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하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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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하펜역은 독일 베를린에 위치했던 U-Bahn 역으로, 1902년 개통되어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중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전쟁 이후 복구되지 않아, 베를린에서 유일하게 파괴된 채로 남은 역이다. 1961년 베를린 장벽 건설로 인해 U1 노선이 폐쇄되었고, 독일 재통일 이후 노선이 재개통되었지만 역은 재건되지 않았다. 현재는 고가 철도 지지대와 옹벽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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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하펜역 - [지명]에 관한 문서 | |
|---|---|
| 지도 정보 | |
| 기본 정보 | |
| 역명 | 오스트하펜 |
| 원어 역명 | Osthafen |
| 위치 | 베를린 프리드리히스하인크로이츠베르크구 |
| 폐지일 | 파괴: 폐지: |
| 승강장 | 2면 2선(상대식) |
![]() | |
| 노선 정보 | |
| 노선 | 베를린 지하철 B선 |
| 이전 역 | (슐레지셰스 토어) |
| 이전 역 거리 | 0.5 |
| 다음 역 | (바르샤우어 브뤼케) |
| 다음 역 거리 | 0.3 |
2. 역사
베를린 지하철의 초기 역사와 함께 시작된 슈트랄라우어 토어역(Stralauer Tor)은 1896년 9월 10일 첫 삽을 뜬 후[1] 1902년 2월 18일 포츠다머 플라츠역까지 이어지는 첫 노선과 함께 개통되었다. 오버바움교 북동쪽 고가교 위에 건설되었으며,[1] 초기에는 노선의 동쪽 종착역이었으나, 개통 6개월 후인 1902년 8월 17일 바르샤우어 슈트라세역(당시 바르샤우어 브뤼케역)까지 노선이 연장되면서 중간역이 되었다.[1]
1901년 독일어 철자법 개정에 따라 역명 표기가 Stralauer Thorde에서 Stralauer Tor|슈트랄라우어 토어de로 변경되었으며, 1924년 9월 15일에는 인근 베를린 동항(Osthafen)의 이름을 따 Osthafen|오스트하펜de역으로 다시 개칭되었다.[3][1]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인 1945년 3월 10일, 연합군의 베를린 폭격으로 역 건물이 완전히 파괴되었다.[4][1] 전쟁 이후 BVG는 오스트하펜역과 바르샤우어 슈트라세역 사이의 역간거리가 320m로 매우 짧고, 전쟁으로 역 주변 지역이 크게 파괴되어 잠재 승객 수가 감소했으며, 역이 위치했던 곳이 이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가 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역을 복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4][1]
1961년 베를린 장벽 건설로 오버바움교를 통과하는 노선 운행이 중단되었고, 독일 재통일 이후 1995년에 노선 운행이 재개되었지만 오스트하펜역은 끝내 재건되지 않았다.[1] 현재는 역이 있던 자리에 고가 철도 지지대와 옹벽 일부만이 남아 있으며,[4][1] 베를린에서 전쟁으로 파괴된 후 복구되지 않은 유일한 베를린 U반 역으로 기록되어 있다.[4]
2. 1. 건설 및 개통 (1896년 ~ 1902년)
1896년 9월 10일 베를린 지하철의 기공식이 열리면서 슈트랄라우어 토어-포츠다머 플라츠 구간 건설이 시작되었다.[1] 이 구간 공사는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어 1902년 2월 18일 개통에 이르렀다. 역은 오토 슈탄(Otto Stahn)이 1894년부터 1896년까지 건설을 지휘한 오버바움교 북동쪽 고가교 위에 바로 인접하여 건설되었다.[1] 다리 완공 후, 독일 엔지니어링 회사인 지멘스 & 할스케가 역 건설을 맡아 고가교 설계에 통합했다.[1]역사 설계는 파울 비티히(Paul Wittig)가 담당했으며, 실제 공사는 1898년부터 1900년까지 진행되었다. 역사 외부 설계는 지멘스의 자체 설계국에서 담당했는데, 프린첸슈트라세역 및 괴를리츠역의 설계를 참조했다.
