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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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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사생산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의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생산력 증강을 위해 도입된 경제 정책이다. 이 정책은 석탄과 철강 등 주요 산업에 자재와 자금을 집중적으로 지원하여 경제 부흥을 꾀했다. 부흥금융금고를 통해 자금 지원이 이루어졌지만, 과도한 통화 공급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심화와 같은 문제점을 낳았다. 이후 기업 합리화 정책으로 인해 중단되었으며, 긍정적, 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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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생산
개요
명칭경사생산방식
유형생산 방식
내용생산 자재와 설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특정 품목에 자원을 집중 투자하여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방식
배경
발생 시점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발생 국가일본
배경 설명전쟁으로 인해 자재와 설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특정 산업의 빠른 재건을 위해 도입됨
특징
자원 집중특정 품목에 자원 집중 투자
생산성 향상단기간 내 생산성 극대화
단점자원 배분의 비효율성 초래 가능
활용 사례
일본석탄 산업, 철강 산업 등에 적용
대한민국기간산업 육성에 활용 (과거)
관련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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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경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 일본은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겪었는데, 그 원인 중 하나는 물자 부족이었다. 이에 따라 생산력 증강을 통해 공급력을 확대하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3] 제1차 요시다 내각은 요시다의 사적 학자 브레인 '점심 식사 모임'의 멤버였던 아리사와 히로미의 제안을 바탕으로 1946년 12월 27일 '쇼와 21년도 제4, 사분기 기초 물자 수급 계획 책정 및 실시 요령'을 각의 결정했다. 이 결정에서는 '국내 시책의 일체를 석탄 증산에 집중한다', '석탄 배분에 필요한 제반 자재 확보에 최우선 순위를 시행한다'고 명시하고, 특히 철강을 중시했다. 또한 '경제 위기 돌파를 위해 중대한 시책 전환을 단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2]

구체적으로는 석탄과 철강 생산을 중점적으로 늘리고, 나아가 화학 비료, 전력 등 주요 산업에 자재를 우선적으로 배급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배분 방식에 따라 국민 생활은 일본 경제 재건을 위해 당분간 더욱 궁핍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1회 경제백서 "경제 실상 보고서"는 '석탄 20% 증산은 공업 생산을 40% 증가시킨다. 증가한 공업 생산력은 탄광에 더 많은 증산을 위한 자재 기기류의 공급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하여 증산은 증산을 낳는다. 일본 경제의 모순은 우선 석탄 증산에 의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전망을 제시했다.[5]

3. 내용

경사생산방식은 아리사와 히로미가 고안하고 제1차 요시다 내각1946년 12월 27일에 '쇼와 21년도 제4, 사분기 기초 물자 수급 계획 책정 및 실시 요령'을 각의 결정하면서 시행되었다. 이 정책은 국내 시책을 석탄 증산에 집중하고, 석탄 배분에 필요한 자재 확보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것을 목표로 했다.[2] 특히 철강을 중시하여 석탄, 철강, 화학 비료, 전력 등의 산업에 자재를 중점 배급했다.

제1회 경제백서 "경제 실상 보고서"는 석탄 20% 증산이 공업 생산을 40% 증가시키고, 증가한 공업 생산력은 탄광에 더 많은 자재를 공급하여 증산을 가속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5]

철강업 현장에서는 전전에 미키 다카시와 나가노 시게오가 철강 증산을 기획했던 경험이 선례로 작용했다.[9] 이나야마 요시히로는 철광석은 비축분이 있었지만 석탄은 부족하여 야하타제철소 등에서 규슈 탄광으로 인력을 파견해 석탄 확보에 힘썼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한 GHQ의 점령 정책이 일본의 무력화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침략에 대비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면서 경사생산 정책이 탄력을 받았다고 지적했다.[10]

탄광에서는 주식, 의류, , 담배 등이 특별 배급되고, 사택 정비 등 복리후생이 강화되어 갱내 노동의 가혹함에도 불구하고 지원자들이 몰려들었다.[11] 가타야마 내각, 아시다 내각에서도 이 정책은 계승되었다.

요시다 내각의 대장 대신이었던 이시바시 단잔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중략, 석탄 확보도 할 수 없어) 기차도 어쩌면 멈췄을지도 모른다"라고 반론했다.[13][14]

3. 1. 자금 지원

1947년 1월, 부흥금융금고가 개업하여 자금 공급을 담당했다. 부흥금융금고는 경사생산 정책의 중점 산업에 융자를 집중했는데, 1950년 1월 말 융자 총액 1.077조 중 3990억이 10억 엔 이상 대출받은 11개 거대 기업 (일본발송전, 미쓰이 광산, 미쓰비시 광업, 홋카이도탄광기선, 쇼와전공, 이카광업, 간토배전, 간사이배전, 메이지광업, 우베흥산, 도시바)에 집중되었다.[6][7]

이 융자 자금의 재원은 대부분 일본은행의 채권(부흥금융채) 인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1947년 여름, 국회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인플레이션을 촉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8]

가타야마 내각, 아시다 내각에서도 경사생산 정책은 계속되었다. 석탄 증산은 거의 목표대로 진행되었고, 광공업 생산 증가로 이어져 일본 경제 부흥에 기여했다. 그러나 부흥금융금고의 과도한 자금 투입으로 통화 공급량이 늘어나면서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었고, 이를 "부금 인플레이션"이라고 불렀다.[12]

