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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상호원조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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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제상호원조회의(코메콘)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마셜 플랜에 대항하여 소련을 중심으로 설립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 기구였다. 1949년 6개국으로 시작하여 동독, 몽골, 쿠바, 베트남 등이 가입하여 최대 10개국으로 확대되었으며, 유고슬라비아는 준가맹국, 중국과 북한 등은 참관국 자격으로 참여했다. 초기에는 소련의 일방적인 이익 착취로 비판받았으나, 이후 경제 협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코메콘은 회원국 간 경제 활동을 조정하고 다자간 협력을 추진했으나, 소련의 영향력, 계획 경제의 경직성 등으로 인해 경제 통합에는 한계를 보였다. 1989년 동유럽 혁명과 냉전 종식으로 해체되었으며, 회원국들은 시장 경제 체제로 전환하고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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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상호원조회의
지도
기본 정보
코메콘 깃발
코메콘 깃발
공식 명칭경제 상호 원조 회의
로마자 표기Sovet Ekonomicheskoy Vzaimopomoshchi
약칭COMECON, CMEA, CAME
설립일1949년 1월 25일
해산일1991년 6월 28일
본부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
유형경제 연합
존속 시기냉전 시대
설립1949년
회원국
정회원알바니아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쿠바
동독
헝가리
몽골
폴란드
루마니아
소비에트 연방
베트남
준회원유고슬라비아
협력국핀란드
이라크
멕시코
옵서버앙골라
시리아
에티오피아
언어
공식 언어러시아어
불가리아어
체코어
독일어
헝가리어
몽골어
폴란드어
루마니아어
스페인어
베트남어
통화
사용 통화소비에트 루블
동독 마르크
폴란드 즈워티
체코슬로바키아 코루나
루마니아 레우
불가리아 레프
헝가리 포린트
쿠바 페소
몽골 튀그릭
베트남 동
기타
면적 (1960년)23,422,281 km²
면적 (1989년)25,400,231 km²
인구 (1989년)5억 400만 명
관련 사건소비에트 연방 해체

2. 역사

옛 코메콘 본부(현 모스크바시 정부 청사)


코메콘(COMECON)의 로고


코메콘 기념 우표. 정식 가입 10개국의 국기가 그려져 있다.


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 СЭВ)는 유럽연합(EU)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권이었다.[59]

설립 목적은 미국마셜 플랜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공산권의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반영되었다. 소련서구민주주의와 언론자유 가치관이 동유럽에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동유럽 국가들의 주권을 약화시키고 언론검열을 지속했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1949년 1월 25일 ‘경제상호원조회의 창설에 관하여’라는 연설에서 “우리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는 자본주의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돈을 쓰지 않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성공을 보여주겠다”라고 자유 세계에 공언했다.[60]

창립 후, 회원국들 사이에는 큰 불평등이 존재했고, 소련의 지위는 다른 국가들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소련은 각 회원국이 무엇을 생산해야 하는지를 일방적으로 결정했으며, 수익성이 없는 산업은 다른 국가들에 떠넘겼다.[61] 이로 인해 소련 경제는 소량의 성장을 이루었지만, 다른 공산독재국가들의 경제는 거의 성장하지 않았고, 외교적으로 소련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다.

1980년대 초, 소련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약화되었다.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동유럽 국가들은 공산 체제를 포기하고 자유시장경제와 자본주의 노선으로 전환했다. 1991년 6월 28일, 각 회원국 지도자들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모여 경제상호원조회의 해산을 전 세계에 발표했다.

2. 1. 설립 배경 (1949년 이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마셜 플랜을 통해 서유럽 국가들에 대한 경제 지원을 추진했다. 이는 소련에게 위협으로 인식되었으며,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3] 스탈린은 동유럽 국가들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서방 세계로부터의 고립을 심화시키고자 했다.[6]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는 마셜 플랜에 관심을 보였으나, 소련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스탈린은 1947년 7월 이들 국가에 유럽 회복 계획 파리 회의에서 철수하도록 명령했다. 이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분단의 "진실의 순간"으로 묘사되기도 한다.[6]

