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항공모함 그라프 체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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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라프 체펠린은 나치 독일이 건조하려 했던 항공모함으로, 1936년 기공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건조가 중단되었다. 독일 해군의 항공모함 운용 경험 부족으로 일본 해군으로부터 기술 협력을 받아 설계를 진행했으며, 85% 정도 완성되었으나 전쟁 상황 변화로 건조가 중단되었다. 1945년 소련군에 의해 노획될 것을 우려하여 자침되었고, 이후 인양되어 시험 표적으로 사용된 후 침몰했다. 2006년 폴란드 해역에서 난파선이 발견되었으며,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 등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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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항공모함 그라프 체펠린 - [배(Ship)]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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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함명 | 그라프 체펠린 |
함명 유래 | 체펠린 백작 |
소속 국가 | 독일 |
기공 | 1936년 12월 28일 |
진수 | 1938년 12월 8일 |
침몰 | 1947년 8월 16일 (표적함으로 침몰) |
자침 | 1945년 4월 25일 |
제원 | |
함급 |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 |
배수량 | 33,550 톤 (만재) |
길이 | 262.5 미터 |
폭 | 36.2 미터 |
흘수 | 8.5 미터 |
동력 | 기어드 터빈 4기 |
출력 | 200,000 마력 |
속력 | 33.8 노트 |
항속 거리 | 19노트에서 8,000 해리 |
승조원 | 1,720명 |
장갑 | 갑판: 60mm 비행 갑판: 45mm 측면: 100mm |
무장 | |
주포 | 15 cm SK C/28 함포 16문 |
대공포 | 10.5 cm SK C/33 함포 12문 3.7 cm SK C/30 기관포 22문 2 cm Flak 30/38/Flakvierling 기관포 28문 |
탑재 항공기 | |
계획 | 42대 |
1930년 제안 | 전투기 30대, 급강하 폭격기 12대 |
1939년 제안 | 전투기 12대, 급강하 폭격기 30대 |
건조 정보 | |
조선소 | 도이체 베르케, 킬 조선소 |
기공일 | 1936년 12월 28일 |
진수일 | 1938년 12월 8일 |
건조 중단 | 1940년 6월 |
건조 취소 | 1943년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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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계획 및 제작
1935년,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해군 증강 계획의 일환으로 항공모함 건조 계획을 발표했다. 같은 해 6월 18일 체결된 영독 해군 협정은 독일이 총 약 39117809.50kg 범위 내에서 항공모함을 보유하는 것을 허용했으며, 이는 약 19,000톤급 항공모함 2척을 건조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독일 해군은 항공모함 건조 및 운용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1935년 대일본제국 해군에 기술 협력을 요청했다. 일본 해군은 항공모함 "아카기"의 설계 도면 일부와 운용 노하우를 제공하고 독일 기술진의 시찰을 허용했다. 이에 대한 답례로 독일은 항공기 설계, 군함 방어 갑판, 화약 기술 등을 일본에 제공했으며, 이는 이후 일본의 99식 함상 폭격기 개발과 야마토형 전함 건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27]. 이러한 기술 교류 및 설계 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설계 섹션에서 다룬다.
독일 해군의 첫 항공모함은 '플루크조이크트레거 아'(Flugzeugträger A|플루크초이크트레거 아de, 항공모함 A)라는 가칭으로 1936년 12월 28일 킬의 도이체 베르케 조선소에서 기공되었다. 독일 해군은 진수되지 않은 함선에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 정책을 가지고 있었기에, 1938년 12월 8일 진수식에서야 체펠린 백작의 이름을 따 '그라프 체펠린'으로 공식 명명되었다. 진수되지 못한 두 번째 항공모함 계획함은 '플루크조이크트레거 B'(Flugzeugträger B|플루크초이크트레거 베de)라는 이름만 남게 되었다.
