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종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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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반인종주의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다양한 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유럽의 식민주의 확산과 함께 인종차별에 대한 반발이 나타났으며, 특히 종교 개혁과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퀘이커교도와 사회주의자들이 노예제 폐지 및 인종 평등을 주장했다. 20세기에는 1, 2차 세계 대전, 미국의 민권 운동, 그리고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과 같은 대규모 시위를 통해 반인종주의가 확산되었다. 반인종주의는 의식 고양, 문화 간 이해 증진, 제도적 차별 대응, 극우 단체와의 투쟁 등 다양한 실천 전략을 포함하며, 여성주의, 반전 운동 등 다른 사회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반인종주의는 백인 학살 음모론 등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며, 다양한 관련 단체들이 국제,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일본, 한국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유럽의 인종차별주의는 유럽인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퍼져나갔지만, 원주민들에게 적용될 때는 기존 관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4] 신대륙 발견 이후, 신대륙으로 파견된 많은 성직자들은 유럽에서 새롭게 등장한 인본주의적 가치관에 교육받았고, 스페인과 그들 자신의 교회가 원주민과 노예들을 대하는 방식과 시각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반인종주의는 다양한 형태를 띠는데, 의식 고양 활동, 인종 집단 간의 문화적 이해 증진, 제도적 환경에서의 "일상적인" 인종차별 대응, 그리고 극우 네오나치 및 네오파시스트 단체와의 투쟁 등이 포함된다.
2. 역사
1511년 12월, 도미니크 수사인 안토니오 데 몬테시노스는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히스파니올라의 스페인 당국과 관리들이 아메리카 원주민과 노예로 강제 노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공개적으로 "잔혹함과 폭정"을 비난했다.[4] 이에 대한 반응으로 페르디난드 국왕은 ''부르고스 법령''과 발라돌리드 법령을 제정했다. 그러나 집행은 느슨했고,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1542년 신법이 제정되어야 했다. 프레이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와 같은 일부 사람들은 왕실뿐만 아니라 교황청에 대해서도, 원주민이 정말로 세례를 받을 자격이 있는 인간인지에 대한 발라돌리드 논쟁을 제기했고, 교황 바오로 3세는 교황 칙서 ''베리타스 익사'' 또는 ''수블리미스 데우스''(1537년)에서 원주민과 다른 인종도 이교도라 할지라도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가진 완전한 이성적 인간임을 확인했다.[5][6]
그 후, 그들의 기독교 개종 노력은 사회적 권리와 함께 추진력을 얻었지만, 흑인 아프리카인에 대한 동일한 지위 인정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았고, 인도인이나 아시아인에 대한 법적 사회적 인종차별이 만연했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몇십 년 동안 정치적 이유로 종교 개혁의 마지막 분열이 일어났고, 서로 다른 인종의 인간 생명의 가치에 대한 상이한 견해는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시정되지 않았다. 북유럽 국가들은 1세기 말과 그 이후에 포르투갈과 스페인 제국이 쇠퇴하면서 식민지 인종주의에 가담하게 되었다.
1688년, 펜실베이니아 식민지로 이주한 독일계 미국인들이 식민지 내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반노예 청원서를 발표했다. 1844년 미국 폐지론자들에 의해 재발견되었고, 1940년대경 분실되었다가 2005년 3월 다시 발견되었다. 미국 독립 전쟁 이전에, 존 울먼과 앤서니 베네제를 포함한 소수의 퀘이커교도들은 많은 동료 퀘이커교도들을 설득하여 노예를 해방하고, 대서양 노예 무역에서 손을 떼고,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통일된 퀘이커교 정책을 만들도록 했다. 이는 이 종교 단체에 도덕적 권위를 부여하여 미국 폐지론 운동을 시작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울먼은 대서양을 건너 영국 제도의 퀘이커교도들에게 반노예 메시지를 전파한 직후인 1775년 영국에서 천연두로 사망했다.
미국 독립 전쟁 중과 이후,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퀘이커교도들의 봉사와 설교는 그들의 종파를 넘어 퍼지기 시작했다. 1783년, 주로 런던 출신의 300명의 퀘이커교도들이 영국 의회에 대서양 노예 무역에 대한 영국의 개입에 반대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1785년,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영국의 폐지론자 토마스 클락슨은 라틴어 에세이(''Anne liceat invitos in servitutem dare''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 합법적인가?))를 쓰는 과정에서 베네제의 저술을 읽고, 영국 노예 무역 폐지를 위한 평생의 노력을 시작했다. 1787년, 영국의 폐지론자들은 노예 무역 폐지 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는 퀘이커교도들과 달리 의회에 합법적으로 참석할 수 있는 성공회 신자들을 포함함으로써 더 성공적으로 로비 활동을 할 수 있는 소규모 비종파 단체였다. 12명의 창립 멤버 중에는 퀘이커교도 9명과 성공회 신자 3명, 즉 그랜빌 샤프, 토마스 클락슨, 그리고 윌리엄 윌버포스가 있었다. 모두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었다.
후대의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성공은 영국의 폐지론 운동과 미국의 폐지론 운동에 의해 이루어졌다. 많은 폐지론자들이 흑인이나 혼혈아를 백인과 동등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일반적으로 자유를 믿었고, 종종 모든 사람에 대한 평등한 대우를 믿었다. 존 브라운과 같은 소수의 사람들은 더 나아갔다. 브라운은 그가 말했듯이 "이 노예 국가에서 악하고, 잔혹하고, 불의한 법률에 의해 권리가 무시되는 수백만 명을 위해" 죽을 의향이 있었다. 프레더릭 더글러스와 같은 많은 흑인 폐지론자들은 흑인과 혼혈인의 인간성과 모든 사람의 평등을 명시적으로 주장했다.