스탈린은 GATT의 차별 없는 무역 파트너 대우 개념이 사회주의 연대 개념과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겼다.[5] 또한, 중앙 및 동유럽의 관세 동맹과 경제 통합 제안은 1848년 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많은 초기 제안들이 러시아 및/또는 공산주의 "위협"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5] 중앙 계획 경제의 국가 간 거래에는 조정이 필요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독점 판매업체가 독점 구매업체를 마주하게 되고 가격을 설정할 구조가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10]

최근 연구에 따르면, 루마니아는 1949년 코메콘 창설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루마니아는 다른 인민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무역 관계 개선을 위해 "협력 시스템"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다.[11] 1948년 12월, 루마니아 지도자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즈는 스탈린에게 편지를 보내 코메콘 창설을 제안했다.[12]

2. 2. 초기 (1949년 ~ 1953년)

1949년 1월 모스크바에서 경제 회의가 개최되었고, 코메콘이 창설되었다.[8] 초기 회원국은 소비에트 연방,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였다.[3] 알바니아는 한 달 후, 동독1950년에 가입했다.[8]

초기 코메콘은 소련 중심의 일방적인 경제 구조를 띠었다. 소련은 동유럽 국가들로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자원을 수입하고, 고가의 공산품을 수출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취했다.[61] 이 시기 코메콘은 '소피아 원칙'을 채택하여 회원국 간 기술 이전을 촉진했지만, 이는 기술력이 높은 동독, 체코슬로바키아 등에 불리하게 작용했다.[15]

2. 3. 흐루쇼프 시대 (1953년 ~ 1964년)

1953년 이오시프 스탈린 사망 후, 코메콘은 다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초 모든 코메콘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자급자족적인 정책을 채택했지만, 상호 보완적인 특화 발전에 대한 논의를 재개했고, 1956년에는 이러한 문제들의 조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10개의 상설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소련은 코메콘의 제조업 제품과 석유를 교역하기 시작했다. 5개년 계획 조정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15]

그러나 다시 한번 문제가 발생했다. 1956년 폴란드 시위와 1956년 헝가리 봉기는 1956~60년 소련 5개년 계획의 1957년 폐기 등 주요 사회·경제적 변화를 야기했는데, 이는 코메콘 정부들이 정당성과 국민적 지지를 재확립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기 때문이다.[17] 그 후 몇 년 동안 Переводный рубль|전환 루블ru 도입, 국가 특화에 대한 수정된 노력, 그리고 1957년 로마 조약을 본뜬 1959년 헌장 등 무역 및 경제 통합 증진을 위한 일련의 작은 조치들이 있었다.[18]

다시 한번, 초국가적 중앙 계획 노력은 실패했다. 1961년 12월, 이사회 회의는 계획의 더욱 긴밀한 조정과 "유사한 제품의 생산을 하나 또는 여러 사회주의 국가에 집중"하는 것에 대해 논의한 국제 사회주의 노동 분업의 기본 원칙을 승인했다. 1962년 11월, 소련 총리 니키타 흐루쇼프는 "공동 단일 계획 기구"를 요구하는 후속 조치를 취했다.[19] 이는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의 저항에 직면했지만, 농업 전문화라는 개념을 강력히 거부한 점점 더 민족주의적으로 변해가던 루마니아의 반대가 가장 강했다.[20] 중앙 및 동유럽에서는 불가리아만이 기꺼이 할당된 역할(농업이었지만, 불가리아의 경우 이는 1930년대 독립 국가였을 때부터 국가가 선택한 방향이었다)을 수행했다.[21] 본질적으로 소련이 긴밀한 경제 통합을 요구할 때쯤에는 더 이상 그것을 강요할 힘이 없었다. 일부 느린 진전에도 불구하고 석유, 전력 및 기타 기술/과학 부문에서 통합이 증가했고 1963년 국제 경제 협력 은행이 설립되었지만, 코메콘 국가들은 서로 간의 무역보다 서구와의 무역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증가시켰다.[22]

2. 4. 브레즈네프 시대 (1964년 ~ 1982년)

1967년, 코메콘은 '관심 당사자 원칙'을 채택하여 회원국의 자율성을 확대했다.[62] 이는 루마니아가 독자적인 경제 노선을 추구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1971년, 코메콘은 '사회주의 경제 통합을 위한 종합 프로그램'을 채택하여 경제 통합을 강화하고자 했으나, 회원국 간 경제력 격차와 소련 중심의 구조로 인해 한계를 드러냈다. 1970년대, 코메콘 국가들은 서방으로부터의 차관 도입과 기술 이전을 통해 경제 성장을 추구했으나, 1970년대 말 데탕트 종식과 함께 경제 위기를 맞았다.[62]

