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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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가동맹은 1995년 이탈리아 사회 운동(MSI)에서 개칭된 이탈리아의 정당이었다. 1990년대 초 부패 스캔들로 기존 정당들이 해체된 후, 네오 파시즘 정당이었던 MSI는 보수 세력과 통합하여 국가동맹을 창당했다. 잔프랑코 피니를 중심으로 중도 우파 정당으로 변모를 시도하며,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연립 정부에 참여했다. 2009년 자유의 인민에 합당하며 해산되었고, 이후 국민 동맹 재단이 설립되어 당의 자산과 정치적 유산을 관리했다. 국가동맹은 전통적 가치 옹호, 법과 질서 강조, 이스라엘 지지 등의 이념을 가졌으며, 파시즘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당내에는 다양한 파벌이 존재했으며, 이탈리아 전역에서 약 10~15%의 지지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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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동맹 - [정당]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국민 동맹 |
로마자 표기 | Alleanza Nazionale |
약칭 | AN |
창립 | 1994년 1월 22일 (조직) |
해산 | 2009년 3월 22일 |
전신 | 이탈리아 사회 운동 |
합병 대상 | 자유민중 |
후계 정당 | 이탈리아의 형제들 |
신문 | 세콜로 디탈리아 |
학생 조직 | 학생 행동 (이탈리아) |
청소년 조직 | 청소년 행동 (이탈리아) |
당원 수 (2004년) | 250,000명 |
지도부 | |
초대 대표 | 잔프랑코 피니 |
마지막 대표 | 이냐치오 라 루사 |
이념 및 정치적 성향 | |
이념 | 국민 보수주의 보수주의 후기 파시즘 |
정치적 위치 | 우익 ~ 극우 |
참여 정당 연합 | |
전국 | 좋은 정부를 위한 극 (1994년) 자유를 위한 극 (1996–2001년) 자유의 집 (2001–2008년) |
국제 관계 | |
국제 조직 | 유럽 국가 연합을 위한 동맹 |
유럽 의회 | 유럽 국가 연합을 위한 연합 |
기타 | |
상징색 | 파란색 |
2. 역사
국가동맹은 베니토 무솔리니 지지자에 의해 결성된 네오 파시스트 정당인 이탈리아 사회 운동을 전신으로 한다.[29] 잔프랑코 피니[29]는 당수를 맡아 당명을 변경하고 정책을 온건화하여 극우 정당에서 중도 우파의 보수 정당으로 탈바꿈을 시도했다. 이러한 온건화 노선은 이탈리아 정치에서 환영받았으며, 국민으로부터 평가를 받아 포르차 이탈리아에 이은 우파 연합의 세력으로 성장했다.
알레산드라 무솔리니가 한때 소속되어 있었지만, 피니 당수가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무솔리니 정권의 유대인 박해를 사죄하고, 조부 베니토의 부정을 의미하는 온건화 노선에 반발하여 탈당했다.
- 1995년 - 이탈리아 사회 운동 - 국민동맹(MSI-AN)에서 개칭했다.[29]
- 2008년 - 선거 연합 "자유의 인민"에 참가했다.[23]
- 2009년 - 해산하여 정당 자유의 인민에 참여했다.[24]
2. 1. 창당 배경 (1994-1995)
1990년대 초, 이탈리아 정계는 '마니 풀리테' 수사로 촉발된 부패 스캔들로 큰 혼란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주요 정당들이 해체되었고, 정치 지형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29] 이러한 배경 속에서, 네오 파시즘 정당이었던 이탈리아 사회 운동(MSI)은 기독교 민주주의, 이탈리아 자유당 등의 보수 세력과 통합하여 1994년 국가동맹을 창당했다. 1995년 1월, 잔프랑코 피니를 초대 대표로 하여 국가동맹이 공식 출범했다. 당명은 보수 학자 도메니코 피시켈라가 제안한 것이다.[29]2. 2. 중도 우파로의 전환과 정부 참여 (1995-2007)
잔프랑코 피니 대표는 당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중도 우파 정당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다. 이탈리아 사회 운동(MSI) 시절의 극단적인 노선에서 벗어나, 보다 온건하고 포용적인 정책을 추구했다. 이러한 변화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국가동맹이 주류 정치 세력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8]
국가동맹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3개의 자유의 집 연립 정부에 모두 참여했다. 2001년 이탈리아 총선 이후 피니는 부총리로 지명되었으며, 2004년 11월부터 2006년 5월까지 외무 장관을 역임했다.
