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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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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반은 성한의 황족으로, 이웅의 양자이자 태자였다. 이탕의 아들로, 이웅이 거두어 키웠으며, 324년에 태자가 되었다. 이웅 사후 황제에 즉위했으나, 이웅의 아들들의 시기를 받아 334년 이월과 이기에게 살해당하고 황위를 찬탈당했다. 이기는 그에게 여태자라는 시호를 내렸고, 이후 이수가 애황제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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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성한)
기본 정보
이름이반
한자李班
로마자 표기Li Ban
다른 이름이세문(李世文)
즉위 정보
왕조성한
즉위일334년 8월 11일
퇴위일334년 12월 5일
이전 통치자이웅
다음 통치자이기
연호옥형 (玉衡)
연호 기간334년
생애
출생288년
사망334년 12월 5일
사인암살
아버지이탕
사후 정보
시호애황제(哀皇帝)
묘호없음

2. 생애

이반은 이웅의 조카이자 양아들이었다. 이웅은 친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형 이탕의 아들이자 가문의 적통인 이반을 후계자로 삼았다. 이반은 겸손하고 효성스러운 성격으로 이웅의 총애를 받으며 정사에 참여했다.

334년 이웅이 사망하자 이반은 황제에 즉위했다. 그러나 이웅의 아들들은 이반에게 불만을 품고 모반을 일으켰다. 이반은 동생 이오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월과 이기에게 살해당했다. 재위 기간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이기는 이반에게 여태자(戾太子)라는 시호를 내렸으나, 후에 이수가 애황제(哀皇帝)로 고쳤다.

2. 1. 초기 생애와 태자 책봉

이반은 이탕(李蕩)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이탕은 이웅의 맏형이었다. 이탕이 성한 건국 과정에서 일찍 사망했기 때문에, 이반은 이웅이 거두어 키웠다.

이웅은 정실 황후 임씨(任氏)에게 이반을 아들처럼 키우도록 하였으며, 이반이 가문의 적통이었기 때문에 태자로 삼았다.

324년, 여러 신하들이 이반 대신 이웅의 자식들을 계승자로 세울 것을 건의하였으나, 이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반은 겸손하고 효성이 지극한 성품을 지녔으며, 이웅은 이러한 이반을 총애하여 정사에 자주 참여시켰다. 이반은 하점과 이창에게 학문을 배우고, 왕가, 동융, 문기 등 명사들과 교류하였다.

이웅은 조정의 큰 의논이 있을 때마다 이반을 참여시켰다. 한번은 이반이 "옛날에는 백성들이 밭을 고르게 나누어 가졌으나, 지금은 귀족들이 황무지를 널리 점유하여 가난한 백성들은 씨를 뿌릴 땅조차 없습니다. 부유한 자들은 남는 토지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라고 건의하자, 이웅은 이에 동의하였다.

333년 3월, 이웅이 남중 지역을 병합하자, 이반은 녕주(寧州)로 진출하여 이(夷)족을 평정하고 무군(撫軍)에 임명되었다.

334년 6월, 이웅이 병에 걸리자 이반은 정성을 다해 이웅을 간호했다. 이웅이 세상을 떠난 후 이반은 황제에 즉위했으나, 모든 국사를 건녕왕(建寧王) 이수에게 맡기고 자신은 상례(喪禮)만 치렀다.

2. 2. 이웅의 죽음과 즉위

이반은 이웅의 맏형인 이탕의 아들이었다. 이탕이 성한 건국 과정에서 일찍 죽었기 때문에, 이반은 이웅이 거두어서 키웠다. 이웅은 정실 황후 임씨(任氏)에게 이반을 아들처럼 키우도록 하였으며, 이반이 가문의 적통이었기 때문에 태자로 삼았다.

324년, 여러 신하들이 이반 대신 이웅의 자식들을 계승자로 세울 것을 건의하였으나, 이웅은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이반은 겸손하고 효성이 지극한 성품이었으며, 이웅은 이런 이반을 총애하여 정사에 자주 참여하게 하였다.

334년 6월, 이웅이 병에 걸리자 이반은 정성으로 간호했다. 이웅이 세상을 떠난 후, 이반은 황제에 즉위하였으나, 모든 국사를 건녕왕(建寧王) 이수에게 맡기고 자신은 상례(喪禮)만 치렀다.

이웅의 아들들은 이반이 친형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기하여 모반을 꾸몄다. 이반의 동생 이오(李玝)가 이를 경고했으나, 이반은 장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시하였다.