2. 5. 페레스트로이카와 해체 (1985년 ~ 1991년)

1980년대 초, 소련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약화되고 있었다. 과거 억압받던 동유럽 국가들은 소련의 명령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진영 사람들은 "현실에서 붕괴되고 있는 경제"와 "이론적으로는 풍요로워야 할 공산주의 사회" 사이의 큰 차이를 깨닫고 코메콘(Comecon) 활동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62]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동유럽 국가들은 공산 체제를 포기하고 자유시장경제와 자본주의 노선으로 전환했다. 1991년 6월 28일, 각 회원국 지도자들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모여 경제상호원조회의 해산을 전 세계에 발표했다.

3. 회원국

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는 회원국 간의 경제 협력을 목표로 설립된 국제기구였다. 회원국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회원국공용어정식 명칭약칭
불가리아어Съвет за икономическа взаимопомощ|Sǎvet za ikonomičeska vzaimopomošt|서베트 자 이코노미체스카 브자이모포모슈트bgСИВ|SIV|시프bg
스페인어Consejo de Ayuda Mutua Económica|CAME|콘세호 데 아유다 무투아 에코노미카esCAME|카메es
rowspan="2" |체코어Rada vzájemné hospodářské pomoci|RVHP|라다 브자옘네 호스포다르스케 포모치csRVHP|르브흐프cs
슬로바키아어Rada vzájomnej hospodárskej pomoci|RVHP|라다 브자욤네이 호스포다르스케이 포모치skRVHP|르브흐프sk
독일어Rat für gegenseitige Wirtschaftshilfe|RGW|라트 퓌어 게겐자이티게 비르트샤프츠힐페deRGW|에르게베de
헝가리어Kölcsönös Gazdasági Segítség Tanácsa|KGST|쾰최뇌시 거즈더사기 셰기체그 터나차huKGST|카게슈트hu
몽골어Эдийн засгийн харилцан туслалцах зөвлөл|Ediin zasgiin khariltsan tuslaltsakh zövlöl|에딩 자스깅 하릴찬 투슬랄차흐 죄블뢸mnЭЗХТЗ|EZKhTZ|에즈흐테제mn
폴란드어Rada Wzajemnej Pomocy Gospodarczej|RWPG|라다 브자옘네이 포모치 고스포다르체이plRWPG|에르베페게pl
루마니아어Consiliul de Ajutor Economic Reciproc|CAER|콘실리울 데 아주토르 에코노미크 레치프로크roCAER|카페르ro
rowspan="15" |러시아어Сове́т Экономи́ческой Взаимопо́мощи|Sovet ekonomicheskoy vzaimopomoshchi|소베트 에코노미체스코이 브자이모포모시ruСЭВ|SEV|세프ru
우크라이나어Рада Економічної Взаємодопомоги|Rada Ekonomičnoji Vzajemodopomohy|라다 에코노미치노이 브자예모도포모히ukРЕВ|REV|레우uk
벨라루스어Савет Эканамічнай Узаемадапамогі|Saviet Ekanamičnaj Uzajemadapamohi|사베트 에카나미치나이 우자예마다파모히beСЭУ|SEU|세우be
우즈베크어Ўзаро Иқтисодий Ёрдам Кенгаши|O'zaro iqtisodiy yordam kengashi|우자로 이크티소디 요르담 켄가시uzЎИЁК|O'IYoK|우이요크uz
카자흐어Экономикалық өзара көмек кеңесі|Ekonomıkalyq özara kömek keñesi|에코노미칼릭 외자라 쾨메크 케녜시kkЭӨКК|EÖKK|에외카카kk
조지아어ორმხრივი ეკონომიკური დახმარების საბჭო|Ormkhrivi Ekonomikuri Dakhmarebis Sabcho|오름흐리비 에코노미쿠리 다흐마레비스 삽초kaოედს|OEDS|오에데스ka
아제르바이잔어Гаршылыглы Игтисади Јарадым Шурасы|Qarşılıqlı İqtisadi Yardım Şurası|가르실리글리 이그티사디 야르딤 슈라시azГИЈШ|QİYŞ|기이시az
리투아니아어Ekonominės Savitarpio Pagalbos Taryba|ESPT|에코노미네스 사비타르피오 파갈보스 타리바ltESPT|에스페테lt
몰도바어Консилюл де Ажутор Економик Речипрок|Consiliul de Ajutor Economic Reciproc|콘실리울 데 아주토르 에코노미크 레치프로크roКАЕР|CAER|카페르ro
라트비아어Savstarpējās ekonomiskās palīdzības padome|SEPP|사브스타르페야스 에코노미스카스 팔리지바스 파도메lvSEPP|세프lv
키르기스어Өз ара Экономикалык Жардам үчүн кеңеш|Öz ara ekonomikalık jardam üçün keŋeş|외즈 아라 에코노미칼릭 자르담 위췬 케녜시kyӨАЭЖҮК|ÖAEJÜK|외아에쥐위크ky
타지크어Шӯрои Барои Кумак Иқтисодии Муштарак|Shūroi baroi kumak iqtisodii mushtarak|슈로이 바로이 쿠마크 이크티소디 무슈타라크tgШБKИМ|ShBKIM|슈브킴tg
아르메니아어Խորհուրդը փոխադարձ տնտեսական աջակցության|Khorhurdy pvokhadardz tntesakan ajaktsut'yan|호르후르디 프보하다르즈 튼테사칸 아작추탼hyԽփտա|KhPTA|흐프타hy
투르크멘어Ыкдысады Өзара Көмек Гүррңи|Ykdysady özara kömek gürrüňi|이크디사디 외자라 쾨메크 귀륀이tkЫӨКГ|YÖKG|이외카게tk
에스토니아어Vastastikkuse Majandusabi Nõukogu|VMN|바스타스티쿠세 마얀두사비 너우코구etVMN|베엠엔et
베트남어Hội đồng Tương trợ Kinh tế|HĐTTKT|호이 동 뜨엉 쩌 낀 떼viHĐTTKT|에이치디티티케이티vi