2003년 11월, 피니는 이탈리아 부총리 자격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1938년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이 발표한 인종법을 "악명 높은" 것으로 규정했다. 또한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을 과거의 가장 수치스러운 페이지에 속하는 것으로 언급하며, 파시즘을 "절대 악"의 시대의 일부로 간주했다.[17] 이는 알레산드라 무솔리니를 비롯한 당내 강경파의 탈당으로 이어졌지만,[8][18] 국제 사회와 이탈리아 국민들에게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2002년 이스라엘 방위군이 탄생 교회에 갇힌 팔레스타인 해방군과 대치했을 때, 이스라엘 측을 지지하는 형태로 지원을 했다. 이를 계기로 관계 개선을 위한 양측의 교류가 시작되었고, 최종적으로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 총리와 잔프랑코 피니 당수의 회담이 성사되었다. 과거 파시스트를 신봉했던 인물로서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한 피니는 인종법 제정이 잘못이며, '''"이탈리아 파시즘은 완전한 악"'''이라고 사죄하며 이스라엘과의 좋은 관계가 구축되었다.[17]
2006년 이탈리아 총선에서 국가동맹은 자유의 집 안에서 활동했다. 중도 우파는 24,000표 차이로 중도 좌파 연합인 연합에 패했다. 개별적으로 국가동맹은 거의 500만 표를 얻어 12.3%를 기록했다. 2007년 7월, 프란체스코 스토라체가 이끄는 분파 그룹은 우파를 결성했으며, 테오도로 부온템포, 다니엘라 산탄체를 포함한 국가동맹 국회의원 7명이 이 신당에 합류했다.
2. 3. 자유의 인민으로의 합당 (2007-2009)
2007년 11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의 정당인 포르차 이탈리아가 곧 자유의 인민당(PdL)으로 합병되거나 전환될 것이라고 발표했다.[19][20][21]2008년 1월, 프로디 2기 내각의 갑작스러운 붕괴와 연합의 해체, 그리고 그로 인한 새로운 총선으로 이어진 정치적 위기 이후, 베를루스코니는 포르차 이탈리아가 아마도 마지막 선거에 출마할 것이며, 새 정당은 그 선거 이후에 공식적으로 창당될 것이라고 암시했다. 잔프란코 피니와의 화해 분위기 속에서 베를루스코니는 새 정당에 다른 정당들도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22] 마침내 2월 8일, 베를루스코니와 피니는 북부 동맹(LN)과 연합하여 PdL 깃발 아래 공동 명단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23] 2008년 이탈리아 총선에서 PdL이 승리한 후, 국가동맹은 2009년 초 PdL로 합병되었다.[24]
2008년 총선 승리와 함께 피니는 하원 의장에 취임했고, 2009년 국가동맹은 해산하고 신당 자유의 인민을 결성했다.
