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후보 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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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후보 경선은 2007년 6월부터 8월까지 진행되었다. 이명박, 박근혜, 원희룡, 홍준표, 고진화가 후보로 등록했으며, 고진화는 경선 도중 사퇴했다. 경선은 국민참여선거인단 투표 80%와 여론조사 20%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명박 후보가 최종 후보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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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후보 경선 | |
---|---|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후보 경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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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개요 | |
국가 | 대한민국 |
선거 종류 | 대통령 선거 |
선거일 | 2007년 8월 19일 |
진행 상태 | 종료 |
정당 | 해당 없음 |
직책 | 대통령 후보 |
선거 후 | 이명박 |
선거 전 | 이회창 |
이전 선거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후보 경선 |
이전 선거 연도 | 2002년 |
차기 선거 |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새누리당 후보 경선 |
차기 선거 연도 | 2012년 |
투표 결과 | |
투표율 | 70.83% |
이명박 득표수 | '81,084' |
이명박 득표율 | '49.56%' |
박근혜 득표수 | '78,632' |
박근혜 득표율 | 48.06% |
2. 경선 일정
- 6월 11일 ~ 6월 13일 후보 등록 기간
- 6월 19일 정책 비전 대회
- 7월 20일 국민참여선거인단 명부 확정
- 7월 21일 ~ 8월 18일 후보자 합동 연설회 및 선거 운동
- 8월 19일 오전 6시 ~ 오후 8시 '''국민참여선거인단 대회''' (투표)
- 8월 20일 '''한나라당 제9차 전당대회''' (개표 및 대통령 후보자 지명)
3. 후보자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는 여러 인물이 참여하였다.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재임 시절 청계천 복원 사업 등의 성과로 중도층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2년간 당 대표를 역임하며 구축한 당내 조직력을 기반으로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이 두 후보가 양강 구도를 형성한 가운데, 원희룡 전 최고위원, 홍준표 의원, 고진화 의원 등도 경선 후보로 등록하였다.[1] 다만, 고진화 후보는 경선 과정 중인 7월 20일 사퇴하였다. 한편,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3월 18일 결정된 경선룰에 반발하여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이후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 참여하였다.
3. 1. 등록 후보
6월 13일 후보 등록이 마감되었다.[1]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원희룡 전 최고위원, 홍준표 의원, 고진화 의원이 후보로 등록하였다. 이 중 고진화 후보는 7월 20일 후보직을 사퇴하였다.등록된 후보는 다음과 같다.
기호 | 이름 | 생년 | 주요 경력 | 비고 |
---|---|---|---|---|
1 | 이명박 | 1941년 | 제32대 서울특별시장 제14·15대 국회의원 | |
2 | 원희룡 | 1964년 | 제16·17대 국회의원 | |
3 | 박근혜 | 1952년 | 前 한나라당 대표 제15·16·17대 국회의원 | |
4 | 홍준표 | 1954년 | 제15·16·17·18대 국회의원 | |
5 | 고진화 | 1963년 | 제17대 국회의원 | 후보 사퇴 (7월 20일) |
3. 2. 사퇴 후보
6월 13일 후보 등록이 완료된 후, 고진화 의원은 7월 20일 후보직을 사퇴하였다.4. 경선 과정
한나라당의 제17대 대통령 후보 경선은 당시 여권의 유력 주자 부재와 높은 당 지지율 속에서 사실상의 본선으로 여겨질 만큼 큰 관심을 모았다.[1] 이명박 전 서울특별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양강 구도를 형성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경선이 과열되면서 양측 후보를 둘러싼 각종 의혹 제기와 검증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1] 이러한 네거티브 공방은 경선 막판까지 이어지며 판세에 영향을 미쳤다.