4. 결과

가타야마 내각아시다 내각에서도 경사생산방식은 계속되었다. 석탄 생산량은 목표치를 달성하는 등 처음에는 좋은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부흥금융금고가 너무 많은 자금을 투입하면서 통화량이 늘어나 인플레이션이 심해졌고, '부금 인플레이션'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4. 1. 문제점

부흥금융금고 융자를 둘러싼 쇼와 전공 사건이 1948년에 발생하면서 경사생산방식의 문제점이 드러났다.[3] GHQ는 자유주의 경제 원칙에 따라 통제 경제에서 벗어나 일본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도록 도지 라인을 도입했다(1949년).[4] 이미 1947년, 이시바시 단잔 재무대신이 공직 추방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부흥금융금고 융자를 포함해 인플레이션을 촉진하는 적극적 재정을 추진한 이시바시에 대한 GHQ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한다.[4]

5. 전환

도지 라인에 의한 디플레이션 등에 대처하기 위해 '기업 합리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경사 생산 방식으로부터의 결정적인 정책 전환이 이루어졌다. 경사 생산 방식에서는 석탄업 등에 속하는 기업이라면 그 능률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을 정부 지원 대상으로 하였던 반면, '기업 합리화'에서는 동일 산업 내에서도 능률과 생산 비용이 양호한 기업에 자산, 자재를 집중하여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업 육성을 목표로 했다.[3] 이러한 정책 전환에 따라 1949년 부흥금융금고의 신규 융자는 정지되었고, 1951년에는 부흥금융금고가 해산되고 일본개발은행으로 대출 채권이 승계되었다.[3]

6. 평가

일본경제신문은 1987년 11월 18일 자 조간 23면에 소득 배증 계획과 삼공사(일본국유철도, 일본전신전화공사, 일본전매공사) 민영화와 더불어 "후세에 그 성과가 평가받아야 할 정책" 3건 중 하나로 꼽았다.[18] 여기서는 "광공업 생산 수준을 최소 필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는 점을 중시하며 인플레이션 악화나 쇼와 전공 사건도 부정적인 측면으로 고려하여 평가했다.

고무로 나오키는 2003년에 경사생산방식은 혁신 관료와 마르크스 경제학자가 협력하여 추진한 계획 경제이며, 이후 일본 경제는 사회주의자본주의가 혼연일체가 되었다고 평가했다.[19]

나가에 마사카즈는 2009년에 "일본 정부 주도의 부흥 계획이 미국의 대일 중유 수입 허가를 이끌어내고, 전후 일본의 중공업 부흥의 물꼬를 튼 점은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21]

다카하시 요이치는 2016년에 경사생산방식은 미국으로부터의 원조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의미로는 성공했지만, 경제적인 의미에서는 거의 효과가 없는 것이었다고 결론지었다.[23]

일본 고등학교 교육 (정치·경제)에서는 많은 현대 사회, 정치·경제 교과서나 교과서를 일반용으로 재편집한 『다시 읽는 야마카와 정치 경제』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의 경제 정책으로 약간 언급하고 있다.[24]

참조

[1] 서적 日本鉄鋼技術の形成と展開 http://d-arch.ide.go[...]
[2] 문서 閣議書 https://www.archives[...] 1946-12-27
[3] 서적 日本経済史 1600-2000
[4] 문서 日本経済史1600‐2000-歴史に読む現代
[5] 간행물 我が国のエネルギー供給における石炭の変遷 経済産業省
[6] 논문 戦後ハイパー・インフレと中央銀行 http://www.imes.boj.[...] 2010-07-24
[7] 서적 日本の独占資本
[8] 뉴스 衆議院会議録情報 第001回国会 財政及び金融委員会 第15号 https://kokkai.ndl.g[...]
[9] 논문 戦後鉄鋼業の発展と企業家活動 : 永野重雄、日向方斉のケース 濱田信夫 https://cir.nii.ac.j[...]
[10] 서적 私の鉄鋼昭和史
[11] 서적 戦後50年にっぽんの軌跡
[12] 서적 戦後ハイパー・インフレと中央銀行
[13] 문서 鉄道の電化
[14] 서적 私の履歴書
[15] 웹사이트 5-8 経済の再建 史料にみる日本の近代 https://www.ndl.go.j[...] 国立国会図書館 2010-07-28
[16] 웹사이트 平成4年 年次経済報告 http://wp.cao.go.jp/[...] 経済企画庁 2010-07-24
[17] 간행물 我が国のエネルギー供給における石炭の変遷 経済産業省
[18] 뉴스 1987年11月18日付日経新聞記事
[19] 서적 論理の方法 社会科学のためのモデル 東洋経済新報社
[20] 문서 前掲書
[21] 서적 日本経済史1600‐2000
[22] 논문 ロシアの経済改革と日本の産業政策 http://www.meti.go.j[...] 2010-07-24
[23] 서적 戦後経済史は嘘ばかり PHP新書
[24] 서적 もういちど読む山川政治経済 山川出版社
[25] 서적 もういちど読む山川日本史 山川出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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