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열 (수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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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교열은 《수호전》에 등장하는 인물로, 선술을 익혀 비를 내리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젊은 시절 도사 나진인에게 제자가 되려 했으나 거절당했고, 이후 부패한 관리들을 처단하고 도망치는 과정에서 전호의 휘하에 들어가 요술사로 활동했다. 전호가 양산박군에 의해 토벌될 때 양산박군과 대립했으나, 공손승에게 패배하고 항복하여 양산박군에 합류했다. 왕경 토벌전에서 공을 세웠으나, 절친한 손안의 죽음으로 상심하여 양산박군을 떠나 스승 나진인에게 돌아가 도를 닦으며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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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열 (수호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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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 |
이름 | 喬冽 (교렬) |
로마자 표기 | Qiáo Liè |
별호 | 金眼虎 (금안호) |
출신지 | 薊州 (계주) |
직책 | 馬軍小彪將兼遠探出哨頭領 (마군소표장 겸 원탐출초두령) |
수호전 내 역할 | |
양산박 순위 | 63위 |
양산박 직책 | 32명의 마군 두령 중 한 명 |
무기 | 戟 (극) |
최후 | 征討方臘 (정토방랍) 전투 중 戰死 (전사) |
2. 생애
교열은 경원 출신으로 젊었을 때 공동산에 올라가 불가사의한 인물에게서 선술을 배워 비바람을 부르는 능력을 얻었다. 나진인의 제자가 되려 했으나 마심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후 방랑 생활을 하던 중 안정주에서 법술로 비를 내리게 했으나, 상금을 악덕 관리들이 가로채자 그들을 죽이고 도망친다. 하북에서 반란을 일으킨 전호에게 요술사로 발탁되어 하북의 주현을 점령하는 데 큰 공을 세운다.
송나라가 요나라를 토벌하고 돌아온 양산박군에게 전호 토벌을 명하자, 전호군은 열세에 놓인다. 교열은 호관의 수장 산사기와 진녕의 전표 등의 구원 요청을 받고 손안과 함께 출진하지만, 당빈의 배신으로 호관은 이미 함락된 뒤였다. 양산박군과의 전투에서 이규, 노지심, 무송, 유당 등을 사로잡고 번서의 도술을 깨뜨리는 등 강력한 법력을 보였으나, 공손승에게 패배하고 만다. 결국 손안을 통해 공손승에게서 나진인의 뜻과 자신의 천명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양산박군에 항복, 제자 마령도 설득하여 함께 항복한다.
전호가 멸망한 후, '초왕(楚王)'을 참칭하는 왕경 토벌에 참여하여 왕경군의 유민이 지키는 완주와 공단이 지키는 서경성 공격 등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왕경의 난 평정 직전 손안이 병사하자, 이에 상심한 교열은 개선에 참여하지 않고 마령과 함께 양산박군에서 사퇴한다. 이후 마령과 함께 이선산에 올라가 나진인의 제자가 되어 도를 배우고 천수를 다하였다.
2. 1. 출생과 도술 습득
경원(涇原) 출신으로 젊었을 때 공동산(崆峒山)에 올라갔다가 불가사의한 인물을 만나 선술(仙術)을 배워 비바람을 부르는 능력을 얻게 된다. 고명한 도사인 나진인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여 이선산(二仙山)을 찾아갔으나, 나진인은 교열에게 마심(魔心)이 있다 하여 입문을 허락하지 않았다.2. 2. 방랑과 전호와의 만남
경원(涇原) 출신으로 젊었을 때 공동산(崆峒山)에 올라갔다가 불가사의한 인물을 만나 선술(仙術)을 배워 비바람을 부르는 능력을 얻게 된다. 나진인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여 이선산(二仙山)을 찾아갔으나, 나진인은 교열에게 마심(魔心)이 있다 하여 입문을 허락하지 않았다.그 후 방랑 생활을 하던 교열은 가뭄에 시달리는 안정주에서 비를 내리면 상금 3천 관을 주겠다는 관리의 제시에 따라 법술로 비를 내리게 했지만, 상금의 대부분을 악덕 관리들이 착복해 버린다. 이에 분개한 교열은 부패 관리들을 때려죽이고 도망치게 된다. 때마침 하북에서 전호가 모반을 일으켰고, 전호는 '도청(道淸)'으로 이름을 바꾼 교열이 요술사임을 알고 자신의 휘하로 맞아들여 하북의 주현을 점령해 갔다.
전호 세력이 하북의 5주 56현을 점거하고 국호를 '진(晋)'으로 하는 왕조를 건국하자, 송은 요나라를 토벌하고 개선한 양산박군에게 전호 토벌을 명한다. 양산박군에게 전호군은 열세에 놓이게 되고, 전호의 성과 거점은 탈환되어 간다.
교열은 열세에 처한 호관(壺關)의 수장 산사기(山士奇)와 진녕(晋寧)을 지키는 전표(田彪) 등으로부터 구원을 요청받고, 전호에게 손안과 함께 양산박을 물리칠 의사를 전하고 호관 구원에 나선다. 그러나 출진했을 때에는 당빈의 배신으로 이미 호관은 함락되어 소덕성에까지 쳐들어온 양산박군과 격전을 벌이게 된다.
교열은 강력한 법력을 발휘해 첫 전투에서 당빈과 양산박의 맹장 이규를, 2차전에서는 노지심, 무송, 유당 등을 차례로 붙잡고 번서의 도술마저 깨뜨리는 위세를 보였다. 그러나 공손승에게는 도술을 깨지고 백곡령으로 내몰린다. 이후 손안을 통해 공손승이 나진인의 뜻과 자신의 천명에 대해 얘기하자 깨닫고 공손승을 스승으로 모시고 양산박군에 항복한다. 또 제자인 전호군의 요술사 마령도 설득하여 항복시켰다.