2. 4. 합당 이후 (2009-현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2007년 11월, Forza 이탈리아가 곧 자유의 인민당(PdL)으로 합병되거나 변환될 것이라고 발표했다.[19][20][21] 2008년 1월 프로디 2기 내각의 붕괴와 이어진 총선에서 베를루스코니는 Forza 이탈리아가 마지막 선거에 출마하고, 새 정당은 그 이후에 창당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잔프란코 피니와의 화해 분위기 속에서 새 정당에 다른 정당들도 참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22] 2008년 2월 8일, 베를루스코니와 피니는 북부 동맹(LN)과 연합하여 PdL 깃발 아래 공동 명단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23] 2008년 이탈리아 총선에서 PdL이 승리한 후, 국가동맹(AN)은 2009년 초 PdL로 합병되었다.[24]국가동맹(AN)의 마지막 회의에서 재단이 MSI/AN의 자산과 정치적 유산을 관리하기로 결정되었고, 그 결과 2011년에 국민 동맹 재단이 설립되었다.[13][14][15] 2014년, 국민 동맹 재단은 프랑코 폰토네, 프랑코 무그나이, 주세페 발렌티노에 의해 차례로 이끌리면서, 이냐치오 라 루사와 조르자 멜로니가 이끄는 PdL에서 분열된 전 AN 구성원들이 결성한 정당인 이탈리아의 형제들(FdI)에게 AN의 상징 사용을 허가했다.[16] 이후 전 AN 구성원들은 여러 정당에서 활동했지만, 주로 FdI에서 활동했으며, 재단은 새로운 Forza 이탈리아, 새로운 동맹, 그리고 가장 최근에 결성된 독립의 구성원을 포함하여, 모든 이념적 성향의 전 AN 구성원을 계속 보유하고 있다.
3. 이념 및 정책
국가동맹은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면서도 사회 자유주의 및 세속주의적인 면모를 보였다. 법과 질서 확립을 위해 이민 통제를 강화하고 처벌 강화를 위한 법률 제정을 지지했다. 이스라엘을 지지하고,[18] 미국 및 유럽 통합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25] 대마초를 포함한 모든 약물에 대한 금지 정책을 펼쳤다.
경제 정책에서는 시장 경제를 인정하고 자유화와 국영 기업의 민영화에 찬성했지만, 포르자 이탈리아보다는 좌파적인 성향을 띠며 때로는 국가주의적인 정책을 지지했다.[26]
이탈리아 사회 운동(MSI)과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베니토 무솔리니와 파시즘과는 거리를 두었으나,[8] 파시즘 정권 시대에 대한 향수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당 대표였던 잔프랑코 피니는 베니토 무솔리니를 존경한다는 과거 발언을 부정하면서도 집회에서 지지자들에게 파시스트식 경례로 화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국가 정체성과 애국심 고취를 강조했으며, 제도 개혁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제와 다수결 투표제를 지지했다. 연방주의를 수용하고 북부 동맹과의 동맹을 맺었지만, 국가 통합 문제에서는 이견을 보이기도 했다.
잔프랑코 피니는 니콜라 사르코지와 데이비드 캐머런을 롤 모델로 삼아 보수적인 이념과 함께 줄기 세포 연구 및 합법적 외국인의 투표권 지지와 같은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줄기 세포 연구와 인공 수정에 대한 반대가 강하게 나타났다.[18]
3. 1. 기본 입장
- 전통적 가치 수호: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 가까운 정책을 지지했지만, 일부 사회 자유주의 및 세속주의적인 태도도 보였다.
- 법과 질서 확립: 특히 이민 통제를 강화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 이스라엘 지지,[18] 미국 및 유럽 통합 지지.[25]
- 대마초를 포함한 모든 약물에 대한 금지.
