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훈위 금척대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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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훈위 금척대수장은 1897년 대한제국 칙령 제13호에 의해 제정된 훈장으로, 훈등은 대훈위이며 등급은 없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금척을 얻는 꿈을 꾼 설화에서 유래되었으며, 황실에서만 패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특별한 공훈이 있는 황족 및 문무관에게도 수여되었다. 1904년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를 시작으로 외국인에게도 수여되었으며, 훈장을 받은 자에게는 연금 또는 일시 하사금이 지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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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장은 1897년 대한제국에서 제정된 훈장으로, 문무관의 훈공을 평가하여 수여되었으며, 등급별로 수여 대상과 형태에 차이를 두어 위계를 나타냈다. - 대한제국의 훈장 - 팔괘장 (훈장)
팔괘장은 대한제국에서 문무관에게 수여된 훈장으로, 8개의 괘를 가진 1등부터 8등까지 등급으로 나뉘어 정장, 부장, 수 또는 목걸이 형태로 존재했으며, 훈일등 팔괘대수장은 금과 은으로 제작되었다. - 금척대훈장 수훈자 - 의민태자
의민태자는 고종과 순헌황귀비 엄씨 사이에서 태어난 대한제국 최후의 황태자로, 영친왕 책봉 후 황태자가 되었으나 일본 유학 및 군 복무, 일본 황족과의 정략결혼, 광복 후 국적 미인정으로 일본에서 생활하다 귀국 후 영원에 안장되었으며 사후 의민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금척대훈장 수훈자 - 민영환
민영환은 1861년 서울에서 태어나 문과에 급제하고 요직을 거치며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참석한 개화파 인물로, 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하여 자결했으며 그의 유서는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대훈위 금척대수장 - [상(Prize)]에 관한 문서 | |
---|---|
훈장 정보 | |
이름 | 대훈위 금척대수장 |
로마자 표기 | Daehunwi Geumcheokdaesujang |
수여 기관 | 대한제국 |
종류 | 왕조 훈장 |
수여 대상 | 공로가 있는 민간인 및 군인, 한국인 및 외국인 (계급/지위에 따라 등급 결정) |
수여 이유 | 공적 |
상태 | 폐지 |
제정일 | 1897년 4월 17일 |
상위 훈장 | 없음 |
하위 훈장 | 대훈위 서성대수장 |
군사 훈장 정보 | |
이름 (한자) | 大勲位金尺大綬章 |
![]() | |
![]() | |
수여 기관 | 대한제국 |
종류 | 훈장 |
상태 | 폐지 |
설명 | 해당 없음 |
표어 | 해당 없음 |
구성 | 해당 없음 |
수여 시작일 | 1900년 4월 17일 |
최초 수여일 | 1904년 3월 20일 |
최종 수여일 | 1910년 8월 27일 |
총 수여 횟수 | 해당 없음 |
사후 수여 | 해당 없음 |
수여자 | 해당 없음 |
개별 수여 | 해당 없음 |
상위 훈장 | 해당 없음 |
하위 훈장 | 대훈위 서성대수장 |
관련 훈장 | 해당 없음 |
추가 정보 | |
![]() | |
수여권자 | 대한제국의 황제 |
등급 | 해당 없음 |
과거 등급 | 해당 없음 |
수여 중단일 | 1910년 |
첫 번째 수여 | 1897년 3월 20일 |
마지막 수여 | 1910년 8월 27일 |
2. 역사
1897년(광무 1년) 4월 17일 대한제국 칙령 제13호로 〈훈장 조례〉가 반포되면서 대훈위 금척대수장이 제정되었다. 훈등은 대훈위이고 등급은 없으며 대훈위서성대수장 위에 있었다.[27] 훈장 명칭은 조선 건국자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꿈에서 얻은 금척에서 유래한 것으로, 천하를 다스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26] 기본적으로 황실에서만 패용했으나, 황족과 문무관 중 대훈위 서성대수장을 받은 자가 특별한 공훈을 세웠을 때 황제의 특지(特旨)로 수여하기도 했다.[27] 훈장을 받은 이에게는 600KRW~1000KRW의 연금이나 2000KRW 이내의 일시 하사금을 지급했다.[28]
1897년 여름, 대한제국을 새로 건국한 고종은 훈장 창설을 고려하면서 유럽식 모델을 참고했다.[1] 고종은 1897년 4월 17일에 훈장을 정식으로 제정했고, 최고 등급인 대수장은 고종, 순종, 이은에게 처음 수여되었다. 고종은 훈장 수여가 "기쁘게" 대한제국에 공헌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1]
1904년 3월 20일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가 대한제국을 방문하여 훈장을 받은 것이 외국인 최초 수훈 사례였다. 이는 외국 국가 원수에게 주어지는 일반적인 외교 관례였다. 이후 10년 동안 27명의 외국인이 이 훈장을 받았다.
