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니타카급 방호순양함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니타카급 방호순양함은 일본이 자체 설계하여 건조한 두 척의 방호순양함으로, 청일 전쟁 배상금으로 확보된 예산을 통해 제2차 비상 함대 보충 계획의 일환으로 발주되었다. 고속 정찰을 목적으로 설계되었으며, 1번함 니이타카는 요코스카 해군 공창에서, 자매함 쓰시마는 구레 해군 공창에서 건조되었다. 어뢰를 장착하지 않고 QF 6인치/40구경 해군포를 주포로 사용했으며, 16개의 니클라우스 보일러를 장착했다. 두 함선 모두 러일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등 다양한 해전에 참전했으며, 니타카는 폭풍으로 침몰, 쓰시마는 표적 연습함으로 사용되다 침몰했다. 니타카급은 일본 순양함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니타카급 방호순양함 - 쓰시마 (방호순양함)
    쓰시마는 청나라 배상금으로 발주되어 구레 해군 공창에서 건조된 니이타카급 방호순양함 1번함으로, 러일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시베리아 출병 등에 참전 후 훈련선으로 사용되다 격침되었다.
  • 일본의 순양함 - 이쓰쿠시마 (방호순양함)
    이쓰쿠시마는 1891년 일본 제국 해군에 인도되어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 참전했으며, 1912년 2등해방함으로 분류가 변경된 후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다 1926년 해체되었다.
  • 일본의 순양함 - 요시노 (방호순양함)
    요시노는 1893년 영국에서 건조되어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 참전한 일본 제국 해군의 방호순양함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군함이었으나 1904년 러일 전쟁 중 장갑순양함 가스가와 충돌하여 침몰했다.
  • 일본 제국의 해군 함정 - 다카치호 (방호순양함)
    다카치호는 일본 제국 해군의 방호순양함으로, 자매함 나니와와 함께 당시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순양함으로 평가받았으며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으나 칭다오 공략전 후 독일 해군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하여 일본 해군 군함 중 최초로 교전 중 격침된 함선이 되었다.
  • 일본 제국의 해군 함정 - 이쓰쿠시마 (방호순양함)
    이쓰쿠시마는 1891년 일본 제국 해군에 인도되어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 참전했으며, 1912년 2등해방함으로 분류가 변경된 후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다 1926년 해체되었다.
니타카급 방호순양함 - [배(Ship)]에 관한 문서
개요
1922년의 니타카
1922년의 니타카
함급니타카급
함종방호순양함
건조요코스카 해군 공창 (니타카)
구레 해군 공창 (쓰시마)
운영 국가일본 제국 해군
기공1901–1904년
취역1904–1936년
퇴역2척
제원
배수량3,420톤
전장102 m
선폭13.44 m
흘수4.92 m
추진2기통 수직 3중 확장 왕복 엔진, 16개 클라우스 보일러, 2개 프로펠러, 600톤 석탄
속력20 노트 (시속 37 km/h)
항속 거리13노트로 17,000km (24 km/h)
장갑갑판: 76 mm
사령탑: 100 mm
승무원287-320명
무장
무장6 × 6인치 해군포
10 × QF 12파운더 12 cwt 해군포
4 × QF 3-파운더 호치키스 포

2. 제작 배경

니타카급은 일본이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건조한 방호순양함이다. 이전까지 외국 기술에 의존했던 것과 달리, 니타카급을 기점으로 일본 해군의 순양함 국산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함급은 기존의 함대 결전용 순양함과는 달리, 초기 설계 단계부터 정찰 임무 수행을 주 목적으로 삼았다. 이 때문에 화력이나 속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했고, 특히 어뢰는 탑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견고함과 실용성을 중시한 설계 덕분에 운용 면에서는 성공적인 함선으로 평가받는다.

니타카급의 건조는 청일 전쟁 이후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청나라로부터 받은 배상금을 재원으로 활용한 '제2차 비상 함대 보충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건조 시기는 러일 전쟁 발발 직전이었으며, 해군이 직접 운영하는 공창에서 건조가 이루어졌다.

함명건조소비고
니이타카 (新高)요코스카 해군 공창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1번함, 소형 순양함 건조 경험 보유
쓰시마 (対馬)구레 해군 공창 (히로시마현 구레시)자매함, 완공까지 상당 시간 소요



이렇게 건조된 니타카급 순양함들은 곧이어 발발한 러일 전쟁에 투입되어 황해 해전과 동해 해전 등 주요 해전에서 활동했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아프리카 대륙 연안까지 장거리 원정을 수행하기도 했다.

3. 설계

브래시 해군 연감 1902에 묘사된 니타카급


니타카급은 일본 제국 해군이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건조한 방호순양함으로, 이 함급부터 일본 해군 순양함의 국산화가 이루어졌다. 기존의 함대형 순양함과 달리 처음부터 정찰 임무를 주 목적으로 설계되었기에, 무장이나 속력보다는 견고함과 실용성에 중점을 두었다.[1] 이러한 설계 덕분에 실용적인 측면에서 매우 성공적인 함선으로 평가받는다.