1938년, 해군 총사령관 에리히 레더 제독은 1945년까지 4척의 항공모함 건조를 포함하는 야심찬 해군력 증강 계획인 'Z 계획'을 발표했으나, 1939년 항공모함 건조 계획은 2척으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항공모함 건조는 순탄치 않았다. 히틀러의 관심은 점차 줄어들었고, 루프트바페 총사령관 헤르만 괴링은 해군 항공대 창설이 자신의 권한을 침해한다고 여겨 방해 공작을 펼쳤다. 또한 레더 제독은 잠수함 전력을 중시하는 칼 되니츠와도 내부적으로 대립했다.
결국 자매함 '플루크조이크트레거 B'는 1940년 건조가 중단되었고, 그라프 체펠린 역시 인력 및 자재 부족, 함재기 확보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같은 해 건조가 일시 중단되었다. 1942년 해전에서 항공모함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건조가 재개되었으나, 여러 기술적 문제와 개조 요구 사항으로 인해 지연되었다.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큰 피해를 입은 일본 해군이 그라프 체펠린 구매를 타진했지만, 독일 측은 회항의 어려움을 이유로 거절했다[29]. 건조 중단과 재개, 최종 중단에 이르는 과정은 #건조 중단과 재개 섹션에서 상세히 설명한다.
1943년 1월, 해상 함대의 성과에 실망한 히틀러는 대형함 건조 중지 명령을 내렸고, 레더 제독은 해임되어 되니츠 제독이 후임 총사령관이 되었다. 이로써 90% 이상 완성되었던 그라프 체펠린의 건조는 완전히 중단되었다. 함선에 장착될 예정이었던 무장들은 노르웨이의 해안 포대로 전용되었고, 선체는 목재 저장고로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4월 25일, 소련군이 슈체친(Stettin)으로 진격해오자 독일군은 그라프 체펠린을 자침시켰다.
연도 | 날짜 | 주요 사건 |
---|---|---|
1935년 | 아돌프 히틀러, 항공모함 건조 발표. 독일 해군, 대일본제국 해군에 기술 협력 요청. | |
1935년 | 1월 말 | 주일본 독일 대사관 해군 무관 파울 베네커, 아카기 견학. |
1935년 | 6월 18일 | 영독 해군 협정 체결, 항공모함 건조 할당량 확보. |
1935년 | 9월~12월 | 독일 조사단 방일, 일본 해군으로부터 항공모함 기술 및 운용 노하우 전수받음. 독일은 답례로 자국 기술 제공. |
1936년 | 12월 28일 | 플루크조이크트레거 아(Flugzeugträger A) 킬의 도이체 베르케 조선소에서 기공. |
1938년 | 에리히 레더 제독, Z 계획 발표 (초기 항모 4척 계획). | |
1938년 | 12월 8일 | 그라프 체펠린으로 명명 및 진수식 거행. |
1939년 | 레더 제독, Z 계획 수정 (항모 2척으로 축소). | |
1940년 | 4월~6월 | 자매함 플루크조이크트레거 B(Flugzeugträger B) 건조 중단. 그라프 체펠린 건조 일시 중단 결정. |
1942년 | 5월 13일 | 히틀러, 그라프 체펠린 건조 재개 승인. |
1942년 | 6월 | 미드웨이 해전 이후 일본 해군, 그라프 체펠린 구매 타진했으나 독일 측이 거절[29]. |
1943년 | 1월 30일 | 히틀러의 대형함 건조 중지 명령으로 공사 최종 중단. |
1945년 | 4월 25일 | 슈체친(Stettin)에서 소련군의 접수를 막기 위해 자침. |
2. 1. 설계

독일 해군은 항공모함 건조 및 운용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1935년 대일본제국 해군에 기술 협력을 요청했다. 당시 일본 해군은 항공모함 "아카기"의 설계도면과 훈련 방법 등 운용 노하우를 제공했으며, 독일 기술자 및 장교의 시찰을 허용했다. 이에 대한 답례로 독일은 항공기 설계, 군함의 방어 갑판, 화약 등 자국의 기술 정보를 일본 측에 제공했는데, 이는 99식 함상 폭격기 개발과 야마토형 전함 건조용 기계 및 기술 확보에 영향을 미쳤다[27].