4. 1. 이명박 후보 관련 논란
한나라당 경선이 과열되면서 이명박 후보 측에는 BBK 관련 의혹 등이 제기되었고, 박근혜 후보 측에는 정수장학회 문제 등이 불거져 나왔다.[1] 이 시기에는 훗날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이어지는 최순실 일가 문제도 거론되었으나, 당시에는 다른 문제들이 더 크게 부각되며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경선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평가받던 이명박 후보에게 여러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되었다. 친인척이 연루된 부동산 투기 의혹, 부인의 15차례 위장전입 의혹, BBK 관련 주가조작 의혹, 소위 'X파일' 존재설,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는 산악회 운영 논란, 도곡동 땅 문제 등이 연이어 불거지면서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다른 후보들은 1985년 이명박 후보의 처남과 형 이상은 씨가 서울특별시 도곡동 일대의 땅을 대량 매입한 뒤, 서울 지하철 3호선 개통 등으로 큰 시세 차익을 얻고 1995년 포스코개발에 매각한 사건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전당대회를 엿새 앞둔 8월 14일, 검찰은 이상은 씨 소유의 도곡동 땅 지분 일부가 실제로는 이명박 후보의 차명재산이라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이로 인해 이명박 후보의 사퇴 요구가 거세졌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대검찰청 정동기 차장이 "도곡동 땅이 이명박 후보 소유라는 증거는 없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은 일단 수습되는 국면을 맞았다.[2]
4. 2. 박근혜 후보 관련 논란
한나라당 경선은 당시 여권의 유력 후보 부재와 높은 당 지지율로 인해 사실상의 본선으로 여겨졌고, 달아오른 경선 과정에서 후보들에 대한 각종 검증과 의혹 제기가 이어졌다.[1]박근혜 후보와 관련해서는 정수장학회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었다.[1] 또한, 훗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이어져 대통령 탄핵의 주요 원인이 된 최순실 일가 관련 문제도 이 시기에 거론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명박 후보 측에 제기된 BBK 문제 등 여러 의혹들이 더 크게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묻힌 바 있다.[1]
5. 여론조사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한나라당 후보 경선 관련 여론조사에서는 경선 초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높은 지지율로 앞서 나갔으나, 당내 기반이 탄탄했던 박근혜 전 대표가 추격하며 양강 구도를 형성하는 양상을 보였다. 경선 과정이 점차 과열되면서 후보 간 상호 검증과 네거티브 공방이 치열해졌으며, 특히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여러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기도 했다. 자세한 후보별 지지율 추이는 아래 하위 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5. 1. 후보별 지지율 추이
경선 초반에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청계천 복원 사업 등의 성과를 바탕으로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앞서 나갔으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역시 당내 기반을 바탕으로 상당한 지지세를 유지하며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1] 경선이 과열되면서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여러 의혹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특히 BBK 관련 의혹, 도곡동 땅 차명 보유 의혹 등은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며 박근혜 후보와의 격차가 점차 좁혀지는 양상을 보였다.[1][2]경선 과정에서 고진화 의원은 7월 20일 후보직을 사퇴했다.
아래는 경선 기간 동안 주요 후보들의 지지율 변화를 나타낸 표이다.
날짜 | 이명박 | 원희룡 | 박근혜 | 홍준표 | 고진화 | 주 | 비고 |
---|---|---|---|---|---|---|---|
5월 16일 | 48.9 | 0.1 | 22.4 | - | - | [3] | |
5월 26일 | 47.3 | 0.1 | 23.4 | 0.1 | - | [4] | |
6월 9일 | 41.3 | 0.4 | 24.9 | 0.1 | - | [5] | |
6월 21일 | 37.8 | - | 26.1 | - | - | [6] | |
7월 1일 | 39.4 | 0.3 | 27.6 | 0.6 | 0.1 | [7] | |
7월 14일 | 40.0 | 0.6 | 25.8 | - | - | [8] | |
7월 20일 | 고진화 후보 사퇴 | ||||||
7월 21일 | 37.2 | 0.1 | 27.6 | 0.2 | ─ | [9] | |
7월 30일 | 36.6 | - | 26.6 | 0.2 | ─ | [10] |
