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응 초상 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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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하응 초상 일괄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장년기 및 노년기 전신 초상 6점을 일컫는다. 이 초상화들은 조선 말기 왕실 초상화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5점은 서울역사박물관에, 1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5점은 이한철이 그린 것으로, 다양한 복식과 뛰어난 묘사력을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초상은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금관조복본과 유사하며, 조선 말기 왕실 초상화 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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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응 초상 일괄 | |
---|---|
기본 정보 | |
이름 | 이하응 초상 일괄 (李昰應 肖像 一括) |
지정 번호 | 1499 |
지정 연월일 | 2006년 12월 29일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2가 2-1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6가 168-6 |
소유자 | 서울역사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
제작 시기 | 조선 |
흥선대원군 이하응 영정 정보 | |
이름 | 흥선대원군이하응영정 (興宣大院君李昰應影幀) |
국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유형 | 유형문화재 |
번호 | 141 |
지정 | 2001년 12월 31일 |
해지 | 2006년 12월 29일 |
문화재청 ID | 21,01410000,11 |
2. 제작 배경 및 작가
이하응 초상 일괄의 제작 배경은 그림 오른쪽 상단에 흥선대원군 자신이 직접 행서로 쓴 두 줄의 제발문을 통해 일부 파악할 수 있다.
이 초상화를 그렸다고 하는 이창옥은 현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반면, 함께 참여한 이한철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원으로, 산수·인물·화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는다.[1] 그는 여러 어진 제작에 참여했던 당대 최고의 어진화사(御眞畵師) 중 한 명이었다.
2. 1. 제작 배경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장년기와 노년기 모습을 담은 전신 초상화 6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5점은 서울역사박물관에, 1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1]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한 5점의 <이하응 초상>은 모두 조선 말기 최고의 어진화사(御眞畵師, 임금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로 꼽히는 이한철(李漢喆)이 그렸다. 먼저 제작된 3점(흑단령포본, 금관조복본, 와룡관학의본)은 고종 원년(1863, 계해)에 그린 44세 때의 초본을 바탕으로, 이하응이 50세가 되던 고종 7년(1869, 기사)에 이모(移模, 옮겨 그림)한 것이다. 나머지 2점(복건심의본, 흑건청포본)은 이하응이 환갑을 맞은 고종 17년(1880, 경진)에 제작된 61세 주갑상(周甲像, 환갑을 기념하여 그린 초상화)이다.[1]
이 5점의 초상화는 각각 다른 복식을 착용하고 있으며, 의관과 사용된 물품들이 매우 화려하고 성대하다.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였던 이한철의 뛰어난 묘사력과 높은 예술적 수준을 보여주는 최상급의 작품들로 평가받는다.[1] 또한, 뛰어난 서예가이기도 했던 이하응이 직접 쓴 표제(表題, 제목)와 영정함 안에 별도로 넣은 붉은 종이 표제(紅紙表題), 궁중 표구장이 제작한 족자 표장(簇子表粧, 족자 형태의 꾸밈), 장식 술인 유소(流蘇), 영정을 감싸는 보자기인 영정보, 향낭, 영정함, 영정함을 싸는 보자기 등이 온전히 남아 있어, 조선 말기 왕실의 격조 높은 초상화 문화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이하응 초상> 1점은 금관조복본이다. 이 초상화는 그림의 크기, 기본적인 도상, 사용된 재료와 기법, 화풍 등 여러 요소에서 서울역사박물관 소장의 1863년 이한철과 유숙이 그린 '금관조복본'과 매우 유사하다. 이 때문에 대략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화가들(이한철, 유숙)에 의해 그려진 복본(複本, 복제본)이거나 별본(別本, 별도의 판본)일 것으로 추정된다.[1]
2. 2. 참여 작가
이 초상화를 그린 인물 중 한 명인 이창옥에 대해서는 현재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다른 한 명인 이한철은 조선 후기의 화원으로, 산수·인물·화조·절지(折枝)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1846년 헌종 어진 제작 시 주관화사로 활동했으며, 이후 철종과 고종의 어진 제작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물 제547호로 지정된 《김정희영정(金正喜影幀)》 역시 이한철의 작품이다.
3. 초상화의 종류 및 특징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장년기와 노년기 모습을 담은 전신 초상화 총 6점으로 구성된다. 이 중 5점은 서울역사박물관에, 나머지 1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1]
이 초상화들은 당대 최고 수준의 화가들이 그린 작품들을 포함하고 있어 조선 말기 초상화의 높은 예술적 성취를 보여준다.[1] 각기 다른 복식을 한 이하응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사용된 의관과 기물들은 매우 화려하고 정교하게 표현되었다.[1]
또한, 이하응 본인의 친필 표제(表題)를 비롯한 족자, 유소(流蘇), 영정보, 향낭, 영정함 등 관련 유물들이 함께 전해져 조선 말기 왕실의 격조 높은 초상화 문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1] 각 소장처별 초상화의 구체적인 종류와 세부적인 특징은 하위 문단에서 자세히 다룬다.
