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야마 요시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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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야마 요시아키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며 활약했다. 덴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 야구팀인 구라레 오카야마에서 활동하다가, 1969년 드래프트 6순위로 야쿠르트 아톰스에 입단했다. 야쿠르트, 롯데 오리온스, 난카이 호크스를 거치며 선수 생활을 했으며, 1971년에는 투수로서, 1975년에는 타자로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1971년에는 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수행하며 1번 타자로 선발 출전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난카이에서 전력 분석원 겸 비디오 담당으로 활동했으며, 1991년 4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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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마 요시아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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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선수명 | 외야마 요시아키 |
원어명 | Yoshiaki Toyama |
로마자 표기 | Toyama Yoshiaki |
국적 | 일본 |
출생지 | 나라현 고조시 |
생년월일 | 1947년 7월 30일 |
사망일 | 1991년 9월 1일 |
신장 | 171 |
체중 | 75 |
수비 위치 | 투수, 외야수 |
투구 | 좌 |
타석 | 좌 |
선수 경력 | |
프로 입단 연도 | 1969년 |
드래프트 순위 | 6순위 |
첫 출장 | 1970년 4월 15일 |
마지막 경기 | 1978년 9월 17일 |
소속 구단 | 쿠라레 오카야마 야쿠르트 아톰스 (1970 ~ 1971) 롯데 오리온스 (1972 ~ 1973) 난카이 호크스 (1974 ~ 1978) |
기타 정보 | |
고등학교 | 천리 고등학교 |
사회인 야구 | 클라레 오카야마 |
2. 선수 경력 이전
텐리 고교에서는 2학년 때인 1964년 여름 고시엔 현 예선 결승에서 고조 고를 꺾고 키와 대회에 진출했다. 그러나 하이난 고의 에이스 야마시타 요시노리에게 막혀 패배했다.[1] 3학년 때인 1965년 여름에는 현 예선 결승에서 시라타키 마사타카를 보유한 고리야마 고를 2-0으로 꺾고, 이어진 키와 대회에서는 준결승에서 고세 공을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결승에서도 현 와카야마 상업을 3-1로 꺾고 고시엔에 출장했다. 1회전에서 마루코 실업의 코야마 겐지(일본 콜롬비아)와 맞붙었지만, 9회에 역전당해 3-1로 패배했다[1]。
고교 동기에는 4번 타자인 몬다 히로미쓰가 있었으며, 졸업 후 몬다와 함께 구라레 오카야마에 입사했다(당초에는 도쿄 6대학 야구 연맹의 와세다 대학 진학을 희망했지만 불합격되어 입사했다[2]。 동기 입사자인 도쿠쓰 다카히로도 비슷한 경위로 입사했다.). 1966년부터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4년 연속 출전[3]。 그 사이, 1967년에 히로시마 카프에서 드래프트 지명을 받았지만 입단을 거부했다. 1968년의 도시 대항에서는 1회전에서 처음 선발로 발탁되었다. 일본 석유의 에이스 미우라 겐지와 맞붙었지만, 초반에 대량 실점을 하여 패배했다[3]。
2. 1. 고등학교 시절
도야마 요시아키는 덴리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64년, 하계 나라현 예선 결승에서 고조 고등학교를 꺾고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기와 대회에 진출했으나, 야마시타 게이토쿠를 앞세운 가이난 고등학교에 패했다.[1] 3학년 때인 1965년에는 하계 나라현 예선 결승에서 시라타키 마사타카를 앞세운 고리야마 고등학교를 꺾고 기와 대회 준결승에서 고세 공업고등학교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 결승에서 와카야마 상업고등학교를 꺾고 고시엔 대회에 진출했다.[1] 고시엔 대회 1차전에서 마루코 실업고등학교의 고야마 겐지와 투수전을 벌였지만 9회에 역전당하여 패했다.[1] 고교 동기로는 4번 타자로 활약했던 가도타 히로미쓰가 있다.2. 2. 사회인 야구 시절