1911년 제1차 세계 인종 회의가 런던에서 열렸으며, 여러 국가의 저명한 연사들이 나흘 동안 인종 문제와 인종 간 관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8]
칼 마르크스는 미국 남북 전쟁 당시 연방을 지지했으며, 1864년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보낸 ''국제노동자협회의 서한''에서 노예 해방을 옹호했다.[9] 링컨은 이에 대한 답으로 국제노동자협회의 지지에 감사를 표하며 남부의 패배가 전 인류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10][11][12]
러시아 혁명은 탈식민화 투쟁에 있어 제국주의와의 단절로 인식되었으며, 소비에트 연방이 유럽 식민 세력에 맞서 반식민지 제3세계 운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면서 더욱 신빙성을 얻었다.[13]
블라디미르 레닌은 ''사회주의 혁명과 민족 자결권''에서 사회주의는 모든 민족의 완전한 평등을 강제하고 "억압받는 민족의 자결권을 실현할 것"이라고 썼다.[14] 레닌은 반제국주의를 마르크스주의 이념의 원칙으로 삼고 코민테른을 통해 혁명을 조직했다.[15]
레온 트로츠키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 인구에 대한 국가 자결권을 옹호했다. 그는 1935년 남아프리카 좌익 반대파의 강령 문서에 대한 답변에서 "우리는 흑인의 독립에 대한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권리를 단호하고 어떠한 유보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백인 착취자들의 지배에 대한 상호 투쟁을 기반으로 할 때만 흑인과 백인 노동자들의 연대를 기르고 강화할 수 있다."라고 썼다.[16] 1930년대를 거치면서 트란스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최초의 실행 가능한 흑인 노동 조합이 트로츠키주의자들에 의해 설립되었다.[17]
현대 좌파 논평가들은 자본주의가 이민과 소수 민족의 대표성과 같은 문제에 대한 문화 전쟁과 함께 인종차별을 조장하면서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18][19]
사회주의 단체들은 러브 뮤직 헤이트 레이시즘, Stand Up to Racism, 반나치 리그[20] 및 파시즘에 맞서 단결하라와 같은 여러 반인종차별 단체와 긴밀히 연계되어 왔다.[21]
프리드리히 티데만은 1836년, 흑인의 뇌가 작아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주장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22] 그는 두개골 및 뇌 크기 측정을 통해 이러한 믿음이 여행가와 탐험가들의 편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찰스 다윈은 1871년, 인간의 다양한 인종이 생물학적으로 큰 차이가 없음을 강조했다.[23] 그는 “인종을 구분하는 특징으로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을 지목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언급하며, “인간의 현존하는 여러 인종은 피부색, 머리카락, 두개골 모양, 신체 비율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 구조를 고려해 보면 매우 많은 점에서 서로 밀접하게 닮았음을 알 수 있다”고 기술했다.
아돌프 바스티안은 인종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에게 존재하는 보편적인 정신적 틀인 "인류 정신의 통일성" 개념을 제창했다. 루돌프 피르호는 에른스트 헤켈의 인류 분류를 비판했다. 프란츠 보아스는 인구 집단 간 행동 차이가 문화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24] 마르셀 모스, 브로니스와프 말리노프스키, 피에르 클라스트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 같은 인류학자들은 인간 행동 차이에 대한 인종 모델을 거부하고 문화에 초점을 맞췄다.
독일 동물학회는 예나 선언을 통해 인간 "인종" 개념을 거부하고, 에른스트 헤켈 등의 인종 이론과 거리를 두었다.[25][26] 이 선언은 세계 인구 집단 간 유전적 변이가 집단 내 변이보다 작다는 점을 들어 "인종"의 생물학적 개념이 타당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기존의 인종 범주와 일치하는 특정 유전자나 유전자 마커가 없으며, "인종" 개념이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인종차별주의에 근거한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1850년대 쇄국이 끝난 후 안세이 조약(安政条約)을 맺었지만, 곧 서구 열강과의 평등한 지위를 요구했다.[27] 메이지 정부는 이러한 불평등을 바로잡는 것을 시급한 국제적 과제로 삼았다. 1919년 파리 강화 회의(1919~1920)에서 일본 대표단은 국제 연맹 규약에 인종 평등 조항을 추가할 것을 제안했다.[27] 1919년 2월 13일,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顕)는 국제 연맹 위원회에 제21조 수정안을 제출하여, 모든 외국인에게 평등하고 공정한 대우를 제공하고 인종이나 국적에 따른 차별을 금지할 것을 제안했다.[27]
로버트 세실(Robert Cecil, 1st Viscount Cecil of Chelwood)은 이 제안이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언급했고, 그리스 총리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Eleftherios Venizelos)는 종교적 차별 금지 조항도 논란이 되므로 삭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포르투갈(Portugal) 외교관은 이에 반대했고, 세실은 전능하신 분의 노여움을 피하기 위해 그분을 언급하지 않는 모험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총리 빌리 휴즈(Billy Hughes)는 "100명 중 95명의 호주인이 평등이라는 생각 자체를 거부한다"고 발표하며 반대했다.[28] 휴즈는 노동 조합원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호주로의 아시아 이민에 강하게 반대했다. 당시 중국 대표단도 이 조항을 지지했지만, 산둥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영국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는 일본과 동맹을 맺었지만, 영국 제국(British Empire) 대표단을 결속시키기 위해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이 제안은 과반수의 찬성을 얻었지만, 미국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남부 민주당(Southern Democrats)의 표가 필요했기에 반대했다. 휴즈[28]와 조셉 쿡(Joseph Cook)은 백호주 정책(White Australia policy)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강력히 반대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프란츠 보아스, 루스 베네딕트, 마가렛 미드, 애슐리 몽타규와 같은 인류학자들은 인종과 문화를 넘어 인간의 평등을 주장했다.[29] 엘리너 루즈벨트는 소수 민족의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29] 반자본주의 단체인 산업 노동자 세계 연맹은 평등주의를 지향했다.[29] 1940년대 스프링필드 (매사추세츠주)에서는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스프링필드 계획이 시행되었다.
