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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팔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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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성팔족은 백제 시대의 유력한 8개의 가문을 지칭하며, 백제 무왕 시기 아마산성 전투 패배 이후 권력이 약화되었다. 의자왕 시대에 왕권 강화와 함께 쇠퇴하여 백제 멸망 직전에는 사씨와 국씨를 제외한 모든 가문이 몰락했다. 주요 가문으로는 사씨, 진씨, 연씨, 해씨, 국씨, 목씨, 백씨, 협씨 등이 있으며, 진씨와 해씨는 왕비를 배출했다. 백제 멸망 후 백씨는 성을 바꾸어 생존을 도모했으며, 일부 기록에서는 오기(誤記)가 발견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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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팔족
개요
명칭대성팔족 (大姓八族)
설명삼국 시대의 한국 귀족 가문
구성 가문
가문 목록사씨 (沙氏)
연씨 (燕氏)
답씨 (刕氏)
해씨 (解氏)
진씨 (眞氏)
국씨 (國氏)
목씨 (木氏)
백씨 (苩氏)
기타 표기진씨(眞氏)
연씨(燕氏)
사씨(沙氏)
해씨(解氏)
정씨(貞氏)
국씨(國氏)
목씨(木氏)
백씨(苩氏)

2. 역사

아마산성 전투(阿莫山城|아막산성한국어)에서 신라에 패한 후 백제 무왕 초기에 대성팔족은 많은 권력을 잃었다. 전투를 이끌었던 해씨(海氏), 협씨(協氏), 진씨(眞氏), 목씨(木氏)는 중앙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고, 연씨(燕氏), 국씨(國氏), 백씨(苩氏)만이 남았다. 사씨(沙氏)는 군사력을 통해 영향력을 키워 백제 무왕 말년에 왕비를 배출했다.[4]

의자왕 재위 기간 동안 대성팔족은 왕권과 결탁하여 중앙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았다. 왕족(부여씨, 扶餘氏|부여씨한국어)은 대성팔족의 몰락과 함께 영향력을 얻었다. 의자왕 즉위 후 왕권은 분열되었고, 왕을 중심으로 한 왕족 직계 후손들이 정치를 장악했다. 연씨와 백씨는 쇠퇴했고, 사씨와 국씨만 중앙 귀족 지위를 유지했다. 백제 말기에는 사씨와 국씨를 제외한 모든 대성팔족이 중앙 귀족 지위를 잃고 지방 세력으로 전락했다.[4]

2. 1. 백제 멸망 이후

백제 무왕 초기, 아마산성 전투(신라)에서 패배 후 대성팔족은 큰 권력을 잃었다. 해씨(海氏), 협씨(協氏), 진씨(眞氏), 목씨(木氏)는 중앙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고, 연씨(燕氏), 국씨(國氏), 백씨(苩氏)만이 남았다. 사씨(沙氏)는 군사력을 통해 영향력을 키워 백제 무왕 말년에 왕비를 배출했다.[4]

의자왕 재위 기간 동안 대성팔족은 왕권과 결탁하여 중앙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했다. 왕족(부여씨, 扶餘氏|부여씨한국어)은 대성팔족의 몰락과 함께 영향력을 얻었다. 의자왕 즉위 후 왕권은 분열되었고, 왕을 중심으로 한 왕족 직계 후손들이 정치를 장악했다. 연씨와 백씨는 쇠퇴했고, 사씨와 국씨만 중앙 귀족 지위를 유지했다. 백제 말기, 사씨와 국씨를 제외한 모든 대성팔족은 중앙 귀족 지위를 잃고 지방 세력으로 전락했다.[4]

663년, 신라당나라 연합군은 백제를 멸망시켰다(역사상 백강 전투). 苩씨는 당나라와 신라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백씨"로 성과 이름을 바꾸어 멸족의 난을 피했다. 苩씨 외 대성팔족도 소멸되거나 성이 바뀌었다(예: 목씨(木氏)는 목씨). 연씨, 진씨, 국씨는 계통은 불분명하지만 현존한다.[4]