개통 당시 역명은 '슈트랄라우어 토어'(Stralauer Thor)였으나, 1901년 독일어 철자법 개정에 따라 'Stralauer Tor'로 표기가 변경되었다. 역은 둥근 지붕과 양쪽 승강장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지상 계단 입구를 갖춘 고가역이었다.[1] 승강장은 상대식으로 설치되었으며, 6량 열차가 정차할 수 있도록 길이 73m, 너비 3.5m 규모로 설계되었다.[2] 승강장은 노면에서 7.5m 높이에 위치했다. 지상의 도로 부지가 좁았기 때문에 출구는 교통섬으로 연결되었으며, 이는 프린첸슈트라세역과 유사한 구조였다.[2]
1902년 2월 18일, 베를린 최초의 고가 및 지하 전기 열차 노선 개통과 함께 슈트랄라우어 토어역이 영업을 시작했다.[1] 개통 초기에는 이 노선의 동쪽 종착역 역할을 했으나, 약 6개월 후인 1902년 8월 17일부터는 바르샤우어 슈트라세역(당시 바르샤우어 다리역)이 새로운 종착역이 되었다.[1]
2. 2. 역명 변경과 운영 (1902년 ~ 1945년)
1901년 독일어 철자법 개정에 따라 역명 표기가 Stralauer Thorde에서 Stralauer Tor|슈트랄라우어 토어de로 변경되었다. 개통 6개월 후인 1902년 8월 17일, 현재의 종착역인 바르샤우어 슈트라세역(당시 명칭: Warschauer Brücke|바르샤우어 브뤼케de)까지 노선이 연장되면서 슈트랄라우어 토어역은 종착역 기능을 상실했다.1924년 9월 15일에는 인근에 위치한 베를린 동항(Osthafen)의 이름을 따서 역명을 Osthafen|오스트하펜de역으로 개칭하였다.[3][1]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인 1945년 3월 10일, 연합군의 베를린 폭격으로 역 건물이 완전히 파괴되었다.[4][1] 전쟁 이후 바르샤우어 슈트라세역-슐레지셰스 토어역 구간 운행이 1945년 10월 14일부터 단선으로 복구되었지만, BVG는 오스트하펜역을 복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는 오스트하펜역과 바르샤우어 슈트라세역 사이의 역간거리가 320m로 매우 짧았고, 전쟁으로 역 주변의 많은 건물이 파괴되어 잠재적인 승객 수가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4][1] 이로써 오스트하펜역은 베를린에서 전쟁으로 파괴된 후 복구되지 않은 유일한 U-반 역으로 남게 되었다.[4]
2. 3. 제2차 세계 대전과 파괴 (1945년)
1945년 3월 10일,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에 연합군의 베를린 폭격으로 역은 완전히 파괴되었다.[4][1] 전쟁이 끝난 후 1945년 10월 14일부터 바르샤우어 슈트라세 역과 슐레지셰스 토어역 구간의 열차 운행이 단선으로 복구되었지만, 오스트하펜역은 다시 건설되지 않았다.[4][1]베를린 교통공사(BVG)가 역을 복구하지 않기로 결정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4][1] 우선, 인근 바르샤우어 슈트라세 역과의 거리가 320m에 불과하여 역의 필요성이 낮았다. 또한, 전쟁으로 역 주변의 많은 건물이 파괴되면서 이용객 수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었다. 더욱 중요했던 이유는 역이 소련과 미국의 점령 구역 경계에 위치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경계는 훗날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가르는 분단의 선이 되었다.[1]
전후 재건 계획의 일환으로 1946년 베를린 지도에 '베르사린슈트라세'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역이 잠시 등장하기도 했으나, 실제 건설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역은 영구히 폐쇄되었다.[1] 이로써 오스트하펜역은 베를린에서 전쟁으로 파괴된 후 복구되지 않은 유일한 U반 역으로 남게 되었다.[4] 현재는 역이 있던 자리의 고가 철도 지지대와 옹벽 일부만이 과거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4][1]
2. 4. 베를린 장벽과 현재 (1961년 ~ 현재)
1961년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면서 오버바움 다리deu를 통과하여 동베를린으로 향하던 U1 노선 구간은 폐쇄되었다. 이로 인해 노선은 서베를린의 마지막 역이었던 슐레지셰스 토어역에서 운행을 마쳐야 했다.[1] 역이 위치했던 곳은 소련과 미국의 점령 구역 경계선이었으며, 이 경계는 이후 도시를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나누는 기준이 되었다.독일 재통일 이후, 1995년에 U1 노선의 동쪽 종착역까지 운행이 재개되었지만, 오스트하펜역(구 슈트랄라우어 토어역)은 재건되지 않았다.[1]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역이 파괴된 후 복구되지 않은 결정과도 연결된다. 당시 역을 복구하지 않은 주된 이유는 인근의 바르샤우어 슈트라세 역과의 거리가 불과 320m로 매우 가까웠고, 전쟁으로 역 주변의 많은 건물이 파괴되어 잠재적인 승객 수가 감소했기 때문이었다.[1] 또한, 동서 베를린 경계에 위치했던 점도 장기적으로 역의 필요성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는 고가 철도의 지지대와 과거 역사의 옹벽 일부만이 남아 이전 역의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4][1] 오스트하펜역은 베를린에서 전쟁으로 파괴된 후 복구되지 않은 유일한 역으로 남아 있으며,[4] 베를린 분단과 냉전 시대의 역사를 간직한 장소로 여겨진다.