할렘 르네상스 시기부터 1960년대까지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들이 인종차별에 대해 강력하게 주장했다.[29]
미국 남북전쟁 이후 남부 지역의 짐 크로 법은 폐지되었고, 흑인들은 남부 주에서 투표권을 되찾았다.[29]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으며, 그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은 평등주의 이념을 보여준다.
미국 내에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동원은 반인종차별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켰다.[30][31]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반인종주의 운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중 운동 조직화와 함께 정치, 형사 사법 개혁, 고등 교육의 포용성, 직장 내 반인종차별에 관한 연구를 전면에 내세우려는 학계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30][32]
2. 1. 유럽의 기원
유럽의 인종차별주의는 유럽인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퍼져나갔지만, 원주민들에게 적용될 때는 기존 관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4] 신대륙 발견 이후, 신대륙으로 파견된 많은 성직자들은 유럽에서 새롭게 등장한 인본주의적 가치관에 교육받았고, 스페인과 그들 자신의 교회가 원주민과 노예들을 대하는 방식과 시각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1511년 12월, 도미니크 수사인 안토니오 데 몬테시노스는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히스파니올라의 스페인 당국과 관리들이 아메리카 원주민과 노예로 강제 노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공개적으로 "잔혹함과 폭정"을 비난했다.[4] 이에 대한 반응으로 페르디난드 국왕은 ''부르고스 법령''과 발라돌리드 법령을 제정했다. 그러나 집행은 느슨했고,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1542년 신법이 제정되어야 했다. 프레이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와 같은 일부 사람들은 왕실뿐만 아니라 교황청에 대해서도, 원주민이 정말로 세례를 받을 자격이 있는 인간인지에 대한 발라돌리드 논쟁을 제기했고, 교황 바오로 3세는 교황 칙서 ''베리타스 익사'' 또는 ''수블리미스 데우스''(1537년)에서 원주민과 다른 인종도 이교도라 할지라도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가진 완전한 이성적 인간임을 확인했다.[5][6]
그 후, 그들의 기독교 개종 노력은 사회적 권리와 함께 추진력을 얻었지만, 흑인 아프리카인에 대한 동일한 지위 인정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았고, 인도인이나 아시아인에 대한 법적 사회적 인종차별이 만연했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몇십 년 동안 정치적 이유로 종교 개혁의 마지막 분열이 일어났고, 서로 다른 인종의 인간 생명의 가치에 대한 상이한 견해는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시정되지 않았다. 북유럽 국가들은 1세기 말과 그 이후에 포르투갈과 스페인 제국이 쇠퇴하면서 식민지 인종주의에 가담하게 되었다.
1688년, 펜실베이니아 식민지로 이주한 독일계 미국인들이 식민지 내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반노예 청원서를 발표했다. 1844년 미국 폐지론자들에 의해 재발견되었고, 1940년대경 분실되었다가 2005년 3월 다시 발견되었다. 미국 독립 전쟁 이전에, 존 울먼과 앤서니 베네제를 포함한 소수의 퀘이커교도들은 많은 동료 퀘이커교도들을 설득하여 노예를 해방하고, 대서양 노예 무역에서 손을 떼고,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통일된 퀘이커교 정책을 만들도록 했다. 이는 이 종교 단체에 도덕적 권위를 부여하여 미국 폐지론 운동을 시작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울먼은 대서양을 건너 영국 제도의 퀘이커교도들에게 반노예 메시지를 전파한 직후인 1775년 영국에서 천연두로 사망했다.
미국 독립 전쟁 중과 이후,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퀘이커교도들의 봉사와 설교는 그들의 종파를 넘어 퍼지기 시작했다. 1783년, 주로 런던 출신의 300명의 퀘이커교도들이 영국 의회에 대서양 노예 무역에 대한 영국의 개입에 반대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1785년,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영국의 폐지론자 토마스 클락슨은 라틴어 에세이(''Anne liceat invitos in servitutem dare''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 합법적인가?))를 쓰는 과정에서 베네제의 저술을 읽고, 영국 노예 무역 폐지를 위한 평생의 노력을 시작했다. 1787년, 영국의 폐지론자들은 노예 무역 폐지 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는 퀘이커교도들과 달리 의회에 합법적으로 참석할 수 있는 성공회 신자들을 포함함으로써 더 성공적으로 로비 활동을 할 수 있는 소규모 비종파 단체였다. 12명의 창립 멤버 중에는 퀘이커교도 9명과 성공회 신자 3명, 즉 그랜빌 샤프, 토마스 클락슨, 그리고 윌리엄 윌버포스가 있었다. 모두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었다.