이 훈장은 원래 의도했던 명예의 정도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에게 수여되었다는 평가도 있다.[3]
2. 1. 제정 배경
1897년 (광무 1년) 4월 17일 대한제국 칙령 제13호로 〈훈장 조례〉(勳章條例)가 반포되면서 제정되었다. 훈등은 대훈위(大勳位)이고 등급은 없으며 대훈위서성대수장 위에 있었다.[27] 훈장 명칭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꿈에서 얻은 금척(金尺)에서 유래한 것으로 천하를 다스린다는 뜻을 취하였다.[26] 황실에서만 패용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으나, 황족과 문무관 중에서 대훈위 서성대수장을 받은 자가 특별한 훈공이 있을 때 황제의 특지(特旨)로 수여되기도 하였다.[27] 훈장을 수여받은 자에게는 600 ~ 1,000원의 연금이나 2000KRW 이내의 일시 하사금이 지급되었다.[28]1897년 여름, 대한제국을 새로 건국한 고종은 훈장 창설을 고려하기 시작하면서 유럽식 모델을 참고하였다.[1] 고종은 1897년 4월 17일에 훈장을 정식으로 제정하였고, 훈장의 최고 등급인 대수장은 고종, 순종, 이은에게 처음 수여되었다. 고종은 훈장 명칭을 조선 태조가 조선 건국 영감을 얻었다고 주장한 꿈에서 따왔으며, 훈장 수여가 "기쁘게" 대한제국에 공헌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1]
1904년 3월 20일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가 대한제국 방문 중에 훈장을 받은 것이 외국인 최초 수훈 사례였으며, 이는 일반적으로 외국 국가 원수에게 행해지는 외교적 관례였다. 이후 10년 동안 27명의 외국인이 이 훈장을 받았다.
수훈자들은 연간 600~1,000원의 연금 또는 2000KRW의 일시금을 받았다.[2] 그러나 이 훈장이 원래 의도했던 명예의 정도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수여되었다는 평가도 있다.[3]
2. 2. 명칭 유래
1900년 4월 17일, 대한제국 칙령 제13호 훈장 조례에 의해 제국 내 최고위 훈장으로 제정되었다.[6] 대훈위 금척대수장은 이씨 조선의 초대 국왕인 이성계가 즉위 전에 꿈에서 금척을 얻었다는 고사(몽금척)를 바탕으로 이름지어졌다.[5] 이 훈장은 기본적으로 황제를 비롯한 황족이 착용했으며, 무관과 문관 중 특별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도 특별한 명령(特旨)에 의해 수여되었다.[6]2. 3. 수여 대상 및 특전
1897년(광무 1년) 4월 17일 대한제국 칙령 제13호 〈훈장 조례〉(勳章條例)가 반포되면서 제정되었다. 훈등은 대훈위(大勳位)이고 등급은 없으며 대훈위서성대수장의 위에 있다.[27] 기본적으로 황실에서만 패용하나, 황족과 문무관 중에서 대훈위 서성대수장을 받은 자가 특별한 훈공이 있을 때 황제의 특지(特旨)로 수여되었다.[27] 훈장을 수여받은 자에게는 연간 600KRW~1000KRW의 연금이나 2000KRW 이내의 일시 하사금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28]1904년 3월 20일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가 최초의 외국인 수훈자였다. 그는 대한제국 방문 중에 훈장을 받았으며, 이는 일반적으로 외국 국가 원수에게 행해지는 외교적 관례였다. 이후 10년 동안 27명의 외국인이 이 훈장을 받았다.
