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조 이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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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니조 이에코는 일본 에도 시대의 인물로, 사쿠라마치 천황의 비이자 모모조노 천황의 양모이며, 고사쿠라마치 천황의 친모이다. 그녀는 1733년 황태자 테루히토 친왕(후의 사쿠라마치 천황)의 비로 입궁하여 뇨고가 되었으며, 2명의 황녀를 낳았다. 아들을 얻지 못해 양자 도오히토 친왕(후의 모모조노 천황)을 들였고, 사쿠라마치 천황이 모모조노 천황에게 양위한 후 황태후가 되었다. 이후 4대에 걸친 천황의 치세 동안 뇨인의 자리에 있었으며, 고사쿠라마치 천황과 고모모조노 천황의 즉위에 영향을 미쳤다. 1790년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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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조 이에코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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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이죠 이에코 (二条 舎子) |
다른 이름 | 오오죠인 (大女院) |
가문 | 후지와라 씨 (니조 가문) |
생애 | |
출생 | 교호 원년 8월 24일 (1716년 10월 9일) |
사망 | 간세이 2년 1월 29일 (1790년 3월 14일) |
묻힌 곳 | 쓰키노와 능 (교토부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
가족 | |
아버지 | 니죠 요시타다 |
어머니 | 마에다 토시코 |
배우자 | 사쿠라마치 천황 |
자녀 | 모리코 내친왕 고사쿠라마치 천황 |
양자 | 모모조노 천황 |
경력 | |
황태후 즉위 | 엔쿄 4년 5월 27일 (1745년) |
여원호 | 세이키몬인 (青綺門院) |
여원호 수여 | 간엔 3년 6월 26일 (1750년) |
여어 선하 | 겐분 원년 11월 15일 (1736년) |
2. 계보
관백 좌대신 니조 요시타다의 차녀이다. 생모는 아버지의 정실인 가가번주 마에다 쓰나노리의 딸 도시코이다. 동복 언니는 아리스가와노미야 요리히토 친왕비 아츠코이며, 이복 동생으로는 우대신 니조 무네히로가 있다.
교호 18년(1733년), 4살 연하였던 황태자 테루히토 친왕(훗날의 사쿠라마치 천황)의 비로 입궁하였다. 2년 뒤인 교호 20년(1735년), 나카미카도 천황이 양위하고 테루히토 친왕이 사쿠라마치 천황으로 즉위하자, 이에코는 뇨고(女御) 선하를 받았다.
3. 생애
이후 두 딸(모리코 내친왕, 토시코 내친왕)을 낳았으나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엔쿄 2년(1745년) 덴지(典侍) 아네가코지 사다코가 낳은 토오히토 친왕(훗날의 모모조노 천황)을 양자로 맞이하였다.
엔쿄 4년(1747년), 사쿠라마치 천황이 양자 토오히토 친왕에게 양위하자 황태후로 책립되었다. 이후 간엔 3년(1750년) 사쿠라마치 상황이 사망하자, 뇨인(女院) 선하를 받고 출가하였다.
그녀는 이후 모모조노 천황, 자신의 딸인 고사쿠라마치 천황, 고모모조노 천황, 그리고 방계에서 즉위한 고카쿠 천황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천황의 치세 동안 황태후와 뇨인의 자리를 지켰다. 이러한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말년에는 모모조노 천황의 생모 카이묘몬인(아네가코지 사다코)이나 고모모조노 천황의 생모 쿄라이몬인 (이치조 토미코) 등으로부터 오오죠인(大女院)이라 불리며 존경받았다.
간세이 2년 1월 29일(1790년 3월 14일), 7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능은 교토부 교토시 히가시야마구의 쓰키노와 능에 있다.
3. 1. 황자녀
겐분 2년(1737년)에 첫째 황녀인 모리코 내친왕을 낳았다. 이후 겐분 5년(1740년)에는 둘째 황녀 토시코 내친왕(훗날의 고사쿠라마치 천황)을 낳았다. 그러나 아들을 낳지 못하여, 엔쿄 2년(1745년)에 덴지 아네가코지 사다코가 낳은 토오히토 친왕(훗날의 모모조노 천황)을 양자로 삼았다.
3. 2. 양자
니조 이에코는 겐분 2년(1737년)에 첫째 딸 모리코 내친왕을, 겐분 5년(1740년)에 둘째 딸 토시코 내친왕(훗날의 고사쿠라마치 천황)을 낳았지만, 아들을 얻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엔쿄 2년(1745년), 덴지 아네가코지 사다코가 낳은 遐仁親王|도오히토 친왕일본어(훗날의 모모조노 천황)을 양자로 맞이하였다.
