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다다쓰라 (183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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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혼다 다다쓰라는 일본 에도 시대 후기부터 메이지 시대 초기의 무사, 다이묘이다. 데와 신조번주 토자와 마사토시의 차남으로 태어나, 고베번의 제6대 번주 혼다 타다히로의 양자가 되어 가독을 상속받았다. 야마다 봉행 등을 역임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지번사를 거쳐 폐번치현으로 면관된 후 자작이 되었다. 1898년에 사망했으며, 가독은 외손자인 혼다 타다카게가 상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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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다다쓰라 (1834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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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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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에도 시대 후기 - 메이지 시대 |
출생 | 덴포 4년 11월 28일 ( 1834년 1월 7일) |
사망 | 메이지 31년 (1898년) 6월 24일 |
개명 | 게이노조 (유명) → 다다쓰라 |
호 | 요히쓰사이, 도엔 |
계명 | 양덕원전상예실음충관대거사 |
묘소 | 도쿄도고토구시라카와의 영엄사 |
관위 | 종5위 하, 이요노카미, 가와치노카미, 자작 |
막부 | 에도 막부 다케하시 고몬반, 야마다 봉행 |
번 | 이세간베 번 번주 |
씨족 | 도자와 씨 → 혼다 씨 |
부모 | 아버지: 도자와 마사노리 어머니: 기시코 (모모레인, 시마즈 시게히데의 딸) 양아버지: 혼다 다다히로 |
형제 | 도자와 마사자네, 다다쓰라, 나카조 노부히로 도다 나오카즈, 도자와 마사토키 |
배우자 | 정실: 혼다 다다히로의 양녀 (혼다 다다마스의 딸, 다다히로의 여동생) |
자녀 | 딸 (혼다 다다토모 정실) 양자: 다다토모, 다다미쓰 |
번주 정보 | |
전임 | 혼다 다다히로 |
후임 | 폐번치현 |
직책 | 간베 번 번주 (혼다 히코하치로 가) |
대수 | 7 |
임기 | 1857년 ~ 1871년 |
2. 생애
덴포 4년(1833년) 데와 신조번주 토자와 마사토시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고베번주 혼다 타다히로의 양자가 되어 안세이 4년(1858년) 가독을 상속받고 제7대 번주가 되었다. 번주 재임 중 타케바시 문지기와 야마다 봉행을 역임하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 메이지 2년(1869년) 판적봉환에 따라 지번사에 임명되었으나, 메이지 4년(1871년) 폐번치현으로 면관되었다. 그 후 우에노 도쇼구 사관을 지냈으며, 메이지 17년(1884년) 화족령에 의해 자작위를 수여받았다. 메이지 31년(1898년) 6월 24일에 6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고, 가독은 외손자 혼다 타다카게가 계승하였다.
2. 1. 출생과 가계
덴포 4년(1833년) 11월 28일, 데와 신조번의 번주 토자와 마사토시의 둘째 아들로 에도에서 태어났다. 제6대 고베 번주 혼다 타다히로는 처음에 타다무를 양자로 삼았으나 그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안세이 3년(1857년) 2월에 다다쓰라를 새로운 양자로 맞이했다. 이듬해인 안세이 4년(1858년) 4월 1일에는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를 알현했으며, 같은 해 4월 26일 양아버지 혼다 타다히로가 은거함에 따라 가독을 상속받았다. 안세이 5년(1859년) 11월 23일에는 종5위하 이요노카미(従五位下伊予守)에 서임되었다.2. 2. 양자 입적과 번주 승계
덴포 4년(1833년) 11월 28일, 데와 신조번주 토자와 마사토시의 차남으로 에도에서 태어났다. 제6대 고베번주 혼다 타다히로가 처음 양자로 삼았던 타다무가 요절했기 때문에, 안세이 3년(1857년) 2월에 새롭게 양자로 정해졌다. 이듬해 안세이 4년(1858년) 4월 1일에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에게 알현했다. 같은 해 4월 26일 양부 타다히로의 은거로 인해 가독을 상속받아 고베번의 제7대 번주가 되었다. 안세이 5년(1859년) 11월 23일, 종5위하 이요노카미에 서임되었다.2. 3. 번정 활동
안세이 3년(1857년) 2월, 고베번주 혼다 타다히로의 양자가 되었고, 이듬해 안세이 4년(1858년) 4월 1일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를 알현했다. 같은 해 4월 26일, 양부 타다히로가 은거하자 가독을 상속하여 고베번의 제7대 번주가 되었다. 안세이 5년(1859년) 11월 23일에는 종5위하 이요노카미에 서임되었다.번주로서 타케바시 문지기 직을 맡았으며, 분큐 3년(1863년) 10월에는 야마다 봉행(제48대)에 임명되어 막부의 관료로도 활동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메이지 2년(1869년) 6월 반적봉환이 이루어지자 고베번의 지번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메이지 4년(1871년) 7월 폐번치현으로 번이 폐지되면서 지번사 직에서 면관되었다. 이후에는 우에노 도쇼구의 사관(祠官)을 지냈다. 메이지 17년(1884년) 화족령이 공포되자 자작위를 수여받았다. 메이지 31년(1898년) 6월 24일에 66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가독은 외손자인 혼다 타다카게가 이었다.
2. 4. 메이지 유신 이후
메이지 2년(1869년) 6월, 판적봉환에 의해 지번사에 임명되었고, 메이지 4년(1871년) 7월의 폐번치현으로 면관되었다. 그 후, 우에노 도쇼구 사관을 맡았다. 메이지 17년(1884년)의 화족령으로 자작이 되었다. 메이지 31년(1898년) 6월 24일에 사망했다. 향년 66세. 가독은 외손자 타다카게가 상속했다.3. 가족
- '''부모'''
- * 친아버지: 도자와 마사요시
- * 친어머니: 도레이인 - 시마즈 시게히데의 딸
- * 양아버지: 혼다 타다히로
- '''처'''
- * 혼다 타다마스의 딸 - 양아버지 혼다 타다히로의 양녀
- '''자녀'''
- * 딸: 양자 혼다 타다히로의 정실이 되었다. 생모는 다다쓰라의 정실이다.
- '''양자'''
- * 혼다 타다히로 - 니시오 타다우케의 넷째 아들
- * 혼다 타다미 - 혼다 타다히로의 아들 (다다쓰라의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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