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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롤터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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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브롤터 해전은 1607년 4월 25일 지브롤터 만에서 벌어진 네덜란드와 스페인 함대 간의 해전이다. 야콥 판 헴스케르크가 이끄는 네덜란드 함대는 26척의 소형 전투함과 4척의 카고 함으로 구성되었고, 돈 후안 알바레스 데 아빌라가 지휘하는 스페인 함대는 21척의 함선으로 이루어졌다. 네덜란드 함대는 스페인 기함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헴스케르크가 전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함대를 격파했다. 이 해전은 12년 휴전의 주요 원인이 되었고, 네덜란드 공화국은 스페인으로부터 사실상의 승인을 얻었다. 또한 아일랜드 역사에도 영향을 미쳐 '귀족들의 탈출' 사건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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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롤터 해전 - [전쟁]에 관한 문서
지리 정보
기본 정보
전투 이름지브롤터 해전
일부80년 전쟁
날짜1607년 4월 25일
장소지브롤터 만
결과네덜란드의 승리
교전 세력
교전국 1네덜란드 공화국
교전국 2스페인
지휘관
지휘관 1야코프 판 헴스케르크
지휘관 2후안 알바레스 데 아빌라
전력
전력 1전투선 26척
전력 2전투선 10척, 소형 선박 12척
사상자
사상자 1사망 100명, 부상 60명
사상자 2사망 350~4,000명, 전투선 5~10척 파괴, 소형 선박 9~12척 파괴
추가 정보
전투 유형해전
관련 전쟁80년 전쟁
전투 이후12년 휴전
코르넬리스 반 위링엔의
지브롤터 해전

2. 전력

야콥 판 헴스케르크가 이끄는 네덜란드 함대와 후안 알바레스 데 아빌레스가 이끄는 스페인 함대가 지브롤터 해전에서 맞붙었다. 네덜란드 함대는 26척의 소형 전투함과 4척의 수송선으로, 스페인 함대는 10척의 갤리온을 포함한 21척의 함선으로 구성되었다.

각 함대의 기함과 주요 함선은 다음과 같다.

함대총 척수기함주요 함선
네덜란드 함대26척 + 수송선 4척에올루스(Æolus)데 티헤르(De Tijger), 데 지혼트(De Zeehond), 데 그리피온(De Griffioen), 데 루더 레이우(De Roode Leeuw), 데 고우던 레이우(De Gouden Leeuw), 데 즈바르터 베이르(De Zwarte Beer), 데 비터 베이르(De Witte Beer), 데 오흐텐트스테르(De Ochtendster)
스페인 함대21척산 아우구스틴(San Augustin)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라 베가(Nuestra Señora de la Vega), 마드레 데 디오스(Madre de Dios)



스페인 함대는 요새의 방호를 받았지만, 네덜란드 함대는 요새의 사정거리 밖에 있어 포격이 전투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1]

2. 1. 네덜란드 함대

야콥 판 헴스케르크가 지휘하는 네덜란드 함대는 26척의 소형 전투함과 4척의 카고(cargo) 함으로 구성되었다. 기함은 ''에올루스''(Æolus)였다.

다른 네덜란드 함선으로는 ''데 티게르''(De Tijger, 호랑이), ''데 지혼드''(De Zeehond, 바다표범), ''데 그리피오엔''(De Griffioen, 그리폰), ''데 루데 리우프''(De Roode Leeuw, 붉은 사자), ''데 고우덴 리우프''(De Gouden Leeuw, 황금 사자), ''데 즈바르테 비에르''(De Zwarte Beer, 검은 곰), ''데 비테 비에르''(De Witte Beer, 백곰), ''데 오크텐데스테르''(De Ochtendster, 샛별) 등이 있었다.

이 함대는 야콥 판 헴스케르크 제독이 이끌었으며, 기함은 제를란트 해군(Zeeland Admiralty) 소속의 ''애올루스(Æolus)''호였다.

다른 함선으로는 다음 배들이 있었다.

  • 제를란트 해군 소속 로렌스 야콥손 알테라스(Laurens Jacobszoon Alteras) 부제독의 기함 ''드 로데 레우(De Roode Leeuw)''호
  • 마스 해군(Maas Admiralty) 소속 람베르트 헨드릭손(Lambert Hendrikszoon) 후방제독의 기함 ''드 티허(De Tijger)''호
  • ''드 제혼트(De Zeehond)''호
  • ''드 그리피온(De Griffioen)''호
  • ''드 고든 레우(De Gouden Leeuw)''호
  • ''드 즈바르테 베어(De Zwarte Beer)''호
  • ''드 비테 베어(De Witte Beer)''호
  • ''드 오흐텐드스테르(De Ochtendster)''호


이 함대는 요새의 사정거리 밖에 있어서 요새 포격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1]

