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문인보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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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문인보국회는 일제강점기 말기에 결성된 친일 단체이다. 1943년 4월에 창립되어, 징병제 실시 감사, 학도병 출진 격려, 결전 소설 및 희곡 공모 등 일제의 전쟁 수행을 위한 문화 활동을 펼쳤다. 1944년에는 증산 현장에 작가를 파견하고, '결전태세 문학자 총궐기대회'와 '적국 항복 문인대강연회'를 개최했으며, 국민총력조선연맹 위문대에 작가를 파견했다. 1945년에는 '낭독 문학의 밤'과 '문예와 음악의 밤'을 개최했고, 해방 이후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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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인보국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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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인보국회 | |
한글 | 조선문인보국회 |
한자 | 朝鮮文人報國會 |
일본어 | ちょうせんぶんじんほうこくかい |
2. 설립 배경 및 목적
1943년 4월, 일제는 조선문인협회를 비롯한 여러 문인 단체들을 통합하여 조선문인보국회를 결성하였다. 표면적인 목표는 "조선에 세계 최고의 황도문학을 수립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태평양 전쟁을 후방에서 지원하고 국민총력운동과 문학을 결합하여, "조선 문학계의 총력을 대동아 전쟁의 목적에 결집시켜 황도 세계관을 구현하는 일본 문학을 건설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위해 조선문인보국회는 국민총력조선연맹 선전부 문화과에 사무실을 두어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2. 1. 일제의 문화 정책
일제 강점기 말, 일제는 문학을 태평양 전쟁 지원과 국민총력운동에 결합시키려 했다. "조선 문학자의 총력을 대동아전쟁의 목적에 결집하고 황도 세계관을 현현하는 일본문학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는 조선에 세계 최고의 황도문학을 수립한다는 목표로 이어졌다. 이를 위해 1943년 4월, 기존의 조선문인협회를 비롯한 여러 문인 단체를 통합하여 조선문인보국회를 결성했다. 조선문인보국회는 사무실을 국민총력조선연맹 선전부 문화과에 두어 국민총력조선연맹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2. 2. 조선 문단 상황
1943년 4월, 일제는 기존의 대형 문인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를 비롯한 여러 문인 단체들을 통합하여 조선문인보국회를 결성했다. 이 단체의 목표는 "조선에 세계 최고의 황도문학을 수립한다"는 것이었다.이는 태평양 전쟁을 후방에서 지원하고, 국민총력 운동과 문학을 결합하여 "조선 문학자의 총력을 대동아전쟁의 목적에 결집하고 황도 세계관을 현현하는 일본문학을 수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조선문인보국회는 사무실을 국민총력조선연맹 선전부 문화과에 두어, 국민총력조선연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2. 3. 단체 설립 목적
1943년 4월, 조선문인협회를 비롯한 여러 문인 단체들을 통합하여 결성된 조선문인보국회는 '조선에 세계 최고의 황도문학을 수립한다'는 표면적인 목표를 내세웠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태평양 전쟁을 후방에서 지원하고 국민총력 운동과 문학을 결합하여, "조선 문학자의 총력을 대동아 전쟁의 목적에 결집하고 황도 세계관을 현현하는 일본문학을 수립"하는 숨겨진 의도가 있었다. 이는 조선문인보국회가 국민총력조선연맹 선전부 문화과에 사무실을 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국민총력조선연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준다.3. 주요 활동
조선문인보국회는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군 위문, 징병 및 징용 동원 선전 등 태평양 전쟁 협력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주요 활동은 다음과 같다.
연도 | 월 | 주요 활동 |
---|---|---|
1943년 | 5월 | 조선문인보국회 결성문예전 개최, 해군을 찬양하는 시낭독회 개최 |
1943년 | 8월 | 징병제 실시 감사를 위한 낭독과 연극의 밤 개최 |
1943년 | 10월 | 결전 소설과 희곡 현상공모 |
1943년 | 11월 | 학도병 출진을 격려하는 강연대회 개최 |
1944년 | 4월 | 증산 현장에 소속 작가 파견 |
1944년 | 6월 | 결전태세 문학자 총궐기대회 개최 |
1944년 | 8월 | 적국 항복 문인대강연회 개최 |
1944년 | 11월 | 국민총력조선연맹이 파견하는 위문대에 소속 작가 4명 참가 결정 |
1945년 | 5월 | 낭독 문학의 밤 개최 |
1945년 | 8월 | 조선국민의용대 진발 기념 문예와 음악의 밤 개최 |
3. 1. 1943년
1943년 4월, 조선문인협회를 비롯한 여러 문인 단체들을 통합하여 조선문인보국회가 창립되었다. 같은 해 5월에는 조선문인보국회 결성 문예전을 개최하고, '해군을 찬양하는 시 낭독회'를 개최하였다. 8월에는 징병제 실시 감사를 위한 '낭독과 연극의 밤'을 개최하였고, 10월에는 결전 소설과 희곡 현상 공모를, 11월에는 학도병 출진을 격려하는 강연 대회를 개최하였다.월 |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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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 조선문인보국회 창립 |
5월 | 조선문인보국회 결성 문예전 개최, 해군을 찬양하는 시 낭독회 개최 |
8월 | 징병제 실시 감사를 위한 낭독과 연극의 밤 개최 |
10월 | 결전 소설과 희곡 현상 공모 |
11월 | 학도병 출진을 격려하는 강연 대회 개최 |
3. 2. 1944년
- 1944년 4월: 증산 현장에 소속 작가를 파견하였다.
- 1944년 6월: '결전태세 문학자 총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 1944년 8월: '적국 항복 문인대강연회'를 개최하였다.
- 1944년 11월: 국민총력조선연맹이 파견하는 위문대에 소속 작가 4명의 참가를 결정하였다.
3. 3. 1945년
1945년 5월 '낭독 문학의 밤' 행사를 개최하였다. 8월 1일 조선국민의용대 진발 기념 '문예와 음악의 밤' 행사를 개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8월 15일 태평양 전쟁이 종전됨에 따라 해체되었다.4. 단체 성격 및 평가
조선문인보국회는 일제 강점기 말기에 문학을 통해 일제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고 징병과 징용을 선전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 행위를 한 단체이다. 이러한 행적은 민족 문학을 훼손하고 일제에 부역한 반민족적 행위로 비판받아야 한다.
4. 1. 친일 행적 비판
조선문인보국회는 1943년 4월, 조선문인협회를 비롯한 여러 문인 단체를 통합하여 결성된 친일 단체이다. 이 단체의 목표는 "조선에 세계 최고의 황도(皇道) 문학을 건설하는 것"이었다.조선문인보국회는 태평양 전쟁을 후방에서 지원하고, "조선 문학계의 총력을 대동아 전쟁의 목적에 결집시켜 황도 세계관을 구현하는 일본 문학을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국민총력조선연맹 선전부 문화과에 사무실을 두고 이 단체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각지의 일본군을 위문하고 연설회를 통해 징병과 징용을 선전했다.
1945년 8월 1일에는 조선국민의용대 출항 기념행사를 개최하는 등 친일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으나, 8월 15일 태평양 전쟁이 종전되면서 해체되었다.
5. 해산 과정
1945년 8월 15일 태평양 전쟁 종전과 함께 조선문인보국회는 해체되었다. 조선문인보국회는 1945년 8월 1일 조선국민의용대 출범 기념 행사를 여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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