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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크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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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타크나주는 페루 남부에 위치한 주로, 서쪽으로는 태평양, 남쪽으로는 칠레와 접경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화산, 사막, 산악 지대를 포함하며, 광업, 농업, 어업이 주요 산업이다. 기후는 사막 기후에 속하며, 다양한 축제와 음식 문화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칠레와의 영토 분쟁을 겪었으며, 1929년 리마 조약을 통해 페루가 타크나를 되찾았다. 또한 일본과의 경제 개발 협력 관계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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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야오는 1537년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건설된 페루의 항구 도시로, 태평양 무역의 주요 항구로 발전했으며, 1857년 헌법상 주(Provincia Constitucional)로 지정되었고,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이 위치해 있으며, 페루에서 범죄율이 높은 지역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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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크나주 - [지명]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공식 명칭 (스페인어)Departamento de Tacna (데파르타멘토 데 탁나)
공식 명칭 (아이마라어)Taqna jach'a suyu (타크나 자차 수유)
위치페루
수도타크나
별칭없음
페루 내 타크나 주 위치
페루 내 타크나 주의 위치
안데스 산맥의 투투파카 화산
안데스 산맥의 투투파카 화산
행정 구역
하위 행정 구역4개의 주와 26개의 구
정부
주지사후안 톤코니 키스페 (2019–2022)
지리
면적16075.89 km²
최대 고도3415 m
최소 고도0 m
수도 고도562 m
인구 통계
총 인구274496명 (2005년 인구 조사)
인구 밀도자동 계산
경제
주요 자원포도나무
목화
구리
빈곤율32.8%
GDP 비율페루 GDP의 1.7%
기타 정보
지역 코드23
전화 지역 번호052
ISO 코드PE-TAC
웹사이트www.regiontacna.gob.pe

2. 지리

타크나주는 티티카카 호 고원 아래에 위치하며, 화산, 사막, 산악 지대를 포함한 다양한 지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발원한 들이 푸나와 고원을 가로질러 이 지역의 수문 시스템을 형성한다. 이 지역은 크기는 작지만 상당한 광업농업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2. 1. 지형

타크나주는 서쪽으로 태평양, 북쪽으로 모케과 주, 북동쪽으로 푸노 주, 동쪽으로 볼리비아의 라파스 주, 남쪽으로 칠레의 아리카-파리나코타 지방과 접경을 이룬다. 타크나 지방과 칠레 사이의 국경은 ''라 리네아 데 라 콩코르디아''(La Línea de la Concordia)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은 티티카카 호 고원 아래에 위치하며, 화산, 사막, 산악 지대를 포함한 다양한 지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발원한 들이 푸나와 고원을 가로질러 이 지역의 수문 시스템을 형성한다. 이 지역은 크기는 작지만 상당한 광업농업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기후와 다양한 생산물을 자랑한다.

2. 2. 기후

이 지역은 안정적인 하강 기류와 고기압으로 인해 연중 높은 일조량을 보인다. 쾨펜 기후 구분 시스템에 따르면, 타크나는 기후 지도에서 "Bwh"로 축약되는 사막 기후를 가지고 있다.[1]

3. 역사

타크나 지역에는 약 10,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토케팔라 동굴(기원전 7630년)과 아브리고 데 카루(기원전 6240년) 유적에서 석기 시대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기라타 복합체, 물리니, 케냐비친카와 같은 유적지도 있지만, 아직 조사가 완료되지 않았다.[2]

1535년, 스페인 정복자들이 칠레 정복을 위해 이 지역에 도착했으며, 당시 타크나는 빌라 산 페드로 데 타크나라고 불렸다. 1615년과 1784년에 큰 지진이 발생하여 마을이 파괴되었지만, 같은 자리에 재건되었다.[2]

프란시스코 안토니오 데 셀라는 1811년 타크나에서 자유주의 행정을 옹호하는 최초의 선언을 했다. 1823년 혁명 정부는 타크나를 빌라(villa)로 승격시켰고, 1828년 5월 26일 호세 데 라 마르 대통령은 타크나 시에 "영웅 도시(Ciudad Heroica)"라는 칭호를 부여했다.[2]

태평양 전쟁 이전의 행정 구역은 다음과 같았다.