이 훈장은 원래 의도했던 명예의 정도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수여되었다는 평가가 있다.[3]
2. 4. 외국인 수장
1904년 3월 20일,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가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훈장을 받았다.[1] 하인리히 왕자는 대한제국 방문 중에 훈장을 받았는데, 이는 외국 국가 원수에게 주어지는 일반적인 외교적 관례였다. 이후 10년 동안 27명의 외국인이 이 훈장을 받았다.수훈자들은 연간 600KRW에서 1000KRW 사이의 연금, 또는 2000KRW의 일시금을 받았다.[2] 일각에서는 이 훈장이 원래 의도했던 명예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수여되었다는 평가도 있다.[3]
3. 형태
대훈위 금척대수장은 정장, 부장, 약수로 구성된다. 정장은 금으로 제작되었으며, 지름은 약 7.5cm이다. 금색 선으로 둘러싸인 청홍색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십자형 금척과 백색 광선이 뻗어 나오는 형태이다. 광선 사이에는 흰색 오얏꽃(李花) 세 송이가 배열되어 있다. 정장 꼭지와 고리 또한 금으로 제작되었으며, 흰색 오얏꽃을 다섯 장의 녹색 잎이 받치고 있는 모양이다. 잎사귀 뒷면에는 전서체로 '금척대훈(金尺大勳)'이 가로쓰기로 새겨져 있다.[29]
부장은 정장과 모양, 재질이 같지만, 지름이 약 9cm로 더 크다. 뒷면에는 은제 핀이 있고, 전서체로 '금척대훈'이 음각되어 있다.[29]
대훈위 금척대수장을 착용할 때는 황색 바탕에 붉은색 선이 들어간 대수(大綬)를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 방향으로 두른다. 대수 끝부분이 교차하는 지점에 오얏꽃 모양의 천을 접어 달고, 그 아래에 정장을 단다. 부장은 왼쪽 가슴에 부착한다. 약수(略綬)는 대수와 재질이 같고 원형이며, 중앙에는 붉은색 오얏꽃 위에 금색 금척과 외변선이 둘러져 있다. 약수는 예복 착용 시 왼쪽 옷깃 단추 구멍에 건다.[27] [29]
3. 1. 구성
대훈위 금척대수장은 정장(正章)과 부장(副章)으로 구성된다. 정장의 문채는 금으로 제작되었고, 지름은 2치 5푼이다. 금색 선을 두른 청홍색 태극을 중심으로 십자형 금척과 백색 광선이 뻗어 나오는 형태이며, 광선 사이마다 백색 오얏꽃(李花) 세 송이를 배열하였다. 정장의 꼭지와 고리는 금으로 제작되었으며, 백색 오얏꽃을 다섯 장의 녹색 잎이 받치고 있는 형태이다. 잎사귀 뒷면에는 전서체로 ‘금척대훈(金尺大勳)’이 가로쓰기로 새겨져 있다. 부장은 정장과 모양, 재질이 같지만 지름이 3치이며, 뒷면에 은제 패침이 있고 전서체로 ‘금척대훈’이 음각되어 있다.[29]대훈위 금척대수장을 착용할 때는 황색 바탕에 홍변선으로 이루어진 대수(大綬)를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에 두른 다음, 끝 부위에서 교차하여 오얏꽃을 천으로 접어 달고 그 밑에 정장을 단다. 부장은 왼쪽 가슴에 단다.[27] 약수(略綬)는 대수와 재질이 같고 원형이며, 중앙에 만개한 홍색 오얏꽃과 그 위에 금색 금척, 외변선을 둘렀다.[29] 약수는 통상 예복 착용 시 왼쪽 옷깃 단추 구멍에 걸어 패용한다.[27]
3. 2. 정장
대훈위 금척대수장은 정장(正章)과 부장(副章)으로 구성된다. 정장의 장(章), 즉 문채의 재질은 금이고, 지름은 2치(寸) 5푼(分)이다. 금색 선을 두른 청홍색의 태극을 중심으로 십자형의 금척과 백색 광선이 금척을 축으로 하여 그 사이에서 뻗어 나오는 형상이고, 광선 사이마다 백색의 오얏꽃(李花)을 세 송이씩 배열하였다. 정장의 꼭지와 고리의 재질은 금이며, 백색의 오얏꽃을 다섯 장의 녹색 잎이 받치고 있는 형상으로 잎사귀 뒷면에는 전서체의 ‘금척대훈(金尺大勳)’이 가로쓰기로 새겨져 있다. 부장의 문채 모양과 재질은 정장과 같지만, 지름이 3치이며 뒷면에 은제 패침이 있고 전서체로 ‘금척대훈’이 음각되어 있다.[29]대훈위 금척대수장을 패용할 때는 황색 바탕에 홍변선으로 이루어진 대수(大綬)를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에 두른 다음, 끝 부위에서 교차하여 오얏꽃을 천으로 접어 달고 그 밑에 정장을 달았으며, 부장은 왼쪽 가슴에 단다.[27]
3. 3. 부장
대훈위 금척대수장의 부장은 정장과 동일한 모양과 재질로 제작되지만, 크기는 더 크다. 지름은 3치(약 9cm)이다.[29] 부장 뒷면에는 은으로 만든 핀이 있고, 전서체로 '금척대훈'이 음각되어 있다.[29] 부장은 왼쪽 가슴에 단다.[27]3. 4. 패용 방식
대훈위 금척대수장은 황색 바탕에 홍변선이 있는 대수(大綬)를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에 두른다. 끝부분에서 교차하여 오얏꽃을 천으로 접어 달고 그 밑에 정장(正章)을 단다. 부장(副章)은 왼쪽 가슴에 단다.[27] 약수(略綬)는 대수와 재질이 같고 모양은 원형이다. 중앙에는 활짝 핀 홍색 오얏꽃이 있고 그 위에 금색 금척과 외변선을 둘렀으며,[29] 통상 예복 착용 시 왼쪽 옷깃 단추 구멍에 걸어서 패용한다.[27]3. 5. 약수
약수는 대수와 재질이 같고 원형이며, 중앙에는 활짝 핀 붉은색 오얏꽃 위에 금색 금척과 외변선을 둘렀다.[29] 통상 예복 착용 시 왼쪽 옷깃 단추 구멍에 걸어서 패용한다.[27]4. 수장자 명단
대훈위 금척대수장은 대한제국 최고 훈장으로, 황족과 문무관에게 수여되었다. 다음은 수장자 명단이다.
연도 | 일자 | 이름 | 직책·작위 | 국적 | 출처 |
---|---|---|---|---|---|
1904년 | 3월 20일 |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 | 황자 | 독일 제국 | [30] |
1904년 | 3월 24일 | 이토 히로부미 | 추밀원 의장, 후작 | 일본 제국 | [31] |
1905년 | 5월 23일 |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 왕 | 일본 제국 | [33] |
1907년 | 2월 27일 | 레오폴트 클레멘스 필리프 아우구스트 마리아 | 대공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37] |
1907년 | 8월 27일 | 하세가와 요시미치 | 육군대장, 남작 | 일본 제국 | [38] |
1907년 | 10월 18일 | 아리스가와노미야 다케히토 | 친왕 | 일본 제국 | [39] |
가쓰라 다로 | 육군대장, 후작 | 일본 제국 | |||
도고 헤이하치로 | 해군대장, 백작 | 일본 제국 | |||
1908년 | 1월 29일 | 야마가타 아리토모 | 추밀원 의장, 육군대장, 공작 | 일본 제국 | [40] |
사이온지 긴모치 | 내각총리대신, 후작 | 일본 제국 | |||
1908년 | 5월 11일 | 다케다노미야 쓰네히사 | 왕 | 일본 제국 | [41] |
1909년 | 7월 21일 |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 왕 | 일본 제국 | [42] |
1910년 | 4월 16일 |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 왕 | 일본 제국 | [44] |
4. 1. 대한제국 황족
이름 | 역직 등 | 국적 | 비고 |
---|---|---|---|
이형 | 황제 | 대한제국 | |
이척 | 황태자 | 대한제국 | |
이은 | 황태자 | 대한제국 | |
이승응 | 완평군 | 대한제국 | [32] |
민영환 | 육군부장, 충정공 | 대한제국 | [34] |
조병세 | 특진관, 충정공 | 대한제국 | [35] |