후대의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성공은 영국의 폐지론 운동과 미국의 폐지론 운동에 의해 이루어졌다. 많은 폐지론자들이 흑인이나 혼혈아를 백인과 동등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일반적으로 자유를 믿었고, 종종 모든 사람에 대한 평등한 대우를 믿었다. 존 브라운과 같은 소수의 사람들은 더 나아갔다. 브라운은 그가 말했듯이 "이 노예 국가에서 악하고, 잔혹하고, 불의한 법률에 의해 권리가 무시되는 수백만 명을 위해" 죽을 의향이 있었다. 프레더릭 더글러스와 같은 많은 흑인 폐지론자들은 흑인과 혼혈인의 인간성과 모든 사람의 평등을 명시적으로 주장했다.
1911년 제1차 세계 인종 회의가 런던에서 열렸으며, 여러 국가의 저명한 연사들이 나흘 동안 인종 문제와 인종 간 관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8]
2. 2. 사회주의와 반인종주의
칼 마르크스는 미국 남북 전쟁 당시 연방을 지지했으며, 1864년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보낸 ''국제노동자협회의 서한''에서 노예 해방을 옹호했다.[9] 링컨은 이에 대한 답으로 국제노동자협회의 지지에 감사를 표하며 남부의 패배가 전 인류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10][11][12]
러시아 혁명은 탈식민화 투쟁에 있어 제국주의와의 단절로 인식되었으며, 소비에트 연방이 유럽 식민 세력에 맞서 반식민지 제3세계 운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면서 더욱 신빙성을 얻었다.[13]
블라디미르 레닌은 ''사회주의 혁명과 민족 자결권''에서 사회주의는 모든 민족의 완전한 평등을 강제하고 "억압받는 민족의 자결권을 실현할 것"이라고 썼다.[14] 레닌은 반제국주의를 마르크스주의 이념의 원칙으로 삼고 코민테른을 통해 혁명을 조직했다.[15]
레온 트로츠키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 인구에 대한 국가 자결권을 옹호했다. 그는 1935년 남아프리카 좌익 반대파의 강령 문서에 대한 답변에서 "우리는 흑인의 독립에 대한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권리를 단호하고 어떠한 유보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백인 착취자들의 지배에 대한 상호 투쟁을 기반으로 할 때만 흑인과 백인 노동자들의 연대를 기르고 강화할 수 있다."라고 썼다.[16] 1930년대를 거치면서 트란스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최초의 실행 가능한 흑인 노동 조합이 트로츠키주의자들에 의해 설립되었다.[17]
현대 좌파 논평가들은 자본주의가 이민과 소수 민족의 대표성과 같은 문제에 대한 문화 전쟁과 함께 인종차별을 조장하면서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18][19]
사회주의 단체들은 러브 뮤직 헤이트 레이시즘, Stand Up to Racism, 반나치 리그[20] 및 파시즘에 맞서 단결하라와 같은 여러 반인종차별 단체와 긴밀히 연계되어 왔다.[21]
2. 3. 과학적 반박
프리드리히 티데만은 1836년, 흑인의 뇌가 작아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주장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22] 그는 두개골 및 뇌 크기 측정을 통해 이러한 믿음이 여행가와 탐험가들의 편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찰스 다윈은 1871년, 인간의 다양한 인종이 생물학적으로 큰 차이가 없음을 강조했다.[23] 그는 “인종을 구분하는 특징으로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을 지목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언급하며, “인간의 현존하는 여러 인종은 피부색, 머리카락, 두개골 모양, 신체 비율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 구조를 고려해 보면 매우 많은 점에서 서로 밀접하게 닮았음을 알 수 있다”고 기술했다.
아돌프 바스티안은 인종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에게 존재하는 보편적인 정신적 틀인 "인류 정신의 통일성" 개념을 제창했다. 루돌프 피르호는 에른스트 헤켈의 인류 분류를 비판했다. 프란츠 보아스는 인구 집단 간 행동 차이가 문화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24] 마르셀 모스, 브로니스와프 말리노프스키, 피에르 클라스트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 같은 인류학자들은 인간 행동 차이에 대한 인종 모델을 거부하고 문화에 초점을 맞췄다.
독일 동물학회는 예나 선언을 통해 인간 "인종" 개념을 거부하고, 에른스트 헤켈 등의 인종 이론과 거리를 두었다.[25][26] 이 선언은 세계 인구 집단 간 유전적 변이가 집단 내 변이보다 작다는 점을 들어 "인종"의 생물학적 개념이 타당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기존의 인종 범주와 일치하는 특정 유전자나 유전자 마커가 없으며, "인종" 개념이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인종차별주의에 근거한다고 지적한다.