3. 2. 파시즘과의 거리두기
이탈리아 사회 운동(MSI)과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해, 국가동맹은 베니토 무솔리니와 파시즘으로부터 거리를 두었다.[8] 1994년 창당 당시, 잔프랑코 피니는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묘사했는데,[25] 이는 1987년 MSI 대표 시절 "2000년대의 파시스트"라고 선언했던 것과 대조적이다.2008년, 당시 로마 시장이었던 잔니 알레마노는 극우 스킨헤드들이 로마식 경례로 자신의 당선을 축하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로마 회당을 방문하여 나치즘과의 싸움이 가지는 보편적 가치를 칭송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8]
이러한 변화는 당 대표였던 피니의 발언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1994년 국가동맹 창당 당시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묘사했다.[25] 대부분의 강경파는 당을 떠났으며,[8][18] 당은 스스로를 존경받는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유럽 국민당에서 포르자 이탈리아와 협력하여 궁극적으로 중도 우파 통합 정당에 합류하고자 했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브로더는 국가동맹을 프란시스코 프랑코 이후의 정당인 스페인의 국민당과 비교하기도 했다.[25]
3. 3. 경제 정책
국가동맹은 시장 경제를 지지하고 자유화와 국영 기업의 민영화에 찬성했지만, 포르자 이탈리아보다는 경제 문제에 있어 더 좌파적인 입장을 취했다.[26] 때로는 국가주의 정책을 지지하기도 했다.[26] 이러한 경제 정책 기조는 공무원이 많이 거주하는 로마와 라치오 지역에서 국가동맹이 강세를 보인 이유 중 하나로 분석된다.3. 4. 민족주의와 국가 정체성
국가동맹은 국가적 결속, 국가 정체성, 애국심을 고취하는 정당임을 표방했다.[25]제도 개혁과 관련하여 대통령제와 다수결 투표제를 지지했으며, 연방주의를 수용하고 북부 동맹과의 동맹을 맺었으나, 국가 통합 문제에서는 긴장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25]
잔프란코 피니는 니콜라 사르코지와 데이비드 캐머런을 롤 모델로 삼아 안보, 가족 가치, 애국심 등 보수 이념과 줄기 세포 연구, 합법적 외국인의 투표권 지지 등 진보적 접근 방식을 결합한 정치 노선을 추구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줄기 세포 연구와 인공 수정에 대한 반대가 많았다.[18]
MSI 시대부터 이탈리아인의 단결과 애국심을 강조했으며, 파시즘 정권 시대에 대한 찬미도 이루어졌다. 피니는 베니토 무솔리니를 존경한다는 과거 발언을 부정하면서도, 집회에서 지지자들에게 파시스트식 경례로 응하기도 했다.
4. 당내 파벌
국가동맹은 다양한 파벌로 구성된 이질적인 정당이었다. 이들은 민족주의라는 공통점을 가졌지만, 경제 정책이나 낙태와 같은 종교 문제에서 이견을 보였다.[19]
잔프랑코 피니의 개혁 이후, 주요 우파, 신 동맹, 사회 우파, D-우파, 기독교 개혁가 등 여러 파벌이 존재했다. 주요 우파는 자유 보수주의를, 신 동맹은 자유주의를 지향했으며, 사회 우파는 사회주의적 경제 접근을, D-우파는 보수적 입장을 취했다.
이러한 파벌 간 갈등은 당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쳐, 파벌 정치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19]
4. 1. 주요 파벌
- 주요 우파 (Destra Protagonista): 마우리치오 가스파리와 이그나치오 라 루사가 이끌었던 최대 파벌이었다. 자유 보수주의적 입장을 취했으며, 포르차 이탈리아와 가장 가까웠다.[19]
- 신 동맹 (Nuova Alleanza): 알테로 마테올리와 아돌포 우르소 등이 이끌었던 파벌이었다. 잔프랑코 피니의 지지 세력으로, 자유주의적 정책 의제를 옹호했다.[19]
- 사회 우파 (Destra Sociale): 잔니 알레마노가 이끌었던 파벌이었다. 경제 정책에 있어 더 사회적인 접근 방식을 옹호했으며, 당내 우파로 분류되었다. 일반 노동 조합 (UIL)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19]