5. 2. 이명박·박근혜 후보 지지율 추이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재임 시절 이룬 버스체계 개편과 청계천 복원 사업 등으로 중도층의 호감을 얻고 있었으나, 당내에서는 2년간 대표를 지낸 박근혜 전 대표가 확고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여권에 유력 대선 후보가 부재하고 범여권 정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한나라당 지지율이 50%를 넘어서는 등, 한나라당 경선이 사실상 본선처럼 여겨졌다. 경선 과정이 과열되면서 이명박 후보 측에는 BBK 문제, 박근혜 후보 측에는 정수장학회 문제 등이 제기되었다.[1] 이 시기에 최순실 일가 문제도 거론되었으나, 당시에는 다른 쟁점들에 가려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경선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던 이명박 후보 측의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되었다. 친인척이 관여된 부동산 투기 의혹, 부인의 15차례 위장전입 의혹, BBK 관련 주가조작 의혹, X파일 존재론, 산악회 선거법 위반 논란, 도곡동 땅 문제 등이 연이어 제기되면서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85년 이명박 후보의 처남과 형 이상은 씨가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일대 땅을 매입한 후 지하철 개통으로 시세 차익을 얻고 1995년 포스코에 매각한 사건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전당대회를 6일 앞둔 8월 14일, 검찰은 이상은 씨의 몫 일부가 이명박 후보의 차명 재산이라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이명박 후보 사퇴론이 거세졌다. 그러나 다음 날 대검찰청 정동기 차장이 "도곡동 땅이 이명박 후보 소유라는 증거가 없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은 일단 수습되는 국면을 맞았다.[2]
날짜 | 이명박 | 박근혜 | 비고[11] |
---|---|---|---|
2006년 | |||
8월 12일 | 21.6 | 18.1 | |
9월 13일 | 22.5 | 22.2 | |
10월 11일 | 30.2 | 21.0 | |
11월 15일 | 29.0 | 17.0 | |
12월 26 ~ 27일 | 38.9 | 13.8 | |
2007년 | |||
2월 3일 | 47.7 | 16.4 | |
2월 24일 | 47.0 | 19.4 | |
3월 26 ~ 27일 | 44.9 | 17.3 | |
4월 21일 | 43.8 | 21.2 | |
5월 12일 | 44.1 | 21.6 | |
6월 16일 | 40.1 | 25.4 | |
7월 7일 | 37.7 | 25.6 | |
7월 21일 | 38.7 | 28.2 |
6. 선거 방식
한나라당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 방식은 국민참여선거인단 투표 결과 80%와 여론 조사 결과 20%를 합산하여 결정되었다.
- '''국민참여선거인단''' (80% 반영)
국민참여선거인단은 가장 최근에 실시된 전국 단위 공직 선거 유권자 수의 0.5% 이상으로 구성하도록 규정되었다. 세부 구성과 반영 비율은 아래 표와 같다.
구분 | 인원수 | 그룹 내 비율 | 전체 반영 비율 |
---|---|---|---|
전당대회 대의원 | 45,717명 | 25% | 20% |
당원 선거인 | 69,496명 | 37.5% | 30% |
일반 국민 선거인 | 69,496명 | 37.5% | 30% |
합계 | 184,709명 | 100% | 80% |
- '''여론 조사''' (20% 반영)
여론 조사는 공인된 복수의 대한민국 조사기관에서 실시하였으며, 여론조사 결과 1개당 6표로 환산하여 반영하였다.
7. 선거 결과
(내용 없음)
7. 1. 최종 결과
wikitext순위 | 기호 | 이름 | 여론조사 | 선거인단 | 총 득표 | 비고 |
---|---|---|---|---|---|---|
득표율 | 득표율 | 득표율 | ||||
1 | 1 | 이명박 | 16,868 | 64,216 | 81,084 | 후보 확정 |
51.55% | 49.06% | 49.56% | ||||
2 | 3 | 박근혜 | 13,986 | 64,648 | 78,634 | rowspan=2 | |
42.73% | 49.39% | 48.06% | ||||
3 | 2 | 원희룡 | 1,079 | 1,319 | 2,398 | rowspan=2 | |
3.30% | 1.01% | 1.47% | ||||
4 | 4 | 홍준표 | 793 | 710 | 1,503 | rowspan=2 | |
2.42% | 0.54% | 0.92% | ||||
- | 5 | 고진화 | - | - | - | 후보 사퇴 |
합계 (득표수) | 32,726 | 130,893 | 163,619 | - | ||
합계 (득표율) | 100.00% | 100.00% | 100.00% | - |
7. 2. 지역별 결과
한나라당 경선관리위원회는 7월 22일 제주에서 시작된 후보자 합동연설회가 과열 조짐을 보이자, 7월 24일로 예정되었던 광주·전남 합동연설회를 포함한 전체 합동연설회 일정을 잠정 중단하였다[12]. 그러나 7월 26일 부산 합동연설회부터는 재개하기로 결정하였고, 광주·전남 합동연설회는 8월 5일로 연기하여 진행했다.순위 | 기호 | 이름 | 여론조사 (득표수 / 득표율) | 선거인단 (득표수 / 득표율) | 총 득표 (득표수 / 득표율) | 비고 |
---|---|---|---|---|---|---|
1 | 1 | 이명박 | 16,868 / 51.55% | 64,216 / 49.06% | 81,084 / 49.56% | 후보 확정 |
2 | 3 | 박근혜 | 13,986 / 42.73% | 64,648 / 49.39% | 78,634 / 48.06% | rowspan=2 | |
3 | 2 | 원희룡 | 1,079 / 3.30% | 1,319 / 1.01% | 2,398 / 1.47% | rowspan=2 | |
4 | 4 | 홍준표 | 793 / 2.42% | 710 / 0.54% | 1,503 / 0.92% | rowspan=2 | |
- | 5 | 고진화 | - | - | - | 후보 사퇴 |
합계 | 32,724 / 100% | 131,086 / 100% | 163,810 / 100% | - |
이명박 후보는 선거인단 투표 결과 서울, 경기,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뒤졌으나, 여론조사에서 큰 차이로 앞서 최종적으로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전체 선거인단 185,080명 중 131,086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최종 투표율은 70.83%를 기록했다.