2. 4. 20세기 전반: 인종 평등 제안
일본은 1850년대 쇄국이 끝난 후 안세이 조약(安政条約)을 맺었지만, 곧 서구 열강과의 평등한 지위를 요구했다.[27] 메이지 정부는 이러한 불평등을 바로잡는 것을 시급한 국제적 과제로 삼았다. 1919년 파리 강화 회의(1919~1920)에서 일본 대표단은 국제 연맹 규약에 인종 평등 조항을 추가할 것을 제안했다.[27] 1919년 2월 13일,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顕)는 국제 연맹 위원회에 제21조 수정안을 제출하여, 모든 외국인에게 평등하고 공정한 대우를 제공하고 인종이나 국적에 따른 차별을 금지할 것을 제안했다.[27]
로버트 세실(Robert Cecil, 1st Viscount Cecil of Chelwood)은 이 제안이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언급했고, 그리스 총리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Eleftherios Venizelos)는 종교적 차별 금지 조항도 논란이 되므로 삭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포르투갈(Portugal) 외교관은 이에 반대했고, 세실은 전능하신 분의 노여움을 피하기 위해 그분을 언급하지 않는 모험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총리 빌리 휴즈(Billy Hughes)는 "100명 중 95명의 호주인이 평등이라는 생각 자체를 거부한다"고 발표하며 반대했다.[28] 휴즈는 노동 조합원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호주로의 아시아 이민에 강하게 반대했다. 당시 중국 대표단도 이 조항을 지지했지만, 산둥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영국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는 일본과 동맹을 맺었지만, 영국 제국(British Empire) 대표단을 결속시키기 위해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이 제안은 과반수의 찬성을 얻었지만, 미국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남부 민주당(Southern Democrats)의 표가 필요했기에 반대했다. 휴즈[28]와 조셉 쿡(Joseph Cook)은 백호주 정책(White Australia policy)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강력히 반대했다.
2. 5. 20세기 중반: 미국의 민권 운동
1920년대와 1930년대에 프란츠 보아스, 루스 베네딕트, 마가렛 미드, 애슐리 몽타규와 같은 인류학자들은 인종과 문화를 넘어 인간의 평등을 주장했다.[29] 엘리너 루즈벨트는 소수 민족의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29] 반자본주의 단체인 산업 노동자 세계 연맹은 평등주의를 지향했다.[29] 1940년대 스프링필드 (매사추세츠주)에서는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스프링필드 계획이 시행되었다.
할렘 르네상스 시기부터 1960년대까지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들이 인종차별에 대해 강력하게 주장했다.[29]
미국 남북전쟁 이후 남부 지역의 짐 크로 법은 폐지되었고, 흑인들은 남부 주에서 투표권을 되찾았다.[29]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으며, 그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은 평등주의 이념을 보여준다.
2. 6. 21세기: 현대의 반인종주의 운동
미국 내에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동원은 반인종차별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켰다.[30][31]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반인종주의 운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중 운동 조직화와 함께 정치, 형사 사법 개혁, 고등 교육의 포용성, 직장 내 반인종차별에 관한 연구를 전면에 내세우려는 학계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30][32]
3. 실천 전략
반인종주의 지지자들은 마이크로 공격이 직장 환경, 학습 환경, 그리고 전반적인 자존감에 많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33] 반인종주의 활동은 차별과 억압에 대한 행동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마이크로 공격과 싸우고 체계적 인종차별을 깨뜨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34] 차별에 맞서는 것은 이전에 표적이 되었던 유색인종에게는 압도적인 과제가 될 수 있다. 반인종주의자들은 마이크로 개입이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도구라고 주장한다.[35]
마이크로 개입 전략은 인종적 억압자에게 맞서고 교육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인 전술에는 차별 행위 뒤에 숨겨진 편견이나 의도를 드러내는 것, 억압적인 언어를 중단하고 문제 삼는 것, 가해자를 교육하는 것, 그리고 차별에 맞서기 위해 다른 동맹자 및 지역 사회 구성원과 연대하는 것이 포함된다.[35] 이 이론은 이러한 마이크로 개입이 가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말이 미치는 영향을 보게 하고, 자신의 행동이 소외된 집단의 사람들을 어떻게 억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교육적인 대화를 위한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36]
마이크로 공격은 가해자가 자신이 일으키는 공격을 인지하는 의식적인 행위이거나, 가해자의 인식 없이 숨겨지고 메타커뮤니케이션되는 행위일 수 있다. 마이크로 공격이 의식적인 행위이든 무의식적인 행위이든 관계없이, 첫 번째 반인종주의 개입은 그것이 유색인종에게 해로운 방식을 명명하는 것이다. 차별 행위를 지적하는 것은 유색인종에게 자신의 경험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차별에 대한 내적 감정을 정당화하는 언어를 제공하기 때문에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35]
반인종주의 전략에는 유색인종에게 해를 끼치는 마이크로 공격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 삼고 반박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와 같은 구두 표현과 반대의 몸짓은 마이크로 공격에 맞서는 방법이다. 마이크로 개입은 다른 사람들의 편견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인 대화를 위한 공간을 허용하는 데 사용된다. 가해자의 편견에 대해 교육하는 것은 의견이나 행동의 의도가 어떻게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열 수 있다. 예를 들어, "그 농담이 재밌으라고 한 건 알지만, 그 고정관념이 정말 나를 힘들게 했어."와 같은 문구는 의도와 유색인종에게 어떻게 해로운지에 대한 차이점에 대해 사람들을 교육할 수 있다. 반인종주의 마이크로 개입 전략은 유색인종, 백인 동맹자 및 방관자에게 마이크로 공격과 차별 행위에 맞설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35]
또 다른 전략은 문화적 안전, 문화적 겸손, 그리고 서사적 겸손을 지속적으로 증진함으로써 포용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37] 문화적 안전은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과 태도를 검토하고 모든 사람에게 정서적, 사회적, 신체적으로 안전한 공간을 조성하는 동시에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과 필요를 확인하도록 장려한다. 문화적 겸손은 자기 성찰, 공동 학습 및 지역 사회 구성원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공유된 성장의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이를 보완한다. 서사적 겸손은 개인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의 깊게 귀 기울이고, 그 서사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반추하고, 자신의 관점에 도전하는 관점에 열린 마음을 유지하도록 장려함으로써 이러한 접근 방식을 더욱 향상시킨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함께 체계적인 불평등을 해체하고 존중, 공유된 이해 및 적극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환경을 조성한다.
