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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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계유는 송강부 출신의 서화가로, 소식과 미불의 글씨를 사사하고 왕석작과 왕세정에게 문재를 인정받았다. 29세에 은둔 생활을 시작하여 벼슬하지 않고 문필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묵죽과 산수화를 특기로 삼았다. 둥치창과 우정을 나누었으며, 『황명서화사』 등의 편저를 남겼다. 그의 서예 작품으로는 소식의 글씨를 새긴 『만향당첩』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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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계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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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 | |
이름 | 진계유 |
간체자 | 陈继儒 |
병음 | Chén Jìrú |
자 | 중순(仲醇) |
호 | 미공(眉公), 미도인(麋道人), 부소산인( 浮 巢 山人) |
출생 | 1558년 |
사망 | 1639년 |
국적 | 명나라 |
직업 | 서예가, 화가, 문학가 |
생애 | |
주요 활동 | 은거 생활, 저술 및 예술 활동 |
고향 | 화정(華亭, 현재의 상하이 쑹장구) |
특징 | 속세를 떠나 산림에 은거하며 작품 활동에 전념 |
관련 인물 | 동기창 막시룡 송극 |
예술 활동 | |
분야 | 산수화 서예 문학 |
화풍 | 소박하고 담백한 스타일, 원나라 화풍 추종 |
서풍 | 미불의 서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경지 개척 |
저서 | |
주요 저서 | 《매화초당집(梅花草堂集)》 《완향당소품( 晚 香 堂 小品)》 《니고록(妮古錄)》 《진미공집(陳眉公集)》 《서사청하(書史清暇)》 《안광거품( 偃 曝 蒲 編)》 |
2. 생애
진계유는 송강부 화정현 마오차오(현재의 상하이시 진산구 펑징진[7]) 출신이다. 글씨는 소식, 미불 등을 사사했으며, 왕석작, 왕세정 등에게 문재를 칭찬받았다. 서화에 조예가 깊었지만, 여가로 묵죽, 산수를 즐겨 그렸다. 둥치창과 평생 우정을 나누었으며, 『황명서화사』, 『니고록』, 『미공비급』, 『서화금탕』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소식의 글씨를 새긴 법첩 『만향당첩』은 서예가들에게 유명하다. 29세에 쿤산에 초암을 짓고 은둔했으며, 만년에는 둥사산에 은거했다. 여러 차례 조정의 초빙을 받았으나 평생 벼슬하지 않고 문필로 생계를 유지했다.
2. 1. 은둔 생활
송강부 화정현 마오차오(현재의 상하이시 진산구 펑징진[7]) 출신으로, 29세에 쿤산에 초암을 짓고 은둔했으며, 만년에는 둥사산에 은거했다. 여러 차례 조정에서 초빙되었으나 평생 벼슬하지 않고 문필로 생계를 유지했다. 둥치창과는 평생의 우정을 나누었다.그는 은둔 생활을 하며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 정좌(靜坐)하고 나서야 평소 마음이 들떠 있었음을 알았다.
- 침묵(沈默)을 지키고 나서야 평소 말이 많았음을 알았다.
- 지난 일을 돌아보고 나서야 평소 시간을 낭비했음을 알았다.
- 문을 닫고 나서야 평소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다.
- 욕심을 줄이고 나서야 평소 병이 많았음을 알았다.
- 인정(人情)을 느끼고 나서야 평소 생각이 각박했음을 알았다.
2. 2. 교우 관계
진계유는 송강부 화정현 마오차오(현재의 상하이시 진산구 펑징진[7]) 출신으로, 글씨는 소식, 미불 등을 사사했다. 그의 문재는 왕석작, 왕세정 등에게 칭찬받을 정도였다. 서화에 조예가 깊었지만, 스스로는 여가로 묵죽, 산수를 특기로 삼았다. 둥치창과는 평생의 우정을 나누었다.3. 사상
진계유는 평소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고요함, 침묵, 성찰, 절제, 연민 등을 통해 진정한 앎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조용히 앉아 자신의 마음이 들떠 있었음을 깨닫고, 침묵을 통해 평소 자신의 말이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다. 또한 지난 일을 돌아보며 시간을 낭비했음을 반성하고, 문을 닫아걸고 외람된 사귐을 경계했다. 욕심을 줄이고 나서야 자신의 병적인 모습을 깨달았으며, 연민을 통해 각박했던 마음을 돌아보았다.[1]
4. 작품 활동
진계유는 글과 그림에 모두 능했으며, 소식, 미불 등의 글씨를 배웠다. 왕석작, 왕세정 등에게 문재를 칭찬받았다. 서화에도 조예가 깊어 묵죽, 산수를 즐겨 그렸으며, 둥치창과 평생 우정을 나누었다.