설계 과정에서는 영국 해군의 순양전함을 개조한 항공모함 "퓨리어스" (HMS Furious|HMS 퓨리어스eng)와 일본의 항공모함 "아카기"가 참고되었다. "아카기"의 설계 중 실제 반영된 부분은 함상기 승강용 중앙 엘리베이터와 대함포를 다수 탑재하는 초기 항공모함의 설계 사상이었다. 그러나 "아카기"는 본래 아마기형 순양전함으로 건조되다가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의 영향으로 항공모함으로 개조된 함선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항공모함으로 설계하는 데 참고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당시 다른 열강이 보유한 대형 항공모함들 역시 전함이나 순양전함에서 개조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이유로 "그라프 체펠린은 아카기의 복사본"이라는 주장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독일 기술진이 일본 방문을 통해 얻은 주요 성과는 운용 기술, 훈련법, 함재기 관련 정보, 개선점 등 항공모함 운용 전반에 걸친 노하우였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독일 설계자들은 일본 설계를 연구하는 한편, 북해의 작전 환경을 고려하여 독자적인 설계를 반영했다. 예를 들어, 통상 공격 임무 수행 및 영국 순양함에 대응할 목적으로 여러 문의 순양함급 함포 탑재를 계획했는데, 이는 기동부대 자체의 방어력 강화에 중점을 둔 것으로, 순양함이 함대 화력을 보조하는 역할을 했던 미국이나 일본의 항공모함 설계 사상과는 차이가 있었다. 또한, 증기 구동 캐터펄트와 같은 당시의 선진 기술을 적용하는 데 기술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항목 | 내용 |
---|---|
전장 | 262.5m |
선폭 | 36.2m |
최대 흘수 | 8.5m |
기준 배수량 | 19,250톤 (공개), 23,140톤 (실제) |
만재 배수량 | 약 34088376.85kg (예상) |
추진 시스템 | 16 × 유류식 초고압 라몬트 보일러, 4 × 브라운, 보베리 & 치 기어 터빈 |
출력 | 200000shp (150MW) |
최고 속도 | 33.8kn |
항속 거리 | 8000nmi (19kn 순항 시) |
승무원 | 1,760명 (장교 및 사병) + 비행 승무원[2] |
함선의 주 공격력은 함재기에서 나올 예정이었다. 초기 계획과 이후 변경된 탑재기 구성은 다음과 같다.
구분 | 융커스 Ju 87 "슈투카" 급강하 폭격기 | 메서슈미트 Bf 109 전투기 | 피젤러 Fi 167 어뢰 폭격기 | 합계 |
---|---|---|---|---|
초기 계획[3] | 12대 (Ju 87C) | 10대 (Bf 109T) | 20대 | 42대 |
변경 계획 | 30대 (Ju 87C) | 12대 (Bf 109T) | - | 42대 |
수상함과의 교전을 대비한 함포 무장과 대공 무장 계획 역시 건조 과정에서 변경되었다.
구분 | 초기 계획 | 변경 계획 |
---|---|---|
15 cm SK C/28 함포 | 8문 | 16문 |
10.5 cm SK C/33 함포 | 10문 | 12문 |
3.7 cm SK C/30 함포 | 22문 | 22문 |
2 cm 함포 | 28문 | 28문 |
함체 방어를 위한 장갑 설계는 다음과 같다.
