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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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숭은 오호십육국 시대 전진의 인물로, 부등의 아들이자 부등 사후 황제에 즉위했다. 386년 부등이 황제가 되었을 당시 적자였으나 황태자로 책봉되지 못하고, 387년 상서 좌복야에 임명되어 동평왕에 봉해졌다. 388년 부의가 사망하면서 황태자가 되었으며, 394년 부등이 후진 정벌에 나서자 호공보를 지켰다. 부등이 패전하고 사망하자 황중에 즉위하여 부선을 황태자로 삼았으나, 서진의 공격을 받아 양정에게 망명했다. 이후 양정과 함께 서진군과 싸우다 전사했고, 전진은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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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4년 사망 - 부등
부등은 오호십육국시대 전진의 황제로서, 부견의 일족으로 비수 대전 이후 세력을 키워 황제에 즉위, 후진을 공격하며 전진 부흥을 꾀했으나 패배하여 처형되었다. - 394년 사망 - 아르보가스트
4세기 프랑크족 장군 아르보가스트는 서로마 제국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황제를 옹립했으나, 패배 후 자결하여 서로마 제국 혼란의 사례로 평가받는다. - 전진의 황제 - 부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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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견은 오호십육국시대 전진의 천왕으로, 왕맹을 등용해 전진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비수대전에서 패배 후 몰락하여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이상주의적인 인물이다.
부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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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부숭 |
원래 이름 | 푸숭 (苻崇) |
풀네임 | 푸숭 (苻崇) |
출생년도 | 343년 |
사망년도 | 394년 |
시대 이름 | 연초 (延初) |
시대 기간 | 394년 |
직위 | 전진의 황제 |
재위 기간 | 394년 |
선임자 | 부등 |
왕조 | 부(포)씨 |
가계 | |
아버지 | 알 수 없음 |
기타 | |
사후 칭호 | 없음 |
묘호 | 없음 |
2. 생애
386년 아버지 부등이 황제에 즉위했을 때, 부숭은 적자였지만 선대 황제 부비의 아들 발해왕 부의가 있었기 때문에 바로 황태자로 책봉되지 못했다. 387년 상서 좌복야에 임명되었고, 동평왕에 봉해졌다.[1] 388년 부의가 사망하자, 부숭은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394년 봄, 후진 군주 요장이 죽자 부등은 직접 후진 정벌에 나섰고, 부숭은 중요 거점인 호공보의 수비를 맡았다. 같은 해 여름, 부등은 폐교에서 후진의 윤위에게 대패하여 군대가 붕괴되었다. 부숭은 패전 소식을 듣고 황중으로 달아났다. 같은 해 7월, 부등은 마모산에서 후진군의 추격을 받아 살해되었다. 부숭은 황중에서 황제에 즉위하여 연호를 고치고 부선을 황태자로 책봉했다. 또한, 부등에게 고황제라는 시호를 올리고, 묘호를 태종으로 했다.
10월, 서진의 걸복건귀가 군대를 이끌고 황중으로 쳐들어오자, 부숭은 후구지 초대 군주 양정에게 망명했다. 양정은 부숭을 맞이하여 사마 소강에게 진주를 지키게 하고, 스스로 2만 병사를 이끌고 부숭과 함께 걸복건귀를 공격했다. 걸복건귀는 사촌 동생인 량주 목 걸복가탄, 동생인 진주 목 걸복익주, 입의장군 월질힐귀에게 3만 기병을 주어 맞서 싸우게 했다. 부숭 등은 평천에서 걸복익주를 격파했고, 걸복가탄, 월질힐귀는 모두 군대를 물렸다. 이후 걸복가탄은 다시 군대를 이끌고 부숭 등을 공격했고, 걸복익주, 월질힐귀도 이에 따랐다. 부숭 등은 대패하여 부숭과 양정은 전사하고 7천 명이 붙잡혔다. 이로 인해 농서 지역은 모두 서진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전진은 완전히 멸망했다.
양정 사후, 사촌 양성이 후구지를 다스리게 되었고, 아들 부선은 그의 밑으로 망명하여 요직을 역임했다.
2. 1. 초기 생애와 황태자 책봉
386년 아버지 부등이 황제에 즉위했을 때, 부숭은 적자였지만 선대 황제 부비의 아들 발해왕 부의가 있었기 때문에 황태자로 책봉되지 못했다.387년 상서 좌복야에 임명되었고, 동평왕에 봉해졌다.[1]
388년 부의가 사망하자, 부숭은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2. 2. 부등 사후 황제 즉위와 최후
394년 부등이 전사하자, 부숭은 황중(湟中)으로 도망쳐 황제에 즉위하고 아들 부선을 태자로 삼았다.부숭은 서진의 걸복건귀에게 의지하여 전진을 부흥시키려 하였으나, 같은 해 10월에 걸복건귀에게 쫓겨났다. 이에 부숭은 후구지의 양정에게 도망쳤고, 양정의 군대와 힘을 합쳐 걸복건귀를 공격하였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부숭과 양정은 걸복건귀에게 살해되었으며, 이로써 전진은 멸망하였다.
3. 전진 멸망 이후
394년 아버지 부등이 후진과의 전쟁 중 사망하자, 부숭은 기후강귀가 통치하던 황중(湟中, 현재의 시닝 칭하이)으로 도망쳐 황제를 자칭하고 아들 부선(苻宣)을 황태자로 세웠다. 그러나 그해 겨울, 기후강귀에게 쫓겨나 아버지의 마지막 남은 장군 중 한 명인 양정에게 의탁했다. 양정은 군대를 이끌고 부숭과 합류하여 기후강귀를 공격했다.
기후강귀는 기후이주 등 세 장수를 보내 양정과 부숭에 맞섰으나, 초기에는 양정이 우세했다. 그러나 서진(西秦)의 세 장수는 반격하여 양정과 부숭을 죽였다. 이로써 전진은 멸망했고, 부숭의 황태자 부선은 양정의 사촌이자 후계자인 양성에게 도망쳤다. 부선은 이후 양성과 함께 진으로부터 장군 직함을 받거나, 407년에는 양성의 군대를 이끌고 후진에 맞서는 등 역사에 등장하지만, 전진을 재건하지는 못했다.
사건 | 날짜 | 내용 |
---|---|---|
부등의 사망 | 394년 여름 | 부등이 마모산에서 후진군에게 살해됨 |
부숭의 황제 즉위 | 394년 7월 | 부숭이 황중에서 황제 즉위, 연호 개원, 부선(苻宣)을 황태자로 책봉 |
서진의 공격 | 394년 10월 | 서진의 걸복건귀가 황중 공격, 부숭은 농서왕 양정에게 망명 |
양정과의 연합 | 394년 10월 | 양정이 부숭을 맞이하고, 걸복건귀 공격 |
평천 전투 | 394년 | 부숭과 양정이 평천에서 걸복익주를 격파, 걸복가탄, 월질힐귀는 군대를 물림 |
부숭과 양정의 죽음 | 394년 | 걸복가탄의 반격으로 부숭과 양정 전사, 7천 명이 포로로 잡힘, 전진 멸망 |
4. 가족 관계
아버지 | 부등 (고황제)[1] |
---|---|
자녀 | 부선, 태자 (394년 책봉)[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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