3. 3. 황태후 시절
엔쿄 4년(1747년), 사쿠라마치 천황이 토오히토 친왕에게 양위하자 이에코는 황태후로 책립되었다. 이때 즉위한 모모조노 천황은 불과 7세였고, 아버지 사쿠라마치 상황에 의한 인세이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양위 3년 후인 간엔 3년(1750년)에 사쿠라마치 상황이 승하하자, 황태후 이에코는 뇨인 선하를 받고 출가하였다.
3. 4. 4대에 걸친 천황의 치세
엔쿄 4년(1747년), 사쿠라마치 천황이 모모조노 천황에게 양위하자, 이에코는 황태후로 책립되었다. 이때 즉위한 모모조노 천황은 불과 7세였기에 아버지 사쿠라마치 상황이 인세이를 펼쳤다. 그러나 양위 3년 후인 간엔 3년(1750년)에 사쿠라마치 상황이 사망하였고, 황태후 이에코는 뇨인 선하를 받아 출가하였다.
호레키 12년(1762년), 모모조노 천황이 22세로 사망하였다. 그의 아들인 히데히토 친왕(훗날의 고모모조노 천황)은 당시 5세에 불과했다. 이에 섭관가 당주들은 합의하여, 사망한 모모조노 천황의 이복 누나이자 이에코의 친딸인 토시코 내친왕을 고모모조노 천황이 성장할 때까지 잠시 왕위를 맡는 역할로 즉위시켰다. 이로써 메이쇼 천황 이후 119년 만의 여성 천황인 고사쿠라마치 천황이 탄생했다.
메이와 7년(1771년), 고사쿠라마치 천황은 예정대로 고모모조노 천황에게 양위하였다. 그러나 아버지 모모조노 천황처럼 고모모조노 천황 역시 안에이 8년(1779년)에 22세로 사망하였다. 그에게는 그 해에 태어난 요시코 내친왕 한 명만이 있었기 때문에, 나카미카도 천황으로부터 이어져 온 황통은 단절되었다. 다음 황위는 방계인 간인노미야 가문에서 모로히토 친왕을 맞아 고카쿠 천황으로 즉위시켰다.
어린 천황이나 여성 천황이 연이어 즉위하던 시기에, 이에코는 사쿠라마치 천황, 모모조노 천황, 고사쿠라마치 천황, 고모모조노 천황 등 4대에 걸친 치세 동안 황태후와 뇨인의 자리를 지켰다. 말년에는 모모조노 천황의 생모인 카이묘몬인(아네노코지 사다코)과 고모모조노 천황의 생모인 쿄라이몬인 (이치조 토미코) 등 궁중의 다른 여성 어른들 사이에서 '''오오죠인'''(大女院)이라 불리며 존경받았다.
3. 5. 사망
간세이 2년 1월 29일(1790년 3월 14일), 7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능소는 교토부 교토시 히가시야마구에 있는 쓰키노와 능이다.
4. 평가
어린 천황이나 여제가 연이어 즉위하던 시대에, 니조 이에코는 사쿠라마치 천황, 모모조노 천황, 고사쿠라마치 천황, 고모모조노 천황 등 4대에 걸친 치세 동안 황태후와 뇨인의 자리를 지켰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모모조노 천황과 고모모조노 천황이 모두 어린 나이에 즉위하고 젊은 나이에 사망하며 황위 계승이 불안정했던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모모조노 천황 사후 그의 어린 아들(고모모조노 천황) 대신 자신의 딸인 토시코 내친왕을 메이쇼 천황 이후 119년 만의 여성 천황으로 즉위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고모모조노 천황이 성장할 때까지 황위를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또한 고모모조노 천황마저 후사 없이 사망하여 나카미카도 천황 직계가 단절되자, 방계인 칸인노미야 가문에서 고카쿠 천황을 맞이하여 황통을 잇는 과정에서도 황실의 어른으로서 중심을 잡았다. 이러한 여성 천황 즉위나 방계 계승은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당시 황실의 위기 상황 속에서 이에코가 권력 공백을 메우고 안정을 도모하는 데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가능하다. 그녀의 존재는 불안정한 시기 여성의 정치적 역할과 리더십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말년에는 모모조노 천황의 생모인 카이메이몬인이나 고모모조노 천황의 생모인 쿄레이몬인 (이치죠 토미코) 등으로부터 '大女院|오오죠인일본어'으로 불리며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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