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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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구릉은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왕릉군으로, 조선 태조의 건원릉을 시작으로 문종, 선조, 인조, 현종, 경종, 영조, 헌종, 문조 등 9개 왕릉과 왕비, 후궁 등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1408년 태조의 능을 조성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순차적으로 왕릉이 추가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동구릉 내에는 재실, 연지 등의 부속 시설과 숲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문화재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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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릉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명칭 | 구리 동구릉 |
한자 표기 | 東九陵 |
로마자 표기 | Donggureung |
종류 | 사적 |
지정 번호 | 193 |
지정일 | 1970년 5월 26일 |
주소 |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 (인창동)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 동부지구관리소 |
면적 | 1,969,675m2 |
문화재청 ID | 13,01930000,31 |
웹사이트 | 동구릉 - 문화재청 |
2. 역사
1408년(태종 8년) 5월 태조가 승하한 뒤, 지관과 대신들이 한양 주변 지역의 명당을 찾았다. 6월 12일 유한우와 이양달은 원평 봉성을, 영의정부사 하륜은 해풍 행주를 천거했으나, 태종은 이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1] 6월 28일 검교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김인귀가 자신의 집 근처인 검암산을 추천하여, 현재의 구리시 검암산에 동구릉이 위치하게 되었다.[2]
2. 1. 연표
연도 | 릉 | 사건 | 비고 |
---|---|---|---|
1408년(태종 8년) | 건원릉 | 태조 안장 | 유한우와 이양달은 원평 봉성(蓬城)을, 하륜은 해풍 행주를 천거했으나, 태종이 김인귀의 추천지 검암산을 선택.[1][2] |
1452년(단종 원년) | 현릉 | 문종 안장 | |
1513년(중종 8년) | 현릉 | 현덕왕후 능 이장 | |
1600년(선조 33년) | 유릉(裕陵) | 의인왕후 안장 | 현재 목릉 자리 |
1608년(광해군 원년) | 목릉 | 선조 능 조성 | 현재 경릉 자리 |
1630년(인조 8년) | 목릉 | 선조 능 이장 | 유릉을 목릉에 합침 |
1632년(인조 10년) | 목릉 | 인목왕후 안장 | 혜릉(惠陵)이었다가 목릉에 합쳐짐 |
1659년(효종 10년) | 영릉 | 효종 능 조성 | 현재 원릉 자리 |
1673년(현종 원년) | 영릉 | 석물 틈 발생으로 영녕릉 자리로 이장 | |
1674년(숙종 원년) | 숭릉 | 현종 안장 | |
1684년(숙종 10년) | 숭릉 | 명성왕후 안장 | 쌍릉 조성 |
1688년(숙종 14년) | 휘릉 | 장렬왕후 안장 | 동오릉(東五陵) |
1718년(숙종 44년) | 단의빈묘 | 경종 세자빈 심씨 안장 | 동육릉(東六陵) |
1720년(경종 원년) | 혜릉 | 세자빈 심씨 단의왕후 추숭, 단의빈묘를 혜릉으로 개칭 | |
1776년(정조 원년) | 원릉 | 영조 안장 | |
1805년(순조 5년) | 원릉 | 정순왕후 안장 | |
1843년(헌종 9년) | 경릉 | 효현왕후 안장 | |
1849년(철종 원년) | 경릉 | 헌종 안장 | |
1855년(철종 6년) | 수릉 | 문조 능 이장 | 동구릉(東九陵) |
1890년(고종 27년) | 수릉 | 신정왕후 안장 | |
1904년(광무 8년) | 수릉 | 효정왕후 안장 |
동구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건원릉을 시작으로, 조선 시대 왕들의 무덤군이 조성된 곳이다. '동구릉'은 도성 동쪽에 있는 9개의 무덤이라는 뜻으로, 철종 6년(1855) 수릉이 이전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동구릉은 하륜이 처음 묘역으로 정했으며, 400여 년간 왕릉이 조성되어 풍수지리설에 따른 명당임을 입증한다.
3. 동구릉 내 유적 목록
동구릉에는 건원릉 외에도 현릉, 목릉, 휘릉, 숭릉, 혜릉, 원릉, 경릉, 수릉 등 9개의 왕릉이 있다.
3. 1. 왕릉
동구릉에는 다음과 같은 왕릉들이 있다.