3. 1. 의식 고양
반인종주의는 인종차별을 영속시키는 방식에 대해 사람들을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의식 고양 활동을 포함한다. 이는 인종차별의 심각성과 그 영향을 교육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편견을 인식하고 극복하도록 돕는 활동을 포함한다. 반인종주의 지지자들은 마이크로 공격이 직장 및 학습 환경, 전반적인 자존감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33] 반인종주의 활동은 차별과 억압에 대한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 마이크로 공격과 싸우고 체계적 인종차별을 깨뜨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34]
마이크로 개입 전략은 인종적 억압자에게 맞서고 교육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제공하며, 차별 행위 뒤에 숨겨진 편견이나 의도를 드러내고, 억압적인 언어를 중단하고 문제 삼으며, 가해자를 교육하고, 차별에 맞서기 위해 다른 동맹자 및 지역 사회 구성원과 연대하는 것을 포함한다.[35] 이러한 마이크로 개입은 가해자가 자신의 말이 미치는 영향을 보게 하고, 자신의 행동이 소외된 집단의 사람들을 어떻게 억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교육적인 대화를 위한 공간을 제공한다.[36]
마이크로 공격은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행위일 수 있으며, 반인종주의 개입은 그것이 유색인종에게 해로운 방식을 명명하는 것이다. 차별 행위를 지적하는 것은 유색인종에게 자신의 경험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차별에 대한 내적 감정을 정당화하는 언어를 제공하기 때문에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35]
반인종주의 전략에는 유색인종에게 해를 끼치는 마이크로 공격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 삼고 반박하는 것도 포함된다. 마이크로 개입은 다른 사람들의 편견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인 대화를 위한 공간을 허용하는 데 사용된다. 가해자의 편견에 대해 교육하는 것은 의견이나 행동의 의도가 어떻게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열 수 있다.[35]
문화적 안전, 문화적 겸손, 그리고 서사적 겸손을 지속적으로 증진함으로써 포용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전략도 있다.[37] 문화적 안전은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과 태도를 검토하고 모든 사람에게 정서적, 사회적, 신체적으로 안전한 공간을 조성하는 동시에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과 필요를 확인하도록 장려한다.
3. 2. 문화 간 이해 증진
반인종주의는 다양한 인종 및 문화 집단 간의 상호 이해와 존중을 증진하는 활동을 포함한다. 이는 인종차별을 영속시키는 방식에 대해 사람들을 교육하는 의식 고양 활동, 인종 집단 간의 문화적 이해 증진, 제도적 환경에서의 "일상적인" 인종차별 대응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반인종주의는 마이크로 공격이 직장 및 학습 환경, 전반적인 자존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마이크로 개입 전략을 제시한다.[33] 이러한 전략에는 차별 행위 뒤에 숨겨진 편견이나 의도를 드러내고, 억압적인 언어를 중단하며, 가해자를 교육하고, 차별에 맞서기 위해 다른 동맹 및 지역 사회 구성원과 연대하는 것이 포함된다.[35]
문화적 안전, 문화적 겸손, 그리고 서사적 겸손을 지속적으로 증진함으로써 포용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 또한 반인종주의 전략의 일환이다.[37] 문화적 안전은 모든 사람에게 정서적, 사회적, 신체적으로 안전한 공간을 조성하고, 문화적 겸손은 자기 성찰, 공동 학습 및 지역 사회 구성원과의 협력을 강조한다. 서사적 겸손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의 관점에 도전하는 관점에 열린 마음을 유지하도록 한다.
3. 3. 제도적 차별 대응
반인종주의는 법률, 정책, 관행 등 제도적 차별을 철폐하고,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활동을 포함한다.[34] 지지자들은 마이크로 공격이 직장 및 학습 환경, 그리고 전반적인 자존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일상 속 차별에 대한 인식 개선 및 대응 방안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33]
반인종주의 활동은 차별과 억압에 대한 행동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마이크로 공격과 싸우고 체계적 인종차별을 깨뜨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34] 마이크로 개입 전략은 인종적 억압자에게 맞서고 교육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제공하며, 차별 행위 뒤에 숨겨진 편견이나 의도를 드러내고, 억압적인 언어를 중단 및 문제 삼으며, 가해자를 교육하고, 다른 동맹자 및 지역 사회 구성원과 연대하는 것을 포함한다.[35]
마이크로 공격은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행위일 수 있으며, 반인종주의 개입은 그것이 유색인종에게 해로운 방식을 명명하는 것이다. 차별 행위를 지적하는 것은 유색인종에게 자신의 경험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차별에 대한 내적 감정을 정당화하는 언어를 제공하기 때문에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35]
반인종주의 전략에는 유색인종에게 해를 끼치는 마이크로 공격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 삼고 반박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와 같은 구두 표현과 반대의 몸짓은 마이크로 공격에 맞서는 방법이다. 가해자의 편견에 대해 교육하는 것은 의견이나 행동의 의도가 어떻게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열 수 있다.[35]
또한 문화적 안전, 문화적 겸손, 그리고 서사적 겸손을 지속적으로 증진함으로써 포용적인 환경을 조성한다.[37] 문화적 안전은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과 태도를 검토하고 모든 사람에게 정서적, 사회적, 신체적으로 안전한 공간을 조성하는 동시에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과 필요를 확인하도록 장려한다.