2. 3. 양산박과의 대결과 귀순
교열이 양산박 군과 갈등을 빚게 된 것은 열세에 놓인 호관(壺關)의 수장 산사기나 진녕(晋寧)의 전표 등으로부터 구원을 요청하는 상소가 전호에게 보내진 데서 비롯되었다. 교열은 전호에게 동향의 친우인 손안과 함께 스스로 양산박을 맞이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호관 구원에 나섰지만, 그가 출진했을 때는 호관의 수장 중 한 명인 당빈의 배신으로 이미 호관은 함락되었고, 소덕(昭德) 땅까지 쳐들어온 양산박 군과 격전을 벌이게 된다.교열은 엄청난 법력을 발휘하여, 첫 전투에서는 배신자 당빈과 양산박의 맹장인 이규를, 송강이 직접 공격해 온 2차 전투에서는 노지심, 무송, 유당 등을 차례로 사로잡고, 마찬가지로 도술을 부리는 번서조차도 일축하는 맹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열세에 놓인 번서의 구원에 나타난 공손승에게는 거꾸로 허무하게 술법이 깨지고, 백곡령(百谷嶺)으로 몰리게 된다. 그 후, 먼저 양산박에 항복한 손안을 통해, 나진인의 뜻을 받은 공손승에게 자신의 천명에 대해 깨우침을 받자 분명하게 깨닫고, 공손승을 스승으로 받들어 송군에 항복한다. 더 나아가 제자 격인 전호군의 요술 사용자 마령까지 설득하여 항복시켰다.
2. 4. 전호와 왕경 토벌
경원 출신으로 젊었을 때 공동산에 올라갔다가 불가사의한 인물을 만나 선술을 배워 비바람을 부르는 능력을 얻게 된다. 나진인의 제자가 되기를 희망하여 이선산을 찾았으나, 나진인은 교열에게 마심(魔心)이 있다 하여 입문을 허락하지 않았다.그 후 방랑 생활을 하던 교열은 가뭄에 시달리는 안정주에서 비를 내리게 하면 상금 3천 관을 주겠다는 관리의 제시에 따라 법술로 비를 내리게 했지만, 상금의 대부분을 악덕 관리들이 착복해 버린다. 이에 분개한 교열은 부패 관리들을 때려 죽이고 관헌에서 도망치게 된다. 때마침 하북에서 전호가 모반을 일으켰고, 전호는 '도청(道淸)'으로 이름을 바꾼 교열이 요술사임을 알고 자신의 휘하로 맞아들여 하북의 주현을 점령해 갔다.
전호 세력이 하북의 5주 56현을 점거하고 국호를 '진(晋)'으로 하는 왕조를 건국하자, 송나라는 요나라를 토벌하고 개선한 양산박군에게 전호 토벌을 명한다. 양산박군에게 전호군은 열세에 놓이게 되고, 전호의 성과 거점은 양산박군에 의해 탈환되어 간다.
교열은 열세에 처한 호관의 수장 산사기와 진녕을 지키는 전표 등의 구원 요청에 따라 전호에게 손안과 함께 자진하여 양산박을 물리칠 의사를 전하고 호관 구원에 나선다. 그러나 출진했을 때에는 당빈의 배신으로 이미 호관은 함락되어 소덕성까지 쳐들어온 양산박군과 격전을 벌이게 된다.
교열은 강력한 법력을 발휘해 첫 전투에서 당빈과 이규를, 2차전에서는 노지심, 무송, 유당 등을 차례로 붙잡고 번서의 도술마저 깨뜨리는 위세를 보였다. 그러나 공손승에게는 도술을 깨지고 백곡령으로 내몰린다. 이후 손안을 통해 공손승이 나진인의 뜻과 자신의 천명에 대해 얘기하자 깨닫고 공손승을 스승으로 모시고 양산박군에 항복한다. 또 제자인 전호군의 요술사 마령도 설득하여 항복시켰다.
전호가 망하자 조정에서는 '초왕(楚王)'을 참칭하는 왕경을 토벌하라는 칙명이 양산박군에게 내려오고, 교열은 다른 전호군의 강장들과 함께 양산박군에서 싸우게 된다. 왕경군의 유민이 지키는 완주와 공단이 지키는 서경성 공격 등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왕경의 난 평정 직전 손안이 병사하자, 교열은 동경 개봉부로의 개선에 참여하지 않고, 마령과 함께 양산박군에서 사퇴한다. 후에 마령과 함께 이선산에 다시 올라가 나진인의 제자가 되고, 나진인의 가르침으로 도를 배우고 천수를 다하였다.
2. 5. 은퇴와 죽음
이윽고 전호가 멸망하자, 이어서 조정에서 '초왕(楚王)'을 참칭하는 왕경 토벌의 칙명이 양산박 군에게 내려지고, 교열은 다른 전호군의 항장들과 함께 계속 종군하게 된다. 그 토벌전 중에서도 교열은, 왕경군의 유민이 지키는 완주나 공단이 지키는 서경 공략 등에서 다대한 공적을 쌓아갔다. 그러나 왕경의 난이 평정될 무렵, 동향의 친우이며, 전호군에서 함께 항복한 손안이 급병으로 쓰러져 진몰하자, 깊이 슬퍼한 교열은 동경으로의 개선에 참가하지 않고, 상심을 이유로 제자인 마령과 함께 양산박 군을 사직한다. 후에 마령과 함께 이선산에 올라 다시 라진인의 제자가 되자, 그에게 사사하여 도를 배우고, 천수를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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