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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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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삽량주는 현재의 양산시를 중심으로 신라 수도권과 김해, 창원 지역을 포괄하는 신라의 행정 구역이었다. 665년에 설치되어 757년 양주로 개칭되었고, 고려 시대에는 양주, 조선 시대에는 양산으로 이름이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삽량주는 신라의 삼한 통일 이후 수도 서라벌의 번영과 함께 발전했으며,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서 당나라, 일본, 사라센 상선까지 드나들었다. 신라 말에는 호족 자치 지역으로 변모했고, 후삼국 시대에는 고려와 후백제의 각축장이 되었다. 이후 신라는 고려에 투항하며 멸망했고, 삽량주 지역은 경상도로 편입되었다.

2. 연혁

665년(문무왕 5년), 상주(上州)와 하주(下州)의 일부를 분할하여 삽량주를 설치하였다.[1] 삽량주의 치소는 원래 신라의 삽량촌 또는 삽라군(歃羅郡)이었다.[1] 757년(경덕왕 16년), 전국의 행정구역 명칭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삽량주도 양주로 개칭되었다.[1] 혜공왕 때 원래 명칭으로 되돌렸다고 하며,[1] 고려 때는 양주(梁州)로, 조선시대에는 양산(梁山)으로 개칭되어 지금에 이른다.[1]

삽량주 관내의 신라군은 수도인 경주 일대를 제외하고 현풍군에 삼량화정(參良火停)과 적청•적백의 만보당이 주둔했다.[1] 신라 말, 삽량주 지역은 호족들에 의해 자치가 이루어졌고, 신라 중앙 정부의 영향력은 수도권으로 크게 줄어들었다.[1] 이후 삽량주 지역을 두고 고려후백제가 치열하게 다투었다.[1]

2. 1. 삽량주 이전

열국시대에 북쪽에는 신라가, 남쪽에는 가락국이 자리 잡았다. 신라는 진한 제국(諸國)의 맹주로서 현재의 경북 일대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가락국은 현재의 경남변한 지역을 가야연맹 아래에서 결집하여 다스리는 한편으로 동아시아 해상무역의 주도권을 잡고 번영하고 있었다. 신라는 거칠산국 등 현재의 부산 지역을 장악하고, 마두성을 세웠는데(87년), 그 뒤부터 현재의 양산낙동강 유역과 남해안을 둘러싸고 두 나라는 항쟁을 벌여왔고 여기에 가야의 부용 세력인 일본까지 끼어들어 경남 해안지역을 포함해 동해와 남해는 세 나라의 치열한 전장이 되었었다.[1] 215년에는 포상팔국으로 불리는 반(反) 가락국 연합군이 신라의 주요 무역항인 갈벌을 해군으로 공격했고, 유례 이사금 때에 신라군은 왜구를 정벌하러 일본을 침공하기까지 했다.[1] 400년백제의 충동질로 가야 연합군이 일본의 소국 연합군까지 끌어들여 신라를 대거 침공했다가 고구려의 후원을 등에 업은 신라의 역습으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패망하여 주도권이 신라에 완전히 넘어가고 말았고, 5세기 초입에 신라군은 이사부 장군을 앞세워 가락국과 탁순국 등 가야 동부 지역을 점령하고 559년에는 남가야의 중심지인 안라국에 아시촌 소경을 설치하여 가야연맹을 합병함으로써 영남 지역의 패권을 확립해 삼한통합의 기초를 닦았다.[1]

2. 2. 삽량주

파사왕 8년(서기 87년), 신라는 삽라군 물금지역에 마두성을 축조하여 대(對)가야항쟁의 교두부로 삼았고, 이곳은 두 나라 사이의 주전장이 되었다.[1] 665년(문무왕 5년), 상주(上州)와 하주(下州)의 일부를 분할하여 삽량주를 설치하였다.[1] 삽량주의 치소는 원래 신라의 삽량촌 또는 삽라군(歃羅郡)이었다.[1] 757년(경덕왕 16년), 전국의 행정구역 명칭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삽량주도 양주로 개칭되었다.[1] 혜공왕 때 원래 명칭으로 되돌렸다고 하며,[1] 고려 때는 양주(梁州)로, 조선시대에는 양산(梁山)으로 개칭되어 지금에 이른다.[1]