3. 구조
Stralauer Thor|슈트랄라우어 토어de는 오버바움 다리 북동쪽 고가교 위에 지어진 고가역으로, 둥근 지붕과 두 개의 지상 계단 입구를 갖춘 형태였다.[1] 역사 설계는 파울 비티히(Paul Wittig)가 담당했으며, 외부 설계는 지멘스 & 할스케의 자체 설계국에서 프린첸슈트라세역 및 괴를리츠역의 설계를 참조하여 진행했다.[2][1] 건설은 지멘스 & 할스케가 맡았다.[1]
개통 당시 승강장은 상대식 승강장으로, 길이는 73m, 너비는 3.5m였으며 6량 열차가 정차할 수 있었다.[2] 승강장은 노면에서 7.5m 높이에 설치되었다.[2] 역 주변의 도로 부지가 좁았기 때문에 출구는 교통섬으로 연결되었으며, 이는 프린첸슈트라세역과 유사한 구조였다.[2]
4. 의의
오스트하펜역(개통 당시 '''슈트랄라우어 토어역''')은 베를린 지하철 초기 역사를 상징하는 중요한 유산이다. 1896년 9월 10일 거행된 기공식과 함께 시작된 베를린 최초의 고가 및 지하 전기 철도 노선 건설의 일부였으며[1], 초기에는 동쪽 종착역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지멘스 & 할스케가 건설을 맡았다.[1] 역사는 파울 비티히(Paul Wittig)가 설계했으며, 외관은 프린첸슈트라세역 및 괴를리츠역 설계를 참조하여 지멘스 자체 설계국에서 담당했다.[2]
그러나 역사는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인 1945년 3월 10일, 연합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2][1] 전쟁 이후에도 복구되지 않았는데, 이는 베를린에서 전쟁으로 파괴된 후 복구되지 않은 유일한 지하철역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4]
역이 재건되지 않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인접한 바르샤우어 슈트라세역과의 거리가 320m에 불과했고, 전쟁으로 주변 지역이 파괴되어 이용객 수가 감소한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1]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역이 위치했던 자리가 냉전 시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가르는 경계선 부근이었다는 점이다.[1] 1961년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면서 역 근처의 오버바움 다리를 통과하는 U1 노선 구간은 폐쇄되었다.
1990년 독일이 재통일되고 1995년 해당 U1 노선 구간 운행이 재개되었지만, 오스트하펜역은 끝내 복원되지 않았다.[1] 오늘날에는 고가 철도의 지지대와 옹벽 등 일부 흔적만이 남아 역의 옛 위치를 증언하고 있다.[2][1] 이처럼 오스트하펜역은 베를린 지하철의 탄생부터 제2차 세계 대전의 상흔, 냉전 시대 분단의 아픔, 그리고 통일 이후의 변화까지 독일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분단과 통일이라는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한국의 입장에서 오스트하펜역의 역사는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많은 점을 시사한다.
참조
[1]
웹사이트
berliner-untergrundbahn.de
http://www.berliner-[...]
[2]
서적
Berlins U-Bahnhöfe – Die ersten hundert Jahre.
be.bra Verlag, Berlin
1996
[3]
서적
Berlins U-Bahnhöfe – Die ersten hundert Jahre.
be.bra Verlag, Berlin
1996
[4]
웹인용
Chronik der Berliner U-Bahn, 1940er Jahre bei berliner-untergrundbahn.de
http://berliner-unte[...]
202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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