- 비행 갑판: 최대 45mm 두께의 ''보탄 바이크'' 강철 장갑[4]
- 주요 부분 보호 장갑 갑판: 비행 갑판 아래에 60mm 두께의 장갑 갑판 설치
- 중앙부 방어 구획 (Citadel): 100mm 두께의 장갑[2]
2. 2. 건조 중단과 재개
1940년 4월, 독일이 노르웨이를 정복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노르웨이의 긴 해안선과 항만 시설을 방어하기 위해 수많은 해안포와 대공포대가 시급히 필요해졌다.[10] 이로 인해 연안 방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항공모함 건조의 우선순위는 낮아졌다. 1940년 4월 28일, 해군 총사령관 에리히 레더 제독은 아돌프 히틀러와의 회의에서 그라프 체펠린의 건조 중단을 제안했다. 레더는 항공모함이 1940년 말까지 취역하더라도, 사격 통제 시스템이 소련에 판매된 상태라[10] 포를 최종 설치하는 데 10개월 이상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히틀러는 이에 동의했고, 레더는 그라프 체펠린의 15cm 함포를 제거하여 노르웨이의 해안 포대로 이전하도록 승인받았다.[11] 12문의 10.5cm 대공포 역시 이미 다른 용도로 전환된 상태였다.[11] 건조 중단 결정 이후, 완성률이 90%에 달했던일본어 위키백과 해당 문서에서는 9할 정도로 표기하고 있으나,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1939년 말 85% 완성, 1940년 중반 완공 예정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라프 체펠린의 장비 설치 공사는 중단되었다.1940년 7월, 그라프 체펠린은 킬에서 고텐하펜(현재 폴란드 그디니아)으로 예인되어 약 1년간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선체는 독일 해군의 경목(나무) 저장 창고로 사용되었다.[12]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기 직전에는 소련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슈테틴(현재 폴란드 슈체친)으로 다시 옮겨졌다. 그해 11월, 독일군이 러시아 영토 깊숙이 진격하여 공습 위협이 줄어들자 그라프 체펠린은 다시 고텐하펜으로 돌아와 목재 저장선으로 사용되었다.[13]
1942년 4월, 레더 제독은 히틀러와의 회의에서 다시 항공모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40년 11월 타란토에서 영국 항공모함이 이탈리아 함대를 무력화시킨 사례, 1941년 5월 비스마르크 격침에 영국 항공모함이 기여한 점, 1942년 3월 티르피츠의 소련행 호송대 공격을 저지한 점, 그리고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 등 현대 해전에서 항공모함의 결정적인 역할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레더는 그라프 체펠린을 약 1년 안에 완공하고, 추가로 6개월간의 해상 시험 및 비행 훈련을 거쳐 실전에 투입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1942년 5월 13일, 히틀러는 건조 재개를 승인했고, 독일 해군 최고 사령부는 작업을 다시 시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14]
하지만 건조 재개에는 여러 기술적 문제가 따랐다. 레더는 항공모함용으로 특별히 설계된 신형 함재기를 원했지만, 루프트바페 총사령관 헤르만 괴링은 독일 항공기 산업의 부담을 이유로 1946년 이전에 신형기 개발 및 양산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대신 기존의 융커스 Ju 87과 메서슈미트 Bf 109를 개조하여 임시로 사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14] 개조된 함재기는 기존 육상형보다 무거웠기 때문에, 그라프 체펠린의 캐터펄트 현대화, 착함 장치용 윈치 강화, 비행 갑판 및 격납고 바닥 보강 등이 필요했다.[15] 또한, 공중 탐색 레이더 설치, 무선 장비 개선, 장갑 강화, 연기 배출 개선을 위한 굴뚝 캡 변경, 대공 무장 강화(20mm 단장 기관포를 4연장 Flakvierling 38|플라크피어링 38de로 교체), 선체 벌지 추가 등 다양한 개조가 요구되었다.[16] 독일 해군 참모는 이러한 개조 작업을 1943년 4월까지 완료하고, 같은 해 8월에 첫 해상 시험을 시작하여 1943-1944년 겨울까지 전투 준비를 마칠 수 있기를 희망했다.[14]
한편,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정규 항공모함 4척(아카기 포함)을 잃은 일본 해군은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그라프 체펠린의 구매를 타진했다. 그러나 독일 해군은 극동까지 회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29] 대신 고베항에 있던 독일 상선 샤른호르스트를 일본에 매각했고, 이 배는 항공모함 신요로 개조되었다.[29]
그라프 체펠린의 건조는 계속 지연되었고, 1942년 8월 27-28일 밤에는 고텐하펜에 정박 중이던 그라프 체펠린을 목표로 영국 공군의 공습이 있었으나, 안개로 인해 명중시키지는 못했다.[17][18]
결국 1943년 1월 말, 해상 함대의 부진한 성과에 실망한 히틀러는 모든 대형함의 건조를 중단하고 해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19][20] 레더 제독은 곧 해임되었고, 잠수함 함대 사령관이었던 카를 되니츠가 후임 해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되니츠는 히틀러를 설득하여 명령의 일부를 철회시켰지만, 그라프 체펠린을 포함한 건조 중이던 모든 수상함 작업은 중단되었다.[19][20] 1943년 1월 30일, 그라프 체펠린에 대한 모든 주요 작업이 공식적으로 중단되었고, 3월까지 일부 제한적인 작업만 진행되었다.[12] 이로써 그라프 체펠린의 건조는 최종적으로 중단되었다.