행정 중심지지구
타크나타크나타크나, 파치아, 칼라나, 사마, 로쿰바, 일라바야
타라타타라타타라타, 에스티케, 타루카치, 티카코, 칸다라베
아리카아리카아리카, 코드파, 리빌카르, 류타, 소코로마



태평양 전쟁 중 타크나 주민들은 칠레군에 맞서 싸웠으며, 일부는 목숨을 바치기도 했다. 1880년 알토 데 라 알리안사 전투 이후 칠레군은 타크나 주를 점령했다. 조약에 따라 칠레는 타크나와 아리카 주를 10년 동안 점령한 후 주민 투표를 통해 주권을 결정하기로 했으나, 타크나는 칠레의 지배하에 50년 동안 남게 되었고, 칠레는 칠레화 운동을 벌였다.[2]

그러나 페루 민족주의자들의 노력으로 주민 투표는 열리지 못했고, 1929년 리마 조약을 통해 칠레는 아리카를 유지하고 페루는 타크나를 되찾는 대신 600만달러의 배상금과 기타 양보를 받았다. 1890년부터 1929년까지 로쿰바는 칠레 행정부의 관할 하에 있지 않은 지역의 임시 수도 역할을 했다.[2] 칠레 통치 기간 동안 살바도르 아옌데와 그의 가족이 8년 동안 타크나에서 살았으며, 아옌데는 1908년부터 타크나 학교에서 공부했다.[2]

2007년 1월 26일, 페루 정부는 칠레와의 해상 경계선 획정에 대해 항의했다. 페루는 칠레가 제안한 법안이 페루 타크나 주의 19000m2 토지에 대한 주권 주장을 포함한다고 주장했다.[3] 페루는 칠레가 "콘코르디아 경계를 존중하지 않고" 새로운 지역을 정의했으며, 해상 경계를 확장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50년 동안 페루는 약 40000km2의 해양 영토에 대한 주장을 유지해왔다. 칠레는 분쟁 지역이 콘코르디아가 아닌 국경석 1번을 의미하며 내륙 200m 지점이라고 주장했다.[3] 페루는 칠레에 외교적 항의를 제기했지만,[4] 2007년 1월 26일, 칠레 헌법 재판소는 해당 법안을 기각했다. 칠레 정부는 법원 판결에 동의하면서도 양국 간의 해상 국경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5] 2007년 1월 28일, 페루 ''엘 코메르시오''는 호르헤 델 카스티요 내각 의장이 칠레와의 해상 분쟁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6]

2014년 1월 27일 국제 사법 재판소에서 정의한 칠레와 페루 간의 해상 경계


2014년 1월 27일, 국제 사법 재판소의 판결로 페루는 일부 해상 영토를 획득했다. 해상 경계는 해안에서 80해리(nmi)까지만 연장되며, 그 지점부터 새로운 경계는 두 국가 해안에서 200해리(nmi) 떨어진 지점까지 남서쪽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 판결로 칠레는 이전에 주장했던 해상 영토의 일부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고 페루에 추가적인 해상 영토를 부여했다. 법원은 양국 간의 해상 경계선을 정의했지만, 정확한 지리적 좌표는 결정하지 않았다.[7][8]

3. 1. 고대

이 지역에는 약 10,000년 전 매우 초기의 문화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있다.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석기 시대에 이 지역에 문명이 존재했음이 밝혀졌다. 토케팔라 동굴(기원전 7630년)과 아브리고 데 카루(기원전 6240년)가 이 시대에 해당한다. 기라타 복합체, 물리니, 케냐비친카와 같은 다른 유적지들도 있지만, 이곳에 대한 조사는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3. 2. 스페인 식민지 시대

1535년, 최초의 스페인 정복자들이 이 지역에 도착했다. 이들은 칠레 정복을 위해 조직된 알마그로 원정대의 일원이었다. 당시 타크나 시는 빌라 산 페드로 데 타크나라고 불렸다. 1615년과 1784년에 타크나는 격렬한 지진을 겪어 많은 마을들이 폐허가 되었으나, 이전과 같은 위치에 재건되었다.

3. 3. 페루 독립과 공화국 시대

프란시스코 안토니오 데 셀라는 1811년 타크나에서 자유주의 행정을 옹호하는 최초의 선언을 했다. 페루 독립 투쟁이 본격화되자, 1823년 혁명 정부는 타크나를 빌라(villa)의 지위로 승격시켜 이 도시의 영웅적 면모를 기렸다. 1828년 5월 26일, 호세 데 라 마르 대통령은 타크나 시에 "영웅 도시(Ciudad Heroica)"라는 칭호를 부여하는 법안을 의회가 통과시켜 공포했다.

칠레와의 전쟁 이전의 행정 구역은 다음과 같았다.