이강 | 의친왕 | 대한제국 | [36] |
이재면 | 완흥군 | 대한제국 | [43] |
윤택영 | 해풍부원군 | 대한제국 | [43] |
이재완 | 완순군 | 대한제국 | [43] |
민병석 | 궁내부대신 | 대한제국 | [45] |
이완용 | 내각총리대신 | 대한제국 | [45] |
이재각 | 의양군 | 대한제국 | [46] |
이준용 | 영선군 | 대한제국 | [46] |
4. 2. 대한제국 관료
연도 | 날짜 | 이름 | 직책·작위 | 국적 | 출처 |
---|---|---|---|---|---|
1904년 | 9월 16일 | 이승응 | 완평군 | 대한제국 | [32] |
1905년 | 12월 1일 | 민영환 | 육군부장, 충정공 | 대한제국 | [34] |
1905년 | 12월 2일 | 조병세 | 특진관, 충정공 | 대한제국 | [35] |
1906년 | 4월 9일 | 이강 | 의친왕 | 대한제국 | [36] |
1909년 | 9월 22일 | 이재면 | 완흥군 | 대한제국 | [43] |
윤택영 | 해풍부원군 | 대한제국 | |||
이재완 | 완순군 | 대한제국 | |||
1910년 | 8월 26일 | 민병석 | 궁내부 대신 | 대한제국 | [45] |
이완용 | 내각총리대신 | 대한제국 | |||
8월 27일 | 이재각 | 의양군 | 대한제국 | [46] | |
이준용 | 영선군 | 대한제국 |
4. 3. 외국인
연도 | 날짜 | 초상 | 이름 | 역직 등 | 국적 | 출처 |
---|---|---|---|---|---|---|
1904년 | 3월 20일 | ![]() |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 | 왕족 | 독일 제국 | [9] |
1904년 | 3월 24일 | -- | 이토 히로부미 | 추밀원 의장 | 대일본 제국 | [10] |
1905년 | 5월 23일 | -- |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왕 | 황족 | 대일본 제국 | [12] |
1907년 | 2월 27일 | 레오폴트 클레멘스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 대공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16] | |
1907년 | 8월 27일 | -- | 하세가와 요시미치 | 육군 대장 | 대일본 제국 | [17] |
1907년 | 10월 18일 | ![]() | 아리스가와노미야 다케히토 친왕 | 친왕 | 대일본 제국 | [18] |
![]() | 가쓰라 다로 | 육군 대장 | 대일본 제국 | [18] | ||
![]() | 도고 헤이하치로 | 해군 대장 | 대일본 제국 | [18] | ||
1908년 | 1월 29일 | ![]() | 야마가타 아리토모 | 추밀원 의장, 육군 대장 | 대일본 제국 | [19] |
![]() | 사이온지 긴모치 | 내각총리대신 | 대일본 제국 | [19] | ||
1908년 | 5월 11일 | ![]() | 다케다노미야 쓰네히사 왕 | 황족 | 대일본 제국 | [20] |
1909년 | 7월 21일 | ![]() |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왕 | 황족 | 대일본 제국 | [21] |
1910년 | 4월 16일 | ![]() |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왕 | 황족 | 대일본 제국 | [23]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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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민영환에게 대훈위 금척 대수훈장을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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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29]
harvp
1999
[30]
웹인용
독일 헨리 친왕에게 대훈위를 주고 금척대수훈을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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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2016-02-2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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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 일본 특파 대사와 수원들에게 모두 훈을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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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2016-02-25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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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응에게 금척 훈장을 수여하고, 윤용선에게 이화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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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2016-02-25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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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특파 대사 히즈야스왕에게 금척 대수훈장을 수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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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2016-02-25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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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민영환에게 대훈위 금척 대수훈장을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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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2016-02-25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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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조병세에게 대훈위 금척 대수훈장을 내려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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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2016-02-25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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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 이강에게 대훈위 금척 대수 훈장을 수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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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2016-02-25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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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외국인에게 훈장을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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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2016-02-25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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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특파 대사 일행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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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2016-02-25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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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황태자 사절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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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2016-02-25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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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밀원 의장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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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2016-02-25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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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다케다노미야 쓰네히사오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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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2016-02-25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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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오에게 대훈위를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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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2015-04-05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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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면, 윤택영, 이재완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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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2016-02-25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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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카노미야 하토히코오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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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2016-02-25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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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석, 이완용, 고영희 등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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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2016-02-25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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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각, 이준용, 이해창 등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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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201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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