모스크바에는 코메콘의 본부가 있었으며, 이는 현재 모스크바시 정부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3. 1. 정회원국

(km2당)통화공용어불가리아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Народна република България|나로드나 레푸블리카 벌가리야bg)1949년 1월유럽소피아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레프불가리아어쿠바쿠바 공화국
(República de Cuba|레푸블리카 데 쿠바es)1972년 7월북아메리카하바나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페소스페인어체코슬로바키아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Československá socialistická republika|체스코슬로벤스카 소시알리스티츠카 레푸블리카cs)1949년 1월유럽프라하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코루나체코어, 슬로바키아어동독독일 민주 공화국
(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도이체 데모크라티셰 레푸블리크de)1950년 9월유럽동베를린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마르크독일어헝가리헝가리 인민 공화국
(Magyar Népköztársaság|머저르 네프쾨즈타르셔샤그hu)1949년 1월유럽부다페스트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포린트헝가리어몽골몽골 인민 공화국
(Бүгд Найрамдах Монгол Ард Улс|버그드 나이람다흐 몽골 아르드 울스mn)1962년 6월아시아울란바토르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투그릭몽골어폴란드폴란드 인민 공화국
(Polska Rzeczpospolita Ludowa|폴스카 제치포스폴리타 루도바pl)1949년 1월유럽바르샤바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즈워티폴란드어루마니아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Republica Socialistă România|레푸블리카 소치알리스터 로므니아ro)1949년 1월유럽부쿠레슈티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레우루마니아어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소유스 소베츠키흐 소치알리스티체스키흐 레스푸블리크ru)1949년 1월유럽/아시아모스크바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루블없음(러시아어는 연방의 사실상 공용어였다.)베트남[3]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꽁 호아 싸 호이 쭈 응이어 비엣 남vi)1978년 6월아시아하노이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 |베트남어

3. 2. 준회원국

(1964년에 준가맹국 지위 획득)[3]

3. 3. 참관국

4. 구조

공산당 및 노동자당 제1서기 회의와 코메콘 회원국 정부 수반 회의는 공식적인 조직 계층구조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코메콘에서 가장 중요한 기구였다. 이들 당 및 정부 지도자들은 정기적으로 회의를 통해 상호 관심사를 논의했다. 회의 참가자들의 직급 때문에 그들의 결정은 코메콘과 그 기구들의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3]