지역 | 이명박 (득표수 / 득표율) | 원희룡 (득표수 / 득표율) | 박근혜 (득표수 / 득표율) | 홍준표 (득표수 / 득표율) | 합계 |
---|---|---|---|---|---|
서울 | 16,190 / 58.0% | 330 / 1.2% | 11,113 / 39.8% | 271 / 1.0% | 27,904 |
부산 | 5,273 / 47.2% | 60 / 0.5% | 5,789 / 51.8% | 47 / 0.4% | 11,169 |
대구 | 2,305 / 31.1% | 19 / 0.3% | 5,072 / 68.4% | 22 / 0.3% | 7,418 |
인천 | 3,089 / 49.1% | 36 / 0.6% | 3,135 / 49.9% | 25 / 0.4% | 6,285 |
광주 | 1,338 / 57.6% | 104 / 4.5% | 853 / 36.8% | 26 / 1.1% | 2,321 |
대전 | 1,272 / 34.1% | 40 / 1.1% | 2,404 / 64.4% | 18 / 0.5% | 3,734 |
울산 | 1,517 / 47.7% | 18 / 0.6% | 1,637 / 51.4% | 11 / 0.3% | 3,183 |
경기 | 12,779 / 50.0% | 161 / 0.6% | 12,543 / 49.1% | 88 / 0.3% | 25,571 |
강원 | 1,866 / 43.0% | 22 / 0.5% | 2,436 / 56.2% | 14 / 0.3% | 4,338 |
충북 | 1,823 / 43.3% | 26 / 0.6% | 2,343 / 55.7% | 16 / 0.4% | 4,208 |
충남 | 2,271 / 41.3% | 26 / 0.5% | 3,179 / 57.8% | 24 / 0.4% | 5,500 |
전북 | 2,141 / 55.3% | 111 / 2.9% | 1,581 / 40.8% | 39 / 1.0% | 3,872 |
전남 | 2,692 / 57.0% | 133 / 2.8% | 1,852 / 39.2% | 48 / 1.0% | 4,725 |
경북 | 4,455 / 46.3% | 31 / 0.3% | 5,111 / 53.1% | 24 / 0.2% | 9,621 |
경남 | 4,498 / 48.1% | 76 / 0.8% | 4,748 / 50.8% | 30 / 0.3% | 9,352 |
제주 | 707 / 41.8% | 126 / 7.4% | 852 / 50.4% | 7 / 0.4% | 1,692 |
선거인단 합계 | 64,216 / 49.0% | 1,319 / 1.0% | 64,648 / 49.4% | 710 / 0.5% | 131,086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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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朴 정수장학회 문제 거론, 朴→ 李 재산형성 과정 이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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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와 정동기, 그리고 베일의 도곡동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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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소폭 상승(48.9%)- 朴, 변화 없어(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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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47%, 박 23%… 대선구도 8개월째 변화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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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박 충청서 박빙… 영·호남선 이(李)가 10~12%P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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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朴 지지율差 11%P로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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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박, 충청·영남서 접전… 수도권선 이 44·박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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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박 격차, 남성에선 22%P… 여성에선 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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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20대 남성… 박은 50대이상 여성서 지지율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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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TNS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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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의혹에도 35%대 버티는 ‘이명박 지지율’…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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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경선과열” 합동유세 잠정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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