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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스카정 (아이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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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코스카정(아이치현)은 현재의 도카이시 지역에 있었던 옛 행정 구역이다. 1666년 도쿠가와 미쓰토모가 온천 요양을 위해 별저를 건축하면서 요코스카 지역의 발전이 시작되었다. 이후 요코스카는 요코스카 다이칸소 설치를 통해 행정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여러 차례 행정 구역 변화를 겪었다. 1889년 정촌제 시행으로 (구)요코스카정이 발족했고, 1906년 주변 지역과 합병하여 새로운 요코스카정이 되었다. 1969년 우에노정과 합병하여 도카이시가 발족하면서 폐지되었다. 지역 내에는 메이테츠 철도, 국도 247호선이 지나갔으며, 요코스카 중학교, 요코스카 초등학교, 가키야 초등학교가 있었다. 간푸쿠지, 미로쿠지 등 사찰과 오미야 신사, 아타고 신사 등의 신사, 요코스카 어전 터 등의 명소가 있었다.

2. 역사

현재의 도카이시 요코스카정 및 다카요코스카정 주변은 예로부터 요코스카촌이었으며, 그 요코스카촌의 이세만 연안의 해변이 마하세라는 지명이었다.


  • 1666년(간분 6년) - 오와리 도쿠가와 가 2대 당주 도쿠가와 미쓰토모가 온천 요양을 위해 별저(요코스카 어전)를 건축했다. 이에 따른 주변 지역의 정비와 함께 마하세에 바둑판 모양의 마을이 조성되었다.
  • 1675년(엔포 3년) - 바둑판 모양의 마을이 마하세에서 하마요코스카로 개칭되었다. 이 무렵까지 요코스카촌의 본고가 우게요코스카로 불리게 되었다.
  • 1715년(쇼토쿠 5년) - 폭풍으로 요코스카 어전 건물이 크게 파손되었다. 복구가 어려워 당시에는 사용되지 않아 철거되었다. 단, 오친이라고 불리는 바다를 조망하는 건물은 남겨졌다[1]。오친 및 어전 부지는 에도 시대 동안 남아 있어, 번주의 숙박・휴게 시설[2]로 이용되었다.(오친은 메이지 초기에 폭풍으로 붕괴[3])
  • 1752년(호레키 2년) - 적어도 이 무렵까지 하마요코스카가 마치카타(또는 요코스카마치카타)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 1779년(안에이 8년) - 적어도 이 무렵까지 우게요코스카가 다카요코스카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또한 마치카타가 단순히 요코스카라고 불리게 되었다.
  • 1783년(텐메이 3년) - 요코스카 어전 터에 지타군의 니시우라 일대의 73개 마을을 관할하는 요코스카 다이칸소가 설치되었다.
  • 1805년(분카 2년) - 요코스카 다이칸소가 폐지되었다(요코스카촌은 지타군 및 아이치군의 일부와 미카와국의 오와리 도쿠가와 가 영지를 관할하는 나루미 다이칸소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다이칸소는 나루미촌에 설치되었다). 단, 요코스카 다이칸소 터에는 진야가 남아 있었다.
  • 1811년(분카 11년) - 요코스카 다이칸소가 재설치되었다.
  • 1868년(게이오 4년) - 요코스카 다이칸소가 폐지되어, 같은 곳에 남부 총관소가 설치되었다.
  • 1869년(메이지 2년) - 판적봉환에 의해 나고야번 지배가 되었다. 남부 총관소가 폐지되어, 같은 곳에 나고야번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 1871년(메이지 4년) 7월 14일 - 폐번치현에 의해 나고야번이 나고야현이 되어, 나고야번 출장소가 나고야현 출장소가 되었다.
  • 1871년(메이지 4년) 11월 12일 - 나고야현에서 누카타현으로 분할 편입과 함께 대구 소구제를 실시. 나고야현 출장소가 폐지되어, 같은 곳에 누카타현 지청 및 제1대구(지타군) 회소가 설치되었다. 또한 다카요코스카 및 마치카타(요코스카)에 각각 호장이 설치되었다.
  • 1872년(메이지 5년) 11월 27일 - 누카타현이 아이치현으로 편입됨에 따라, 누카타현 지청이 폐지되어, 제1대구(지타군) 회소는 제7대구(지타군) 회소가 되었다.
  • 1876년(메이지 9년) 8월 21일 - 아이치현의 대소구의 구획 개정에 따라, 제7대구 회소가 폐지되어, 같은 곳에 제7구(지타군의 북반) 회소가 설치되었다.
  • 같은 해 - 지조 개정에 따라, 야부촌(현・도카이시 야보정)과 합병. 합병 초기에는 류오카촌이라고 칭했지만, 같은 해 중에 요코스카촌으로 개칭했다.
  • 1878년(메이지 11년) 12월 27일 - 군구정촌 편제 시행에 의해 대구 소구제가 폐지되어, 지타군의 관할이 된다. 이에 따라, 제7구 회소는 폐지되었다(지타군청은 지타군 한다촌에 설치되었다).
  • 1882년(메이지 15년) 9월 20일 - 요코스카촌의 다카요코스카 지구가 다카요코스카촌, 구・야부촌이 야보촌으로 분촌되어, 요코스카촌의 구・마치카타 지구가 요코스카촌으로 독립했다.
  • 1889년(메이지 22년) 10월 1일 - 정촌제 시행에 의해 '''(구)요코스카정'''이 발족하여, 오아자 요코스카 아자 욘노와리 47에 (구)요코스카정사무소를 설치했다. 또한, 이에 따라, 호장을 폐지하고 정장을 두었다.
  • 1906년(메이지 39년) 5월 1일 - (구)요코스카정, 다카요코스카촌, 야보촌, 오타촌, 가기야촌이 신설 합병하여 '''요코스카정'''이 발족했다. (구)요코스카정사무소를 요코스카정사무소로 사용했다.
  • 1910년(메이지 43년) - 덴포신덴 지구가 간척으로 축립했다.
  • 1923년(다이쇼 12년) 4월 1일 - 군제가 폐지되었다.
  • 1936년(쇼와 11년) - 오기시마 지구의 매립이 완료되었다.
  • 1940년(쇼와 15년) 1월 1일 - 구 아이치현 회의사당을 불하받아 이전하여, 요코스카정사무소를 오아자 요코스카 아자 고즈카 11번지로 이전했다[4]
  • 1954년(쇼와 29년) 11월 19일 - 요코스카정사무소가 화재로 소실. 가사무소로 구 현립 요코스카 고등학교 교사를 사용했다.
  • 1956년(쇼와 31년) 5월 11일 - 소실된 장소에 요코스카정사무소를 신축하고, 개청했다.
  • 1958년(쇼와 33년) 6월 - 모토하마 지구의 매립이 완료되었다.
  • 1969년(쇼와 44년) 4월 1일 - 우에노정과 합병하여 도카이시가 발족, 같은 날 요코스카정 폐지.