도야마 요시아키는 텐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도타 히로미쓰와 함께 구라레 오카야마에 입사했다.[2] 1966년부터 4년 연속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했으며[3], 1967년에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부터 드래프트 지명을 받았지만 입단을 거부했다.[3] 1968년 제39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 1회전에서 일본 석유의 에이스 미우라 겐지와 맞붙었지만, 초반에 대량 실점하여 패했다.[3]3. 프로 선수 경력
도야마 요시아키는 1969년 드래프트 6순위로 아톰즈에 입단했다.[3] 1970년, 프로 첫 시즌에는 스리쿼터 투구폼으로 슬라이더, 커브, 슈트를 주무기로 4승 10패를 기록했다. 1971년, 미하라 오사무 감독의 의향으로 투타 겸업을 시작, 투수로서는 5승 11패, 타자로서는 타율 0.211, 3홈런을 기록했다. 외야수로도 21경기에 출전했다.[4][5]
1971년 8월 22일, 다이요전(진구)에서 '1번 타자 겸 투수'로 선발 출전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는 "투수의 타순은 9번"이라는 고정 관념을 깬 미하라 감독의 기습적인 작전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45년 후인 2016년 7월 3일 니혼햄의 오타니 쇼헤이가 나올 때까지 없었다.[4][5]
1972년, 알토 로페스와의 맞트레이드로 롯데 오리온스로 이적했지만, 롯데에서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4][5]
도야마는 1974년 난카이 호크스로 이적했다.[3] 1975년에는 타자에 전념하여 대타로 활약했고, 시즌 후반에는 우익수, 지명타자로 29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1977년 8월 중순부터 좌익수로 선발 기용되어 타율 0.301을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3] 그러나 이후 출전 기회가 줄어들면서 1978년에 현역에서 은퇴했다.[3]
3. 1.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절 (1970~1971)
도야마 요시아키는 1969년 드래프트 6순위로 아톰즈에 입단했다.[3] 1970년, 프로 첫 시즌에는 스리쿼터 투구폼으로 슬라이더, 커브, 슈트를 주무기로 4승 10패를 기록했다. 1971년, 미하라 오사무 감독의 의향으로 투타 겸업을 시작, 투수로서는 5승 11패, 타자로서는 타율 0.211, 3홈런을 기록했다. 외야수로도 21경기에 출전했다.[4][5]1971년 8월 22일, 다이요전(진구)에서 '1번 타자 겸 투수'로 선발 출전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는 "투수의 타순은 9번"이라는 고정 관념을 깬 미하라 감독의 기습적인 작전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45년 후인 2016년 7월 3일 니혼햄의 오타니 쇼헤이가 나올 때까지 없었다.[4][5]
3. 2.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 (1972~1973)
1972년, 알토 로페스와의 맞트레이드로 롯데 오리온스로 이적했지만, 롯데에서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4][5]3. 3.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1974~1978)
도야마 요시아키는 1974년 난카이 호크스로 이적했다.[3] 1975년에는 타자에 전념하여 대타로 활약했고, 시즌 후반에는 우익수, 지명타자로 29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1977년 8월 중순부터 좌익수로 선발 기용되어 타율 0.301을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3] 그러나 이후 출전 기회가 줄어들면서 1978년에 현역에서 은퇴했다.[3]4. 은퇴 이후
은퇴 후에도 난카이에 잔류하여 전력분석원 겸 비디오 담당을 맡았다.[6] 1991년 9월 1일에 향년 4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6]
5. 상세 정보
5. 1. 출신 학교
- 덴리 고등학교
5. 2. 선수 경력
도야마 요시아키는 쿠라레 오카야마를 거쳐 야쿠르트 아톰스(1970년 ~ 1971년), 롯데 오리온스(1972년 ~ 1973년), 난카이 호크스(1974년 ~ 1978년)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5. 3. 등번호
도야마 요시아키는 1970년부터 1973년까지 등번호 12번을 사용했고, 1974년에는 17번, 1975년부터 1978년까지는 29번을 사용했다.5. 4. 연도별 투수 성적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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