334년 10월 1일 밤, 이반은 빈소를 지키던 중 이웅의 아들들인 이월과 이기에게 살해당하고 황위를 찬탈당했다.

이기는 이반에게 여태자(戾太子)라는 시호를 내렸다. 338년에 이수가 애황제(哀皇帝)라고 시호를 고쳤다.

2. 3. 암살과 최후

이반은 이탕(李蕩)의 아들로, 이탕은 이웅의 맏형이었다. 이탕이 성한의 건국 과정에서 일찍 죽었기 때문에 이반은 이웅이 거두어서 키웠다.[1]

이웅은 정실 황후 임씨(任氏)에게 이반을 아들처럼 키우도록 하였으며, 이반이 가문의 적통이었기 때문에 이반을 태자로 삼았다.[2]

324년에 여러 신하들이 이반 대신에 이웅의 자식들을 계승자로 세울 것을 건의하였으나 이웅은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이반은 천성이 겸손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이웅은 이런 이반을 총애하여 정사에 자주 참여하게 하였다.[3]

334년 6월, 이웅이 병에 걸리자 효성이 지극한 이반은 이웅을 정성으로 돌보았다. 곧 이웅이 세상을 떠나자 뒤를 이어 황제에 즉위하였으나 모든 국사를 건녕왕(建寧王) 이수에게 맡겨 둔 채 자신은 상례(喪禮)만 치렀다.[4]

이에 이웅의 아들들은 이반이 친형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시기하여 모반을 꾸몄다. 이반의 동생 이오(李玝)가 모반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경고하였으나 이반은 장례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경고를 무시하였다.[5]

이월(李越)과 이기(李期)는 10월 1일 밤에 빈소를 지키고 있는 틈을 타 이반을 살해하고 황위를 찬탈하였다.

이기는 이반에게 여태자(戾太子)라는 시호를 내렸다. 338년에 이수가 애황제(哀皇帝)라고 시호를 고쳤다.

3. 가계

이반은 이탕의 아들이며, 이웅의 맏형인 이탕이 성한 건국 과정에서 일찍 죽었기 때문에 이웅이 길렀다. 이웅은 정실 황후 임씨(任氏)에게 이반을 아들처럼 키우도록 하였으며, 이반이 가문의 적통이었기 때문에 태자로 삼았다.[1]

3. 1. 부모


  • 아버지: 이당 - 성한 건국 과정에서 사망. 이특의 차남이자, 이웅의 형.
  • 양아버지: 이웅
  • 어머니: 나부인 - 나황태후의 조카. 334년 이기에 의해 처형.
  • 양어머니: 임황후(任氏) - 이웅의 정실 황후.

3. 2. 형제


  • 아버지
  • * 이당 - 성한 이특의 차남이자, 이웅의 형
  • 어머니
  • * 뤄 부인 - 334년 이기에 의해 처형됨
  • 장형: 이한
  • 차형: 이치
  • 동생: 이도
  • 동생: 이오[1]

4. 평가 및 영향

이반은 겸손하고 효성이 지극한 성품으로 칭송받았으며, 이웅의 총애를 받아 정사에 자주 참여했다. 그러나 이웅의 친아들이 아니었기에 이웅의 아들들에게 시기를 받았다. 이복 형제들의 시기와 모반 위협에도, 이반은 아버지 이웅의 장례에 집중하며 효심을 보였으나, 정치적 판단력 부족으로 이기와 이월(李越)에게 살해당하고 황위를 빼앗겼다.

이기 사후, 이기는 이반에게 여태자(戾太子)라는 시호를 내렸으나, 338년 이수가 애황제(哀皇帝)로 고쳤다. 이는 이반에 대한 평가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5. 연표

연도사건
324년여러 신하들이 이반 대신에 이웅의 자식들을 계승자로 세울 것을 건의하였으나 이웅은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334년 6월이웅이 병에 걸리자 이반은 정성으로 돌보았다. 이웅이 세상을 떠난 뒤 황제에 즉위하였으나 모든 국사를 건녕왕(建寧王) 이수에게 맡겨 둔 채 자신은 상례(喪禮)만 치렀다.
334년 10월 1일 밤이웅의 아들인 이월(李越)과 이기(李期)에게 빈소를 지키고 있는 틈을 타 살해당하고 황위를 찬탈당했다.


6. 기타

참조

[1] 서적 Book of Jin http://zh.wikisource[...]
[2] 서적 Zizhi Tongjian http://zh.wikisource[...]
[3] 웹사이트 中央研究院 http://www.sinica.ed[...]
[4] 웹사이트 中央研究院 http://www.sinica.ed[...]
[5] 서적 十六国春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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