삽량주 관내의 신라군은 수도인 경주 일대를 제외하고 현풍군에 삼량화정(參良火停)과 적청•적백의 만보당이 주둔했다.[1] 경덕왕대에 경주 주변 2군에 육기정이 설치되어 수도 수비가 강화되었다.[1]

삼국사기》 〈지리지〉는 경덕왕이 중국식으로 고친 명칭을 기준으로 기록되어 있다.[1]

2. 3. 서라벌 대수도권(徐羅伐 大首都圈)

삼한 통일 이후 당나라의 침략을 막아낸 신라는 전성기를 맞이했고, 이에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을 중심으로 삽량주 북부지역은 신라의 수도권으로 번영을 누렸다.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지금의 경주시)은 17만 8936호로, 대략적인 인구가 최소 90만, 최대 120만으로 추산되어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 사라센 제국의 바그다드와 함께 당대 세계 3대 도시로 기록되었다. 그 넓이도 1,360방, 55리에 달하고 서라벌의 시가지 영역은 인근의 상성군대성군까지 뻗쳤다. 서라벌 시내에는 정결히 포장된 도로와 상하수도 시설을 갖춘 네모꼴의 정연한 도시 구획을 바탕으로 35금입택(金入宅), 4절유택(四節遊宅)으로 대표되는 화려한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었다.[1]

이러한 번영은 삼한 통일로 넓어진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활발해진 해상 무역과 이를 뒷받침한 상공업의 발전 덕분이었다. 서라벌의 남쪽 경비를 담당한 임관군 산하 2현이 있는 울산 지역은 서라벌의 해상 관문이자 주요 무역항으로 번창하여 당나라와 일본뿐만 아니라 사라센의 상선까지 입항하고 있었고, 외국의 사신단과 상인들이 울산을 거쳐 서라벌을 출입했다.[1]

2. 4. 삽량주에서 경상도로

신라 말, 삽량주 지역은 호족들에 의해 자치가 이루어졌고, 신라 중앙 정부의 영향력은 수도권으로 크게 줄어들었다.[1] 가락국이 있던 김해소경 지역은 가야 왕실의 후손인 김인광과 알천의 후손인 소충자, 김율희 형제가 진례성을 중심으로 김해, 창원, 함안 일대까지 지배했다.[1] 이 "신 가락국"은 훗날 금관가야로 알려졌으며, 선종 불교를 크게 후원하여 선종의 중심지가 되었다.[1] 신라 서라벌의 해상 관문이었던 울산 지역은 박윤웅이 학성을 중심으로 임관군동안군 지역을 아울러 지배하면서, 신라는 대외 외교 및 통상 통로를 잃고 숨통이 막히는 상황에 놓였다.[1]

삽량주 지역을 두고 고려후백제가 치열하게 다투었다.[1] 920년 대야성을 함락한 견훤의 백제군은 금관가야까지 쳐들어왔고, 고려군과 백제군이 격돌했다.[1] 927년 견훤이 직접 경주를 기습하여 포석사에서 제사를 지내던 경애왕을 살해하고, 왕건의 고려군을 대구 공산에서 격파했지만, 백제군의 과도한 폭력으로 민심을 잃고 안동에서의 대전쟁을 시작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1]

삽량주 지역 호족들은 백제에 적대적이었지만, 신라와 고려에 대해서는 엇갈린 태도를 보였다.[1] 금관가야의 김율희는 친 신라적인 태도를 취하다 몰락했고, 김해 지역은 고려 시대에 소경에서 부, 현으로까지 지위가 떨어졌다가 금관주라는 지위를 회복했다.[1] 반면 박윤웅은 친 고려적인 태도를 취하여 신라가 고려에 흡수 합병될 때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울산 지역은 흥례부를 거쳐 울주라는 거대 광역 행정 구역으로 성장했다.[1] 경애왕의 죽음으로 신라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고,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하면서 1000년 역사를 마감하고 멸망했다.[1] 고려 초, 경주는 동경이라는 이름으로 고려 3경 중 하나가 되었고, 995년 고려 성종 14년에 전국을 10도로 나누면서 영동도를 거쳐, 1106년 고려 예종 원년에 영남, 영동, 산남 3도를 합쳐 경상진주도로 만들면서 경상도가 되었다.[1]