설계 자체는 이전의 스마급과 유사하지만 약간 더 큰, 비교적 보수적인 배치를 따랐다. 하지만 배수량을 늘리고 장갑을 강화했으며, 선체 중심을 낮추어 항해 성능과 안정성을 개선했다. 이를 통해 스마급보다 더 강력하고 항해에 적합한 군함이 되었으며, 동시대 다른 여러 방호순양함보다 우수한 성능을 갖추게 되었다.[1]

러일 전쟁 발발 직전에 건조가 시작되어 관급공사로 진행되었다.

3. 1. 무장

니타카급 순양함은 어뢰를 장착하지 않았다. 이는 미국 해군미국-스페인 전쟁 당시 어뢰의 낮은 신뢰성과 공명 폭발 위험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관찰한 결과였다.[1] 주포로는 당시 대부분의 일본 순양함에서 표준적으로 사용되던 QF 6인치/40구경 해군포를 탑재했다.[1] 이 함선은 처음부터 정찰 임무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기 때문에, 어뢰를 장착하지 않는 등 무장 구성은 동시대 다른 함선에 비해 다소 간소화된 측면이 있었다.

3. 2. 기관

니타카급 순양함은 ''스마''의 증기 보일러보다 훨씬 개선된 16개의 니클라우스 보일러를 장착했다.[1]

4. 동형함

니타카급 방호순양함은 총 두 척이 건조되었으며, 두 척 모두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에 손실되었다.

4. 1. 니타카 (新高)

니타카급 방호순양함의 1번함으로, 요코스카 해군 공창에서 건조되었다. 1897년에 발주되어 1902년 11월 15일에 진수되었고, 1904년 1월 27일에 완공되었다. 함선의 이름은 당시 일본 제국의 영토였던 대만위산(당시 일본식 명칭 니타카산(新高山))에서 유래했다.

러일 전쟁 당시 제물포 해전(인천 해전)에 참전하여 러시아 제국 해군의 순양함과 포함을 격침시켰다. 이후 쓰시마 해전에서는 러시아 잔존 함대를 추격하여 순양함과 구축함을 격침시키는 등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칭다오 해전에 참전했으며, 이후 남아프리카 공화국케이프타운을 기지로 하여 동남아시아인도양의 해상 수송로를 순찰하는 임무를 맡았다. 전쟁 후에는 일본의 시베리아 출병에 참가하여 지원 임무를 수행했으며, 북양 경비 임무에도 투입되었다.

1922년 8월 26일, 북양 경비 임무를 위해 연해주 부근 해역에 정박해 있던 중, 북상한 열대 저기압(태풍)이 몰고 온 폭풍우에 휘말렸다. 이로 인해 보일러실에 바닷물이 들어차면서 배가 우현으로 기울어져 전복되었고 결국 침몰했다. 이 사고로 승조원 327명이 사망하고 단 16명만이 생존하는 큰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4. 2. 쓰시마 (対馬)

쓰시마(Tsushima)


니타카급 방호순양함의 2번함으로, 구레 해군 공창에서 건조되었다. 함명은 일본과 한반도 사이의 교역 요충지였던 쓰시마 섬에서 유래했다.

1897년에 발주되어 1902년 12월 15일에 진수되었고, 1904년 2월 14일에 완공되었다.[2] 러일 전쟁의 마지막 단계에 참전했으며,[2] 특히 쓰시마 해전에서는 러시아 잔존 함대를 추격하여 러시아 순양함 1척을 격침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칭다오 해전에 참전하여 독일 동아시아 전대를 추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2] 이후 케이프타운에 배치되어 자매함 니타카인도양 해상 수송로 순찰 임무를 지원했다.[2] 전후에는 일본의 시베리아 출병에도 참가했다.[2]

이후 표적 연습함으로 운용되다가 1936년에 해군 함정 목록에서 제적되었다.[2] 외판 부식 등으로 노후화되었으며, 최종적으로 1944년에 어뢰 표적으로 사용되어 침몰했다.[2]

5. 역사적 의의

니타카급 방호순양함은 일본이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건조한 첫 방호순양함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함급을 시작으로 일본은 순양함의 국산화 시대를 열었다.

기존의 함대 결전용 순양함과 달리, 처음부터 정찰 임무를 주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이 때문에 어뢰 무장이 없고 속력도 상대적으로 느렸지만, 견고함과 실용성을 중시하여 성공적인 함선으로 평가받는다.

러일 전쟁 발발 직전에 급히 건조되어 실전에 투입되었다. 전쟁 중에는 황해 해전과 동해 해전 등에 참가하여 전과를 올렸다. 이후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아프리카 대륙 연안까지 원정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참조

[1] 서적 Conway's All the World's Fighting Ships 1860–1905
[2] 웹사이트 Materials of IJN http://admiral31.wor[...] 2020-04-22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