2. 1. 에도 시대

1666년(간분 6년), 오와리 도쿠가와 가 2대 당주 도쿠가와 미쓰토모가 온천 요양을 위해 요코스카 어전을 건립하면서 요코스카 지역 발전의 기반을 마련했다.[1][2][3] 17세기 후반, 요코스카 어전 주변에 바둑판 모양의 마을이 조성되었고, '하마요코스카'로 불리게 되었다. 1715년(쇼토쿠 5년), 폭풍으로 요코스카 어전이 크게 파손되었으나, 일부 건물은 남아 번주의 숙박・휴게 시설로 이용되었다.[1][2][3]

1783년(텐메이 3년), 요코스카 어전 터에 지타군 서부 지역 73개 마을을 관할하는 요코스카 다이칸소가 설치되어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1805년(분카 2년) 요코스카 다이칸소가 폐지되었다가 1811년(분카 11년) 재설치되는 등 행정 구역 변화가 있었다.

2. 2. 메이지 시대 이후

1868년(게이오 4년) 요코스카 다이칸소가 폐지되고 남부 총관소가 설치되었으며, 1869년(메이지 2년) 판적봉환에 의해 나고야번 지배가 되었다가 남부 총관소가 폐지되고 나고야번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871년(메이지 4년) 폐번치현으로 나고야번이 나고야현이 되었고, 같은 해 나고야현에서 누카타현으로 분할 편입되면서 대구 소구제가 실시되어 나고야현 출장소는 폐지되고 누카타현 지청 및 제1대구(지타군) 회소가 설치되었다. 1872년(메이지 5년) 누카타현이 아이치현에 편입되면서 제1대구 회소는 제7대구 회소가 되었다.