행정 중심지지구
타크나타크나타크나, 파치아, 칼라나, 사마, 로쿰바, 일라바야
타라타타라타타라타, 에스티케, 타루카치, 티카코, 칸다라베
아리카아리카아리카, 코드파, 리빌카르, 류타, 소코로마



태평양 전쟁 중, 타크나 주민들은 칠레군의 진격에 대한 국가의 저항에 기여했으며, 일부는 국가 방어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3. 4. 태평양 전쟁과 칠레 점령기 (1879년 - 1929년)

1880년 5월 26일, 알토 데 라 알리안사 전투 이후 칠레군은 타크나 주를 점령했다. 조약 조건에 따라 칠레는 타크나와 아리카 주를 10년 동안 점령한 후 주민 투표를 통해 해당 지역의 주권을 결정하기로 했다. 타크나는 칠레의 지배하에 50년 동안 남게 되었고, 이 기간 동안 칠레 단체와 당국은 지역 주민들에게 페루의 과거를 버리고 칠레 국적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기 위한 칠레화 운동을 벌였다.[2]

그러나 페루의 민족주의자들은 칠레의 선전이 실패하도록 만들었고, 계획된 주민 투표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결국 1929년 리마 조약이 체결되어 칠레는 아리카를 유지하고 페루는 타크나를 되찾는 대신 600만달러의 배상금과 기타 양보를 받았다. 1890년부터 1929년까지 로쿰바는 칠레 행정부의 관할 하에 있지 않은 지역의 임시 수도 역할을 했다.[2]

칠레 행정부 기간 동안 타크나에 살았던 중요한 인물 중에는 살바도르 아옌데와 그의 가족이 있었는데, 그들은 8년 동안 그 도시에 살았다. 아옌데는 유아기부터 타크나에서 살았다. 그는 1908년에 도착하여 타크나 학교(Liceo de Tacna)에서 공부했다.[2]

3. 5. 칠레와의 해상 분쟁

2007년 1월 26일, 페루 정부는 칠레와 공유하는 해안 경계선 획정에 대해 항의했다. 페루 대통령 알란 가르시아는 두 나라가 공유하는 해상 경계 논란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칠레 주재 대사 우고 오테로를 리마로 소환했다. 페루 외무부에 따르면 칠레 의회는 아리카 및 파리나코타 주와 관련된 계획을 승인했는데, 이는 국경의 기존 경계 획정과 일치하지 않았다. 칠레가 제안한 법안이 페루 타크나 주의 19000m2 토지에 대한 주권 주장을 포함한다고 페루는 주장했다.[3]

페루 외무부는 칠레가 "콘코르디아 경계를 존중하지 않고" 새로운 지역을 정의했다고 주장했다. 페루 정부는 칠레 계획에 대한 분쟁이 칠레가 해상 경계를 확장하기 위해 경계 획정 과정을 이용하려 했던 진행 중인 해상 분쟁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지난 50년 동안 페루는 약 40000km2의 해양 영토에 대한 주장을 유지해왔다. 칠레 정부는 분쟁 중인 지역이 콘코르디아라는 해안 지점이 아니라 북동쪽에 위치한 국경석 1번을 의미하며 내륙 200m 지점이라고 주장했다.[3]

제안된 칠레 법안이 1929년 양국 간 합의에 의해 설정된 경계선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페루는 칠레에 외교적 항의를 제기했다. 복잡한 영토 분쟁에서 칠레는 태평양 근처의 국경을 지리적 위도에 맞게 주장했는데, 리마는 이로 인해 페루 영토의 최소 19000m2가 잘릴 것이라고 주장했다.[4]

2007년 1월 26일, 칠레 헌법 재판소가 이 문제에 대해 판결을 내리고 해당 법안을 기각하면서 잠재적인 국경 분쟁은 회피되었다. 칠레 정부는 법원 판결에 동의하면서도 양국 간의 해상 국경은 문제가 없으며 국제 사회로부터 공식적으로 승인받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5]

2007년 1월 28일, 페루의 유력 신문 ''엘 코메르시오''는 호르헤 델 카스티요 내각 의장(Consejo de Ministros del Perú)이 칠레와의 계류 중인 해상 분쟁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6]

2014년 1월 27일,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 사법 재판소의 최종 판결에서 페루는 일부 해상 영토를 획득했다. 해상 경계는 해안에서 80nmi까지만 연장된다. 그 지점부터 새로운 경계는 두 국가 해안에서 200nmi 떨어진 지점까지 남서쪽 방향으로 이어진다. 판결에 따라 칠레는 이전에 주장했던 해상 영토의 일부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고 페루에 추가적인 해상 영토를 부여했다.

2014년 1월 27일 법원 보도 자료에서 법원은 양국 간의 해상 경계가 경계 표지 1번을 지나는 위선의 교차점에서 시작하여 저수위선을 따라 80nmi까지 연장된다고 결론지었다. 이 지점부터 해상 경계는 등거리선을 따라 지점 B까지 이어지고, 그 다음에는 칠레 기선에서 측정된 200nmi 한계선을 따라 지점 C까지 이어진다. 법원은 사건의 상황을 고려하여 정확한 지리적 좌표를 결정하지 않고 양국 간의 해상 경계선을 정의했다.[7][8]

4. 행정 구역

타크나 주는 4개의 (스페인어: ''provincias'', 단수: ''provincia'')으로 나뉘며, 26개의 구역(distritos, 단수: ''distrito'')으로 구성된다.

