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릉 (조선 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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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릉은 조선 헌종과 효현왕후 김씨, 효정왕후 홍씨가 안장된 능이다. 1843년 효현왕후 김씨가 먼저 안장되었고, 1849년 헌종이, 1904년 효정왕후 홍씨가 안장되었다. 경릉은 당시 무덤에서 상석으로 여겨지던 우측에 헌종이 안장된 것이 특징이며, 왕실 서열이 남존여비보다 우선시 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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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릉은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조선 왕실의 능으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비롯하여 총 9기의 왕릉과 왕비의 묘가 있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왕릉군이며, 여러 왕과 왕비의 능과 초장지, 개경사터, 연지 등 다양한 유적이 남아있어 조선왕조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릉 (조선 헌종) | |
---|---|
묘 정보 | |
![]() | |
소재 국가 | 대한민국 |
유형 | 사적 |
이름 | 동구릉(東九陵) |
지정 번호 | 193 |
소재지 |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 (인창동 산9-1) |
좌표 | 37°37′1.14″N 127°7′51.52″E |
제작 시기 | 조선 1843년 |
지정 연월일 | 1970년 5월 26일 |
비고 | 조선 헌종 효현왕후 효정왕후 |
2. 경릉의 조성
경릉은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세 개의 봉분을 가진 왕릉이지만, 이는 정식 왕릉 제도는 아니다.
1843년 효현왕후 김씨가 승하하자 이곳에 능을 조성하고 능호를 경릉이라 하였다. 1849년 헌종이 승하하자 효현왕후의 우측(누워있는 시신 기준)에 안장되었고, 1904년에는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 홍씨가 승하하여 효현왕후의 좌측(누워있는 시신 기준)에 안장되면서 현재와 같이 세 개의 봉분을 가진 모습이 되었다.
흔히 왕이 가운데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정자각에서 바라볼 때 가장 왼쪽 봉분이 헌종의 능이고, 가운데가 효현왕후, 가장 오른쪽이 효정왕후의 능이다. 이러한 배치는 경릉이 유일하다.
2. 1. 효현왕후 김씨의 안장 (1843년)
헌종 9년인 1843년, 헌종의 첫 번째 왕비인 효현왕후 김씨가 16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이에 효현왕후의 능을 현재의 자리에 조성하고 능의 이름을 '경릉'이라 하였다. 이로써 경릉에 첫 번째 봉분이 만들어졌다.2. 2. 헌종의 안장 (1849년)
1849년 헌종이 승하하자, 1843년 먼저 승하하여 안장된 효현왕후 김씨의 능 우측(누워있는 시신 기준)에 모셨다. 효현왕후의 능은 1843년 조성 당시 능호를 경릉으로 하였다.2. 3. 효정왕후 홍씨의 안장 (1904년)
1904년에는 73세로 승하한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를 효현왕후 김씨의 좌측(누워있는 시신 기준)에 안장하여,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세 개의 봉분을 가진 왕릉이 완성되었다.3. 경릉의 특이한 구조
경릉은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세 개의 봉분이 나란히 있는 형태를 가진다. 이는 정식 왕릉 제도는 아니다. 처음 1843년 효현왕후 김씨가 16세로 승하하자 이곳에 능을 조성하고 경릉이라 하였다. 6년 뒤인 1849년 헌종이 승하하자 효현왕후의 오른쪽(능침에 누운 사람 기준)에 안장되었다. 이후 1904년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 홍씨가 73세로 승하하자 효현왕후의 왼쪽에 안장되면서 현재와 같이 세 봉분이 나란히 있는 모습이 되었다.
이 독특한 배치로 인해 헌종의 능침은 가운데가 아닌 가장 오른쪽에 자리하며, 가운데는 정비 효현왕후, 가장 왼쪽은 계비 효정왕후의 능침이다(모두 능침에 누운 사람 기준). 이처럼 왕과 두 왕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사례는 경릉이 유일하다.
3. 1. 왕의 위치
일반적으로 왕릉의 가운데에 왕이 안장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경릉에서는 헌종의 능침이 가운데가 아닌 가장 오른쪽(능침에 묻힌 사람 기준)에 자리한다. 참배객이 정자각에서 바라볼 때는 가장 왼쪽에 해당한다. 가운데는 정비 효현왕후 김씨의 능침이며, 가장 왼쪽(능침에 묻힌 사람 기준)은 계비 효정왕후 홍씨의 능침이다.왕이 정비의 오른쪽에 자리한 이유는 당시 장례 문화에서 오른쪽(능침에 묻힌 사람 기준)을 상석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헌종은 정비 효현왕후의 오른쪽에, 계비 효정왕후는 정비의 왼쪽에 안장되었다. 이러한 배치는 경릉만의 특징은 아니다. 예를 들어 덕종(의경세자)과 소혜왕후(인수대비)의 능인 경릉(敬陵)에서는, 남편 덕종이 세자 신분으로 승하하고 부인 소혜왕후는 대왕대비 지위에 있었으므로, 소혜왕후가 상좌인 오른쪽에 안장되었다. 이는 남녀 관계보다 왕실 서열이 우선시되었음을 보여준다.
반면 살아있을 때는 왼쪽(앉은 사람 기준)이 상석으로 여겨졌다.
대한제국 시기에 조성된 유릉(고종과 순종의 능)에서는 황제가 가운데에, 황후가 양옆에 자리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3. 2. 왕실 서열과 남존여비
일반적으로 왕릉에서는 왕이 가운데에 묻혔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선 시대 능에서는 무덤에 누워있는 시신을 기준으로 오른쪽이 상석으로 여겨졌다. 헌종의 경릉 역시 이러한 원칙에 따라 헌종은 정비인 효현왕후의 오른쪽에, 계비인 효정왕후는 효현왕후의 왼쪽에 안장되었다.다른 왕릉에서도 대부분 왕이 왕비의 오른쪽에 묻혀 상좌를 차지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덕종(의경세자)과 소혜왕후의 무덤인 덕종의 경릉에서는 소혜왕후가 상좌인 오른쪽에 안장되어 있다. 이는 남편인 덕종이 세자 신분으로 사망한 반면, 부인인 소혜왕후는 대왕대비의 지위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당시 왕실에서는 남존여비 사상보다 왕실 내 서열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살아있을 때의 좌석 배치는 무덤과 반대로, 앉아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왼쪽이 상석이다. 따라서 현대의 사극에서 왕이 오른쪽에, 왕비가 왼쪽에 앉는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대한제국 시기에 조성된 홍유릉의 유릉에서는 황제가 가운데에 위치하고 양옆에 황후가 자리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4. 대한제국 황릉과의 비교
헌종의 경릉은 왕과 왕비들이 묻힌 위치가 일반적인 예상과 다르다. 당시에는 무덤에서 오른쪽(누워있는 시신 기준)을 상석으로 여겼기 때문에, 헌종은 정비 효현왕후의 오른쪽에 안장되었다. 계비인 효정왕후는 효현왕후의 왼쪽에 자리하여, 세 봉분이 나란히 놓인 삼연릉 형태를 이룬다. 이는 왕실의 서열(정비 우선)과 당시의 장례 관념이 반영된 결과이다.
하지만 대한제국 시기에 조성된 유릉의 경우, 황제가 가운데에 위치하고 양옆으로 황후가 자리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황제국의 위상에 맞추어 능의 배치가 달라진 사례로, 경릉을 포함한 이전 조선 왕릉의 배치 방식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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