1876년(메이지 9년) 아이치현의 대소구 구획 개정에 따라 제7대구 회소가 폐지되고 제7구(지타군 북반) 회소가 설치되었으며, 같은 해 야부촌과 합병하여 류오카촌이라 칭했다가 요코스카촌으로 개칭했다. 1878년(메이지 11년) 군구정촌 편제 시행으로 대구 소구제가 폐지되고 지타군 관할이 되면서 제7구 회소는 폐지되었다. 1882년(메이지 15년) 요코스카촌의 다카요코스카 지구가 다카요코스카촌으로, 구・야부촌이 야보촌으로 분촌되어 요코스카촌의 구・마치카타 지구가 요코스카촌으로 독립했다.

1889년(메이지 22년) 정촌제 시행으로 (구)요코스카정이 발족했으며, 1906년(메이지 39년) (구)요코스카정, 다카요코스카촌, 야보촌, 오타촌, 가기야촌이 합병하여 새로운 요코스카정이 발족했다. 1940년(쇼와 15년) 구 아이치현 회의사당을 이전하여 요코스카정사무소를 신축했다.[4] 1969년(쇼와 44년) 우에노정과 합병하여 도카이시가 발족하면서 요코스카정은 폐지되었다.

2. 3. 자연재해

에도 시대 요코스카정은 여러 차례 화재와 강풍 피해를 겪었다.[2][5] 1732년(교호 17년) 4월 3일 밤 4시 반경에 발생한 화재로 가옥 16채와 창고 3채가 소실되었고,[2] 같은 해 11월 20일에는 밤 9시에 발생한 대화재로 총 83채가 소실되었다.[2] 당시 요코스카정의 가구 수가 275채였던 것을 감안하면, 마을의 약 1/3이 소실된 큰 화재였다.[5] 1734년(교호 19년) 12월 16일에는 가옥 14채와 창고 3채가 소실되는 화재가 발생했다.[2] 1739년(겐분 4년) 2월 26일 낮 9시 반에는 초가집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주민 마타베의 어머니가 난로에 불을 남겨둔 채 자리를 비운 사이 땔감에 불이 옮겨붙은 것이 원인이었다.[2]

1736년(교호 21년) 3월 4일에는 천둥, 폭우, 우박과 함께 스즈카 방면에서 용오름이 발생했다.[5] 1744년(엔쿄 원년) 8월 10일에는 아침부터 동풍이 불다가 낮 8시 반부터 천둥과 폭우가 내린 후, 사우리 촌 방면에서 온 강풍(용오름으로 추정)으로 요코스카 어전 부지 안팎의 소나무 250그루가 부러지는 피해가 발생했다.[2]

3. 교통

3. 1. 철도

나고야 철도도코나메선에는 오타가와역오와리요코스카역이 있다. 나고야 철도가와 선에는 타고 요코스카역, 가기야역(1944년 휴지, 1969년 폐지), 미나미가기야역, 야하타신덴역이 있다. 나고야 린카이 철도에는 난코역이 있다.

3. 2. 도로


  • 일반 국도 제247호선

4. 교육

요코스카 정립 요코스카 중학교(현 도카이 시립 요코스카 중학교), 요코스카 정립 요코스카 초등학교(현 도카이 시립 요코스카 초등학교), 요코스카 정립 가키야 초등학교(현 도카이 시립 가키야 초등학교)가 있었다.

5. 명소 및 유적

5. 1. 사찰 및 신사

간푸쿠지(관복사), 미로쿠지(미륵사), 조겐지(장원사), 호다이지(보제사), 교쿠린지(옥림사), 안라쿠지(안락사), 텐비 신사(천미 신사)가 있다. 오미야 신사에서는 오타 축제가 개최된다. 스와 신사, 구마노 신사, 아타고 신사(아타고 신사)가 있으며, 아타고 신사에서는 오와리요코스카 축제가 개최된다. 아쓰타 신사(아츠타 신사)도 있다.

5. 2. 명승

요코스카 어전 터·가게의 포구 터, 오미야 신사의 큰 녹나무, 니노카케 지장, 요코스카 공원, 고토히키 소나무, 고타마히메 사당 등이 있다.

6. 우편

요코스카 우체국(현 도카이남 우체국)이 있었다. 현재의 도카이시에서 시외 국번이 0562인 지역은 옛 요코스카정의 지역이다. 현재에도 단위 요금 구역(MA)의 명칭에 '오와리요코스카'라는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

참조

[1] 서적 鸚鵡籠中記
[2] 서적 古今綱領目録抄
[3] 서적 横須賀町史
[4] 간행물 町役場位置変更 内閣印刷局 1940-01-26
[5] 서적 坂家 永代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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