3. 4. 극우 단체와의 투쟁
반인종주의는 네오나치, 네오파시스트 등 극우 단체의 인종차별적 선동과 폭력에 맞서는 활동을 포함한다. 이러한 활동은 인종차별을 영속시키는 방식에 대해 사람들을 교육하고, 인종 집단 간의 문화적 이해를 증진하며, 제도적 환경에서의 "일상적인" 인종차별에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인종주의 지지자들은 마이크로 공격이 직장 및 학습 환경, 전반적인 자존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하며,[33] 차별과 억압에 대한 행동을 통해 체계적 인종차별을 깨뜨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34] 이들은 마이크로 개입이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도구라고 주장한다.[35]
마이크로 개입 전략은 인종적 억압자에게 맞서고 교육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제공하며, 차별 행위 뒤에 숨겨진 편견이나 의도를 드러내고, 억압적인 언어를 중단 및 문제 삼으며, 가해자를 교육하고, 다른 동맹자 및 지역 사회 구성원과 연대하는 것을 포함한다.[35] 이러한 마이크로 개입은 가해자가 자신의 말의 영향력을 인지하고, 자신의 행동이 소외된 집단을 억압할 수 있다는 교육적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36]
마이크로 공격은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일 수 있으며, 반인종주의 개입은 그것이 유색인종에게 해로운 방식을 명명하는 것이다. 차별 행위를 지적하는 것은 유색인종에게 자신의 경험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차별에 대한 내적 감정을 정당화하는 언어를 제공한다.[35]
반인종주의 전략에는 유색인종에게 해를 끼치는 마이크로 공격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 삼고 반박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와 같은 구두 표현과 반대의 몸짓은 마이크로 공격에 맞서는 방법이며, 교육적인 대화를 위한 공간을 허용한다. 가해자의 편견을 교육하는 것은 의도와 해로운 영향 간의 차이점에 대한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35]
또 다른 전략은 문화적 안전, 문화적 겸손, 그리고 서사적 겸손을 지속적으로 증진함으로써 포용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37] 문화적 안전은 자신의 정체성과 태도를 검토하고 안전한 공간을 조성하는 동시에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과 필요를 확인하도록 장려한다. 문화적 겸손은 자기 성찰, 공동 학습 및 지역 사회 구성원과의 협력을 강조하며, 서사적 겸손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의 관점에 도전하는 관점에 열린 마음을 유지하도록 한다.
4. 영향
반인종주의는 여성주의, 반전 운동, 반제국주의 운동 등 다른 사회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38] 예를 들어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미국이 멕시코-미국 전쟁을 노예 제도 확장의 구실로 이용할 것을 우려하여 전쟁에 반대했다. 소로는 "시민 불복종"이라는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으며, 이는 마하트마 간디의 인도 독립 운동에 영감을 주었다.[38] 간디의 독립 운동은 다시 미국의 민권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39] 제임스 로웬은 ''내 선생님이 거짓말한 것들''에서 "아프리카에서 북아일랜드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운동은 우리의 노예 폐지론자들과 시민권 운동에서 빌려온 전술과 말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라고 썼다.[39]
5. 비판
일부 용례는 논란이 되어 왔다. 영국의 비평가 피터 헤인(Peter Hain)은 로버트 무가베(Robert Mugabe)가 짐바브웨(Zimbabwe)에서 반인종주의 수사를 이용하여 토지 분배를 추진했으며, 그 과정에서 백인 농민들이 소유한 토지가 흑인 아프리카인들에게 분배되었다고 주장했다(짐바브웨의 토지 개혁(Land reform in Zimbabwe) 참조). 로마 가톨릭 주교단(Bishops in the Catholic Church)은 무가베가 토지 분배를 식민지로부터 짐바브웨를 해방하는 방법으로 묘사했지만, "한때 로디지아(Rhodesia)를 착취했던 백인 정착민(settler)들이 똑같이 폭압적인 흑인 엘리트에 의해 대체되었다"고 말했다.[40][41][42]
백인 인종 정의 운동가들이 유색인종 운동가들에게 '운동 소진'(activism burnout)을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고르스키와 에라카트(2019)[43]에 따르면, 표본에 포함된 22명의 인종 정의 운동가 중 82%가 백인 인종 정의 운동가들의 행동과 태도를 자신들이 느끼는 소진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같은 연구는 또한 72.2%의 참가자가 자신의 소진 원인이 백인 운동가들의 미성숙하거나 인종차별적인 견해 때문이라고 말했다.[43] 44.4%의 운동가들은 또한 자신의 소진이 백인 운동가들이 유색인종 운동가들의 관점을 무효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43] 50%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소진이 백인 운동가들이 운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서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43] 44.4%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소진이 백인 취약성(white fragility) 때문이라고 말했다.[43] 50%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소진이 백인 운동가들이 유색인종 운동가들의 업무를 가로채거나 다른 방식으로 착취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43]
스기타 미오(杉田水脈)는 자신은 일본의 일상생활에서 심각한 소수자 차별을 느낀 적이 없다고 하며, 아이누 민족, 동화 부락, 재일 한국인·조선인, 류큐 민족 등 소수자 차별을 호소하는 단체는 "차별"을 만들어내는 "피해자 사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수자 차별을 이용한 피해자 사업을 국내에서 하는 사람들과 위안부 문제 등 반일 선전을 세계에 퍼뜨리는 사람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61]