3. 자침과 인양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이 항복하면서, 수십 년간 ''그라프 체펠린''의 정확한 행방은 소련 외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연합국 3국 위원회는 ''그라프 체펠린''을 파괴가 예정된 함선이 포함된 "C 그룹"으로 분류하여 소련 해군에 할당했다. 이 분류 규정에 따라 선박은 1946년 8월 15일까지 심해에서 파괴되거나 침몰해야 했으나,[23] 소련은 손상된 선박을 인양하기로 결정했고, 1946년 3월 다시 물에 띄웠다.
이후 ''그라프 체펠린''은 독일 조선소에서 수리되었고, 1947년 2월 3일에는 함종을 해상 기지(Плавучая база|플라부차야 바자rus)로 변경하고, 함명도 '''PB-101'''(ПБ-101rus)로 개명했다. PB-101은 군사 조선 과학 연구소의 관리하에 놓였다.
소련 기록에 따르면, 1947년 3월 19일 각료 회의는 옛 독일 선박들의 파괴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1947년 8월 14일 PB-101은 시비노우이시체 항구로 예인되었고, 이틀 뒤인 8월 16일 최종 시험 해역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PB-101은 폭격 및 포격 시험의 표적이 되었다. 180mm 포탄과 FAB 시리즈 폭탄(FAB-100, FAB-250, FAB-500, FAB-1000)을 이용한 다섯 차례의 통제된 폭파 시험이 진행되었다. 이 시험들은 배기 굴뚝 폭파, 비행 갑판 위 폭파, 갑판 관통 폭파 등을 모의했으나 PB-101은 침몰하지 않고 계속 떠 있었다.[24]
결국 유리 랄 제독은 어뢰 공격을 지시했다. Elco PT 보트에서 발사된 어뢰는 어뢰 방어 벌지에 막혔다. 이후 1947년 8월 17일, 구축함 슬라브니에서 발사된 어뢰가 선수 항공기 엘리베이터 아래의 방어되지 않은 선체 구역을 타격했다. 이 공격으로 PB-101은 25분 만에 침몰했다.[24] 일설에는 어뢰정 TK-420도 공격에 가담했다고 한다.[30]
수십 년간 정확한 침몰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6년 7월 12일 폴란드 석유 회사가 웨바 항구 인근 해역에서 길이 265m의 침몰 선체를 발견했다. 같은 해 7월 26일 폴란드 탐사선의 조사가 있었고, 다음 날 폴란드 해군은 이 선체가 ''그라프 체펠린''임을 공식 확인했다.
4. 전후 발견
소련은 항공모함을 수리하여 1946년 3월에 다시 띄웠다. 이후 소련의 연습 표적으로 사용되어 침몰했다는 주장이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난파선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2006년 7월 12일, 폴란드 석유 회사 페트로발틱(Petrobaltic) 소속 연구 선박 St. Barbara호가 브와디스와보보 북쪽 55km 지점에서 265m 길이의 난파선을 발견했는데, 이는 거의 ''그라프 체펠린''일 것으로 추정했다. 난파선은 수면 아래 80m 이상의 깊이에 잠겨 있다. 난파선이 발견된 후, 폴란드 해군은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이틀간 잔해 조사를 시작했다. 원격 제어 수중 로봇을 사용하여, 그들은 "99% 확신"을 갖고 그것이 ''그라프 체펠린''이라고 결론 내렸다.[25][26]
5. 함선 목록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은 총 2척이 계획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건조가 진행된 것은 1번함인 그라프 체펠린 뿐이었고, 2번함은 완성되지 못했다.