3. 1.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초상화 (5점)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하응 초상 5점은 모두 조선 말기 최고의 어진화사(御眞畵師)였던 이한철(李漢喆)이 그린 작품이다.[1] 이 중 3점(흑단령포본, 금관조복본, 와룡관학창의본)은 고종 원년(1863년)에 그린 44세 때의 초본(草本, 밑그림)을 바탕으로, 이하응이 50세가 되던 고종 7년(1869년)에 옮겨 그린(이모, 移摹) 것이다. 나머지 2점(복건심의본, 흑건청포본)은 이하응의 환갑인 61세를 기념하여 고종 17년(1880년)에 그린 주갑상(周甲像)이다.[1]이 5점의 초상화는 각각 다른 복식을 착용하고 있으며, 의관과 사용된 물품들이 매우 화려하고 성대하다.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였던 이한철이 그린 만큼 높은 수준의 묘사력과 화격(畫格)을 보여주는 최상급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1]
특히, 뛰어난 글씨로 유명했던 이하응 본인이 직접 쓴 표제(表題, 제목)와 영정함 안에 별도로 써넣은 붉은 종이 표제(紅紙表題), 궁중 표구장(表具匠)이 제작한 족자표장(簇子表粧, 족자 형태의 꾸밈), 장식 술인 유소(流蘇), 영정을 싸는 보자기인 영정보, 향을 넣는 주머니인 향낭, 영정함과 영정함보 등이 온전히 남아 있어, 조선 말기 왕실의 아름답고 격조 높은 초상화 문화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1]
3. 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초상화 (1점)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이하응 초상화 1점은 금관조복을 입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1] 이 초상화는 그림의 크기나 기본적인 도상, 사용된 재료와 기법, 화풍과 풍격, 그리고 전반적인 수준 등 여러 면에서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된 초상화와 매우 유사하다.[1] 특히, 1863년에 어진화사였던 이한철과 유숙이 함께 그린 "금관조복본"과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 주목된다.[1] 이러한 유사성을 근거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역시 서울역사박물관 소장본과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작가들(이한철, 유숙)에 의해 그려진 복본 또는 별본일 것으로 추정된다.[1]4. 예술적 가치 및 의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초상화 일괄은 조선 말기 초상화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1] 특히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한 5점은 당대 최고의 어진 화가였던 이한철이 그린 작품으로, 다양한 복식과 화려한 의관, 기물 등을 정교하게 묘사하여 높은 수준의 예술성을 보여준다.[1] 이 5점은 고종 원년(1863년)에 그린 44세 초상을 바탕으로 고종 7년(1869년)에 옮겨 그린 3점과, 환갑을 맞은 고종 17년(1880년)에 그린 61세 모습 2점으로 구성되어 이하응의 장년기와 노년기 모습을 모두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관조복본 초상화 역시 서울역사박물관 소장본(1863년 이한철, 유숙 작)과 그림의 크기, 도상, 기법, 화풍 등 여러 면에서 매우 유사하여, 비슷한 시기에 동일 화가들이 제작한 복본(複本) 또는 별본(別本)으로 추정된다.[1]
이 초상화들은 당대 최고 수준의 묘사력과 화격을 갖춘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이하응 본인의 친필 표제와 잘 보존된 각종 장황 유물과 함께 전해져 조선 말기 왕실의 격조 높은 초상화 문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1]
4. 1. 조선 왕실 초상화 문화
흥선대원군 이하응 초상화는 단순히 인물의 모습을 그린 것을 넘어, 조선 말기 왕실의 초상화 문화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1] 특히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5점은 당대 최고의 어진 화가였던 이한철이 그린 최상급 걸작으로, 다양한 복식과 화려한 의관, 기물 표현을 통해 높은 수준의 묘사력과 화격을 갖추고 있다.[1]특히 이 초상화들에는 뛰어난 필력을 자랑했던 이하응 본인의 친필 표제(表題)가 남아 있어 의미를 더한다.[1] 또한, 영정함 안에 별도로 써넣은 홍지표제(紅紙表題), 궁중 표구장이 만든 족자표장(簇子表粧), 장식인 유소(流蘇), 초상화를 감싸는 영정보, 향을 넣는 향낭, 초상화를 보관하는 영정함과 이를 싸는 영정함보 등 다양한 부속품들이 온전히 전해진다.[1] 이러한 요소들은 조선 말기 왕실 초상화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정교한 제작 과정과 격식 있는 보관 문화를 갖추고 있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1]
5. 사진 자료
(내용 없음)
5. 1. 보물 제1499-1호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5. 2. 보물 제1499-2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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