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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 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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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트린 힘러는 독일의 작가로, 2005년 출간된 저서 『힘러 형제: 독일 가족사』를 통해 유명해졌다. 이 책은 힘러 가문의 세 형제, 게브하르트, 하인리히, 에른스트의 삶을 추적하며, 특히 하인리히의 나치당 가입 배경과 에른스트의 유대인 기술자 슈미트 소령 추방 관여 등을 다룬다. 또한, 힘러는 나치 엘리트 후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히틀러의 아이들'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스라엘인과 결혼했으나, 자신의 유산을 부인하지 않고 '힘러'라는 성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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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 힘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카트린 힘러
카트린 힘러 (2018년)
출생1967년
국적독일
직업작가

2. 저서 "힘러 형제: 독일 가족사"

카트린 힘러의 저서 『힘러 형제: 독일 가족사』는 2005년 독일 S. 피셔 출판사에서 출판되었고, 2007년 맥밀란에서 영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1] 이 책은 나치 친위대 수장이었던 하인리히 힘러의 가족사를 다룬다.

힘러는 이스라엘 감독 하노크 제비의 나치 엘리트 후손들에 대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히틀러의 아이들』(독일어: "Meine Familie, die Nazis und Ich")에 출연하기도 했다.[4]

2. 1. 책의 내용

카트린 힘러의 책 『힘러 형제: 독일 가족사』는 힘러 가문의 세 형제 (게브하르트 힘러, 하인리히 힘러, 에른스트 힘러)의 삶을 다룬다. 이들은 뮌헨의 존경받는 중등학교 교장의 아들들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육군에서 복무했던 게브하르트와 달리, 하인리히 힘러는 18세에 전쟁이 끝나 최전선에서 복무하지 못했다. 카트린 힘러는 이러한 좌절감과 형에 대한 질투심이 하인리히가 1919년 극우 자유군단에 가입하고, 에른스트 룀 휘하에서 복무하며 나치당에 입당하게 된 배경이라고 추측한다.[1]

카트린 힘러는 가족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던 할아버지 에른스트 힘러가 실제로는 열정적인 나치 당원이었으며, 1931년에 당에 가입했고 SS 장교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에른스트는 1945년 5월 베를린 전투에서 사망했다.[1]

카트린 힘러는 연구 과정이 매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할아버지 에른스트가 유대인 기술자 슈미트 소령의 추방과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에른스트는 하인리히에게 보낸 편지에서 슈미트 소령의 유용성을 무시했고, 이는 그가 재분류되어 노동 수용소로 추방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1]

저스틴 카트라이트는 『데일리 텔레그래프』 서평에서, 에른스트가 제국 지도자의 형제로서 아무런 위험 없이 슈미트를 지지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카트린 힘러가 할아버지와 증조부 게브하르트가 형제의 살인적인 인종 정책에 얼마나 깊이 연루되었는지 깨달았다고 언급했다.[2]

2. 2. 책에 대한 평가

카트린 힘러의 저서 『힘러 형제: 독일 가족사』는 독일과 영국에서 출판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나치 친위대 수장이었던 하인리히 힘러의 가족사를 다루며, 그의 형제들과 가족 구성원들이 나치의 만행에 어떻게 연루되었는지를 파헤친다.

더그 존스턴은 『더 리스트』에서 "훌륭하게 침착하며, 특별한 가족의 세심한 회고록"이라고 평가하며, 저자가 과장 없이 사실을 전달한다고 칭찬했다.[1] 저스틴 카트라이트는 『데일리 텔레그래프』에서 "카트린 힘러는 할아버지와 증조부가 형제의 살인적인 인종 정책에 얼마나 깊이 사로잡혔는지 깨달았다"고 언급했다.[2]

반면 로버트 호크스는 『더 인디펜던트』에서 "모호한 증거를 가족의 공모에 대한 폭로로 바꾸려 한다"고 비판하면서도, 책을 쓴 용기를 높이 평가했다.[3]

이 책은 특히 과거사 청산 문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인 한국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개인의 죄책감과 역사적 책임, 그리고 과거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3. 개인사

카트린 힘러는 딘슬라켄에서 태어났다. 이스라엘인과 결혼했지만, 자신의 유산을 부인하지 않기 위해 힘러라는 성을 유지했다.[2]

그녀는 아들이 자신의 가족사에 대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연구하고 집필했다고 말했다. 카트린 힘러는 인터뷰에서 "남편과 내가 아들을 낳았을 때, 나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가족의 전통을 깨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아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여 아들이 내 가족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할 때 적어도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1]

4. 미디어 출연

하노크 제비 감독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히틀러의 아이들》(2012)(Meine Familie, die Nazis und Ich|마이네 파밀리에, 디 나치스 운트 이히de)에 출연하여 자신의 가족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공개했다.[4] 이 다큐멘터리에는 라이너 횸도 함께 출연했다.

참조

[1] 뉴스 Brothers in Arms http://edinburghfest[...] 2007-08-09
[2] 뉴스 Great-uncle Heinrich Himmler (book review) https://www.telegrap[...] 2012-10-12
[3] 뉴스 Brothers grim: a woman's courageous search for her family's Nazi roots 2007-07-26
[4] 웹사이트 Meine Familie, die Nazis und Ich (Hitler's Children) https://web.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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