2. 2. 스페인 함대

스페인 함대는 갤리온 10척을 포함한 21척의 함선으로 구성되었으며, 돈 후안 알바레스 데 아빌라(Don Juan Álvarez de Ávila)가 지휘했다.[1] 기함은 ''산 아우구스틴''(San Augustin)이었고, 함장은 돈 후안의 아들이었다. 다른 함선으로는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라 베가''(Nuestra Señora de la Vega, 베가의 노부인)와 ''마드레 데 디오스''(Madre de Dios, 신의 어머니) 등이 있었다.[1] 스페인 함대는 요새의 방호를 받았지만, 네덜란드 함대는 항상 요새의 사정거리 밖에 있었기 때문에 요새의 포격은 전투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1]

3. 전투

반 힘스케르크는 휘하 함선 일부를 만 입구에 배치하여 스페인군의 퇴로를 차단했다. 공격함들은 스페인 기함을 노리라는 명을 받았다. 네덜란드 함대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전투에 돌입하였다.

반 힘스케르크는 스페인 기함을 공격하기 위해 접근하던 중 캐넌 볼(canon ball)에 다리를 잃고 전사하였다. 네덜란드 함대는 재빠르게 갤리온들을 포위 섬멸하였으며(이러한 네덜란드 함대의 움직임은 2세기가 지나 넬슨 제독이 1798년 나일 전투에서 그대로 사용하여 프랑스 함대를 격파한다), 상당수 갤리온들이 화염에 휩싸였다. 한 스페인 함선은 화약고에 포격을 당해 폭발했다.[2] 네덜란드 함대는 스페인 기함을 나포하는 데 성공했으나 격전 중 함선 제어권을 상실하여 스페인 기함 산 아우구스틴은 대해에 표류하고 만다.

스페인 함선 격파 후, 네덜란드 함대는 보트에 병사를 싣고 수영하며 육지로 도망가려는 스페인 함대 선원 수백 명을 전사시켰다.

네덜란드 함대는 반 힘스케르크를 포함하여 100여 명을 잃었으며 60명 정도가 부상당했다. 스페인은 거의 전 함대를 잃었는데, 이는 4천 명의 병력과 21척의 함선, 그리고 함대 사령관 알바레스를 잃었음을 뜻한다.

전투

4. 결과

반 힘스케르크는 휘하의 함선 일부를 만 입구에 배치하여 스페인군의 퇴로를 차단하였다. 네덜란드 함대는 스페인 기함을 공격하다가 반 힘스케르크가 캐넌 볼(canon ball)에 다리를 잃고 전사하였지만, 갤리온들을 포위 섬멸하였다. 상당수의 스페인 갤리온들이 화염에 휩싸였고, 한 척은 화약고에 포격을 당해 폭발했다. 네덜란드 함대는 스페인 기함을 나포했지만, 함선의 제어권을 상실하여 표류하게 되었다. 이후 네덜란드 함대는 보트에 병사를 싣고 수영하며 도망가려는 스페인 선원 수백 명을 사살했다.

네덜란드 함대는 반 힘스케르크를 포함하여 100여 명을 잃고 60명 정도가 부상당했다. 반면 스페인은 거의 전 함대를 잃었는데, 이는 4천 명의 병력과 21척의 함선, 그리고 함대 사령관 알바레스를 잃은 것이었다.

이 해전은 12년 휴전의 주요 원인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 네덜란드 공화국은 스페인 왕국으로부터 사실상의 승인을 얻게 되었다.

또한 이 해전은 아일랜드 역사에서 "귀족들의 탈출"이라는 주요 사건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휴 오닐(2대 타이론 백작)과 로리 오도넬(1대 티르코넬 백작)은 스페인 군대의 아일랜드 침략을 기대하며 울스터(Ulster)를 떠났으나, 스페인 함대의 궤멸로 그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망명길에 올랐고, 이는 이후 아일랜드, 특히 울스터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5. 전투의 의의

이 해전으로 네덜란드 함대는 반 힘스케르크를 포함한 100여 명이 전사하고 60여 명이 부상당했다. 스페인은 거의 전 함대를 잃었는데, 이는 4천 명의 병력과 21척의 함선, 그리고 함대 사령관 알바레스의 전사를 의미한다.[1] 이 해전은 12년 휴전의 주요 원인이었으며, 이를 통해 네덜란드 공화국은 스페인 왕국으로부터 사실상의 승인을 얻게 되었다.[1]

이 해전은 아일랜드 역사에도 간접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귀족들의 탈출"이라는 주요 사건에 영향을 주었는데,[1] 휴 오닐(2대 타이론 백작)과 로리 오도넬(1대 티르코넬 백작)은 아일랜드 울스터(Ulster)를 떠나 스페인 군대가 자신들을 위해 아일랜드를 침략하도록 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1] 그러나 스페인 함대의 궤멸로 그러한 가능성은 사라졌고, 귀족들은 돌이킬 수 없는 망명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는 이후 아일랜드 역사, 특히 울스터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1]

참조

[1] 서적 Fernández Duro
[2] 서적 Vier eeuwen va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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