3. 주요 가문

가문명주요 인물
사씨(沙氏)사걸(沙乞), 사타상여(沙咤相如), 사택기루(沙宅己婁), 사두(沙豆)
진씨(眞氏)진정(眞淨), 진로(眞老), 진가모(眞嘉謨), 진무(眞武), 진가(眞可), 진충(眞忠), 진회(眞會), 진남(眞男), 진물(眞勿), 진고도(眞高道)
연씨(燕氏)연신(燕信), 연회(燕會), 연돌(燕突), 연모(燕謨)
해씨(解氏)해루(解婁), 해충(解忠), 해명(解明), 해구(解仇), 해수(解須)
국씨(國氏)국지모(國智牟)
목씨(木氏)목간나(木干那), 목만치(木滿致), 목라근자(木羅斤資)
백씨(苩氏)백가(苩加), 백기(苩奇), 백가(白加), 백매순(白昧淳)



아마산성 전투(아莫山城)에서 신라에 패한 후 백제 무왕 초기에 대성팔족은 많은 권력을 잃었다. 전투를 이끌었던 해씨, 협씨(劦氏), 진씨, 목씨는 중앙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고, 연씨, 국씨, 백씨만이 남았다. 사씨는 군사력을 통해 영향력을 키워 백제 무왕 말년에 왕비를 배출했다.[4]

의자왕 재위 기간 동안 대성팔족은 왕권과 결탁하여 중앙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했다. 왕족(부여씨, 扶餘氏|부여씨한국어)은 대성팔족의 몰락과 함께 영향력을 얻었다. 의자왕 즉위 후, 왕권 또한 분열되었고, 왕을 중심으로 한 왕족의 직계 후손들이 정치 상황을 장악했다. 연씨와 백씨는 쇠퇴했고, 사씨와 국씨만이 중앙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했다. 백제 말기에는 사씨와 국씨를 제외한 모든 대성팔족이 중앙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지방 세력으로 전락했다.[4]

4. 성씨별 주요 인물

성씨주요 인물
사씨(沙氏)사걸, 사타상여, 사택기루, 사두
진씨(眞氏)진정, 진로, 진가모, 진무, 진가, 진충, 진회, 진남, 진물, 진고도
연씨(燕氏)연신, 연회, 연돌, 연모
해씨(解氏)해루, 해충, 해명, 해구, 해수
국씨(國氏)국지모
목씨(木氏)목간나, 목만치, 목라근자
백씨(苩氏)백가, 백기, 백가(白加), 백매순



진씨와 해씨는 백제의 왕비를 배출하기도 했다.

4. 1. 사씨 (沙氏)

사씨(沙氏)는 사걸, 사타상여, 사택기루, 사두 등을 배출한 백제의 유력 가문이었다. 아마산성 전투 이후 백제 무왕 초기에는 대성팔족의 세력이 약화되었으나, 사씨는 군사력을 통해 영향력을 키워 백제 무왕 말년에 왕비를 배출하기도 했다.[4] 의자왕 재위 기간 동안 왕권과 결탁하여 중앙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했다.[4] 백제 말기에는 사씨와 국씨를 제외한 모든 대성팔족이 중앙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지방 세력으로 전락했다.[4]

4. 2. 연씨 (燕氏)

연신, 연회, 연돌, 연모 등이 기록에 나타난다.[4]

아마산성 전투에서 신라에 패한 후 백제 무왕 초기에 대성팔족은 많은 권력을 잃었다. 이 전투를 이끌었던 해씨(海氏), 협씨(劦氏), 진씨(眞氏), 목씨(木氏)는 중앙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고, 연씨(燕氏), 국씨(國氏), 백씨(苩氏)만이 남았다.[4]