동구릉은 조선시대 왕릉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태조의 건원릉은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을 기본으로 만들어졌다.[1] 각 무덤에는 제사를 위한 재실(齋室)이 있었으나, 현재는 구릉 남쪽에 9개 무덤을 மொத்தமாக 관리하는 재실만 남아있다.[1]
동구릉은 중앙 북쪽의 건원릉을 중심으로 동쪽에 3개, 서쪽에 5개의 무덤이 배치된 형태이다.[1] 조선 왕릉 중 한 지역 내에 왕릉군을 이루고 있는 곳은 서오릉, 서삼릉 등이 있지만, 동구릉에 가장 많은 무덤이 있다.[1]
연도 | 릉 | 사건 | 비고 |
---|---|---|---|
1408년(태종 8년) | 건원릉 | 태조 안장 | |
1452년(단종 원년) | 현릉 | 문종 안장 | |
1513년(중종 8년) | 현릉 | 현덕왕후 능 현릉으로 이장 | |
1600년(선조 33년) | 유릉(裕陵) | 의인왕후 안장 | 현재 목릉 자리에 조성 |
1608년(광해군 원년) | 목릉 | 선조의 능을 현재 경릉 자리에 조성 | |
1630년(인조 8년) | 목릉 | 선조의 능을 현재 위치로 이장 | 유릉을 목릉에 합침 |
1632년(인조 10년) | 목릉 | 인목왕후 안장 | 처음에 혜릉(惠陵)이라 하였으나 곧 목릉에 합침 |
1659년(효종 10년) | 영릉 | 효종의 능을 현재 원릉 자리에 조성 | |
1673년(현종 원년) | 영릉 | 석물에 틈이 생기자 현재 영녕릉 자리로 이장 | |
1674년(숙종 원년) | 숭릉 | 현종 안장 | |
1684년(숙종 10년) | 숭릉 | 명성왕후 안장, 쌍릉 조성 | |
1688년(숙종 14년) | 휘릉 | 장렬왕후 안장 | 동오릉(東五陵) |
1718년(숙종 44년) | 단의빈묘 | 경종의 세자빈 심씨 안장 | 동육릉(東六陵) |
1720년(경종 원년) | 혜릉 | 세자빈 심씨를 단의왕후로 추숭, 단의빈묘를 혜릉으로 개칭 | |
1776년(정조 원년) | 원릉 | 영조 안장 | 과거 효종의 영릉 자리, 동칠릉(東七陵) |
1805년(순조 5년) | 원릉 | 정순왕후 안장 | |
1843년(헌종 9년) | 경릉 | 효현왕후 안장 | 과거 목릉 자리, 동팔릉(東八陵) |
1849년(철종 원년) | 경릉 | 헌종 안장 | |
1855년(철종 6년) | 수릉 | 문조의 릉을 현재 위치로 이장 | 동구릉(東九陵) |
1890년(고종 27년) | 수릉 | 신정왕후 안장 | |
1904년(광무 8년) | 수릉 | 효정왕후 안장 |
3. 2. 기타 부속 시설
- 명성황후 초장지
- 개경사(開慶寺)
- 연지(蓮池)
- 외연지(外-)
4. 지리적 특징 및 숲길
대한민국 최대의 왕릉군인 동구릉에는 왕릉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그 사이사이에 많은 숲길이 있다. 평범해 보이는 매표소와 홍살문을 지나 갈참나무와 소나무로 이루어진 숲을 지나면 재실이 나타나는데, 이곳에 9곳의 왕릉으로 가는 갈림길들이 있다. 9기나 되는 왕릉의 사이사이를 연결하는 순환로를 따라 돌기만 해도 1~2 시간 정도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7]
참조
[1]
간행물
영의정부사 하윤 등을 보내어 산릉 자리를 보게 하다
http://sillok.histor[...]
태종실록
1408-06-12
[2]
간행물
태조의 산릉을 양주의 검암에 정하다
http://sillok.histor[...]
태종실록
1408-06-28
[3]
간행물
태조 산릉의 재궁명을 개경사라 하여 조계종에 소속시키다
http://sillok.histor[...]
태종실록
1408-07-29
[4]
간행물
태조의 발인식. 오시에 검암 동구에 이르러 영구를 악차에 모시다
http://sillok.histor[...]
태종실록
1408-09-07
[5]
간행물
상왕과 더불어 산릉의 제도를 두루 보다
http://sillok.histor[...]
태종실록
1408-09-08
[6]
간행물
영구를 받들어 건원릉에 장사지내다
http://sillok.histor[...]
태종실록
1408-09-09
[7]
서적
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11
㈜위즈덤하우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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