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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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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춘국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한국 전쟁 당시 조선인민군 군인이다. 1914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김일성의 소개로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여 항일 무장 투쟁에 참여했다. 88특별여단에서 복무 후, 북조선으로 귀국하여 군에서 복무하다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춘천 전투의 실패로 해임된 전우의 후임으로 제12사단장에 임명되었으나, 안동 전투에서 지뢰에 의해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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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국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씨명최춘국
한자 표기崔春国
출생일1914년
출생지함경북도 온성군
사망일1950년 7월 30일
사망지경상북도
별명(정보 없음)
군사 경력
소속 조직동북항일연군
소련군
조선인민군
최종 계급중위(소련군)
소장(북한군)
제대 후(정보 없음)
묘소(정보 없음)
서명(정보 없음)
추가 정보
본명 (한글)최춘국
본명 (한자)崔忠國
사망일 (정확한 날짜)1950년 7월 30일
출생일 (정확한 날짜)1914년 9월 6일
사망 장소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시
지휘조선인민군 제12사단
주요 참전 전투/전쟁한국 전쟁

2. 생애

1914년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0년대 초반부터 김일성과 함께 항일 무장 투쟁에 참여했다. 왕청 유격대, 동북항일연군 등에서 활동하며 항일 투쟁 경력을 쌓았다. 1940년에는 일본군 토벌을 피해 소련으로 이동하여 제88특별여단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1945년 해방 이후 북한으로 돌아와 군 간부로 활동했다. 1948년 2월 1일부터 1949년 5월 6일까지 제1사단 제3연대장을 역임했고, 이후 내무성 경비처 해안경비국장을 지냈다.

2. 1. 항일 무장 투쟁

1930년 김일성의 소개로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1] 1932년 왕청 유격대 제2중대 지도원이 되었고, 1936년에는 동북항일연군 제2군의 연속 지도원으로 임명되었다.[1]

1937년 4월에는 제2군 독립여단 제1단장이 되었다.[1] 이후 제3방면군 제1단장, 경위여단 제3단 정치위원, 제13단 정치위원을 역임했다.[1] 1940년 11월, 일본군의 토벌을 피해 소련으로 들어가 제88특별여단 제4대대 7중대 부중대장을 역임했다.[1]

2. 2. 소련군 복무 및 해방 후 활동

1940년 11월, 일본군의 토벌을 피해 소련으로 들어가 제88특별여단 제4대대 7중대 부중대장을 역임했다.[1] 1945년 9월, 조선으로 귀환하여 함경북도 나남경비사령부 책임자, 정치국원 등을 역임했다.[1]

1950년 6월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다.[1] 7월 초 조선인민군의 춘천 공략 실수로 제12사단장 전우가 경질되고 후임 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1] 1950년 7월 30일 경상북도 안동시 안동 전투에서 지뢰를 밟아 전사했다.[1] 유성철은 박격포 직격으로 전사했다고 증언한다. 제12사단은 안동 최춘국 제12보병사단으로 개칭되었다.[1]

2. 3. 한국전쟁 참전과 전사

1950년 6월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참전하였다. 7월 초 조선인민군의 춘천 공략에서 전우 소장이 작전 미숙으로 해임되자, 후임으로 제12사단장에 임명되었다.[1] 남쪽으로 진군을 지휘했지만,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벌어진 전투 중 7월 30일 지뢰를 밟아 전사했다.[1] 유성철은 박격포 직격으로 인해 전사했다고 증언한다. 이후 제12사단은 안동 최춘국 제12보병사단으로 이름이 바뀌었다.[1]

3. 평가

(결과물이 제공되지 않았으므로, 수정할 내용이 없습니다.)

참조

[1] 웹사이트 조국해방전쟁에서 위훈을 세운 근위부대들 http://www.naenara.c[...] 네나라 2015-07-27
[2] 웹사이트 조선향토대백과 https://terms.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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