.a[...] 2017-01-13
[78] 뉴스 Hundreds of thousands told they can 'swap the date' and work Australia Day https://www.smh.com.[...] 2022-01-18
[79] 뉴스 Australia Day poll shows how attitudes to changing the date have shifted https://www.news.com[...] 2021-01-21
[80] 웹사이트 Support for Australia Day celebration on January 26 drops: new research https://theconversat[...] 2024-01-26
[81] 서적 Western Australian Year Book https://www.ausstats[...] 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2022-12-27
[82] 서적 Western Australian Year Book https://www.ausstats[...] 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2022-12-2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