- '''그라프 체펠린''': 처음에는 '항공모함 A'(Flugzeugträger A|플루크초이크트레거 아de)라는 이름으로 건조가 시작되었으며, 1938년 진수식 때 그라프 체펠린으로 명명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건조가 중단되었고, 종전 직전인 1945년 4월 25일, 슈체친(당시 슈테틴)의 얕은 물에 침몰되었다.
- '''항공모함 B'''(Flugzeugträger B|플루크초이크트레거 베de): 2번함으로 계획되었으나, 독일 해군의 정책에 따라 진수되지 않아 정식 함명이 부여되지 않았다. 통상 '항공모함 B'로 불렸으며, 페터 슈트라서라는 이름이 예정 함명이었다는 설도 있다. 1940년 건조가 중단되어 실제로 완성되지 못했다.
6. 대중문화 속의 그라프 체펠린
'''애니메이션/만화'''
- 『지팡구』: 제11권에 등장한다. 소가 타쿠미의 특명을 받은 츠다 카즈마(가명 타나카 에이이치)와 일본 견독단이 이 항공모함의 식전에서 히틀러와 면담할 예정이었으나, 반히틀러파 독일 장교의 폭탄 암살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혼란이 발생하면서 케르슈타인하우스에서의 대담으로 변경되었다.
- 『종말의 이제타』: 작중 적인 게르마니아 제국의 항공모함으로, 그라프 체펠린과 유사한 '드라헨펠스'가 등장한다.
'''소설'''
- 『감벽의 함대』: 후세 세계에서 완성된 독일 제3제국의 항공모함 중 하나로 등장하며, OVA판에도 나온다.
- 『레드 선 블랙 크로스』: 독일 해군의 항공모함 중 하나로 등장한다. 제3차 세계 대전에서 주로 인도양에서의 통상 파괴 작전을 수행한다.
'''게임'''
- 『아즈르 레인』: 2017년 12월 말 이벤트에서 처음 등장한 철혈 진영 소속 항공모함이다. 성우는 카야노 아이이며, 중국판에서는 2022년 7월 28일부터 우치야마 유미가 담당했다.
- 『어비스 호라이즌』: 성우는 카쿠마 아이이다.
- 『벨벳 코드』: 올가 제국 소속의 항공모함으로 등장하며, 성우는 신도 케이이다.
- 『칸코레 - 칸타이 컬렉션 -』: 2015년 11월 이벤트에서 등장했다. Graf Zeppelin|그라프 체펠린de으로 표기되며, 성우는 하야미 사오리, 일러스트는 시마다 후미카네가 맡았다.
- 『최종 전함 with 러블리 걸즈』: 성우는 일본판 아오키 마리코, 중국판 사토 아미이다.
- 『스트라이커즈 1945 II』: 제2차 세계 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한 슈팅 게임이다. 해상 스테이지의 보스로 등장하는데, 실제 함선에는 없는 포탑이 추가되어 항공전함에 가까운 전투력을 보여준다. 함교를 파괴하면 로봇으로 변형하는 등 SF적인 각색이 이루어졌다.
- 『전함소녀 R』: 개조를 통해 장갑 항공모함으로 함종을 변경할 수 있다.
- 『소닉 윙즈 3』: 슈팅 게임으로, 독일 군항 스테이지의 보스로 등장한다. 함재기로 트리프플뤼겔이나 여러 대의 전차를 함교 내부에 수납하고 있다.
- 『창람의 맹세 블루 오스』: 2020년 12월 이벤트에 등장한 호박 진영 소속 항공모함이다. 성우는 모리나가 치토세이다.
- 『퍼즐 걸즈』: 성우는 야마다 마리나이다.
- 『블랙 서지 나이트』: 흑봉중공 소속의 항공모함으로 등장하며, 성우는 우치다 마아야이다.
- 『월드 오브 워쉽』: PC 버전에서는 8티어, 모바일 버전(Blitz)에서는 7티어 독일 프리미엄 항공모함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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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chive.i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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