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리 니시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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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우리 니시넨은 핀란드 공군의 에이스 전투기 조종사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여러 전투에서 활약했다. 요엔수에서 태어나 핀란드 방위군에 징집된 니시넨은 1938년 비행부사관 훈련을 받고, 겨울전쟁과 계속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여러 차례 공중전에서 승리하여 만네르헤임 십자장을 수훈했으며, 최종 격추수 32.33기를 기록했다. 1944년 6월 17일, 소련군과의 교전 중 사망했으며, 묘소는 발케알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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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리 니시넨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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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라우리 니시넨 |
본명 | Lauri Vilhelm Nissinen |
출생일 | 1918년 7월 31일 |
출생지 | 요엔수 |
사망일 | 1944년 6월 17일 |
사망지 | 카우컈르비 |
![]() | |
군사 경력 | |
소속 | 핀란드 공군 |
복무 기간 | 1939년–1944년 |
최종 계급 | # (원문 템플릿, 정보 추출 필요) 핀란드 공군 중위 |
근무 부대 | 제24비행대대 |
참전 전투 | 제2차 세계 대전 겨울전쟁 계속전쟁 |
훈장 | |
서훈 | 만네르헤임 십자장 |
2. 생애
라우리 빌헬름 니시넨(Lauri Vilhelm Nissinenfi)은 1918년 7월 31일 요엔수에서 태어난 핀란드의 공군 전투기 조종사이자 격추 에이스이다. 의무 군 복무 중 공군에 매력을 느껴 조종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 1938년 부사관 조종사 훈련을 받고 1939년 5월 제24비행대대에 배치되어 포커 D.XXI 전투기를 조종했다.
겨울전쟁이 발발하자 참전하여 투폴레프 SB-2 폭격기 격추를 포함, 총 4기의 격추 기록을 세웠다. 전쟁 후 제24비행대대가 미제 브루스터 버팔로 전투기로 기종을 전환하면서 니시넨도 버팔로 조종사가 되었다.
1941년 계속전쟁이 시작되자 다시 전투에 참여하여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특히 정면 공격으로 적기를 격추하는 등 용맹함을 보였으며, 1941년 말까지 15.5기의 격추 기록으로 일마리 유틸라이넨에 이어 핀란드 공군 2위 에이스가 되었다. 1942년에는 핀란드 최고 무공훈장인 만네르헤임 십자장을 수훈했다(수훈 번호 69, 당시 계급은 Vänrikki|벤리키fi).[2]
1942년 초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43년 6월 소위로 임관했으며, 다시 제24비행대대로 복귀하여 비행대장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1944년 봄부터는 독일제 메서슈미트 Bf 109 전투기로 기종을 전환하여 계속해서 전과를 올렸다.
1944년 6월 17일, 카우컈르비 상공에서 소련군 일류신 Il-2 공격기를 요격하던 중, 동료 조종사의 기체와 공중 충돌하는 비극적인 사고로 전사했다.
니시넨은 약 300회의 전투 임무를 수행하며 총 32.33기의 적기를 격추한 것으로 기록되었다.[3] 그의 유해는 발케알라 묘지에 안장되었다.
2. 1. 초기 생애 및 군 복무
라우리 빌헬름 니시넨은 1918년 7월 31일 요엔수에서 태어났다. 의무 군 복무를 위해 핀란드 방위군에 징집된 그는 공군에 복무하기로 결심하고 1938년 부사관 조종사 훈련에 지원했다. 훈련 중 뛰어난 성적을 인정받아 1939년 5월 포커 D.XXI를 운용하는 제24비행대대(HLeLv 24)에 배치되었고, 같은 해 여름 상사로 진급했다.겨울전쟁이 발발하자 니시넨 상사는 1939년 12월 1일(또는 2일) 비푸리 상공에서 첫 공중전을 치러 소련군의 투폴레프 SB-2 폭격기 1대를 격추하고 2대에 손상을 입혔다고 보고했다. 겨울전쟁 기간 동안 총 4번의 공중전 승리를 기록했으며, 주임상사로 진급했다.
겨울전쟁 이후 제24비행대대는 미국제 브루스터 버팔로 전투기로 기종을 전환했다. 1941년 6월 25일 계속전쟁이 시작되자 니시넨은 다시 버팔로를 타고 전투에 나섰다. 1941년 7월 7일 캐키살미 상공에서 적 전투기 2기와 정면으로 마주쳐 두 대 모두 격추하는 성과를 올렸다. 같은 해 7월 21일에는 폴리카르포프 I-153 전투기 1대를 정면 공격으로 격추했으나, 자신의 버팔로 전투기 역시 엔진에 4발, 프로펠러에 1발, 날개에 여러 발의 총탄을 맞아 손상을 입고 기지로 귀환해야 했다.