- D-우파 (D-Destra): 프란체스코 스토라체가 이끌었던 파벌이었다. 당내 가장 보수적인 그룹으로, MSI의 전통을 옹호하며 피니에게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2007년 국가동맹을 탈당하여 우파 (La Destra)를 창당했다.[19]
- 기독교 개혁가 (Cristiano Riformisti): 소규모 기독교 민주주의 파벌이었다.[19]
4. 2. 윤리-종교 협의회
당내 공식 기구로, 윤리 및 종교 문제에 대한 당의 입장을 표명했다. 이사로는 가에타노 레베키니(설립자, 전 DC), 리카르도 페드리지 (회장), 프랑코 토포니 (부회장), 루이지 갈리아르디 (사무총장), 알프레도 만토바노, 안토니오 마초키, 리카르도 미글리오리가 포함되었다.[1] 이 그룹은 잔프랑코 피니의 낙태, 인공 수정, 줄기 세포 연구에 대한 자유주의적 견해를 비판했고, 이로 인해 푸블리오 피오리와 같은 일부 저명한 전 DC 구성원들이 당을 떠나게 되었다.[1] 페드리지와 만토바노와 같은 협의회 구성원 일부는 비공식적인 가톨릭 우파 파벌의 구성원으로 묘사되었다.[1]5. 대중적 지지
국가동맹은 1994년 이탈리아 총선에서 13.5%의 득표율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1996년 이탈리아 총선에서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중도 우파 지도자 자리에서 대체하려는 시도와 함께 15.7%로 지지율이 상승했다. 이후 선거에서 하락세를 보였지만, 이탈리아 정치에서 제3세력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했다. 2006년 이탈리아 총선에서는 단독으로 참여하여 12.3%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08년 이탈리아 총선에서는 자유의 국민 연합 선거 명부에 포함되어 참여했다.[27][28]
1994년 이후 국가동맹의 총선(하원) 및 유럽 의회 선거 결과는 아래 그래프와 같다.
5. 1. 지역별 지지
국가동맹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약 10~15%의 지지율을 보였으며, 특히 중부 이탈리아와 남부 이탈리아에서 강세를 보였다. 2006년 이탈리아 총선 기준, 라치오 (18.6%), 움브리아 (15.2%), 마르케 (14.3%), 아브루초 (14.3%), 풀리아 (13.2%), 사르데냐 (12.9%), 토스카나 (12.6%), 캄파니아 (12.6%)에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반면, 롬바르디아 (10.2%)와 시칠리아 (10.9%)에서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북동부 지역(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 15.5% 및 베네토 11.3%)에서는 경쟁력을 보였다.이탈리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10개 이탈리아의 지역에서의 국가동맹의 선거 결과는 아래 표와 같다.
1994년 총선 | 1995년 지방선거 | 1996년 총선 | 1999년 유럽 의회 선거 | 2000년 지방선거 | 2001년 총선 | 2004년 유럽 의회 선거 | 2005년 지방선거 | 2006년 총선 | |
피에몬테 | 8.3 | 11.2 | 12.1 | 7.5 | 11.9 | 9.2 | 8.8 | 9.5 | 11.8 |
롬바르디아 | 5.8 | 10.0 | 9.0 | 6.0 | 9.7 | 8.6 | 7.2 | 8.7 | 10.2 |
베네토 | 7.7 | 10.7 | 11.7 | 8.3 | 9.8 | 8.5 | 9.0 | 8.1 | 11.3 |
에밀리아-로마냐 | 9.0 | 10.3 | 11.5 | 8.6 | 11.4 | 9.7 | 8.4 | 8.9 | 10.2 |
토스카나 | 10.9 | 13.1 | 15.8 | 10.9 | 14.9 | 13.0 | 10.9 | 10.9 | 12.6 |
라치오 | 25.3 | 24.5 | 28.9 | 20.3 | 23.1 | 20.4 | 18.4 | 23.9 | 18.6 |
캄파니아 | 20.3 | 18.3 | 18.7 | 10.7 | 11.2 | 13.1 | 13.2 | 10.6 | 12.6 |
풀리아 | 27.5 | 20.4 | 17.9 | 12.7 | 15.5 | 15.3 | 16.0 | 12.1 | 13.2 |
칼라브리아 | 17.2 | 16.3 | 23.4 | 10.2 | 10.4 | 15.2 | 15.5 | 9.9 | 11.0 |
시칠리아 | 14.0 | 14.1 | 16.4 | 12.1 | 11.3 | 10.7 | 14.5 | 10.6 | 10.9 |
이탈리아 | 13.5 | - | 15.7 | 10.3 | - | 12.0 | 11.3 | - | 12.3 |
5. 2. 주요 선거 결과
