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사치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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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리사치계는 552년 백제 성왕의 명을 받아 불상과 경전을 왜에 전파한 인물로, 일본 아스카 문화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일부 문헌에서는 그를 백제의 귀족으로 묘사하며, 그의 성씨가 중국 주나라의 후예를 의미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일본 측 기록인 《일본서기》의 묘사에는 인명, 상표문의 문제점 등이 지적되며, 실존 여부에 대한 논란이 존재한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노리사치계는 6세기 백제와 일본 간의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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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사치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법명 | 노리사치계 |
속명 | 기시 누리시치케이 (姫氏怒唎斯致契) |
인물 정보 | |
출생일 | 미상 |
출생지 | 미상 |
입적일 | 미상 |
입적지 | 미상 |
승려 정보 | |
종파 | 미상 |
학력 | 미상 |
출가 | 미상 |
저작 | 미상 |
소속 | 미상 |
수행 | 미상 |
칭호 | 미상 |
직업 | 미상 |
가족 정보 | |
배우자 | 미상 |
자녀 | 미상 |
부모 | 미상 |
2. 생애
552년 성왕의 명으로 불상, 경론 등을 왜에 전파하였다.[12] 노리사치계가 불교를 전하자 당시 왜왕은 매우 기뻐했고, 일본의 고대 아스카 문화 성립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552년 백제 성왕의 명으로 왜에 불상, 경론 등을 전파하였다고 알려져 있다.[12] 노리사치계가 불교를 전하자 당시 왜왕은 매우 기뻐했고, 이는 일본의 고대 아스카 문화 성립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노리사치계는 중국계 인물로 백제에 귀화하였다고 추정된다.[13][14] 그러나 백제인의 성씨는 기원전 2세기 이래의 예나 8세기 이후의 통일 신라와 같은 중국식 성명으로의 개칭이 없이 고유어 이름을 계속 사용했다.[2][3][4][5][6] 김창석과 전덕재등 한국 고대사학자들은 노리사치계의 성씨가 "희씨"(「姫'''氏'''」의 「씨」는 존칭. 「소가의 '''씨'''」「나카토미의 '''씨'''」등)라는 한성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백제에 귀화했던 중국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7][8]
성씨가 "희씨"이기 때문에 중국주의 천자의 후예라는 지적도 있다(중국주나라의 국성은 '''희''').[10]
3. 출신 및 실존성에 대한 논란
한국과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노리사치계는 중국계 인물로 백제에 귀화하였다고 추정된다.[13][14] 한국 고대사학자 김창석과 전덕재는 노리사치계의 성씨가 "희씨"(「姫'''氏'''」의 「씨」는 존칭. 「소가의 '''씨'''」「나카토미의 '''씨'''」등)라는 한성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백제에 귀화했던 중국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7][8] 백제인의 성씨는 기원전 2세기 이래의 예나 8세기 이후의 통일 신라와 같은 중국식 성명으로의 개칭이 없이 고유어 이름을 계속 사용했기 때문이다.[2][3][4][5][6]
일부에서는 성씨가 "희씨"이기 때문에 중국주의 천자의 후예라는 지적도 있다(중국주의 국성은 '''희''').[10]
킨메이 천황 13년 10월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3. 1. 한국 측 입장
한국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노리사치계를 백제 성왕의 명으로 일본에 불교를 전한 인물로 설명한다. 성왕의 명에 따라 불상과 경전 등을 일본에 가져갔고, 천황이 크게 기뻐하여 일본에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한다.[1]
하지만 한국의 『두산백과』는 『일본서기』의 기록과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에 대한 여러 학설을 언급하며 노리사치계의 실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9] 『일본서기』에는 노리사치계의 성씨가 "희씨"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백제 성왕이 천황에게 보냈다는 "표"도 후대에 추가된 것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3. 2. 일본 측 입장
일본서기일본어에 따르면, 백제 성왕이 서부 희씨 달솔 노리사치계를 파견하여 불상, 경전 등을 헌상하고 불교 전래를 권유했다고 기록되어 있다.[12][13][14] 그러나, 일본서기일본어의 기록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후대에 조작되거나 윤색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11]
4. 역사적 의의
노리사치계는 6세기 백제와 왜 간의 활발한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552년 백제 성왕의 명으로 불상, 경론 등을 왜에 전파하였다.[12] 당시 왜왕은 이에 매우 기뻐했고, 이는 일본의 고대 아스카 문화 성립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노리사치계는 중국계 인물로 백제에 귀화하였다고 추정된다.[13][14]
참조
[1]
뉴스
노리사치계(怒利斯致契)
http://encykorea.aks[...]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서적
"高句麗地名」中の倭語と韓語"
専修大学学会
2019-11-30
[3]
서적
カラー新版 人名の世界地図
文藝春秋
2021-11-18
[4]
서적
韓国人の姓氏と多文化社会
東北文化学園大学総合政策学部
2020-03-20
[5]
서적
韓国人の姓氏と多文化社会
東北文化学園大学総合政策学部
2020-03-20
[6]
서적
韓国人の姓氏と多文化社会
東北文化学園大学総合政策学部
2020-03-20
[7]
서적
中國系 인물의 百濟 유입과 활동 양상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16-11
[8]
뉴스
한국 고대사회 外來人의 존재양태와 사회적 역할
https://cms.dankook.[...]
檀國大學東洋學硏究院
2017-07
[9]
뉴스
노리사치계 怒利斯致契,?~?
https://www.doopedia[...]
斗山世界大百科事典
[10]
서적
日本古語大辞典
刀江書院
1929
[11]
서적
東アジアにおける仏教の伝来と受容
関西大学東西学術研究所
1989-03
[12]
서적
일본서기
0720
[13]
뉴스
한국 고대사회 外來人의 존재양태와 사회적 역할
https://cms.dankook.[...]
단국대학교
2017-07
[14]
서적
중국계 인물의 백제 유입과 활동 양상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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