1941년 8월 1일, 라우턔르비 상공에서는 니시넨을 포함한 핀란드 공군의 버팔로 6대가 소련 공군의 폴리카르포프 I-16 전투기 8대와 교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니시넨이 격추한 적기가 공중에서 폭발하면서 그 파편이 니시넨의 버팔로 오른쪽 날개를 손상시켰다. 뒤이어 소련 I-16 전투기 3대가 후방에서 공격을 가해와 니시넨의 기체는 여러 발의 피탄을 당하고 앞유리가 깨지는 등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1941년 말까지 니시넨은 총 15.5기의 격추 기록을 세우며 일마리 유틸라이넨에 이어 핀란드 공군 에이스 랭킹 2위에 올랐다. 1942년 초, 그는 장교 양성을 위한 사관학교에 입학했고, 복무 중인 1942년 7월 5일 핀란드 최고 무공훈장인 만네르헤임 십자장을 수훈했다(69번째 수훈자, 당시 계급은 벤리키Vänrikkifi).[2] 1943년 6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
제24비행대대로 복귀한 니시넨 소위는 비행대장(지휘관)을 맡아 계속 비행 임무를 수행했다. 그의 격추 기록은 1943년 말까지 26기로 늘어났다. 1944년 봄부터 제24비행대대는 주력 전투기를 독일제 메서슈미트 Bf 109로 점차 교체하기 시작했다. 1944년 5월 16일, 니시넨은 누르모일라 상공에서 소련군의 라보츠킨 La-5 전투기 1기를 발견하고 격추했다.
1944년 6월 9일, 소련군의 대규모 공세가 다시 시작되었다. 1944년 6월 17일, 니시넨 소위는 카우컈르비 지역에서 핀란드군 진지를 공격하는 소련군의 일류신 Il-2 지상 공격기를 요격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비극적인 사고로 전사했다. 그의 윙맨이었던 헤이모 람피(Heimo Lampifi) 상사의 증언에 따르면, 동료 조종사인 우르호 사리아모(Urho Sarjamofi) 소위의 손상된 메서슈미트 전투기가 구름 속으로 급강하하다가 니시넨의 전투기와 공중에서 충돌했다. 두 전투기는 충돌과 동시에 폭발했고, 니시넨과 사리아모 두 조종사 모두 현장에서 사망했다.
니시넨은 약 300회의 전투 임무를 수행했으며, 총 32기(자료에 따라 32.33기)의 적기를 격추한 것으로 기록되었다.[3] 그의 묘지는 발케알라에 있다.
2. 2. 겨울 전쟁 참전
요엔수 출신인 라우리 니시넨은 의무 군 복무를 위해 핀란드 방위군에 징집되었고, 공군에 입대하여 비행을 직업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1938년 부사관 조종사 훈련을 받았으며, 훈련 중 뛰어난 성적을 바탕으로 1939년 5월 포커 D.XXI 전투기를 운용하는 제24비행대대(HLeLv 24)에 합류했다. 1939년 여름에는 상사로 진급했다.겨울전쟁이 발발하자, 니시넨 상사는 1939년 12월 1일 비푸리 상공에서 처음으로 공중전을 경험했다. 이 전투에서 소련군의 투폴레프 SB-2 폭격기 1대를 격추하고 다른 2대에 손상을 입혔다고 주장했다. 겨울 전쟁이 끝날 무렵, 그는 총 4번의 공중전 승리를 기록했으며, 계급은 주임 상사였다.
2. 3. 계속 전쟁 참전
겨울전쟁 이후 제24비행대대는 미제 브루스터 버팔로 전투기로 기종을 전환했다. 1941년 6월 25일 계속전쟁이 발발하자, 니시넨은 다시 버팔로에 탑승하여 전투 임무를 수행했다. 1941년 7월 7일, 캐키살미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 2기와 정면으로 마주쳐 교전 끝에 두 대 모두 격추하는 성과를 올렸다. 같은 해 7월 21일에는 폴리카르포프 I-153 전투기 한 대를 또다시 정면 대결에서 격추했지만, 이 과정에서 자신의 기체도 손상을 입어 기지로 복귀해야 했다. 지상 정비팀은 엔진에 4발, 프로펠러에 1발, 날개에 여러 발의 피탄 흔적을 확인했다.1941년 8월 1일, 라우턔르비 상공에서는 니시넨을 포함한 핀란드 공군의 버팔로 6기가 소련 공군의 I-16 전투기 8기와 공중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니시넨이 격추한 적기가 공중에서 폭발하면서 그 파편이 니시넨의 버팔로기 오른쪽 날개를 강타하여 손상을 입혔다. 이어서 I-16 3기가 뒤에서 공격을 가해 기체 여러 곳에 피탄되었고, 조종석 앞유리가 깨지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1941년 말까지 니시넨은 총 15.5기의 적기를 격추하여, 일마리 유틸라이넨에 이어 핀란드 공군 전체에서 격추 기록 2위를 차지했다. 1942년 초, 그는 장교가 되기 위해 사관학교에 입교했으며, 이듬해인 1943년 6월에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 사관학교 재학 중이던 1942년 7월 5일에는 핀란드 최고 무공훈장인 만네르헤임 십자장을 수훈했다(수훈 번호 69). 당시 계급은 ''벤리키''(Vänrikkifi)였다.[2]
제24비행대대로 복귀한 니시넨 소위는 비행대장(flight commander) 직책을 맡아 계속해서 전투 비행 임무를 수행했다. 그의 격추 기록은 꾸준히 늘어나 1943년 말에는 26기에 달했다. 1944년 봄부터는 소속 대대의 주력 전투기가 독일제 메서슈미트 Bf 109로 점차 교체되었다.