하원 | |||||
---|---|---|---|---|---|
선거 연도 | 득표수 | 득표율 (%) | 의석 | 증감 | 당 대표 |
1994년 | 5,214,133 | 13.5 | 109 / 630 | - | 잔프란코 피니 |
1996년 | 5,870,491 | 15.7 | 93 / 630 | 16 | 잔프란코 피니 |
2001년 | 4,463,205 | 12.0 | 99 / 630 | 6 | 잔프란코 피니 |
2006년 | 4,706,654 | 12.3 | 71 / 630 | 28 | 잔프란코 피니 |
상원 | |||||
---|---|---|---|---|---|
선거 연도 | 득표수 | 득표율 (%) | 의석 | 증감 | 당 대표 |
1994년 | PBG과 함께 | - | 48 / 315 | - | 잔프란코 피니 |
1996년 | PpL과 함께 | - | 43 / 315 | 5 | 잔프란코 피니 |
2001년 | CdL과 함께 | - | 45 / 315 | 2 | 잔프란코 피니 |
2006년 | 4,234,693 | 12.2 | 41 / 315 | 4 | 잔프란코 피니 |
유럽 의회 | |||||
---|---|---|---|---|---|
선거 연도 | 득표수 | 득표율 (%) | 의석 | 증감 | 당 대표 |
1994년 | 4,108,670 | 12.5 | 11 / 87 | - | 잔프란코 피니 |
1999년 | 3,202,895 | 10.3 | 9 / 87 | 2 | 잔프란코 피니 |
2004년 | 3,736,606 | 11.5 | 9 / 78 | - | 잔프란코 피니 |
6. 평가 및 영향
국가동맹은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으며, 이탈리아 정치 및 사회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잔프란코 피니의 리더십 아래 국가동맹은 네오 파시즘 정당에서 탈피하여 중도 우파 정당으로 변모하였다. 이는 이탈리아 정치사에서 긍정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29] 잔프란코 피니는 2003년 이탈리아 부총리 자격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파시즘을 "절대 악"의 시대로 규정하는 등 과거사 청산 노력을 통해 국제 사회와 이탈리아 국민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17] 그러나 이러한 당의 변화는 알레산드라 무솔리니를 비롯한 일부 강경파들의 반발을 샀고, 이들은 당을 떠나 사회 행동을 결성하기도 했다.[8][18]
국가동맹이 극우 정당에서 탈피하여 중도 보수 정당으로 변모한 사례는 대한민국 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국가동맹이 베니토 무솔리니와 파시즘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과거사 문제를 극복하려 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8]
6. 1. 긍정적 평가
잔프란코 피니의 리더십 아래, 국가동맹은 네오 파시즘 정당에서 탈피하여 중도 우파 정당으로 변모하였다. 이는 이탈리아 정치사에서 긍정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29] 잔프랑코 피니는 당의 온건화와 개혁을 이끌었고, 그 결과 당은 주류 정치 세력으로 편입될 수 있었다.과거사 청산 노력은 국제 사회와 이탈리아 국민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2003년 11월, 피니는 이탈리아 부총리 자격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1938년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이 발표한 인종법을 "악명 높은" 것으로 규정하고,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을 과거의 가장 수치스러운 페이지에 속하는 것으로 언급하며 파시즘을 "절대 악"의 시대로 규정했다.[17] 이러한 과거사 청산 노력은 유대인 단체와의 관계 개선으로 이어졌으며,[8] 2002년 이스라엘 방위군이 팔레스타인 해방군과 대치했을 때 이스라엘 측을 지지하는 등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결국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 총리와 잔프랑코 피니 당수의 회담이 성사되었고, 피니는 인종법 제정이 잘못이며 "이탈리아 파시즘은 완전한 악"이라고 사죄하며 이스라엘과의 좋은 관계를 구축했다.