코메콘의 공식적인 계층구조는 상호경제원조회의(Comecon) 세션, 이사회 집행위원회, 이사회 사무국, 4개의 이사회 위원회, 24개의 상임위원회, 6개의 국가 간 회의, 2개의 과학연구소, 그리고 여러 관련 기구들로 구성되었다.[3]

4. 1. 세션

상호경제원조회의(Comecon)의 최고 기관인 상호경제원조회의 세션은 경제 통합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검토하고 사무국 및 기타 하급 기구들의 활동을 지휘했다.[3] 각 회원국의 대표단이 이 회의에 참석했으며, 대표단은 통상적으로 총리가 이끌었다. 회의는 매년 2분기에 회원국의 수도에서 개최되었고, 회의 장소는 키릴 문자를 기반으로 한 순환 시스템에 따라 결정되었다.[3] 모든 이해 관계자는 세션에서 제시된 권고 사항을 고려해야 했다.[3] 조약 또는 기타 법적 합의를 통해 채택된 권고 사항은 시행되었다.[3] 상호경제원조회의 자체는 자체 및 기관과 관련된 조직 및 절차적 문제에 대해서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3]

각국은 회원국과 상호경제원조회의 간의 연례 회의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임대표 1명을 임명했다.[3] 특별 세션은 회원국의 3분의 1 이상의 동의를 얻어 개최될 수 있었는데, 1985년 12월 회의가 그러한 예이다.[3] 이러한 회의는 일반적으로 모스크바에서 열렸다.[3]

4. 2. 집행위원회

집행위원회는 코메콘 최고 집행 기관으로, 회의 사이에 정책 권고안을 작성하고 그 이행을 감독하는 임무를 맡았다. 또한 계획 조정 및 과학기술 협력 작업도 감독했다.[3] 각 회원국의 부총리급 대표 한 명으로 구성되었으며, 보통 모스크바에서 분기별로 회의를 열었다. 1971년과 1974년에는 집행위원회 산하에 상임위원회보다 상위에 있는 경제부서를 설치하여 집행위원회의 권한과 중요성이 상당히 강화되었다.[3]

4. 3. 사무국

코메콘의 공식적인 계층 구조는 상호경제원조회의(Comecon) 세션, 이사회 집행위원회, 이사회 사무국, 4개의 이사회 위원회, 24개의 상임위원회, 6개의 국가 간 회의, 2개의 과학연구소, 그리고 여러 관련 기구들로 구성되었다.[3]

4. 4. 위원회

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에는 다음과 같은 4개의 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었다.

위원회 명칭역할
계획 협력 위원회회원국 간 경제 계획 조정[3]
과학기술 협력 위원회회원국 간 과학기술 협력 문제 검토 및 해결[3]
자재 및 기술 공급 협력 위원회회원국 간 자재 및 기술 공급 협력 문제 검토 및 해결[3]
기계 제작 협력 위원회회원국 간 기계 제작 협력 문제 검토 및 해결[3]



이 위원회들은 모두 모스크바에 본부를 두었으며, 주로 그곳에서 회의를 개최했다. 이들은 상임위원회, 사무국, 국가 간 회의 및 전문 분야의 연구소에 자문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했다.[3] 또한, 다른 코메콘 기구에 정책 권고를 할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상임위원회보다 넓은 관할권을 가졌다.[3]

4. 5. 상임위원회

1956년, 경제상호원조회의(코메콘)는 특정 경제 부문과 관련된 권고를 돕기 위해 8개의 상임위원회를 설립했다.[3] 이후 여러 차례 재편 및 개명이 이루어졌고, 1986년에는 24개의 상임위원회가 존재했다.[3] 각 위원회는 회원국의 수도에 본부를 두었고, 해당 분야의 회원국 주요 당국자가 위원장을 맡았다.[3]

상임위원회는 권고안을 제시할 수 있는 권한만 있었으며, 이 권고안은 집행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회의에 제출된 후 관련 회원국의 비준을 받아야 했다.[3] 위원회는 보통 1년에 두 번 모스크바에서 회의를 가졌다.[3] 사무국은 위원회의 실제 운영을 감독했다.[3]