의자왕 재위 기간 동안 연씨는 왕권과 결탁하여 중앙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려 했으나, 왕족(부여씨, 扶餘氏|부여씨한국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쇠퇴하였다. 의자왕 즉위 후 왕권 또한 분열되었고, 왕을 중심으로 한 왕족의 직계 후손들이 정치 상황을 장악했다.[4]

4. 3. 해씨 (解氏)

해씨(解氏)는 백제의 왕비를 배출한 대성팔족 중 하나이다. 기록에 등장하는 인물로는 해루, 해충, 해명, 해구, 해수 등이 있다. 아마산성 전투에서 신라에 패한 후 백제 무왕 초기에 해씨 가문은 중앙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4]

4. 4. 진씨 (眞氏)

진정, 진로, 진가모, 진무, 진가, 진충, 진회, 진남, 진물, 진고도 등이 진씨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진씨는 백제의 왕비를 배출하기도 했다.[4] 아마산성 전투 이후 중앙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가, 의자왕 재위 기간 동안 왕권과 결탁하여 중앙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백제 말기에는 중앙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지방 세력으로 전락했다.[4]

4. 5. 국씨 (國氏)

국지모(國智牟)가 기록에 나타난다.[4]

백제 무왕 초기 아마산성 전투(ko)에서 신라에 패한 후 대성 팔족은 많은 권력을 잃었다. 백제 말기에 국씨사씨를 제외한 모든 대성 팔족이 중앙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결국 지방 세력으로 전락했다.[4]

4. 6. 목씨 (木氏)

목라근자, 목만치, 목간나 등이 기록되어 있다.[4] 백제 무왕 초기, 아마산성 전투에서 신라에 패한 후 대성팔족은 많은 권력을 잃었다. 그 가문들 중 전투를 이끌었던 해씨(海氏), 협씨(協氏), 진씨(眞氏), 목씨(木氏)는 중앙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4]

4. 7. 백씨 (苩氏)

백가(苩加), 백기(苩奇), 백가(白加), 백매순(白昧淳) 등이 기록에 나타난다.[4]

신라와의 아마산성 전투( 阿莫山城|아모산성한국어)에서 패한 후 백제 무왕 초기에 대성팔족은 많은 권력을 잃었다. 그 가문들 중 전투를 이끌었던 해씨(海氏), 협씨(協氏), 진씨(眞氏), 목씨(木氏)는 중앙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고, 연씨(燕氏), 국씨(國氏), 백씨(苩氏)만이 남았다.[4]

의자왕 재위 기간 동안 왕권과 결탁하여 중앙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았다. 대성팔족 중 연씨와 백씨는 쇠퇴했고, 사씨와 국씨만이 중앙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했다. 백제 말기에는 사씨와 국씨를 제외한 모든 대성팔족이 중앙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결국 지방 세력으로 전락했다.[4]

5. 오기(誤記)

북사』와 『통전』 등에는 정(貞)씨 대신 진(真)씨가 기록되어 있는데, 『삼국사기』에는 정씨 인물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점으로 보아, 대체로 정(貞)은 진(真)의 오기(誤記)로 보인다.

건륭제 때 편찬한 『만주원류고』에서는 백제의 대성팔족 중 백씨(苩氏)를 묘씨(苗氏)로 기록하고 있는데, 한자 苩(백)과 苗(묘)의 글자 모양이 서로 비슷하여 부주의로 둘을 혼동하여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참조

[1] 서적 백제의중앙과지방 Central area and regions of Baekje Juryuseong 2005
[2] 문서 Tongdian
[3] 문서 Samguk Sagi
[4] 서적 Changes of Central Nobles and Kingship in the Late Baekje Kingdom 2015
[5] 서적 백제의중앙과지방 Central area and regions of Baekje 2005
[6] 서적 隋書 卷81「列傳」第46「東夷」百濟條 隋書
[7] 서적 만주원류고 파워북 2008
[8] 문서 《隋書》 卷 081 <東夷列傳> 第 046 百濟條
[9] 서적 만주원류고 파워북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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