이러한 당의 변화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손녀인 알레산드라 무솔리니를 비롯한 일부 강경파들의 반발을 샀고, 이들은 당을 떠나 사회 행동을 결성하기도 했다.[8][18] 그러나 대부분의 강경파가 당을 떠나면서,[8][18] 당은 스스로를 존경받는 보수 정당으로 포장하고 유럽 국민당에서 포르자 이탈리아와 힘을 합쳐 궁극적으로 중도 우파 통합 정당에 합류하려 했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브로더는 국가동맹을 스페인의 국민당, 즉 프란시스코 프랑코 이후의 정당과 비교하기도 했다.[25]
6. 2. 대한민국에의 시사점
국가동맹이 극우 정당에서 탈피하여 중도 보수 정당으로 변모한 사례는 대한민국 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잔프랑코 피니 대표는 당을 이끌면서 이념적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정치 개혁을 추진했다.[25] 이러한 변화는 대한민국 정당들이 참고할 만한 모델이 될 수 있다.특히, 국가동맹이 베니토 무솔리니와 파시즘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과거사 문제를 극복하려 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8] 이는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알레산드라 무솔리니가 피니 대표의 온건화 노선에 반발하여 탈당한 사건은, 과거사 극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을 보여준다.
또한, 국가동맹이 시장 경제를 지지하면서도 국가주의 정책을 일부 수용하고, 대통령제와 다수결 투표제를 지지하면서도 연방주의를 수용한 점은, 다양한 이념과 정책을 포괄하는 정당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준다.[26]
7. 역대 지도부
직책 | 이름 | 임기 |
---|---|---|
대표 | 잔프랑코 피니 | 1995년–2008년 |
이냐치오 라 루사 (권한대행) | 2008년–2009년 | |
조정자 | 마우리치오 가스파리 | 1995년–1998년 |
이냐치오 라 루사 | 2003년–2005년 | |
대변인 | 프란체스코 스토라체 | 1995년–1997년 |
아돌포 우르소 | 1997년–2001년 | |
안토니오 란돌피 | 2001년–2005년 | |
안드레아 론치 | 2005년–2009년 | |
정치 사무국장 | 도나토 라모르테 | 1995년–2002년, 2004년–2009년 |
안드레아 론치 | 2002년–2004년 | |
카르멜로 브리구글리오 | 2002년–2004년 | |
전국 총회 의장 | 도메니코 피시켈라 | 1995년–2005년 |
마르첼로 페리나 | 2005년–2006년 | |
프란체스코 세르벨로 | 2006년–2009년 | |
조직 조정자 | 주세페 타타렐라 | 1995년–1998년 |
알테로 마테올리 | 1998년–2002년 | |
도나토 라모르테 | 2002년–2004년 | |
이탈로 보키노 | 2004년–2005년 | |
마르코 마르티넬리 | 2005년–2009년 | |
행정 비서 | 프란체스코 폰토네 | 1995년–2009년 |
하원 원내대표 | 라파엘레 발렌시세 | 1994년–1995년 |
주세페 타타렐라 | 1995년–1998년 | |
구스타보 셀바 | 1998년–2001년 | |
이냐치오 라 루사 | 2001년–2003년, 2004년-2008년 | |
잔 프랑코 아네다 | 2003년–2004년 | |
이탈로 보키노 (PdL 원내 부대표) | 2008년–2009년 | |
상원 원내대표 | 줄리오 마체라티니 | 1994년–2001년 |
도메니코 나니아 | 2001년–2006년 | |
알테로 마테올리 | 2006년–2008년 | |
마우리치오 가스파리 (PdL 원내대표) | 2008년–2009년 | |
유럽 의회 원내대표 | 크리스티아나 무스카르디니 | 1994년–2004년 |
로베르타 안젤릴리 | 2004년–2009년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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