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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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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권균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연산군 시대에 관직에 진출하여 동부승지, 도승지 등을 역임했다.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2등에 책록되었으며, 이후 공조판서, 형조판서,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신진사류의 공격으로 파직되기도 했으나, 기묘사화 이후 우의정까지 승진했다. 권균은 연산군 시대부터 중종 시대에 걸쳐 훈구파로서 활약했으며, 기묘사화 당시 신진사류 제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2. 생애

1452년 (문종 2년)에 태어났으나, 자세한 가계는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연산군의 신임을 받다가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2등 공신이 되었으며, 기묘사화 이후 우의정까지 승진하였다.

2. 1. 관직 진출과 초기 경력

1486년(연산군)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부수찬이 되고, 검토관을 겸하며 실록 편찬에 착수했다. 이후 사간원 정언으로 승진했으며, 정언, 지평을 거쳐 시강관과 시독관을 겸하다가 부응교로 승진했다. 사헌부 장령, 홍문관 응교를 거쳐 연산군의 신임을 얻어 시강원 보덕을 겸한 뒤 동부승지로 당상관에 임명되었다.

2. 2. 중종반정과 공신 책봉

연산군의 신임을 받던 권균은 1506년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등과 함께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중종을 옹립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공로로 권균은 정국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반정 이후 권균은 공조판서, 의정부좌참찬 등을 역임하며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쳤다. 경기도관찰사로 나가 민정을 다스리기도 했으며, 형조판서 재직 시에는 내의원제조를 겸임했다. 이후 의정부좌찬성, 판의금부사 등을 거쳐 예조판서에 오르고 특진관을 겸임하는 등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2. 3. 주요 관직 역임

1486년(성종 1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권균은 연산군과 중종 대에 걸쳐 다양한 요직을 역임했다. 연산군 대에는 사간원 정언, 사헌부 장령, 홍문관 응교 등을 거치며 왕의 신임을 얻었고, 동부승지, 우부승지, 도승지 등 승정원의 주요 관직을 역임했다.

중종반정 이후에는 공조판서를 시작으로 의정부좌참찬을 거쳐 경기도 관찰사로 나가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켰다. 이후 형조판서를 맡아 내의원 제조를 겸임하였고, 의정부좌찬성, 판의금부사를 역임하고 장악원 제조를 겸하였다. 이후 평안도 관찰사로 잠시 외직을 맡기도 하였으나, 곧 예조판서로 임명되어 특진관을 겸하였다.

권균은 한성부판윤,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 육조의 주요 판서직을 두루 거쳤다. 신진사류와의 갈등으로 잠시 물러나기도 했으나, 기묘사화 이후 복직하여 좌찬성을 거쳐 우의정까지 올랐다.

권균이 역임한 주요 관직은 다음과 같다.

관직주요 활동 및 업적
동부승지
우부승지
도승지
공조판서
의정부좌참찬
경기도 관찰사백성들의 생활 안정
형조판서내의원 제조 겸임
의정부좌찬성
판의금부사
장악원 제조
평안도 관찰사
예조판서특진관 겸임
한성부판윤
이조판서
병조판서
좌찬성신진사류의 공격으로 물러남
이조판서복직
좌찬성기묘사화 이후
우의정




2. 4. 신진사류와의 갈등과 기묘사화

연산군 때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권균은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2등 공신이 되었다. 이후 이조판서 등 요직을 거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러나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신진사류는 권균을 비롯한 훈구 세력을 비판하며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권균은 신진사류의 공격으로 잠시 물러났으나, 기묘사화를 계기로 조광조 등 신진사류가 제거되자 좌찬성으로 복귀하였다. 이후 우의정까지 승진하여 권력을 강화하였다.

기묘사화는 권균을 비롯한 훈구 세력이 신진사류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조광조 등 많은 신진사류가 희생되었으며, 조선의 정치는 훈구 세력 중심으로 회귀하였다. 권균은 기묘사화를 주도하지는 않았지만, 신진사류 제거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3. [문서 제목] 관련 둘러보기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2등 공신이 되었으며, 공조판서, 의정부좌참찬을 거쳐 경기도 관찰사로 나가 민정을 다스렸다. 형조판서가 되어 내의원 제조를 겸한 뒤 의정부좌찬성, 형조판서, 판의금부사를 역임하고 장악원 제조를 다시 겸했다. 평안도 관찰사를 거쳐 예조판서로 임명되고 특진관을 겸하다가 한성부판윤,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거쳐 좌찬성이 되었으나 신진사류의 공격으로 물러났다. 이조판서로 복직했지만 조광조 등에 의해 파직되었다. 기묘사화 이후 좌찬성을 거쳐 우의정까지 승진했다.

중종조 우의정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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