켄트 길버트(ケント・ギルバート)는 소위 '오키나와 민족'에 대한 차별 주장에 대해 "허구의 주장"일 뿐이라고 하며,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가 배치되어 있는 것은 지리적 이유일 뿐이며, 일본인에게도 오키나와 현민에게도 "차별"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62]
5. 1. 백인 학살 음모론
일부 백인 민족주의자들은 반인종주의가 백인 인종 말살을 위한 음모라고 주장한다. 백인 민족주의자 로버트 휘태커가 만든 "반인종주의는 반백인을 위한 은어다"라는 문구는 백인 인종 말살 음모론과 흔히 연관된다.[44][45][46][47][48][49][50][51][52] 이 음모론은 대규모 이민, 인종 통합, 혼혈, 출산율 저하, 그리고 낙태가 백인이 주로 거주하는 국가에서 의도적으로 추진되어 백인을 소수 민족으로 만들고, 결국 강제 동화를 통해 멸종시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문구는 2014년 앨라배마주 버밍햄 근처의 광고판과[45] 2013년 아칸소주 해리슨의 광고판에서 발견되었다.[53]스기타 미오는 아이누 민족, 동화 부락, 재일 한국인·조선인, 류큐 민족 등 소수자 차별을 호소하는 단체는 "차별"을 만들어내는 "피해자 사업"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소수자 차별을 이용한 피해자 사업을 국내에서 하는 사람들과 위안부 문제 등 반일 선전을 세계에 퍼뜨리는 사람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61] 켄트 길버트는 소위 '오키나와 민족'에 대한 차별 주장에 대해 "허구의 주장"일 뿐이며,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가 배치되어 있는 것은 지리적 이유일 뿐이며, 일본인에게도 오키나와 현민에게도 "차별"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62]
6. 관련 단체 및 기관
6. 1. 국제
유엔 인권 이사회는 현대판 인종차별,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및 관련 불관용 문제 특별 보고관을 임명하여 관련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54] 세계 인종차별 반대 회의도 개최되고 있다. 매년 인종차별철폐 국제의 날이 기념되고 있다.6. 2. 유럽
유럽에서는 다양한 반인종주의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유럽 인종차별 및 불관용 대항 위원회는 유럽 평의회 산하 기관으로,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반유대주의 등에 대항하는 활동을 한다. 프랑스의 SOS 라시즘은 1984년에 설립된 단체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영국에서는 러브 뮤직 헤이트 레이시즘이 음악을 통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이 외에도 독일의 아크티온 쿠라주, 영국의 반나치 동맹, 반파시스트 행동, 흑인 평등 기구, 인종차별 및 파시즘 반대 운동, 인종 관계 연구소, 반인종주의 전국회의, 인종차별에 붉은 카드를 보여라, 인종차별에 맞서 일어서라, 파시즘에 맞서 단결하라, 벨기에의 평등한 기회와 인종차별 반대 센터, 스위스의 홀로코스트 어린이 구호 활동, 아이슬란드의 반인종주의자 연맹, 영국의 포에버 패밀리, 프랑스의 레 앵디비지블, 인종차별 반대 및 민족 간 우정을 위한 운동, 폴란드의 네버 어게인 협회, 영국의 뉴햄 모니터링 프로젝트, 인종차별 및 외국인 혐오 행위 모니터링 센터, 아일랜드의 인종차별 반대 주민들, 영국의 록 어게인스트 레이시즘, 체코의 인 유스티티아, 그리고 유럽 전역의 문화 간 행동을 위한 유나이티드 등이 있다. 터키에서는 조코라를 기념하는 헤피미즈 조코라이즈가 있다.
6. 3. 북미
북미에서는 다양한 반인종주의 단체와 운동이 존재한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은 미국에서 시작된 대표적인 반인종주의 운동 중 하나이다. 반인종주의 행동은 북미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이며, 인종 정의를 위한 참여는 미국 내 인종 정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미국 대학교(American University)에는 반인종주의 연구 및 정책 센터(Antiracist Research and Policy Center)가 있으며,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에는 이브람 켄디가 이끄는 반인종주의 연구 센터(Center for Anti-Racist Research)가 있다. 이 외에도 여러 대학교에서 인종 정의와 반인종주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6. 4. 오세아니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단체인 올 투게더 나우가 활동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서는 파이트 뎀 백이 활동하고 있다.6. 5. 일본
일본은 유엔인권이사회 특별 보고관 두두 디엔이 2005년 일본 방문 조사 후, 부락민, 아이누 민족 및 오키나와 주민, 한반도 출신자, 외국인 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결론 내리고, 인종차별 금지 국내 법령 제정 등을 권고했음에도 불구[56][57]하고, 관련 법 제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법무성은 이러한 권고를 공표하고 있으며,[58] 외무성도 견해를 발표하고 있다.[59] 일본은 2015년 인권이사회에서 “인종차별, 인종차별, 외국인 배척 및 관련 불관용에 반대하는 구체적 행동을 촉구하는 세계적 호소” 결의를 대한민국·포르투갈과 함께 기권했다.[60]스기타 미오는 일본 내 소수자 차별을 호소하는 단체를 "피해자 사업"으로 규정하고, 위안부 문제 등 반일 선전을 퍼뜨리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61] 켄트 길버트는 '오키나와 민족' 차별 주장은 허구이며, 미군 기지 배치는 지리적 이유 때문이고, 일본인과 오키나와 현민 모두에게 차별 의식은 없다고 주장한다.[62]
6. 6.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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