3. 소속 군현

삽량주의 소속 군현[1]
군의 이름원래 군명현재 지명소속 현원래 현명현재 지명
양주(良州)삽량주(歃良州)경상남도 양산시헌양현(巘陽縣)거지화현(居知火縣)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김해경(金海京)금관국(金官國, 금관가야)
금관군(金官郡)
금관소경(金官小京)
경상남도 김해시---
의안군(義安郡)굴자군(屈自郡)경상남도 창원시칠제현(漆隄縣)
합포현(合浦縣)
웅신현(熊神縣)
칠토현(漆吐縣)
골포현(骨浦縣)
웅지현(熊只縣)
함안군 칠원읍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원시 진해구 성내동
밀성군(密城郡)추화군(推火郡)경상남도 밀양시상약현(尙藥縣)
밀진현(密津縣)
오구산현(烏丘山縣)
형산현(荊山縣)
소산현(蘇山縣)
서화현(西火縣)
추포현(推浦縣)
오야산현(烏也山縣)
경산현(驚山縣)
솔이산현(率已山縣)
창녕군 영산면
밀양시 삼랑진읍
청도군 청도읍
청도군 화양읍
청도군 매전면
화왕군(火王郡)비자화군(比自火郡)경상남도 창녕군현효현(玄驍縣)추량화현(推良火縣)달성군 현풍읍
수창군(壽昌郡)위화군(喟火郡)대구광역시 수성구대구현(大丘縣)
팔리현(八里縣)
하빈현(河濱縣)
화원현(花園縣)
달구화현(達句火縣)
팔거리현(八居里縣)
다사지현(多斯只縣)
설화현(舌火縣)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광역시 북구
달성군 하빈면
달성군 화원읍
장산군(獐山郡)압량소국(押梁小國)경상북도 경산시해안현(解顔縣)
여량현(餘粮縣)
자인현(慈仁縣)
치성화현(雉省火縣)
마진량현(麻珍良縣)
노사화현(奴斯火縣)
대구광역시 동구
경산시 진량면
경산시 자인면
임고군(臨皐郡)절야화군(切也火郡)경상북도 영천시장진현(長鎭縣)
임천현(臨川縣)
도동현(道同縣)
신녕현(新寧縣)
맹백현(黽白縣)
-
골화소국(骨火小國)
도동화현(刀冬火縣)
사정화현(史丁火縣)
매열차현(買熱次縣)
포항시 죽장면
영천시 완산동
영천시 도동
영천시 화산면
영천시 화북면
동래군(東萊郡)거칠산군(居柒山郡)부산광역시 동래구동평현(東平縣)
기장현(機張縣)
대증현(大甑縣)
갑화량곡현(甲火良谷縣)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기장군 기장읍
동안군(東安郡)생서량군(生西良郡)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우풍현(虞風縣)우화현(于火縣)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임관군(臨關郡)모화군(毛火郡)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동진현(東津縣)
하곡현(河曲縣)
율포현(栗浦縣)
굴아화촌(屈阿火村)
울산광역시 북구 강동동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의창군(義昌郡)퇴화군(退火郡)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안강현(安康縣)
기립현(鬐立縣)
신광현(神光縣)
임정현(臨汀縣)
기계현(杞溪縣)
음즙화현(音汁火縣)
비화현(比火縣)
지답현(只沓縣)
동잉음현(東仍音縣)
근오지현(斤烏支縣)
모혜현(芼兮縣)
음즙벌국(音汁伐國)
경주시 안강읍
포항시 장기면
포항시 신광면
포항시 연일읍
포항시 기계면
경주시 안강읍
대성군(大城郡)구도성(仇刀城)경상북도 청도군약장현(約章縣)
동기정(東畿停)
악지현(惡支縣)
모지정(毛只停)
경주시 양북면
경주시 동방동
상성군(商城郡)서형산군(西兄山郡)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남기정(南畿停)
중기정(中畿停)
서기정(西畿停)
북기정(北畿停)
막야정(莫耶停)
도품혜정(道品兮停)
근내정(根乃停)
두량미지정(豆良彌知停)
우곡정(雨谷停)
관아량지정(官阿良支停)
경주시 남산동
경주시 건천읍
청도군 각남면 신당리[1]
경주시 현곡면
경주시 천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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