1944년 5월 16일, 니시넨은 누르모일라 비행장으로 접근하는 소련군의 라보츠킨 La-5 전투기 1기를 발견하고 요격에 나섰다. 고도 1500m 상공에서 벌어진 치열한 공중전 끝에 니시넨은 적기를 격추하는 데 성공했다.
1944년 6월 9일, 소련군의 대규모 공세가 다시 시작되었다. 6월 17일, 니시넨 소위는 카우컈르비 지역에서 핀란드 지상군 진지를 공격하던 소련군의 일류신 Il-2 공격기 편대를 요격하는 임무 중이었다. 이때 니시넨의 편대 소속이었던 우르호 사리아모(Urho Sarjamofi) 소위의 메서슈미트 Bf 109가 손상을 입고 구름 아래로 급강하하다가 니시넨의 기체와 공중에서 충돌했다. 이 장면은 니시넨의 요기(wingman)였던 헤이모 람피(Heimo Lampifi) 상사가 목격했다. 충돌과 동시에 두 전투기는 공중에서 폭발했고, 니시넨과 사리아모 두 조종사 모두 전사했다.
라우리 니시넨은 약 300회의 전투 임무를 수행했으며, 총 32.33기의 적기를 격추한 것으로 기록되었다.[3] 그의 유해는 발케알라의 묘지에 안장되었다.
2. 4. 계속 전쟁 후반기 및 사망
1942년 초 니시넨은 장교 사관 학교에 입학했고, 1943년 6월 소위로 졸업했다. 만네르헤임 십자 훈장은 사관학교 재학 중이던 1942년 7월 5일에 수여받았으며, 그의 수훈 번호는 69번이었다.[2]HLeLv 24로 복귀한 니시넨은 비행대장이 되어 비행 임무를 재개했다. 그의 격추 기록은 1943년 말까지 26기로 증가했다. 비행대는 1944년 봄부터 점차 메서슈미트 Bf 109 전투기로 기종을 교체하기 시작했다.
1944년 5월, 커티스 P-36을 운용하던 HLeLv 32는 니시넨 소위가 지휘하는 메서슈미트 Bf 109G-2 비행대의 지원을 일시적으로 받기도 했다. 5월 16일, 니시넨은 누르모일라로 접근하는 소련군의 라보츠킨 La-5 1기와 교전했다. La-5는 고도 1500m 상공에서 선회하며 니시넨을 유인하려 했으나, 니시넨은 끈질긴 공중전 끝에 La-5를 격추하는 데 성공했다.
1944년 6월 9일 소련의 새로운 공세가 시작되었다. 니시넨 소위는 1944년 6월 17일 카우크예르비(카멘스카) 상공에서 핀란드 진지를 공격하던 소련의 일류신 Il-2 지상 공격기 2기를 요격하며 두 번의 승리를 추가했다. 그러나 이 교전 중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니시넨의 호위기 조종사였던 Heimo Lampi|헤이모 람피fi 상사는 동료 조종사 Urho Sarjamo|우르호 사리아모fi 소위의 손상된 메서슈미트 기가 구름 속으로 급강하하다가 니시넨의 비행기와 공중 충돌하는 것을 목격했다. 두 비행기는 충돌과 동시에 폭발했고, 니시넨과 사리아모 두 조종사 모두 현장에서 사망했다.
니시넨은 약 300번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총 32기[3] (일부 자료에서는 32.33기)의 적기를 격추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그의 묘지는 발케알라에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Lauri "Lapra" Nissinen
http://www.sci.fi/~f[...]
2009-10-15
[2]
서적
Suomen puolesta: Mannerheim-ristin ritarit 1941–1945
Ajatus
[3]
논문
Lauri Nissinen, Mannerheim-ristin ritari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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