4. 1. 서화
진계유는 송강부 화정현 마오차오(현재의 상하이시 진산구 펑징진[7]) 출신으로, 글씨는 소식, 미불 등을 사사했다. 왕석작, 왕세정 등에게 문재를 칭찬받았다. 서화에 조예가 깊었지만, 여가로 묵죽과 산수를 즐겨 그렸다. 둥치창과 평생 우정을 나누었으며, 『황명서화사』, 『니고록』, 『미공비급』, 『서화금탕』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소식의 글씨를 새긴 법첩 『만향당첩』은 서예가들에게 유명하다.4. 1. 1. 대표작
4. 2. 저술
진계유는 송강부 화정현 마오차오(현재의 상하이시 진산구 펑징진[7]) 출신으로, 글씨는 소식, 미불 등을 따랐다. 그의 문재는 왕석작, 왕세정 등에게 칭찬받을 정도였다. 29세에 쿤산에 초암을 짓고 은둔했으며, 만년에는 둥사산에 은거했다. 여러 차례 조정에서 불렀으나 평생 벼슬하지 않고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했다. 서화에 조예가 깊었지만, 스스로는 여가로 묵죽, 산수를 즐겨 그렸다. 둥치창과는 평생의 우정을 나누었다.그는 다음과 같은 좌우명을 남겼다.
- 고요히 앉은 후에야 평소 마음이 들떠 있었음을 알았다. (靜坐然後知 平日之氣浮)
- 침묵을 지킨 후에야 평소 말이 경솔했음을 알았다. (守默 然後知 平日之言燥)
- 지난 일을 돌아본 후에야 평소 시간을 낭비했음을 알았다. (省事 然後知 平日之費閒)
- 문을 닫은 후에야 평소 사귐이 함부로였음을 알았다. (閉戶 然後知 平日之交濫)
- 욕심을 줄인 후에야 평소 병이 많았음을 알았다. (寡慾 然後知 平日之病多)
- 인정에 다가선 후에야 평소 생각이 각박했음을 알았다. (近情 然後知 平日之念刻)
4. 2. 1. 주요 저서
진계유는 서화에 조예가 깊었으며, 여러 편저를 남겼다. 그의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주요 저서 |
---|
『황명서화사』 |
『니고록』 |
『미공비급』 |
『서화금탕』 |
5. 일화
진계유는 당시 '통은'으로 유명했는데, 도망령은 그를 두 번이나 방문했지만 만나지 못했다. 이후 태창의 재상 저택에서 겨우 면회할 수 있었다.[8] 도망령은 "진 선생은 고사이기 때문에 깊은 산속에 계실 거라고 상상했습니다. 이런 저택에서 뵙게 될 줄은 전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라며 웃었고, 진계유도 매우 부끄러워했다고 한다.[8] (\[\[우동]]의 『간재속설』에서).
6. 평가
진계유는 자신의 저서 《연후(然後)》에서 성찰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고요함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것을 권한다. 그는 평상시의 들뜬 마음, 소란스러운 언행, 낭비한 시간, 분별없는 교류, 과도한 욕심, 각박한 마음을 반성하고, 이를 통해 진정한 앎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연후(然後)》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구절 | 내용 |
---|---|
靜坐然後知 平日之氣浮|정좌연후지 평일지기부중국어 | 앉아서 고요함을 느낀 후에야 평상시 마음이 들떠 있었음을 알게 된다. |
守默 然後知 平日之言燥|수묵 연후지 평일지언조중국어 | 침묵을 지킨 후에야 평상시 목소리가 소란했음을 알게 된다. |
省事 然後知 平日之費閒|성사 연후지 평일지비한중국어 | 지난 일들을 돌아본 후에야 평상시 보낸 시간들을 낭비했음을 알게 된다. |
閉戶 然後知 平日之交濫|폐호 연후지 평일지교람중국어 | 문을 걸어 잠근 후에야 사귐에 외람됨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
寡慾 然後知 平日之病多|과욕 연후지 평일지병다중국어 | 욕심을 덜어낸 후에야 자신이 얼마나 병적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
近情 然後知 平日之念刻|근정 연후지 평일지념각중국어 | 연민을 느낀 후에야 자신이 얼마나 각박했는지를 알게 된다. |
7. 참고 문헌
- 츠하이 편집위원회(辞海编辑委员会). 《츠하이》(辞海). 상하이: 상하이 츠슈 출판사(上海辞书出版社), 1979.
- 메이어, 빅터 H. (편) (2001). 《중국 문학의 콜롬비아 역사(The Columbia History of Chinese Literature). 뉴욕: 콜롬비아 대학교 출판부. (아마존 킨들판)
참조
[1]
서적
Page 432
Cihai
[2]
웹사이트
Chen Jiru Brief Biography
http://www.china-on-[...]
2008-07-09
[3]
웹사이트
Chen Jiru
http://www.findart.c[...]
2010-02-05
[4]
간행물
"Introduction: The Origins and Impact of Literati Culture"
2001
[5]
서적
The Confucian's Progress: Autobiographical Writings in Traditional China
Princeton University Press
[6]
서적
Greenbaum
https://books.google[...]
2010-02-05
[7]
웹사이트
楓涇鎮人民政府 陳継儒
http://www.fengjing.[...]
[8]
서적
模糊集
生活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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