4. 6. 제휴 기관

국제경제협력은행(이전 가능 루블 시스템 관리), 국제투자은행(공동 프로젝트 자금 조달 담당), 인터메탈(철강 야금 협력 장려) 등 여러 제휴 기관들이 코메콘의 공식적인 위계 밖에 존재하면서 코메콘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들은 "코메콘 회원국들의 적절한 기관 및 조직 간의 직접적인 연계"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다.[3]

이러한 제휴 기관들은 두 가지 범주로 나뉘었다.[3]

국제 경제 기구는 일반적으로 합작 기업, 국제 경제 협회 또는 연합, 국제 경제 파트너십의 형태를 취했다. 여기에는 인터아토민스트루멘트(원자력 기계 생산업체), 인터텍스틸마시(섬유 기계 생산업체), 헝가리-폴란드 합작 기업인 할덱스(Haldex, 석탄 슬래그 재처리)가 포함되었다.[3]

5. 운영 방식

경제상호원조회의(코메콘)는 회원국 간 경제 협력을 증진하고 다자간 경제, 과학, 기술 협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기구였다.[3] 1959년 헌장에는 "모든 회원국의 주권 평등"이 명시되어, 각국은 경제 규모에 관계없이 동등한 대표권과 투표권을 가졌다.[3][18]

1967년부터는 "관심사" 조항이 도입되어 회원국은 특정 사안에 대해 "관심"을 선언하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3][23] 코메콘은 만장일치 원칙을 따랐지만, 1967년부터는 무관심한 국가는 거부권 대신 불참할 권리를 가졌다.[3][23] 즉, 특정 사안에 관심이 없는 국가는 결정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이는 프로젝트 진행을 막지는 못했다.

코메콘은 경제 통합보다는 상호 경제 지원의 성격이 강했으며, 다자주의는 달성하기 어려웠다.[48] 블라디미르 소벨(Vladimir Sobell)은 코메콘이 "국제 무역 시스템"이라기보다는 "국제 보호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49] 이는 코메콘이 시장 가격을 통한 효율적인 자원 배분보다는 중앙 계획 목표 달성을 위한 회원국 간 원조에 더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49] 1970년대와 1980년대 헝가리와 폴란드의 일부 경제학자들은 시장 주도형 코메콘을 옹호했지만, 이는 당시 이념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49]

코메콘 내에서는 시스템 작동 방식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초기에는 니콜라이 보즈네센스키가 기술관료적 가격 기반 접근 방식을 주장했지만, 안드레이 즈다노프 사망 이후 "물리적 계획" 접근 방식이 채택되어 중앙 정부의 역할이 강화되었다.[39] 코메콘 전체 계획을 수립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소련을 포함한 각국의 주권 문제로 인해 실패했다.[41]

코메콘 국가들의 대외 무역은 대부분 국가 독점 형태였고, 이로 인해 생산자와 외국 고객 간 소통이 어려웠다.[42] 또한 각국은 최고 제품을 국내에서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어, 코메콘 내 무역은 소련 석유를 제외하고는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42]

의미 있는 환율이나 시장 경제 없이 운영된 코메콘 국가들은 가격 기준점으로 세계 시장을 참고해야 했다.[37] 코메콘 내에서는 원자재 가격이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었다.[37] 국제적인 물물교환은 코메콘 국가들의 경화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자유 시장 가격과 비교했을 때 불리한 조건으로 거래되는 경우도 있었다.[37]

6. 유럽경제공동체(EEC)와의 비교

1980년대 후반 유럽의 무역 블록. EEC 회원국은 파란색, EFTA는 녹색, 코메콘은 빨간색으로 표시됨.