다음은 각 수도가 괄호 안에 있는 주이다.


  • 칸다라베 (칸다라베)
  • 호르헤 바사드레 (로쿰바)
  • 타크나 (타크나)
  • 타라타 (타라타)


각 군은 다음과 같다.

군명중심지그림
칸다라베칸다라베
호르헤 바사드레로쿰바
타크나타크나
타라타타라타


5. 경제

타크나 주의 주요 수입원은 구리 채굴이다.[1] 농업 부문에서 타크나 주는 페루 전체 올리브 생산량의 53.15%를 생산하며, 옥수수, 감자, 밀, 면화, 오레가노, 알팔파, 포도(와인 및 피스코 생산용)를 생산한다.[1] 또한 상당한 규모의 젖소와 양떼를 사육하고 있다.[1]

광업과 농업 외에도 타크나 연안 지역에는 풍부한 어족 자원이 있어 어업 또한 중요하다.[1]

6. 문화

타크나는 방문객에게 화려하게 조리되고 푸짐하게 제공되는 다채로운 요리를 선사한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picante a la Tacneñaes와 patazca Tacneñaes가 있다. 옥수수와 치즈, 구운 옥수수와 함께 즐기는 chicharroneses, 차크타도(기니피그 튀김), 땅콩과 건포도를 넣은 옥수수 케이크, 구운 돼지고기, 양고기 구이 또한 이 지역의 별미이다. 음료로는 타크나에서 재배한 살구, frutillaes 또는 툼보(tumbo)를 숙성시킨 음료와 현지 포도원에서 생산된 와인이 있다.

카니발은 다양한 마을과 촌락에서 전형적인 지역 춤과 함께 기념되며, 며칠 밤낮으로 계속될 수 있다.

6. 1. 축제

축제
4월타크나의 옥수수 및 감자 축제
5월 26일알토 데 라 알리안자 전투 기념일
6월 7일아리카 전투 기념일
6월 20일프란시스코 안토니오 데 셀라를 기리는 날
6월 23일산 후안의 밤
8월 28일프로세시온 데 라 반데라. 타크나 여성들이 붉고 흰색의 페루 국기를 들고 도시 거리를 행진하는 시민 행진 행사이다. 이후 다양한 협회, 학생 단체, 군대 및 경찰이 영웅의 개선문이 있는 중심 광장에서 퍼레이드를 벌인다. 이는 타크나의 페루 영토 재통합을 기념하는 한 주간의 행사 중 하나이다. 동시에 농업 및 축산 제품, 공업 제품, 수공예품 박람회가 열린다.



카니발. 이 축제는 다양한 마을과 촌락에서 전형적인 지역 춤과 함께 기념되며, 며칠 밤낮으로 계속될 수 있다.

6. 2. 음식

타크나는 방문객들에게 화려하게 조리되고 푸짐하게 제공되는 다채로운 요리를 선사한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피칸테 아 라 타크네냐(picante a la Tacneña)'와 '파타스카 타크네냐(patazca Tacneña)'가 있다. 옥수수와 치즈, 구운 옥수수와 함께 즐기는 '치차로네스(chicharrones)', 차크타도(기니피그 튀김), 땅콩과 건포도를 넣은 옥수수 케이크, 구운 돼지고기, 양고기 구이 또한 이 지역의 별미이다. 음료로는 타크나에서 재배한 살구, '프루티야(frutilla)' 또는 툼보(tumbo)를 숙성시킨 음료와 현지 포도원에서 생산된 와인이 있다.

7. 일본과의 관계

1962년, 일본의 전원개발은 타크나현 경제개발공단과 종합 개발 계획 계약을 체결했다. 1967년까지 자연 호수인 아리코타 호수를 이용한 수력 발전소 및 송전 시설을 건설했다.[9]

참조

[1] 웹사이트 Climate Summary for Tacna, Peru http://www.weatherba[...]
[2] 서적 Plan Estratégico del Distrito de Locumba https://web.archive.[...] Municipalidad de Locumba 2022-05-18
[3] 뉴스 Peru protests against Chile's new definition of territory Xinhua People’s Daily online 2007-01-27
[4] 웹사이트 Prensa Latina https://web.archive.[...] 2007-01-28
[5] 뉴스 Chilean court ruling averts looming border dispute with Peru –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http://www.iht.com/a[...]
[6] 뉴스 El Comercio /Politica/Lunes, 29 de enero de 2007 http://www.elcomerci[...]
[7] 웹사이트 World court draws new Peru-Chile maritime border https://web.archive.[...] Associated Press 2014-01-27
[8] 웹사이트 Archived copy https://web.archive.[...] 2014-01-30
[9] 서적 電源開発30年史 電源開発株式会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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