코메콘은 종종 "(중앙 및) 동유럽의 유럽 경제 공동체(EEC)"로 불리기도 했지만, 두 조직 간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했다. 두 조직 모두 경제 통합을 관리했지만, 경제 구조, 규모, 균형 및 영향력은 달랐다.[3]

1980년대 EEC는 국가 및 국제적 규모에서 이윤과 경제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부 간 협정을 통해 유럽 2억 7천만 명을 경제적 연합으로 통합했다. EEC는 관세 철폐와 같은 결정을 채택하고 집행할 수 있는 초국가적 기구였다. 회원국의 활동은 개인이나 기업 수준의 하향식 주도와 기업 활동을 기반으로 했으며 시장 경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코메콘은 3개 대륙 10개국 4억 5천만 명을 회원으로 포함했다. 국가 간 산업화 수준은 크게 달랐다. 코메콘은 몽골과 베트남과 같은 저개발 국가를 일부 고도로 산업화된 국가와 연결했다. 마찬가지로 유럽 회원국과 비유럽 회원국 간에 큰 국민소득 격차가 존재했다. 소련의 물리적 규모, 군사력, 정치 및 경제적 자원 기반은 소련을 주도적인 회원국으로 만들었다. 코메콘 회원국 간 무역에서 소련은 일반적으로 원자재를 제공하고, 중앙 및 동유럽 국가는 완제품 및 기계를 제공했다. 세 개의 저개발 코메콘 회원국은 다른 일곱 개 회원국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 코메콘은 이 세 나라의 저개발 경제에 대한 상당한 기여로 인해 경제적 이익보다 정치적 이익을 훨씬 더 많이 얻었다. 경제 통합 또는 "계획 조정"이 코메콘 활동의 기반이 되었다. 회원국의 계획 경제를 반영하는 이 시스템에서 상위에서 내려온 결정은 시장 경제력이나 민간 주도의 영향을 무시했다. 코메콘은 결정을 내리거나 이행할 초국가적 권한이 없었다. 코메콘의 권고는 이해관계자들의 전적인 동의가 있을 경우에만 채택될 수 있었고 (1967년부터[23]) 무관심을 선언한 회원국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3]

앞서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코메콘 대외 무역은 국가 독점이었으며, 생산자와 해외 고객 간에 여러 장벽을 만들었다.[42] 정부 활동을 제한하고 시장이 국가 간 경제 통합을 가능하게 한 EEC와 달리, 코메콘은 적극적인 정부 조치를 요구하는 협정을 개발해야 했다. 또한 EEC에서 민간 무역이 국가적 경쟁을 서서히 제한하거나 없앤 반면, 코메콘의 국가 간 무역은 국가적 경쟁과 반감을 강화했다.[50]

7. 평가 및 영향

코메콘은 초기에는 소련 중심의 불평등한 경제 구조로 인해 회원국들의 불만을 야기했다.[61] 소련은 각 회원국들이 생산해야 할 품목을 일방적으로 결정했으며, 수익성이 높은 산업은 소련 내에 두고, 농업, 경공업, 식품 등 수익성이 낮은 산업은 다른 국가들에 떠넘겼다.[61] 이로 인해 다른 회원국들의 경제 성장은 정체되었고, 소련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회원국 간의 협력을 강화하고 경제 통합을 추진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소련의 영향력과 회원국 간의 경제력 격차로 인해 한계를 보였다. 1980년대 초반, 소련의 경제적, 군사적 약화는 동유럽 국가들이 소련의 명령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62]

코메콘은 회원국 간의 무역을 증진시키고, 특히 소련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함으로써 회원국들의 경제 안정에 기여했다. 하지만 코메콘의 폐쇄적인 경제 체제와 비효율적인 생산 방식은 회원국들의 경제 발전을 저해하고, 서방 세계와의 기술 격차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을 깨달은 사람들은 코메콘 활동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고,[62] 1989년 동유럽의 민주화와 함께 동유럽 국가들은 공산 체제를 포기하고 시장 경제 체제로 전환했다. 코메콘의 해체는 동유럽 국가들의 시장 경제로의 전환과 유럽 통합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1년 6월 28일, 회원국 지도자들은 부다페스트에서 코메콘 해체를 공식 발표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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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학술지 The creation of the Council for Mutual Economic Assistance as seen from the Romanian archives: The creation of the Council for Mutual Economic Assistance https://academic.oup[...]
[60] 뉴스 “四史”关键词|经济互助委员会究竟是个什么样的组织? https://www.thepaper[...] 澎湃新闻 2020-09-01
[61] 웹사이트 Appendix B: The Council for Mutual Economic Assistance http://memory.loc.go[...] Library of Congress Country Study 2022-10-23
[62] 학술지 Division internationale socialiste du travail et Coexistence pacifique des systèmes https://www.perse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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